기획ㆍ특집

비평 기획_ 한국 & 벨기에 공동제작 (3)연출가 Stef Lernous 인터뷰
연극감독으로 춤에 접근할 때 더욱 흥미느껴
정다슬_<춤웹진> 유럽 통신원

 벨기에 극단 ‘아바토와 페르메’와 한국인 안무가 허성임의 합작인 <님프>에서 연출을 맡은 스태프 레누스(Stef Lernous) 를 공연 후에 만났다. 벨기에 브뤼셀에 소재한 연극 학교 리츠의 교수로 재직 중이며 아바토와 페르메의 예술감독인 그는 벌써 16년 이상 연극 작업을 해오고 있다. 실험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연출로 잘 알려진 그가 무용 작업에 눈을 뜨기 시작한 건 겨우 2년 남짓. 조심스럽게 무용에 발을 담근 그가 바라보는 춤과 한국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다슬 <님프> 공연 잘 보았습니다. 이틀 동안의 공연이 모두 매진이라고 들었는데 연출가로서 만족스러웠는지 궁금합니다.
Stef Lernous 네, 만족스러웠습니다. 연기와 무용이 함께하는 작품의 경우에 두 장르가 그저 순서대로 나열되면서 분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님프>에서는 무용과 연극이 부딪히지 않고 적절하게 융화된 것 같아 만족스럽습니다.
한편으로는 어제가 초연이었는데 만약 지금 제게 몇 주의 시간이 더 주어진다면 변화를 주고 싶은 부분들이 벌써 보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올려진 작품에 후회를 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다른 방향으로 시도를 해보고 변화시키거나 좀 더 발전시키고 싶은 부분들이 보이는 것 입니다.
예술가로서 한 작업이 완전히 끝났다고 마침표를 찍는 것은 늘 어려운 일입니다. 작품이 무대에 올라가더라도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라 늘 변화하고 발전시킬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님프>가 한국 여성들이 지닌 모습들을 다방면에서 바라본 작품이라고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들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그렇습니다. 다만 <님프>는 여성뿐만이 아니라 제가 바라보았을 때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특별하고 흥미로운 모습들을 다각도에서 바라보려고 한 작품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는 꼭 지켜야 하는 전통적인 예의범절이 있지만 그것을 뒤죽박죽하게 만들고 무시하는 젊은 사람들이 있고, 다양한 이유로 과도하고 고급스럽게 치장된 백화점 군락이 있습니다. 또 한국은 성에 관련된 것들로 둘러싸여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홍등가는 물론 비디오방, 키스방, 러브호텔 등을 쉽게 찾을 수 있고 심지어 지하철에서는 사진을 몰래 찍지 말라는 사인까지 보았습니다. 이런 모습들 사이에서 변화되는 여성들과 그 여성들을 대면하는 남성의 모습까지 이루 말할 수 없이 다양한 한국의 모습은 제게 총천연색으로 보였습니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님프>에서는 매우 강렬하고 흥미로운 여성과 한국의 캐릭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어쩌면 모든 것이 너무 상징적으로 표현되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전 상징주의를 좋아합니다.

저도 많은 상징들을 보았습니다. 하얗게 칠해진 얼굴이나 스타벅스 컵, 흰 속옷이라든지--- . 이후에 <님프>를 벨기에에서 공연할 것이라고 들었는데 이런 상징들이 유럽에서도 같은 맥락으로 읽혀질까요?
그렇습니다. 저도 작품에서 표현하고자 한 상징과 의미들이 한국의 관객들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혹은 그것들이 어디에서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질지 궁금합니다.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작품을 벨기에로 가져가려고 노력 중입니다.

공연 후 한국의 관객들로부터 어떤 감상평을 들었는지 궁금합니다.
어제 관객 중 한 분이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눈물이 어떤 의미이던 간에 관객의 감정이 동요된다는 것은 아주 큰 칭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감사했습니다.
평소 저는 관객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기 보다는 공연 도중 관객들의 표정을 살피기를 좋아합니다. 아쉽지만 어제 공연장을 찾으신 관객들 대부분은 무표정했기 때문에 관객들의 생각을 읽기가 힘들어 오히려 호기심이 일어났습니다.

아무래도 <님프>의 분위기가 무겁고 진지한 편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았나 싶습니다. 음악이나 무음 등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요소들이 많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특히 움직임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사진처럼 느껴지는 장면들을 넣으며 시간을 최대한 늘리기도 했습니다. 관객들이 이런 시간들을 얼마나 지탱할 수 있는지, 이런 장면들이 얼마나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는지 그 미세한 경계를 시험하는 것은 늘 흥미롭습니다.

