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해외기획_ 아나 할프린 95세 생일
혁신적인 무용가에게 헌정된 춤들
조희경_순환창작소 대표

미국의 무용가 아나 할프린 (Anna Halprin)의 95세 생일을 기념하는 행사들이 세계 곳곳에서 열렸다. 샌프란시스코의 포트 매이슨 등 세 곳에서 약 3개월간의 창작과정과 3개의 창작공연에 참여한 아나의 제자인 안무가 조희경의 현장 참가기와 아나 할프린의 예술과 작업에 대한 글을 함께 싣는다. (편집자 주)


 

 지난 7월 13일 미국의 혁신적인 무용가 아나 할프린 (Anna Halprin)이 95세 생일을 맞았다. 특별한 해를 맞이하여 이번 상반기 내내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만안지역 뿐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서 축하와 감사를 표현하며, 95세를 맞은 아나의 생신을 축하하고 업적을 기리는 특별한 여러 행사들이 열렸다.
 나 또한 아나 할프린이 더없이 소중한 스승이기에, 당연히 내 감사의 마음을 헌정하고 싶었다. 나는 그 여러 가지 행사들 중 공연단체 〈잉크보트〉의 〈95제의들〉이라는 헌정 공연에 참여하면서, 다른 여러 가지 행사들도 가까이서 경험할 수 있었다.

 



 축하, 헌정 행사는 다각적인 면에서 이루어 졌다. 4월부터 7월까지 여러 차례의 시리즈 공연으로 이루어진 <아나에게 바치는 95제의들>(95Rituals ;for Anna Halprin) 공연은, 샌프란시스코 무용기관인 무용가들의 그룹(Dancer's Group)이 아나의 95세 헌정을 위해 ONSITE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기획하고, 공연단체 잉크보트(InkBoat)의 신니치(Shinichi Iova-Koga)가 연출을 맡아, 여러 나라 각지에서 온 공연자들이 함께 참여해 공연되었다.
 나는 이 그룹의 공연자로 참가해 5월부터 7월, 샌프란시스코의 포트 매이슨, 예바 부테나 센터, 하이드스트릿 피어 (Fort mason, YBCA, Hyde street pier) 세 곳에서 약 3개월간의 창작과정과 3개의 창작공연에 참여했다.
 연출자에게 아나 할프린이 살아온 근 100여 년 간의 어마어마한 인생과 업적에 헌정하는 공연을 창작하는 프로젝트를 맡았다는 것은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면서 동시에 큰 무게감을 느낄 만한 일이였을 것이다. 그 무게감만큼 즐겁기도 힘들기도 매우 도전적이기도 한 창작과정을 가졌던 것 같다. 참고로, ONSITE는 규모가 크고, 공간 특정적인 무용 공연을, 샌프란시스코의 공간들에서 공연함으로써 무료로 관객들에게 무용공연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순간을 다시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참 설레는 일이다. 1970년대에 아나 할프린이 샌프란시스코 무용가들의 워크숍과 함께 공연했던 <빈 플래 카드 춤>(The Blank Placard Dance)이 95세를 기념해, 미국 타말파 (Tamalpa Institute CA) 주관으로 5월 샌프란시스코 도심에서 재연됐다.
 이 공연은 사람들에게 현재 자신의 개인적인 혹은 공동체적인 쟁점들을 적극적인 표현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공동체의 표현이 예술을 통해 이야기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70년대 이 공연이 이루어질 때 공연은 진행 도중 경찰에 의해 저지당했다고 한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 관객으로 다시 참여하게 된 지금 세대의 예술가들은 그 당시와 지금을 비교해 예술과 사회에서 변화된 것,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들을 자연스럽게 생각해 보고 이야기 나눌 수 있었다. 이 전의 시간을 먼저 살아가 길을 닦고 변화를 일으켜준 선-예술가분들에 대한 감사 뿐 아니라 이 공연 자체가 시대, 사회, 예술에 대한 각자의 여러 다양한 견해를 자연스레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면들이 흥미로 왔다. 무엇보다 역사의 한 장면이었던 순간에 다시 있는 다는 것만으로도 설레 이기도 하고 참으로 감회가 컸다.

