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스위스 현지취재_ Festival Antigel에서 만난 남아프리카의 춤
불평등에 저항하는 몸짓
김혜라_춤비평가

 UN 산하의 140여개 국제기구들과 사계절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 관광객으로 스위스 제네바는 항상 분주하다. 작지만 글로벌한 도시답게 제네바는 각양각색의 공연들이 눈과 비가 쉴 새 없이 내리는 겨울에도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그 중 앙티젤 페스티벌(Festival Antigel)은 제네바 시와 산하의 21개 구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올 해 6회를 맞이한 겨울 대규모 예술 축제이다. 춤을 비롯하여 연극, 전시, 음악, 스포츠 그리고 마켓까지 아우르는 이 축제는 올해 뉴욕과 남아프리카 예술작업들을 메인 테마로 소개하였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마기 마랭(Maguy Marin), 루신다 차일드(Lucinda Childs), 필립글라스(Philip Glass), 마리안 페이스풀(Marianne Faithfull)을 비롯하여 65개 단체들이 17일간(1.29~2.14) 공연하였다.

 

 



 여기서는 “Politics can be reinforced by music, but music has a power that defies politics.”(N. Mandela) 기치(旗幟) 아래 ‘사우스 아프리카, 왓츠 업(South Africa, What’s Up)’ 프로그램을 소개하려 한다. 마멜라(Mamela Nyamza)와 넬리시위(Nelisiwe Xaba)의 〈The last Attitude〉, 타미(Thami Manekehla)의 〈A Good Place for No Tourists nor Locals〉, 알버트(Albert Silindokuhle Ibokwe Khoza)의 〈Influences of a closet chant〉 세 작품 모두 ​남아프리카에 당면한 정치적, 인종적 불평등에 관한 주제를 다루었다.

 

 



 먼저 마멜라와 넬리시위, 2인 안무인 〈The last Attitude〉 (Salle Du Lignon, 2월 1일)는 발레를 소재로 일상에 만연해 있는 편견을 이야기한다. 흰 튀튀를 입은 백색 마네킹들과 시장카트에 짐더미처럼 실려 등장한 코르 드 발레가 작품 배경이 된다. 어디에도 흑인 여자 무용수의 자리(배역)는 없다. 재치 있는 발상이자 안무가의 의도가 명확하다. 두 무용수는 공연 준비 전 모습인 몸풀기(warming up)를 한 후 발레리노 복장으로 갈아입고 클래식 작품음악에 맞춰 마네킹과 파 드 되를 한다. 영혼 없는 몸짓들을 의미하듯 마네킹의 팔과 다리가 떨어져나간다. 마멜라는 부러진 팔 다리를 움켜쥔 채 절규하는 몸짓으로 자신의 내적갈등을 표현하고 마침내 그들은 남성복장을 벗고 검은 피부가 오롯이 드러난 벗은 몸에 흰 튀튀를 걸친 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봐달라는 듯 당당히 관객을 쳐다본다.

 

 



 이 대목에서 흑인 발레리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않는 발레를 질타하며 “성별과 인종에 따라 구분된 역할이 온당한지”, 과연 “누가 발레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안무가의 질문이 강하게 와 닿는다. 이미 많은 발레 작품에서 흑인 발레리나, 대머리 발레리노 등 인종적, 성별적 차이에 대한 고민들이 제기되었다. 그러기에 〈The Last Attitude〉의 주제는 최초라고 할 수는 없지만 진행 방식에서 설득력 있는 부분이 있었다. 안무가는 유머와 재치를 통해 유쾌하게 자신들의 배역은 어디에 있는지, 춤추는 그들이 과연 누구인지 찾게 하였다. 공연을 감상하며 “주인공이 혹은 코르 드 발레가 백인이 아닌 발레작품을 자연스럽게 감상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보게 되었다. 일상에 깔려 있는 편견이 결국은 차별일 수 있는 것이다.

 

 



 한편, 타미의 〈A Good Place for No Tourists nor Locals〉 (Place Du Lignon, 2월 3일)은 대다수가 흑인인 자기 고향에서 소수의 백인보다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불평등한 삶을 토로(吐露)한다. 그는 범죄율이 제일 높은 남아프리카 도시들(Cape Town, Johannesburg, Duban)의 위험성이 인종차별 때문임을 각인시키고자 한다. 이를 대변하듯 무대는 흰 테이프를 붙여놓은 사각 프레임과 격렬한 몸짓만으로 단조롭게 구성되었고, 마치 주변부로 살아가고 있는 자신들의 커뮤니티를 은유하려는 듯 안무자이자 무용수인 타미는 프레임 바깥을 걷고 뛰고 돌기를 반복한다. 그는 숨이 차오를 때까지 한참 동안 주변부를 돌다가 격한 움직임으로 프레임 안으로 쳐들어간다. 몸을 비틀고 바닥에 던지고 구르며 돌파구를 찾고자 하지만 변하는 것은 없다. 비록 그가 의도한 사회 비판적인 주제가 작품에서 설득력 있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거친 숨소리와 저항의 몸짓으로 반문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해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알버트의 〈Influences of a closet chant〉 (Theatre De L’usine, 2월 5일)는 전통적인 노래, 연기, 춤으로 구성된 주술적인 성격의 공연이었다. 관객들은 극장에 들어와 손을 씻고 자리에 앉도록 안내 받는다. 공연자 알버트는 지신밟기 하듯 무대바닥부터 사방 문까지 자신의 긴 딴머리로 치며 액땜을 한 뒤 촛불을 켜고 하얀 가루를 무대와 관객에게까지 뿌린 후 걸친 옷을 다 벗었다. 여성같이 크고 축 처진 가슴, 육중한 남자의 몸에서 풍기는 체취가 오묘하다. 공연자는 자신이 게이이며 댄서이자 주술사라며 자전적인 얘기를 맛깔나게 풀어간다. 자신이 발레학교를 다녔고 무용단 오디션 때 선보인 춤을 보여주며 자신의 과거를 회상한다. 이내 그는 어울리지 않는 요리사 복장에 붉은 튀튀 치마를 입고 아프리칸 주술적인 성격의 빠른 발놀림 춤을 춘다. 그는 시종일관 밝은 표정으로 얘기하고 춤췄지만 그의 언밸런스 한 의상에서 엿볼 수 있듯 현실 세상에 온전한 소속감을 느낄 수 없었던 자신을 보여주고 있다.
 관객과 교감 능력이 뛰어난 공연으로 객석에서 적극적인 호응을 얻긴 했지만, 좀 더 주술적인 분위기이든 아니면 무엇이든 몰입할 수 있는 무언가를 통해 자신을 온전히 드러낸 그만의 세계로 관객을 초대할 수 있었는데도 끝내 싱겁게 마무리된 점은 아쉬웠다.

 

 



 결론적으로 ‘사우스 아프리카, 왓츠 업(South Africa, What’s Up)’ 세 작품은 모두 자신들이 몸소 겪고 있는 사회적 편견에 맞서 자기정체성을 찾고자 한 작업들이다. 마멜라와 타미가 자신의 정체성을 그들이 속한 현실에서 돌파구를 찾고자 했고, 반대로 알버트는 자기 신념의 세계로 타자를 인도하여 “나대로 살기”를 보여주었던 것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비록 현란한 기교는 없었지만 남아프리카 컨템포러리 춤에 대해 이해하고 이들의 진솔한 얘기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시간이었다. 

2016. 03.
사진제공_www.antigel.ch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