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서울 부산 대구 국제즉흥춤축제
가장 순수한 몸짓과 만났다
이보휘_<춤웹진> 기자

 아시아를 대표하는 즉흥춤 축제로 매년 세계적인 즉흥 전문 아티스트들이 참여하는 서울국제즉흥춤축제(Simpro)가 4월 3일 개막, 12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을 중심으로 열렸다. 이후에는 부산국제즉흥축제(Bimpro)와 대구국제즉흥춤축제(Dimpro)와 연계해 4월 17일까지 계속 이어졌다.
 15회째를 맞은 올해 서울국제즉흥춤축제에는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일본, 홍콩, 모로코, 헝가리, 멕시코, 부르키나 파소, 한국 등 10개국에서 200여명의 아티스트들이 참여했다. 올해 돋보인 프로그램은 프랑스의 거장 안무가 수잔 버지를 특별 초청하여 특강 및 전문 무용수들을 위한 워크숍을 펼친 것과 6개의 국가간 국제 즉흥 협업작업 공연, 그리고 전문무용수, 일반인, 지도자 등을 대상으로 한 모두 23개의 즉흥 클래스였다.
 다채로운 프로그램 중에서 세계 여러 나라의 초청 아티스트들이 참가하는 라운드 테이블과 주말을 맞아 나들이를 온 가족 관객들이 유독 많이 눈에 띄었던 마로니에 공원의 야외즉흥 공연, 그리고 즉흥이 공연의 양식으로 올라 왔을 때 가장 어렵고 스릴이 있다는 컨택즉흥 공연 현장을 소개한다.

 




 라운드 테이블: Talk Talk 즉흥 <지금, 세계의 즉흥은?>

 

 4월 11일 오전 11시 대학로 예술가의 집. 세계 각 나라 즉흥춤의 현황에 대해 이야기하는 라운드 테이블 프로그램이 열렸고, 인도네시아, 일본, 네덜란드, 헝가리, 멕시코, 그리고 한국의 아티스트들이 참여했다.
 서울국제즉흥춤축제 장광열 예술감독은 “한국의 40개 넘는 무용 전공이 개설된 대학 중 즉흥 수업을 하고 있는 학교는 10개도 안된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즉흥의 중요성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고 있고, 즉흥을 가르칠 만한 전문인 역시 많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2001년에 시작한 서울국제즉흥춤축제의 경우 초창기에는 참가 팀을 구하기 어려웠는데, 올해는 50여개의 팀이 공모에 신청을 했을 정도로 즉흥춤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며 한국에서 조금씩 자리잡아가고 있는 즉흥춤의 이모저모에 대해 말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오가인(Ga-in Kei Oh)은 쿠찹(Kecak)댄스에 대해 소개했다. 쿠찹 댄스는 인도네시아 전통춤으로 라마와 신타라는 신이 등장하는 신화를 담고 있다. 너무나 아름다운 여신인 신타를 보호하기 위해 라마가 계속 싸우자 인간이 이를 막으려고 하는 과정에서 나온 춤이라고 한다. 그녀는 “인도네시아에는 즉흥춤이라는 장르가 없고, 쿠찹 댄스 또한 즉흥춤이라고 불리지는 않지만 즉흥의 형식을 갖고 있고 여기에서 파생된 즉흥춤이 추어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일본에서 온 마코토 마스시마(Makoto Matsushima)는 “현재 일본에서 즉흥춤은 아주 활성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조금씩 자리잡아가는 단계”라고 소개했다. 그는 어떻게 하면 즉흥춤을 공연에 올릴 수 있을까란 주제로 책을 냈을 정도로 즉흥춤을 깊이 있게 연구하고 있으며 물질, 관찰, 해석, 명사, 조정 등의 요소에 집중해서 즉흥 움직임의 의미까지 이해할 수 있는 기능 시스템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는 “아직도 나아갈 길이 많지만 그래도 이렇게 꾸준히 즉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네덜란드에서 온 카이 파트루(Kay Patru)는 원래 발레를 했었고, 네오클래식 컴퍼니에 들어가면서 즉흥을 접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 뒤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영역을 넓혀갔고, 소마틱스(somatics)를 알게 되었다고 이야기 했다. 움직임이 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면 소마틱스는 개인의 경험을 중요시 하는 것으로 자신의 에너지의 흐름을 읽고, 감각에 의지해 움직이는 것이다. 카이 파트루는 “유럽에는 안무를 위한 센터가 많다. 거기서 즉흥은 중요한 연습방법으로 새로운 형식을 찾고, 그 형식을 믹스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고 설명했다.