 



 아나가 인생에 수많은 작품들 중 단 한 공연작품만 전설로 남길 수 있다면 무엇을 남기겠는냐 는 질문에 이것이라고 답한 작품인 <플라네터리 댄스>(planetary dance)도, 95세를 기념하며 행해졌다. 이 공연은 35년째 매년 공연되고 있고, 그 뿐 아니라 전 세계 10여개가 넘는 나라에서 수십여 개의 장소에서 행해지고 있는 공연으로, 아나의 무용인생에 있어 주요한 공연 중 하나이다.
 올해로 35년째가 된 플라네터리 댄스는 매해 공동체에게 중대한 사안으로 그 춤의 주제를 참가자들이 함께 정한다. 예를 들어 어떤 해에는 자연환경이 주제가 되기도 했고, 학교 폭력, 유방암이 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공동체로서 어떻게 우리의 목소리가 들리게 공동으로 만들 수 있는지 배운다.
 이번 년도의 주제는 평등, 연대, 자유였다. 이번년도에는 원래 미국 땅의 주인이었던 아메리칸 원주민이 함께 참여해 축복을 내려주는 기도와 노래가 더해져 더 특별했다. 세계 각지에서 매 년 열리고 있는 수십여 곳의 많은 플라네터리 댄스도 이번 년도에는 아나 할프린의 95세를 기념하고 헌정하면서 열렸다.

 



 생일은 역시 가족과 보낸다고 했던가. 마지막으로, 수개월 간의 여러 다양한 95세 기념 헌정 행사의 마지막 일정이 됐던 행사는, 캔트 필드에 자리한 아나 할프린의 집과 함께 있는 역사적인 야외 무대에서 행해졌다. 그녀의 딸 다리아 할프린이 감독으로 있는 미국 타말파(Tamalpa Institute CA)에서 주관한, <아나를 위해 춤을> (Dances for Anna Halprin) 공연이었다.
 다리아 할프린은 아나 할프린의 큰 딸이자, 무용수, 교육자, 영화배우, 시인, 표현예술 치료사이자 아나와 함께 미국 타말파의 초기 공동 설립자였고 현재 미국 타말파 교장이다. 이 행사의 전 공연 티켓수입은 미국 타말파의 아트콥(ArtCorps)이라고 하는 세계 각지에 예술을 통해 삶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프로그램 진행 지원에 모두 쓰인다. 그 이유로, 아나도 이번에 그 행사에서 기꺼이 신작 <기억하며>(remembering)을 손자 제이한 (Jahan Khalighi)과 듀엣으로 창작해 공연했다. 지난 인생을 되짚고 손자에게 자신의 의자를 비워주는 장면에서 많은 사람들이 눈시울을 붉혔다. 인간적이고 참 감동적인, 가슴을 움직이는 공연이었다.

 



 이 공연행사에서는, 아나의 <기억하며> 작품 외에도, 각기 아나 할프린과 오랜, 특별한 관계를 맺어온 사람들이 각 개의 작품을 헌정하였다. 미술가이자 안무가이며 장소 특정적 무용 설치 작업을 하는 리즐리(Lesley Chapman)는 <(누에)고치>(The Pods)를, 아나의 딸인 다리아 할프린은 <다른 얼굴>(The Other face)을, 모션 씨어터의 창립자인 니나(Nina Wise)는 언어즉흥과 움직임으로 <니나 즉흥하고 있다>(Nina improvising)를 공연했다. 심리학자이자 노인학자인 켄(Ken Dychtwald)은 강연공연을, 마지막으로 재미 무용가 이도희씨가 아나 할프린의 1948년 작품 <여자 예언자>(The Prophetess)를 재현, 재창작해 공연했다.
 무용가이자 음악가이기도 한 이도희씨는 최근 도리스 듀크 임팩트 예술상(Doris Duke Impact Award)을 수상했다. 이도희씨의 공연을 머지않아 한국에서 볼 수 있길 기대해 본다.

 



