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한국춤 100選 열두마당〉
한국무용사로 풀어낸 12개의 춤
김영희_우리춤연구가

 궁중무용춘앵전보존회(이사장 박은영)가 주최하는 “한국춤 100選 열두마당”은 2006년부터 매년 거르지 않고 개최되는 춤판으로, 올해는 국립국악원 우면당(2월 26일)에서 리봉옥의 저서 『조선고전무용』을 바탕으로 ‘춤으로 읽는 무용사’를 풀어냈다.
 12개의 춤은 시대순으로 추어졌다. 고구려의 춤으로 <파초선무(芭蕉扇舞)>를 전미숙 안무로 신영준(LDP무용단원)이 추었고, 백제의 춤으로 <정읍사가무>를 박은영 안무로 박은영과 이재경, 이채은, 전보현이 추었다. 신라의 춤으로는 <도솔가무(兜率歌舞>를 윤수미(동덕여대 교수)가, 통일신라의 춤으로 <상염무(霜髥舞)>를 한칠(터닝써클 발레단 예술감독)이 각각 안무하고 직접 춤추었다.
 고려시대로 넘어가면서 <한량무>를 류영수(서울종합예술학교 교수)가, <북춤>을 윤명화(한양대 겸임교수)가 추었다. 조선시대의 춤으로는 <바라춤>을 능화스님(인천무형문화재 10-가호)이, <학무>는 이지은과 서승희가, <춘앵전>은 박은영, 이채은, 서민주가 추었다. 근현대의 춤에서는 <살풀이춤>을 이은주(인천대 교수)가, 최현 안무의 <비상>을 윤명화가 추었다. 그리고 2부에서는 이승호의 안무와 연출로 <심무도>(尋舞圖)를 K’ART단원들이 군무로 추었다.
 통일신라의 춤까지 4개의 프로그램은 창작춤이었다. 고대의 춤이 전승되지 않았으니, 간단한 기록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창작춤으로 풀어낸 것이다. <파초선무>는 고구려 벽화에 그려진 파초 모양의 부채를 모티브로 하였다고 했다. 고구려 벽화에서 춤의 소재로 파초(芭蕉)를 주목한 점이 눈에 띤다.
 행상을 나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는 남편의 무사안녕을 달에게 간절히 기원하는 내용을 담은 백제의 노래 ‘정읍사’(井邑詞)를 소재로 한 <정읍사가무>는 흥미로웠다. 고려시대에 향악정재 <무고>를 출 때 ‘정읍사’를 불렀다고 한다. 이러한 모티브들을 바탕으로 <무고>에서 사용하는 북이 함께 등장했는데, 춤꾼이 그 북에 올라탔고, 처용과 무원들이 뒤따랐다. 처음에는 정읍사의 노래를 정가조의 노래에 맞춰 궁중무 계통의 춤으로 추다가, 중반 이후에 태징 소리에 맞춰 신들린 무당처럼 한삼을 뿌리며 무아지경으로 춤추었다. 마지막은 처용의 탈을 쓰면서 마무리했다. 조금 더 스토리가 있을 법 했는데 아쉽게 마무리됐다. 그러나 ‘정읍사’의 노래말을 배경으로 발원(發願)의식을 구성하고 춤추었으니, ‘정읍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여지를 보여주었다.
 <도솔가무>는 신라의 향가 ‘도솔가’를 토대로 솔로로 추었다. ‘도솔가’는 두 가지로, 신라 유리왕 때에 태평성대를 이룬 왕의 치적을 칭송한 내용과, 경덕왕 때 하늘에 해가 둘이 나타나는 변괴가 일어나자 월명사에게 노래를 짓도록 했는데, 미륵불에게 꽃을 바친다는 내용이 다. 이 춤은 전자의 노래를 근거로 창작한 춤이라 하였다. 달항아리와 크고 둥그런 연잎, ‘달아달아 밝은달아’의 나지막한 노래가 내면에 침잠된 춤을 보여주겠다는 안무자의 의도와 어느 정도 어우러졌다.
 통일 신라의 춤으로 춘 <상염무>는 사물들의 울림(The trembling of things)이란 부제가 붙었다. ‘상염무’에 대한 기록은 『삼국유사』 권2의 처용랑 망해사조(處容郞望海寺條)에 실렸다. 헌강왕이 포석정에 행차했을 때 남산신(南山神)이 왕 앞에 나와 춤추었는데 신하들에게는 보이지 않고 왕에게만 보였고, 왕이 이를 따라추었다고 한다. 무원들에게도 산신의 춤을 따라추게 했는데, 왕이 본 남산신의 모습이 서리발 같은 수염을 날리며 추어서 상염무(霜髥舞)로 칭해졌었다. 이날 공연에서 <상염무>는 발레로 추어졌다. 기이한 가면과 조명의 깜박임으로 몽상적인 출현을 표현하려 한듯했고, 한칠은 긴박한 느낌의 음악을 배경으로 신과 인간의 모습을 넘나들며 춤추었다.
 『조선고전무용』의 저자 리봉옥은 고려시대에 봉건관리제도가 심화되며 서생들이 벼슬을 탐했고, 이것을 풍자한 춤이 <한량무>라고 설명했다. 무용극으로 꾸민 춤으로 생각되는데, 남성 독무로 추어졌다.
 <춘앵전>은 한 무대에서 3인의 춤꾼이 각각 다른 복색으로 추었다. 그동안 조선후기 사료 속의 춘앵전들을 다양하게 재현했던 박은영이 순조 무자년(1828) 때 무동 김형식이 입고 추었던 복색을 재현해서 남복(男服)으로 춤추었다.
 마지막 순서에 선보인 <심무도>는 제목대로 춤을 찾는다는 춤이다. 이 춤의 모티브인 ‘심우도’(尋牛圖)는 10폭의 그림인데, 탱화 속의 동자가 소를 찾음으로써 깨달음에 도달한다는 이야기이고, 심우(尋牛)를 심무(尋舞)로 대체하여 풀어낸 일종의 무용극이다. 전통춤을 레파토리 나열이 아닌 서사적 구조 속에서 감상해보자는 의도도 구성했다고 밝혔다.
 2006년에 시작한 “한국춤 100選 열두마당”이 처음에는 전통춤 레파토리의 나열로 시작되었다가 2010년부터 전통의상으로 열두마당을 풀기도 했고, 장사훈의 『한국전통무용연구』와 성경린의 『한국전통무용』으로 열두마당을 엮어냈었다. 이
 이번 공연에서는 리봉옥의 『조선고전무용』으로 살펴본 한국무용사가 기존의 연구 성과와 다른 점이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공연의 완성도가 다소 부족하기는 했지만, 전통춤 공연을 역사적 흐름으로 살펴보고자 했던 점, 서사적 구조 속에 전통춤을 배치하여 감상케 하고자 했던 의도는 전통춤 공연의 방식을 새롭게 모색한 시도로 평가할 수 있다. 또 기록으로 존재하는 한국 고대의 춤을 전통춤에만 고집하지 않고, 발레나 현대춤 등으로 창작하여 풀어낸 것도 열린 기획이었다. “한국춤 100選 열두마당”의 다음 기획이 어떤 주제를 잡고 펼쳐질지 기대된다.

2014. 04.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