 한국출신으로 네덜란드와 캐나다에서 공부한 고지혜는 캐나다에 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즉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즉흥은 안무뿐만 아니라 다른 장르의 창작에도 도움이 되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녀는 바디워커(bodyworker)도 즉흥을 힐링의 툴로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바디워커는 몸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치유하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 건강관련 치료사, 마사지 테라피스트, 운동 치료사를 말한다.
 헝가리에서 온 바타리타(Batarita)는 헝가리는 사회주의 국가로 1989년 전까지만 해도 발레만 있었고 그 이후에 변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모던이라는 말조차 사용할 수 없었고 그래서 체조선수로 정체를 숨기고 활동했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요즘에는 많이 자유로워지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헝가리에 즉흥잼을 하는 모임이 있으며, 전문인 2명이 이끌고 가긴하지만 누구나 돈을 내고 참여할 수 있다고 한다.
 이에 마코토 마스시마는 흥미로웠던 즉흥잼 경험을 이야기 했다. 베를린에서 즉흥잼에 참여했었는데 오후 8시부터 시작해서 새벽 1시에 끝났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서 즉흥춤을 추는데 밥을 먹고 다시 와서 추기도 하고, 중간에 중요한 업무를 하고 와서 추기도 하면서 계속해서 즉흥춤이 이어졌다”고 이야기 했다.
 멕시코에서 온 가브리엘라(Gabriela Cuevas Avitia)는 멕시코는 다른 국가들과 상황이 많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녀가 자란 도시에는 무용을 배울 곳이 없어서 찾아 다녀야 했고, 약 10년 전에야 생겼다고 이야기 했다. 처음에는 발레로 무용을 시작했고, 안무가와 작업을 하면서 즉흥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헝가리에서 즉흥춤은 페스티벌이 생길 정도로 활발하진 않고, 적은 수의 무용수들이 하고 있지만 즉흥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울시민과 함께하는 야외 즉흥공연

 

 4월 11일 오후 1시부터 마로니에 공원에서 서울시민과 함께하는 야외 즉흥공연이 열렸다. 커뮤니티댄스 간다비아, 무용개혁코드, 프로젝트그룹 추자 팀이 함께 출연 했으며, 세 팀 모두 무용전공인이 아닌 정말 춤이 좋아서 활동하고 있는 일반인들이 공연에 출연했다.
 당시 마로니에 공원에는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고, 벚꽃 잎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고, 벤치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연인과 소풍을 나온듯한 가족, 뛰어노는데 여념이 없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이 매우 여유로워 보였고 시간이 잠시 멈춘 듯 했다.
 서울시민과 함께하는 야외 즉흥공연은 무대와 객석, 출연진과 관객이 하나가 되는 공연이었다. 출연진은 시민들 사이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고, 공연이 끝날 때쯤에는 시민들도 함께 일어나 춤을 추고 있었다. 한 낮에 벌어진 댄스 파티였다. 삶 속에 녹아든 춤이라는 예술이 보석처럼 빛나는 순간이었다.

 




 컨택즉흥 공연

 

 오후 4시부터는 아르코 소극장에서 컨택즉흥 공연이 진행됐다. 네덜란드의 Kay Patru, 멕시코의 Gabrial Cuevas Abitia, 헝가리의 Bararita Batarita, 한국의 김설진과 차진엽이 무용수로 출연하고 모로코의 Sbitar Omar의 연주가 더해졌다.
 공연이 시작하기 전 무용수들은 이미 무대로 나와 몸을 풀고 있었고, 관객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무대 뒤 벽 중앙에는 60분을 가리키고 있는 시계가 눈에 띄게 걸려있었다.

 



 공연은 무대에 걸려있던 시계의 카운트다운과 함께 시작되었다. 무용수들은 천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각자의 위치에서 시작한 무용수들은 어느새 둘이서 혹은 셋이서 함께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그 모습은 공연을 넘어 사람들이 사회 속에서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는 듯 했다. 처음에는 서먹하게 다가가지만 시간이 지나고 교류가 많아지면서 친밀해지는 관계말이다.
 무용수들은 여럿이서 혹은 혼자서 동작을 만들어갔고, 철저히 자기 감각에 집중하고 있는 듯 보였다. 음악소리, 무대에 흐르는 공기, 자신의 숨소리, 다른 무용수의 숨소리, 관객의 시선, 자신의 감정 등 이 모든 것에 집중하는 듯 했다.
 가끔은 우스꽝스러운 동작으로 관객의 웃음을 유발하기도 했다. 차진엽은 자신의 옷으로 관객과 줄다리기를 하기도 하고, 김설진은 무대 밖으로 퇴장하기도 하고, Kay Patru는 바나나를 먹기도 했다. 그 밖에 옷, 휴지, 대걸레를 소품으로 사용해 동작을 만들어냈다. 무용수들은 다른 이의 동작을 받아들이고 이것을 다시 자신만의 동작으로 만들기도 하면서 공연을 진행시켜갔다.