 물론 행사는 함께 어우러져 추는 춤으로 마감되었다. <아나를 위해 춤을> 공연은 전반적으로 아나에 대한 진심어린 감사를 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기운이 많이 느껴지는 공연행사였다. 또한 아나 할프린의 95세의 지금 시점을 축하한다는 의미는 결국, 지난 아나 할프린의 업적들이 미래의 다음 세대들에게 어떻게 도움이 되고 다음세대에 의해 어떻게 발전될지를 따뜻한 가슴으로 응원하고 기대하고 고민하는 마음이 모두와 교감되고 공유되는 공연, 진행, 기획이었다고 느꼈다.
 95세를 맞은 아나 할프린, 그리고 이를 기념하며 전 세계에서 헌정된 많은 춤과 행사들... 과연 모든 예술가가 95세를 맞이했을 때 이렇게 많은 사람들로부터 진심어린 축하와 우러나오는 감사, 헌정을 받을까? 많은 사람들이 아나 할프린을 통해 자신의 삶에 감동적이고 근본적인 변화와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그것을 받았던 사람들로부터 가슴으로 부터의 감사와 헌정이 다시 돌아오는 것, 그리고 단지 돌아오는 것을 너머 확장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도 아나 할프린이 참 소중한 스승이기에, 모든 일을 기꺼이 다 포기하고 헌정에 참여 했었다. 그리고 내가 영향을 받은 것들을 나 자신에게 어떤 것들을 의미하는지 좀 더 이해하고 정리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나는, 95세를 맞은 한 무용가에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전 세계 곳곳에서 가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축하와 감사 그리고 헌정을 보낸 이유는, 아나 할프린이 살아온 실천해 온 인생에 있다고 느낀다. 그래서 나는 두 번째 이야기를 통해 간단하게 나마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나 할프린을 소개하고자 한다.

 


..............................................................................................................................................................




■ 아나 할프린은 누구인가?

예술을 위한 삶에서 삶을 위한 예술로

 


조희경_순환창작소 대표


 아나 할프린은 미국의 혁신적이고 역사적인 무용가로 무용 역사에 참으로 특별한 업적을 남겼음에도 우리나라 무용계에는 많이 소개되지 않았다. 이번 95세 기념 헌정 행사를 계기로 나는 짧게나마 이 글을 통해 혁신을 일생동안 실천해온 무용가 아나 할프린을 소개하고자 한다.
 지금도 여전히 공연 창작, 춤 교육 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는 아나 할프린의 근 100여년의 인생과 춤 업적을 이 하나의 글 안에 모두 담는 다는 것은 무리이다. 또한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나의 관심사, 관점, 기호, 경험의 폭 한계 안에 있다. 이런 한계를 감안하고, 나는 이 글을 통해 짧게 나마 내가 아나 할프린과 지난 수년간 작업하고 공부하며 접한 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삶과 예술의 통합을 실천해 온 아나 할프린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는 아나를 이렇게 만났다

 

 내가 왜 아나를 만나게 됐는지 그 이유가 아나의 업적과 관련이 있으므로, 이 이야기로 시작할까 한다.
 내가 아나 할프린을 만난 건, 2008년이었다. 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2006년 즈음, 불현듯, 나에게 창작 결과물의 중요성만이 아닌 창작과정에 대한 의미가 중대하게 다가왔다. 질문은 절실히 있는데 답을 모르겠기에,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이 문제를 풀었는지 궁금해졌다. 이리 저리 고민을 하다, 이 문제를 잘 풀었을 것만 같은 서양 현대 무용사 책에 나오는 사람들도 살펴보았다. 그런데, 춤과 창작과정을 글로 된 설명으로 읽으니 이 사람들이 분명 뭔가를 한 것 같긴 한데 실제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했다는 것인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나에게 전혀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책에 나오는 사람들, 스티브 팩스톤, 시몬 포르티, 트리샤 브라운, 데보라 헤이, 그들을 직접 만나러 여기저기를 다녔다. 만나보니 정말 모두 너무나 대단한 선생님들이였고 뚜렷한 자신만의 가치관을 깊이 발전시켜온 사람들이였다. 그러나 나의 답은 무언지 모르게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시몬 포르티의 워크숍에서 우연히 시몬 포르티가 쓴 책을 보게 되었는데 그 안에 그런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나의 춤 스승은 아나 할프린이다."
 나는 많은 현대 예술가들이 나는 누구에게 배웠지만 그것을 깨부수고 내가 이런 걸 만들었다는 식의 스승을 부정하는 경향에 익숙해 있었는데, 이렇게 군더더기 없이 당당히 말하는 시몬의 태도가 참 신선했고, 포스트 모던이라고 하는 파격과 혁신의 선구자 격으로 불리는 시몬이 이렇게 명료하게 말하는 이 스승이 누구일지 궁금해졌다.
 나는 시몬 포르티의 워크숍을 듣고 그녀의 공연을 보면서 시몬이 매우 차원이 다른 무용가임을 실감하고 감동하고 있었던 차여서, '시몬 포르티가 스승이라고 부르는 이 사람은 누굴까?' 꼭 한번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또 다시 아나의 이름을 보게 된 건, 프랑스에서 마크 톰킨스 라는 안무가의 워크숍 와중에 초청 무용가로 온 알랑 뷔파 (Alain Buffard)라는 무용가를 통해서였다.
 그의 프로필 설명은 딱 두 줄이었다.
 "나는 에이즈에 걸려서 춤과 내 삶을 모두 포기하려는 중, 아나 할프린을 만나 춤과 삶을 다시 시작했다"
 어라, 또 아나 할프린 이름이네! 근데 무용가인데 이 사람이 사람의 생명을 살렸다고?
 흠...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이 아나라는 사람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에이즈 약통을 하이힐 삼아 올라가는 장면이 압권이었던 알랑 뷔파의 자전적인 솔로 공연은 내게 매우 강렬하게 인상에 남았다. 그가 아나 할프린과 점심을 같이 먹으며 만든 댄스필름 안에서 등장한 아나의 아주 짧지만 강렬했던 즉흥적 움직임을 보고 아.. 저 사람이라면 춤에 대해서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게 분명하다는 느낌을 확연히 받았다. 아나 할프린, 그 여자를 꼭 만나 봐야겠다.

