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함부르크 현지취재_ 안은미무용단 〈Dancing Grandmothers〉
시간이 녹아내린 몸
정다슬_<춤웹진> 유럽 통신원

 오래된 것에서만 풍겨져 나오는 느낌이 있다. 그것은 물건이나 사람 모두 마찬가지이다. 새 물건이나 젊음이 감히 따라할 수 없는 그것은 연륜 또는 세월의 흔적 같은 말로 표현하기에도 여전히 부족하다. 시간이 켜켜이 쌓이고, 무언가 스멀스멀 녹아내리다 이내 깊숙이 스며버린 그러나 뚜렷하게 알 수 없는 그런 것이다. 오래된 물건 그리고 노년의 사람들을 빛나게 만드는 그것은 무엇일까?
 안은미의 2011년 작 〈조상님을 위한 땐쓰〉가 〈Dancing Grandmothers〉 라는 제목으로 독일 함부르크의 캄프나겔에서 12월 7일부터 9일까지 3일간 ‘올드 스쿨(Alte Schule)’시리즈의 일환으로 무대에 올랐다. 캄프나겔에서 비정기적으로 열리는 ‘올드 스쿨 (Alte Schule)’ 시리즈는 노년에도 즐거운 삶을 지속하는 데에 관한 담론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자 제작된 시리즈이다. 예술과 이론, 실험적 담론들을 통해 일반적으로 사회가 갖고 있는 노년에 대한 통념을 벗어나고 기존의 이미지에 색채를 더하는 데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올해 열린 ‘올드 스쿨’시리즈에는 안은미의 〈Dancing Grandmothers〉를 비롯해 마말리안 다이빙 리플렉스 (Mamalian Diving Reflex)의 연극 공연 〈All the sex I’ve ever had〉, ‘당신의 퇴직금을 소비하세요’라는 주제로 관객들을 게임과 카지노의 세계로 초대한 미그란츠폴리탄(Mirgrantpolitans)의 〈SOLICASINO〉, 노년에 일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을 주제로 한 쿠어츠필름 아겐투어 (Kuzfilm Agentur)의 단편영화 〈일 – 삶 – 시간〉 등의 다양한 예술 장르의 작품들이 초대되었고 그만의 방식으로 ‘노년’을 다양하게 그려내었다.
 이미 안은미의 ‘땐쓰 3부작’은 지난 해 파리의 테아터 드 라 빌레에서 공연되어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안은미의 ‘땐쓰 3부작’은 한국인의 몸짓 그 중에서도 특정 연령대와 성별을 나누어 그들의 움직임을 모티브로 구성한 작품 시리즈이다. 청소년들을 모티브로 한 〈사심없는 땐쓰〉, 중년 남성들을 모티브로 한 〈아저씨를 위한 무책임한 땐쓰〉 그리고 할머니들을 모티브로한 〈조상님을 위한 땐쓰〉까지 흡사한 작품 구성을 가지고 주체를 달리한 작품들이다.

 

 