 



한국인 안무가 허성임씨가 <님프>의 안무를 맡았습니다. 어떻게 허성임씨와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몇 년 전 폴란드 보스나의 한 페스티벌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습니다. 가끔은 느낌이 딱 오는 사람을 알아볼 수 있지 않습니까. 그녀가 그랬습니다. 한 눈에 딱 띄었습니다. 우리는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가 그녀에게 무언극인 <몽키> 에 출연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 이후에도 성임은 저의 티비시리즈와 연극 작품에 여러 차례 출연했습니다.
그녀는 작품에 따라 진지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며 역할을 굉장히 잘 소화해내는 공연자입니다. 2년 전에는 그녀가 서울에서 열린 솔로이스트 공연 안무를 부탁해서 함께 작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연출가로서 안무가 허성임과의 작업 과정은 어땠나요?
매우 즐거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회가 있다면 그녀와 함께 더 일을 하고 싶지요. 이번에는 리허설 기간이 길지 않았기 때문에 공연자들에게도 더 깊이 있게 리서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기도 합니다.

네. 작품에 아바토와 페르메의 단원들과 한국인 무용수들이 함께 출연하였습니다. 어려움은 없었는지, 한국 무용수들과의 작업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출연자 모두가 자신만의 캐릭터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도 그들이 융화될 때 어떤 문제점이 일어나기를 기대했지만 서로 정말 잘 섞였습니다.
한국 무용수들은 그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인지하고 있었고 쉽지 않은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잘 소화해주었습니다. 다만 작업 기간이 짧았기 때문에 이제 겨우 그들을 알게 되었고 그들의 장점을 확실히 알게 된 것 같아 아쉽습니다. 다음 작업 기회가 만들어 질 때에는 그들의 장점을 십분 활용할 수 있으니 더 흥미롭지 않을까 합니다.

벨기에와 한국의 극장 작업이 달라 어려운 점은 없었습니까?
벨기에에서도 그렇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한 작품이 무대에 올라갈 시간이 다가오면 모든 사람이 힘을 합쳐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야 합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오히려 많은 규칙들이 세워지고 지켜야 하는 것들이 많아지기 때문에 안타깝습니다. 이해하기는 하지만 사실 동의하기 어려운 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부분들은 대개 소통을 통해 이해되고 해결점을 찾아가기 마련인데 한국에서는 통역이 있긴 하였지만 제가 직접 해결할 수 없어 어려웠습니다.

이제까지는 연극 연출가 겸 감독으로 일을 해왔다고 들었습니다. 안무 작업에도 참여를 하기 시작하였는데 각 포지션에 섰을 때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무용과 연극은 매우 다릅니다. 어떻게 이야기와 그 의미를 전달하는가에 있어 텍스트는 아주 쉬운 매개체입니다. 텍스트가 전달하는 주제나 의미는 매우 직접적이고 정확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춤은, 특히 현대무용은, 대체적으로 추상적인 편입니다. 상상력이 없는 직접적인 춤으로 컨텐츠를 전달할 경우에는 흥미로워 보이지 않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님프> 에서도 그러하였고 저는 스스로를 안무가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가 연극 감독으로서 춤에 접근할 때 더 흥미로운 작업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죠.

아까 말씀하셨듯 한국에서 허성임씨를 위해 파격적인 솔로를 안무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성임과의 <솔로이스트> 작업이 저에게는 첫 춤작업이었습니다. 작업은 벨기에에서 이루어졌는데 비록 길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리서치 작업을 많이 했습니다.
이 작업을 하면서 춤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었습니다. ‘춤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고 ‘춤’과 ‘움직임’의 차이라든지 많은 궁금증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특히 이전에는 잘 알려지거나 인기가 많은 작품들을 위주로 보러 다녔다면 요즘은 크고 작은 공연들 구분 없이 많이 접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렇군요. 당신에게 춤은 무엇입니까?
현재의 제게는 춤을 보는 것이 마치 재즈를 듣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재즈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이면서도 자유로운 형식과 퀄리티가 춤에도 있습니다.

앞으로 당신의 또 다른 춤 작업을 만나볼 수 있을까요?
아직은 구상 중이지만 성임과 듀엣 작업을 해보고 싶습니다. 솔로 작업은 안무가와 무용수의 관계에 국한되는 느낌이지만 서로 다른 케미스트리를 지닌 둘이 함께 할 때 다양한 가능성이 펼쳐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런 작업들을 계속 이어나가고 싶습니다.

2015. 09.
사진제공_옥상훈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