 




 나는 아나에게 이런 것들을 배웠다

 

 이렇게 이런 저런 실타래를 타고 2008년 나는 아나를 처음 만났다. 그리고 첫 수업에서 드디어 나는 나의 예술에 대한 고향을 찾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날 밤 아직 나의 답이 무언지는 모르겠지만, 드디어 맞는 곳에 도작했다는, 드디어 찾았다는 느낌과 그 감격에 엉엉 울었다.
 내가 찾아 헤매왔던 것은 여러 가지였지만 두 가지를 들자면, 하나는 창작과정에 대한 질문들이였다. 안무가는 자신의 주관적인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어 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은다. 그리고 그것을 점철 시킨다. 그렇다면 이런 과정에서 끌어 모아진 모든 사람들은 그 안무자를 위한 도구인가? 함께 창작하는 사람들의 도구화에 대한 의문.
 좋다 그럼, 방식을 바꾸어 공동창작을 한다고 치자. 실제 현실에서 집단의 의사결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결국 최종 결정자의 필요성과 책임의 문제가 제기되는데, 모든 사람들이 창조에 만족스럽게 참여하는 방식은 무엇인가. 과연 있긴 한가?
 또 하나는 예술을 창작한다는 것에 대한 스스로의 의미, 가치에 대한 질문이었다. 어느 순간까지는 나 자신이 재밌고 행복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창작의 의미로 족했다. 그러다 어느 날이 되자 나 혼자 행복한 의미가 충분하지 않아졌다.
 왜 나는 창작을 하지? 내가 창작을 하는 것의 의미가 뭐지? 스스로 의미가 없는 일을 계속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창작자체는 재미있었다. 그래서 계속 그 일을 나에게 의미 있게 하고 싶었고 그 방법을 찾아내고 싶었다. 그렇게 고민하던 중 '삶'이라는 단어가 실마리로 내게 왔다. 아나가 실천한 업적에는 집단창작과정(Collective Creative Process)과 삶-예술 연관과정 ( Life-Art Process )이 있다.




 아나는 무엇을 했나

 

