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박금슬 선생 탄신 90주년 기념공연 〈족정정(足定丁)〉
20세기 중후반 한국춤의 유산, 박금슬
김영희_우리춤연구가

 박금슬 선생 탄신 90주년을 기념한 <족정정(足定丁)> 공연(예술감독 국수호)이 11월 3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있었다. 박금슬(朴琴瑟, 1925~1983) 선생의 제자들 모임인 금슬회(회장 정인삼)가 주최 주관한 공연은 안팎으로 성황리에 치러졌다.
 공연 제목인 ‘족정정(足定丁)’은 발이 정확하게 정(丁)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고 박금슬 선생이 생전에 말했던 춤을 시작할 때 갖는 자세를 뜻한다. 그리고 족(足)자에 담긴 뜻을 설명하기를, ‘口’는 동서남북을 가리키며 아울러 무대이고, ‘卜’는 팔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을 나타내고, 아래에는 ‘人’이 있는데, 이를 풀면 사람이 팔을 벌리고 무대 한가운데에 서 있는 것을 나타낸다고 하였다. 춤의 관점으로 족(足)의 의미를 설명한 것이다.


 



 공연의 1부는 박금슬 기본춤과 소품들로 구성되었다. ‘기본체 상중하 전체동작’, ‘기본체 굿거리’, ‘기본체 입춤’, ‘기본체 살풀이’가 박금슬 선생의 제자들에 의해 재연되었고, 박금슬 선생 생전에 녹음된 음악에서 선생이 육성으로 동작용어들을 설명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이어 박금슬 선생이 남긴 춤들이 차례로 추어졌다. 올 봄에 전북 무형문화재 48호로 지정된 <예기무>가 김광숙에 의해 추어졌다. 부채를 들고 뒷모습으로 등장하여 예를 갖춘 후, 맨손으로 춤을 춘다. 중심이 단단하여 흔들리지 않으며, 팔과 손사위는 정확하게 각도를 그리고, 발끝과 뒤꿈치는 긴장과 이완을 조절하며 바닥을 짚어준다. 그리고 수건을 들어 춤추다가, 허리를 수건으로 묶어 잦은몰이 장단에 접시춤을 춘다. 접시를 양 손에 들고, 어르기도 하고 돌리기도 하는데, 시선 하나로 관객과 교감한다. 접시춤은 경험 많고 높은 기생들만 추었다고 한다. 김광숙은 박금슬 선생과 태국에 있을 때 이 춤을 출 기회가 있었지만, 일제강점기에 일본 사람들이 기생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춤이었다고 하여 추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2000년대 들어 <접시춤>을 추기 시작했고, 김광숙에 대한 예능보유자 지정은 <예기무> 뿐만이 아니라, 박금슬 선생의 춤제를 그녀가 올곧게 계승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김평호(청주시립무용단 예술감독)가 춘 <거꾸로 산조>는 1967년에 초연된 작품으로, 산조의 음악 구성을 거꾸로 하여 휘모리, 중중모리, 중모리, 진양의 순으로 구성되었다. 휘모리로 힘차고 빠르게 등장하면서 시작한 춤은, 기존의 산조 음악 구성을 역순으로 하여 새롭게 시도한 것이다. 전통을 지키면서도 전통에 얽매이지 않았던 선생의 감각을 엿볼 수 있었던 순서로 박금슬 선생의 기본동작들을 춤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이어 국수호(디딤무용단 예술감독)의 <바라승무>가 이어졌다. 박금슬 선생이 1944년 무렵 백담사 오세암의 천월스님으로부터 바라승무를 배웠고, 이를 1967년에 <바라승무>로 작품화했던 것으로, 장삼을 입고 추다가 바라를 들고 추는 춤이다. 박금슬 선생은 불교에 매우 심취하여 불교적 소재를 근원적으로 접근하였고, <바라승무> 역시 이러한 배경의 춤이다. 청년시절 박금슬 선생을 사사한 국수호가 50여년의 세월을 거슬러 이번 공연에서 춤추었다.
 김은희(밀양검무보존회 회장)는 <호적 살풀이>를 추었다. 이 춤은 박금슬 선생이 태국에서 귀국한 후 작품화하였고, 유일하게 김은희가 받은 춤이다. 짧은 수건을 들고 추는 이 춤은 이번 공연에서는 김은희의 독무에 군무를 배경으로 추어졌다. 독무와 군무가 잘 어우러졌으며, 김은희의 ‘우리춤 원리연구회’가 박금슬 선생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2부에서는 1980년에 개최된 2회 대한민국무용제에 출품하여 음악상(김영동)과 신인상(김광숙)을 수상한 춤극 <태초(太初)>를 재연했다. 박금슬 선생이 대본을 구성하고 안무했던 작품으로, 한동엽(포천시립예술단장)이 재안무했고, 포천시립민속예술단 무용부가 출연했다. 태초에 인간이 되고자 했던 웅이와 선화의 사랑,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인간적 고뇌를 설파하고 보살피는 보살이 등장하는 작품이다. 이 역시 태초부터 비롯된 인간적 고뇌를 불교의 사상체계 속에 용해시킨 것이다.

 1, 2부를 합하면 이번 공연의 출연진은 춤꾼들만 86명이었다. 박금슬 선생의 직접제자들과 그 제자들이 모여 올린 이번 공연은 그 의미가 매우 크다. 박금슬 선생이 작고하고 몇 해 동안 추모공연이 있었지만, 20주기를 맞아 많은 제자들이 한 마음으로 모여 선생에 대한 기억과 업적을 다시 살린 공연이었기 때문이다.
 박금슬 선생의 대표작으로 1965년에 초연한 <번뇌(煩惱)>가 있다. 선생은 해방 이전에 이시이 바쿠에게 신무용을 배웠지만, 학계나 춤계에서 전통춤 전반에 아직 관심을 갖기 전에 전국의 전통춤을 찾아다니며 직접 배웠다고 한다. 이미 고성오광대놀이의 문둥북춤을 습득하시고, 문둥이의 인간적 고뇌를 박금슬 선생의 철학으로 해석하여 <번뇌>라는 작품을 탄생시킨 것이다. 당시에는 예쁘고 화사한 신무용이 일세를 풍미하고 있었으므로, 문둥이의 굴곡지고 어두운 춤을 통해 인간적 번뇌를 표현한 이 춤은 주목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1982년 서울시립무용단이 개최한 ‘명무전’에서 박금슬 선생의 <번뇌>가 재평가되었고,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며, 춤을 당당한 예술로서 정립시키고자 한 무용가들의 노력은 20세기 내내 이어졌다. 그 중에서도 박금슬 선생은 한국의 전통춤 전반을 아울러 춤의 체계를 세우고, 인생에 대한 철학적 견해를 독자적이면서도 개성 있게 춤 작품으로 표현했다. 한국 근현대춤에 이러한 춤의 유산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그 유산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것은 춤계의 몫이자 보람일 것이다.

2013. 12.
사진제공_월간 몸지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