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학예굿, 한국춤의 생성론과 이애주의 춤세계
남기성

 지난 11월 13일 이애주 교수(중요무형문화제 제27호 승무 예능보유자)의 퇴임을 기념하는 학예굿이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100여명의 청관중이 함께한 가운데 성황리에 펼쳐졌다. (사)민족미학연구소와 민족미학회, (사)제주전통문화연구소, 한국전통춤회 등 여러 단체가 함께 주관한 이번 학예굿은 춤계를 비롯하여 연극과 미술, 역사학, 무굿 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여러 인사들이 각자의 시각에서 지난 40여 년간의 이애주 교수의 춤세계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였다.
 조경만 (목포대학교 인류학과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번 학예굿은 앞머리로 전 문화부장관을 지낸 김명곤(동양대 석좌교수)의 축사로 시작하여 첫째 마당 <한국춤의 생성론, 그 역사인식과 문화전승>, 둘째 마당 <학예굿, 이애주의 예술세계>, 그리고 마지막 셋째 마당으로 이애주의 춤 이야기와 춤 공연으로 짜여진 <태평무, 이애주의 몸과 춤 이야기>순으로 진행되었다.
 먼저 첫째 마당에서 역사학자인 이이화는 「역사로 본 민족문화와 민족춤-이애주교수의 현장춤을 중심으로」이라는 기조발제를 통해서 역사로 본 우리 민족문화의 뿌리를 우리의 고유무속인 샤머니즘에 두고 고대 이래 한민족의 역사 속에서 이애주 교수의 춤 작업을 갈무리 하는 가운데 의례춤, 진혼춤, 개천무 등에서 고대 제사장의 역할로서 의례, 의식춤을 추어오고 있다고 보았다. 또한 오랜 기간 "굿을 예술로 승화시켰으며 이 굿을 민주함성이 메아리치는 현장에서 대중을 감동시켰고 주역 등 동양고전을 연구하면서 민족문화의 새로운 이론정립에 심혈을 기울여 왔고 지평을 넓혀왔다.”고 평가하면서 더욱 원숙한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하였다.
 채희완(부산대학교, 미학)은 「이애주 춤과 한국춤의 생성론」을 통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추어지는 것”으로서의 이애주 춤 속에서 생성론적 미학의 단초를 찾는 가운데 1974년
 첫 번째 춤판인 ‘땅끝’이래 ‘바람맞이’(1987)와 한판춤에 이르는 이애주의 춤세계를 생성론적으로 해석하면서 “춤구경이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역사적 실천”임을 확인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이애주의 집회와 시위, 죽음의 현장과 생태계 파괴와 반통일의 현장에서의 한판춤은 변역(變易)의 생성활동의 씨앗이 되는 생명평화의 춤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애주의 춤과 4.3트라우마의 굿치료」라는 발표를 통해 문무병((사)제주전통문화연구소 이사장)은 1948년 제주4.3항쟁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망자들을 위한 굿으로 하는 싸움이자 4.3의 싸움을 해원하는 ‘4.3 싸움굿’에서 추어진 이애주의 해원굿춤에 대해 4.3트라우마에 대한 굿치료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있다. 다랑쉬굴을 비롯한 4.3학살 터에서의 이애주의 춤은 “인간의 영혼뿐만 아니라 상처받은 땅인 자연까지도 함께 치유하는 상생의 굿”이며 온몸으로 써내려간 ‘몸글’이며 ‘춤으로 쓴 4.3 영가 천도시’로 4.3트라우마의 예술치료라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냈다고 보았다.
 신상미(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교수)는 「이애주 <한밝춤>의 치유성 연구」를 통해 전통춤인 승무와 ‘바람맞이’로 대표되는 이애주의 생명춤 등이 서로 다른 춤이지만 이 모두 우리 민족의 얼을 담고 있으며 이는 곧 전통춤 사랑과 춤 정치의 표본이자 한국의 고유한 춤맥을 온몸과 정신으로 잇고 있다고 보았다. 또한 이애주가 창조한 <한밝춤>을 이춤의 기본사상인 ‘한’사상을 노자의 무위자연론과 장자의 원기양생론, 칼 융의 전일성 심리치료론, 아리스토텔레스의 카타르시스론과 연결하여 이 춤이 가지고 있는 치유성에 대해 살피고 있다.
 윤지현(서강대 강사, 춤 사회학)은 「소통과 사회치유로서 새로운 춤과 제의 모색-한국 전통춤에 대한 문화상호주의적 접근」이라는 발표에서 이애주의 한국전통춤의 주체에 대한 강조에 대해 제삼세계 예술인으로서의 당연한 통찰이자 실천으로 평가하는 가운데 한국전통춤의 새로운 과제로 후속세대의 양성과 함께 내적으로 동질적이지 않은 동시대 한국문화의 상태를 인정하는 가운데 “한국춤의 정신이라 할 생명사상과 신명에 더불어 민중춤에 도저하게 흐르는 저항과 해방의 정신을 세계 도처의 자본주의의 그늘에서 억압받는 동시대인과 공감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역설하였다.
 둘째 마당 기조발제자로 나선 유홍준(명지대학교, 미술사학)은 「80년대 춤과 미술의 만남」을 통해 화가인 고(故) 오윤의 판화 속에서 춤추고 있는 이애주의 춤세계과 오윤의 미술세계의 만남과 그들이 이룬 예술적 성취에 대해 언급하였다.
 김연정(서울대 강사, 춤학)은 「춤꾼 이애주의 삶과 예술세계」를 통해 이애주의 춤 인생을 4단계로 나누어 보면서 각 시기의 특징과 성격에 대한 분석을 더했다.
 경기 도당굿 보존회의 변남섭은 김헌선(경기대학교, 국문학과 교수)과 함께 쓴 「이애주 춤의 전통과 혁신-체용(體用)의 관점에서」라는 발표문을 이애주의 춤을 체(體)와 용(用)의 관점에서 분석하였다. 먼저 전통의 올곧은 계승이라는 체(體)의 관점에서 경기남부지역의 굿장단을 토대로 한성준에 의해 만들어져 한영숙을 거친 이애주의 태평무를 주목하면서 태평무의 전통에서 장단의 생사맥을 아는 것이 아주 중요하며 생사맥을 통한 일련의 구분법은 이애주 춤의 특장을 해명하는 것이며 이러한 생사맥에 의한 역동성을 한껏 구현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또한 이애주 춤의 용(用)의 진정한 생명력을 그의 일련의 창작춤의 과정에서 찾고 이애주 춤의 성격을 전통성과 창조성의 양면을 고루 갖추고 있으며 이애주의 춤은 깊은 열망에서 관찰하고 이것에 몰입하게 하는 근본적인 힘이 있다고 보았다.
 마직막 발표자로 나선 홍성담(화가, <단원과 수평> 대표)은 「그림 속에 좌정한 女司祭-이애주 ‘춤’과 민중미술의 행복한 동행」을 통해 앞서 유홍준이 발표한 오윤의 판화작품에 등장하는 이애주의 춤뿐만 아니라 홍성담 자신과 여러 화가들의 그림과 이애주의 춤을 비교 분석하는 가운데 8,90년대 화가와 조각가의 눈과 그림 속에 잡힌 이애주의 춤과 춤꾼 이애주의 눈과 몸에 잡힌 화가의 그림에 대해 분석하였다. 이는 더 나아가 사진작가인 고(故) 김영수와 약 12년간 전세계의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반도의 통일을 기원하며 민족의 정기가 흐르는 상징적인 장소들을 찾아가 터벌림 판을 만들고 그 땅들이 만들어내는 ‘소리’들을 이애주의 ‘몸짓’으로 만들어내고 그 것을 다시 김영서의 카메라로 담아내는 작업까지를 일괄하였다. 발표자인 홍성담은 이번 발표를 위해 세 번에 걸친 긴 대화를 거쳤으며 함께 그림과 사진을 선별하였다고 하였다. 시간에 쫓겨 아쉬움이 더했던 홍성담의 이날의 발표에 대해 이후에 독자적인 발표 기회를 갖자는 의견이 오가기도 하였다.
 마지막 셋째마당은 이애주의 짧은 춤 이야기와 ‘태평춤’ 실연으로 마무리하였다. 역시나 시간에 쫓겨 짧은 춤판으로 마무리 할 수밖에 없는 아쉬움이 남았다.