 아나는 모던 댄스를 버렸다. 모던 댄스를 본 아나는 무용단 안의 모든 무용수들이, 그 안무가가 마사 그라함 혹은 누가 됐든지, 그 무용단의 안무가와 꼭 닮은 모습인 것이 아주 거슬렸다고 한다.
 각자의 몸이 달라 근본적으로 누군가를 그대로 흉내 낼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데도, 자기 자신이 다른 어떤 사람처럼 되기 위해 애쓰는 방식이 부자연스럽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창조력에 부합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나에게 있어서 잘못된 방법이었고, 그리고 그 믿음을 실천했다.
 아나는 모던 댄스를 하지 않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자신만의 실험을 시작하기 시작한다. 무용은 이래야 된다고 여겨진 모든 것들을 해제하는 실험을 했다. 말, 연기, 감정, 소리, 과제 수행적 무용, 무대도구들이 무용을 일으키는 방식, 야외무용, 전라 등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시기인, 이 시기에 꽤 길고 집중적인 즉흥 실험 시기를 거쳐 더 이상 즉흥이 아닌, 구조(Structure)를 가지고 있는 탐구(Exploration) 또는 스코어(Score)라고 부른 과정 방식을 실험해 나갔다. 이로써 즉흥 탐구가 반복과 발전, 그리고 평가가 가능한 창작과정으로 발전된다. 남편인 환경건축가 로렌 할프린과의 협력으로 스코어(Score)과정을 포함하고 있는 집단 창작 과정인 R-S-V-P 체계를 적용, 실험해나간다.
 아나 할프린의 워크숍에 포스트 모던 댄스를 이끌었던 이본 레이너, 시몬 포르티, 트리샤 브라운, 로버트 라우센버그, 메레디스 몽크 등 주 무용/예술가들이 학생으로 배우고 갔던 사실은 무용사에서 유명한 이야기이다.
 그렇게 근 20여 년간 전위적인 실험과 공연들을 하면서 두 번째 유럽 투어를 마치고 돌아온 어느 날, 아나는 예술을 위한 실험에서 목적이 있는, 삶의 변화를 동반하는 제의 춤으로 방향을 크게 전환하며, 함께 오래 일하던 팀과 이별을 하고,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한다.
 이후, 서로 다른 문화의 백인과 흑인이 함께 하는 과정자체를 창작으로 만들어낸 공연 후 더 다양한 인종을 포함해 만들어진 미국 최초의 다인종 무용단을 만들었고, 플라네터리 댄스 (planetary dance), 평화춤, 암환자, 에이즈 환자들과 같은 삶과 죽음을 다루는 삶의 실제의 일들을 실제 그 사람들과 함께 공연 창작하였고, 자연에서의 창작 등을 이어나갔다.
 실제로 아나는 1970년 50세 때 암을 겪었고, 2년 뒤 다시 재발하면서, 암을 치료하면서 암을 춤으로 극복하고 치유하는 과정을 경험한다. (물론 병원의 항암치료 및 모든 가능한 치료를 함께 했다.)
 아나는 자신의 춤을 통한 암의 치유 과정을 겪으면서, 심상과 신체/움직임, 정서의 통합연관을 깊게 체험하면서 그 현상에 대해 놀라게 된다. 이 통합 연관이란 자신이 그리는 심상이 어떻게 신체와 관계 맺고 있고 영향을 주고받는지, 그것이 자신의 생각과 어떤 연관을 주고받는지 그리고 그것이 실제의 삶에 어떤 실제적인 영향을 주는지 등에 관한 상호연관에 관한 것이다.
 아나는 삶-예술 연관 과정(life-art process)을 확립, 적용, 실천해 나간다.
 아나는 자신이 암을 겪기 이전까지는 예술을 위한 삶을 살았다면, 이후는 삶을 위한 예술로 전환됐다고 얘기한다. 현재까지 아나는, 특정한 양식으로서의 춤이 아닌, 어떤 춤의 스타일이나 어떤 문화를 가졌느냐와 상관없는 보편적인 원리로서의 인간 몸의 구조와 원리 이해를 기반으로 한 춤의 이해, 각자가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처럼 되려고 애쓰는 방식이 아닌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이 되고 각 자신의 창조력을 발생시킬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을 실천하는 창작과 춤 교육을 왕성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고 있다.
 "내게 맞는 과정이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도 맞을 필요는 없다."
 내가 좋아하는 아나 할프린의 말 중 하나이다. 나에게는 아나 할프린이 나의 일생에서 큰 선물이다. 이런 스승을 만났다는 것은, 진심으로 내 생애의 커다란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아나에 대해 이 지면을 통해 아주 작은 부분 밖에는 소개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게 그랬던 것처럼 아나 할프린의 삶이 누군가에게 실마리나 문, 영감이 되길 바란다.
 예술이 사람을 살릴 수 있을까? 예술이 사회에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어..
 아나 할프린은 한 때의 이런 나의 확신 없음을,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닌, 원형적 예술의 모습인 삶과 통합된 모습의 예술은 개인, 공동체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직접 경험과 의미로 바꿔주었다.
 목적이 있는 춤, 기능이 있는 춤이 가능하고 그것을 실천하시는 것을 보여 주시고, 예술의 원형적인 모습을 통해 예술의 의미를 되찾게 해 준, 아나에게 감사와 깊은 사랑을 드린다. 이 글도 아나에게 나의 작은 95세 생신 선물이 되길 바라며, 아나의 말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우리는 춤을 매우 제한된 방식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당신은 춤이 무대에서만 존재하는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진정으로 하고자 하는 것은 삶과 예술 간의 통합을 되찾는 것이다."
 -아나 할프린-

2015. 09.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