 무대는 안무가의 짧은 솔로로 시작된다. 짧뚱한 색동 저고리를 입고 무대에 선 안무가는 잔 발걸음과 분절되고 절제된 호흡과 상체 움직임을 통해 익숙하지 않은 그러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그려낸다. 조용하고 어두운 무대 위에서 펼쳐진 뿌리는 단단하고 그 위는 바람에 흔들리는 듯한 움직임은 한국무용의 그것과 닮은 듯 달랐고 작품의 집중력을 한껏 끌어올렸다.
 이어진 젊은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특히나 컨셉슈얼 댄스와 미니멀한 움직임들이 주를 이루는 독일의 무용 공연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더더욱 그러했다. 날고 긴다는 표현 그대로 무용수들은 무대 위에서 재빠르게 구르고 다시 날아오르며 테크닉을 뽐냈고 관객들은 공연 내내 서커스를 보는 듯 입을 쩍 벌렸다. 각각의 무용수들이 재빠른 움직임으로 날아 무대를 지나갈 때마다 박수를 치는 관객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60대 이상의 할머니들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역동적이지 않은가 하는 의문도 들었으나 어쩌면 그것은 단순히 육체의 나이에서 보이는 움직임이 아니라 무용수들처럼 가볍게 날아오르고자 하는 그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무대가 비워지고 안은미와 무용수들이 대한민국 전국을 돌아다니며 수집한 영상이 나타났다. 약 25분간 이어진 영상에서 보이는 할머니들은 약속이나 한듯 하나같이 꽃이 흐드러진 일명 고쟁이 바지에 동글동글 솟아오른 파마머리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비슷한 모습으로 삼삼오오 모인 할머니들은 그들이 사는 곳, 그들이 생활하는 곳, 그들이 여전히 일하고 있는 그곳에서 꾸밈없는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서있었다. 좁은 마루 한켠에서, 노인회관에서, 시장에서, 부둣가에서, 논 한가운데에서 그들은 그렇게 쑥스러운 듯 그러나 신명나게 언제부턴가 굳어 있던 몸을 깨우고 있었다. 그들의 어설픈 막춤은 마치 블랙코미디의 한 장면처럼 코믹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애잔함 같은 것이 묻어나고 있었다.
 객석에서는 자주 웃음이 흘러 나왔으나 이내 눈물을 닦아내는 관객들도 눈에 띄었다. 세월이 지나가며 거칠어져버린 그들의 살결에서는 고단함이 느껴졌고 주름 사이사이에는 그들이 울고 웃었던 시간이 그대로 새겨져 있었기 때문인 듯했다.
 비디오 영상 다음에 이어진 무대에서는 본격적으로 할머니들이 등장했다. 젊은 무용수들이 할머니들의 손을 이끌고 무대 위로 등장했고 그들을 남겨준 채 그들만의 짧은 시간이 주어졌다. ‘백만 송이 장미’같은 익숙한 트로트들이 이어졌고 영상에서처럼 비슷한 막춤들, 엉덩이를 실룩실룩하며 손을 살짝살짝 돌리며 리듬을 타는 할머니들은 쑥스러워하기도, 또 어떤 할머니들은 무대 위의 주인공이 된 뿌듯함을 표현하기도 했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들에게 주어진 무대 위의 시간이 너무 짧았다는 것, 또한 그들의 등장과 퇴장에 젊은 무용수들이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다. 과연 그들이 무대에 등장과 퇴장의 타이밍이 중요한 것이었을까. 그들이 스스로 자신의 길을 선택하고 나아가는 모습을 조금 더 보여줬다면 안무가가 말한 것처럼 식민지 시대와 한국전쟁, 분단과 경제개발시대를 지나 디지털기술로 지배된 현재까지 변화무쌍했던 시간과 역사를 호기롭게 지나온 그들의 힘이 전달되었을 텐데, 젊은 무용수들에 의존하며 그들의 독립성을 취약하게 만들어버린 모습은 안무가의 한계가 보이는 것 같아 못내 안타까웠다.

 

 