 

 

 

 이번 학술 행사는 ‘학예굿’이라는 조금은 생소한 제목으로 펼쳐졌다. 이에 대해 사회를 맡은 조경만은 기존의 학술대회와 달리 학문과 예술, 굿이 서로 다르지 않고 하나임을 실천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의지의 반영이라고 설명하였다. 즉 우리 전통굿의 손님굿을 중심으로 한 몇몇 거리에서 행해지는 ‘인물적간’이나 ‘치국잡이’의 예를 들며 이러한 대목이 신이나 인간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땅에 대한 내력이나 정체를 밝히는 과정이며 이것이 곳 학술이며 학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와 개개인의 삶의 현실과 아픔을 밝히고 치유하고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과정, 이것이 곳 학문이며 예술이며 굿이라는 말로 ‘학예굿’이라는 의미를 밝히는 가운데 오늘의 학예굿이 이제 첫 시도라 본격적인 ‘굿판’으로까지는 가지 못하지만 이를 시작으로 새로운 학술대회의 전범을 만들어보겠노라하였다. 


 우리의 전통춤은 삶의 현장에서 주로 추어졌다. 궁정의 연희공간이나 제례공간의 춤 역시 삶의 연장이요 자연과 신들과 교감하는 자리이다. 당대의 현실적인 삶과 의례의 시공간에서 신과 자연과 교감하며 이것을 하나로 아우르는 지극한 육체적 활동이다. 그러나 근현대 한국춤의 역사에서 이러한 전통은 점차 희박해져갔을 뿐 아니라 많이 주목받지 못했으며 심지어 ‘예술춤’ 밖의 것으로 애써 무시되어온 듯도 하다.
 이애주는 이러한 당대 한국인의 삶과 의례, 역사의 시공간에서 살아 춤추던 춤꾼이었다.
 80년대를 살아온 사람들에게 아직도 선연하게 남아있는 ‘바람맞이’, 연세대 학생이던 이한렬의 장례행렬 선두에서 큰칼 두 자루를 썽나게 휘두르며 독재의 망령들과 삿된 것들을 무지르던 모습, 수십만 군중이 모인 시청 앞 광장 노제에서의,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뿐만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이들의 분노와 공포와 비탄과 울음과 결기와 희망을 그 작은 몸, 온몸으로 대행하던 사제자로서, 춤꾼으로서의 이애주를 기억한다. 그러나 이후 벽사 한영숙의 승무 보유자 지정 이후 그러한 역사의 현장에서 사라져 일반 대중의 눈에 많이 보이지 않던 이애주는 이후에도 끊임없이, 누가 주목하던 하지 않던, 이 땅의 아픈 역사의 현장에서 살아있는 우리들과 중음신들과 함께해왔다. 2000년대의 다랑쉬와 북촌의 학살현장에서의 춤이 그러했고 고(故) 김영수와의 작업 역시 그러했으리라 여겨진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애주의 춤 인생은 마땅히 주목받아야 했으며 따라서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이번 학예굿은 이에 대한 시작으로서 보다 큰 의미를 가졌다고 보여 진다.

2012. 11.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