 



 어느덧 시계는 0을 가리켰고, 컨택즉흥은 마무리 되었다. 객석에서는 박수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관객들은 환호 하며 무용수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공연은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관객과 함께하는 즉흥 파티가 남아있었다.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무용수들의 손에 이끌려 무대로 나갔고 함께 즉흥춤을 추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들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고, 그렇게 공연은 끝이 났다.
 관객들은 공연이 끝난 후에도 무용수들과 사진을 찍거나 이야기를 하느라 떠나질 않았고, 무대를 정리해야 한다는 관계자의 멘트를 들은 후에야 어렵게 발걸음을 돌렸다.
 원래 춤을 좋아해서 평소에도 종종 공연을 보러 다닌다는 김선애(35세)씨는 “카운트다운되는 시계를 보면서 60분 후에는 공연이 끝난다는 생각에 우리의 삶과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점점 시간이 주는 모습이 살아갈 날이 점점 줄고 있는 사람과 같아 보여서 움직임들이 더 가슴에 와 닿았다”고 말했다.
 또한 천고은(23세)씨는 “원래 춤은 잘 모르는데 댄싱9 팬 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정보를 보고 공연을 보러왔다”고 이야기 하면서 “현대무용이라는 장르가 평소에 접하기 힘든 장르인데 이렇게 좋은 공연을 보게 돼서 너무 좋았다”고 소감을 들려주었다.
 각각의 무용수들이 만들어내는 움직임의 매력과 즉흥의 매력을 십분 느낄 수 있었던 공연이었다.

 




 부산 & 대구 국제즉흥춤축제

 

 서울에서의 즉흥춤 열기는 부산으로 이어져 4월 11일부터 13일까지 3일 동안 제8회 부산국제즉흥춤축제(예술감독 박은화)가 해운대 모래사장과 대학 캠퍼스, 그리고 공연장 등에서 펼쳐졌다.
 4월 11일에는 부산타말파 연구회, 박연정 무용단, 백현경, 현대무용단 자유, 잉스문화예술교육연구소가 참여한 가운데 해운대 백사장에서 <자연과 함께하는 야외즉흥>이 펼쳐졌고, 참여 예술가와 관객이 소통할 수 있는 <톡&톡>이 이어졌다.

 




 4월 12일에는 사상인디스테이션 극장에서 부산예술고등학교, 신라대학교, 부산교육대학교, 영산대학교, 부산대학교 학생들이 참여한 〈Free 즉흥〉과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즉흥잼(JAM), 릴레이 형식으로 진행되는 〈100분 릴레이 즉흥〉이 진행됐다.
 4월 13일에는 덕포시장 사상역에선 〈FUN 즉흥〉이, 사상인디스테이션 극장에서는 마코토 마스시마, 카이 파트루, 고지혜, 강희정, 김남진, 성은지, 손영일, 정미영, 지경민이 참여한 가운데 컨택 즉흥 공연이 펼쳐졌다.
 4월 12일, 13일에는 다양한 즉흥 공연 외에도 즉흥을 위한 워크숍이 열렸다.

 










 다음으로 바턴을 이어받은 지역은 대구였다. 4월 15일과 16일 대구 봉산문화회관 스페이스라온에서 제2회 대국국제즉흥춤축제(예술감독 우혜영)가 열렸다. 4월 15일엔 마코도 마스시마, 전홍렬과 손승희, 춤서리 무용단, 김민준, 대구현대무용단 카이 파트루와 고지혜가 출연했고, 4월 16일엔 T.O.M.A 무용단, 아트스테이, 김성용MOOE무용단의 공연이 열쳐졌다. 또한 4월 16일에는 카이, 고지혜, 마코토 마스시마, 추현주, 박홍기, 김성우가 참여한 가운데 컨택즉흥 공연이 펼쳐졌다.
 워크숍은 영남대학교 천마홀과 대구 봉산문화회관 스페이스라온에서 하루 2회씩 마코토 마스시마와 카이 파트루가 강의를 맡아 진행했다.

 




 

2015. 05.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