 반면에 인상적이었던 것은 안무가가 선택한 조명과 영상효과였다. 할머니들의 고쟁이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꽃들처럼, 겨울이면 그들의 살갗에 닿아 있는 샛분홍색 내복처럼 알록달록한 조명의 놀음은 그들의 마음처럼 휘황찬란하고 역동적이었다. 무대 구석구석을 누비는 활발한 조명들은 한국적인 색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고 동시에 할머니들의 막춤에 색깔을 더했다.
 젊은 무용수들의 군무 역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안무가가 선택한 할머니의 상징, 내복과 고쟁이 바지 그리고 파마머리를 한 무용수들은 할머니들의 움직임을 조근조근 따라하다가도 이내 고쟁이를 내렸다 추켜올리기를 반복하고 엉덩이를 내보이며 코믹한 요소들을 담아냈다.
 네덜란드 출신의 안무가 테스 루카슨에게 할머니의 상징성을 읽을 수 있었느냐고 질문을 던졌을 때 “파마머리며 컬러풀한 의상과 조명들이 한국에서 그녀들을 상징한다는 것을 단숨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한국 가사의 음악들 역시 문화의 이질성이 아닌 세대의 차이로 느껴졌다. 무용수들과 그녀들이 무대를 누비는 동안 신이 났지만 어떤 장면에서는 알 수 없는 눈물이 흐르기도 했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역시 아쉬운 점은 할머니라 불리는 세대의 캐릭터를 외형적인 면에서만 빌려왔다는 것이다. 역사를 담고 있는 여성으로서의 몸, 아카이브로서의 몸 안에 담겨진 것은 그 것 뿐만이 아닐 터인데 그들의 모습을 담아내는 방식은 단순한 외형적 채집에서 끝나고 그 이상의 내면적 분석으로 더는 나아가지 못했다. 또한 신체의 나이에서 오는 제약은 그렇다 치더라도 젊은 무용수들과 할머니들을 극단적으로 나눈 이분법 또한 아쉬웠다. 젊은 무용수들이 할머니들의 뛰놀고픈 마음을 표현한다는 점은 충분히 전달된 반면 젊은이와 노인 간의 강하게 대비되는 움직임은 보는 이로 인해 오히려 세월의 힘은 막을 수 없다는 단념만을 전할 뿐이었고, 할머니들의 마음을 그들 스스로 주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으로 발전시키지 못한 점도 한계로 느껴졌다.
 공연의 마지막에 안은미는 관객에게 인사를 전하고 무용수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 함께 춤추기를 권했고 관객들은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무대 위로 뛰어 올라갔다. 일명 뽕짝의 리듬과 화려한 조명, 무대 위를 뛰노는 몸들 덕분에 공연 내내 객석에 앉아 엉덩이를 들썩이던 관객들의 욕구를 해소시켜주는 엔딩이었다. 특히 무대에 올라간 관객들의 대부분은 공연자인 할머니들과 비슷한 연령대였는데 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몸 안에 내재되어있던 충동을 풀어냈고 무대 위에 서있던 할머니들의 모습에 자신을 투영시켰다. 공연자들과 관객이 어우러져 땀을 흘리며 추는 막춤으로 작품은 막을 내렸다.
 막춤을 추던 무대 위에서 내려온 관객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아쉬운 듯 공연장을 떠났다. 공연이 끝나고 난 후의 로비에서는 공연을 마친 할머니들이 지나가자 많은 관객들은 아쉬움과 여운 때문인지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거나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알테 슐레’ 시리즈의 다른 작품들을 둘러보았다는 독일 안무가 요나스 레퍼트는 “〈Dancing Gramdmaother〉에서 보이는 한국의 테크니컬한 현대무용이 매우 흥미로웠다. 또한 작품 이외에도 ‘올드 스쿨’이라는 시리즈 덕분에 한국 노인들의 모습, 독일 노인들의 모습을 한 곳에서 만나며 닮은 점과 다른 점을 비교하는 것이 흥미로웠던 프로그래밍이었다”고 말했다.

 

 



 안은미의 〈Dancing Grandmothers〉는 비무용인을 무대에 올리고 그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아내는데 성공했다. 특정한 세대 그리고 연령에 대한 특유의 이미지를 특징적이고 상징적으로 잡아내고 우리가 미처 주목하지 않았던 혹은 잊고 있었던 그들의 내재된 모습을 부각시켰다. 그리고 거기에서 오는 희극적 요소들을 활용함으로서 독일 관객들에게 많은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조차 잊고 있었을지 모르는 몸에 쌓인 역사의 기록과 시간들을 깊이 있게 탐구하는 것에는 못내 아쉬움이 남았다. 할머니라는 존재의 모습이 현재에 지니고 있는 상징성도 중요하겠지만 그들이 현재라는 시간에 도달하는 동안 켜켜이 쌓인 시간의 틈을 들여다보는 것, 그들의 상징성을 만들어 낸 그들 내면의 독립성과 주체성을 들추어내는 것이 그들의 존재에 대한 진정한 탐구이며 그들을 위한 작품으로서의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닐까. 

2017. 01.
사진제공_Young-Mo Choe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