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김매자 〈그리고, 다시 봄〉
‘창무춤’으로 구현된 김매자의 춤 회고록
문애령_춤비평가

 2012년 12월, 김매자의 춤 인생 60년을 기념하는 공연 <봄날은 간다>가 호평 속에 막을 내렸다. 그 작품이 2014년 3월 새 이름으로 재 공연되었는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13년 사후지원 선정 작이자 한국공연예술센터 2014년 공동기획 작이란 무게감이 신뢰를 더욱 높였다. 3월 26-27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막을 올린 <그리고, 다시 봄>은 김매자의 다른 두 작품 <춤, 그 신명>과 <얼음강>을 덧붙여 같지만 다른 공연물로의 변신을 꾀했다.
 필자는 26일에 <춤, 그 신명>과 <봄날은 간다>를 관람했다. <춤, 그 신명>은 아주 오래 전부터 봐왔지만 매번 뭔가 달라진 느낌을 받는다. 큰 뼈대는 고수하되 의상, 구성, 춤사위까지 각 무대에 적합한 변화를 수용하는 듯하다. 필자가 이 작품을 처음 본 것은 1984년 초 뉴욕의 리버사이드 극장에서다. 사물놀이 연주, 객석을 통한 입장, 무대 오르기 전의 정적, 무대에서의 강약 반복은 30년 전과 동일하지만 출연진들이 각자 담당하는 즉흥적 몸짓이나 군무의 단합된 행진 구성은 세월의 흔적만큼 세련미를 갖췄다.
 이번 무대의 사물은 김재철, 김수보, 최영석, 타무라료가 맡아 ‘신명’을 부추기기에 충분한 서주를 연주했다. 객석에 조명이 들어오고, 흰 한복을 입은 11명의 출연진이 양쪽 통로로 입장한다. 어깨 짓과 잔걸음의 리듬감이 한국 민속춤에서 따온 특징이라면 규격화와 통일감은 창작춤이 수십 년에 걸쳐 얻어낸 연출 효과다. <춤, 그 신명>에서는 흥겹고, 슬프고, 고통스럽고, 다시 희망을 모으는 삶의 여정이 보인다. 이런 주제는 관객과의 교감이 용이하므로 그 가치가 영속적이라 하겠다. 창무회 예술감독 김선미의 경우, 이 작품에 30년 간 출연하고 있어 ‘창무 전통춤’으로서의 가능성도 점칠 수 있다.




 <봄날은 간다>는 김매자의 춤 회고록이라 할만하다. 그간 어떤 무용을 만들었으며 그 결과로 얻은 기교가 어떤 형태인지를 발표하는 장 같기도 하다. 그렇다고 오하드 나하린이 성공한 명장면 모음집 형태를 따른 것은 아니다. <춤본> <심청> <강변북로> <대전블루스> 등의 일부가 재연되나 <봄날은 간다>라는 새로운 틀에 맞춰 재배치되고, 그 결합이 또 다른 가치를 탄생시킨다. 작품내용에 맞춘 자연스런 재연이자 회고인 동시에 명장면 모음집의 효과도 지닌 구성이다. 초반과 후반에 사용된 정가가 옛 양반 예술이라면 가요 ‘봄날은 간다’는 후대의 대중 예술이니 이런 기품과 즉각적 교감이 곧 김매자의 안무성향일 것이다.
 안무자가 처음과 중간, 그리고 마지막에 등장해 맥을 잇고, 제자들은 선생의 분신처럼 각 장의 압축된 이미지들을 늘어놓는다. 무대 중앙에 등장한 주인공의 회상이 끝나면 군무가 원을 그리며 달려 나온다. 마치 삶의 한 고비가 시작된 것을 알리려는 것 같은 이 춤사위는 후반에서도 한두 번 더 반복되었다. 군무 다음에 연결되는 솔로는 창무회의 주인공들이 누구인가를 알려준다. 윤수미의 비범한 매력, 김지영의 절제미, 무대를 즐기는 최지연, 간판스타 김선미가 나이 어린 순서로 등장하는 긴장감이 낭만발레 <파 드 캬트르> 못지않다.
 새소리에 춤추는 여인들의 정교한 팔 동작은 꽃잎의 떨림, 봄꽃의 화려함 같다. 다리의 굴신은 투박한 질감이고, 한 팔을 들고 갑자기 정지한 군무는 긴장감을 유발한다. 한 다리로 균형 잡고 반대 다리를 이동시키기, 숙인 포즈의 통일된 라인, 굴신을 이용한 앉고 서기, 뒤로 넘긴 상체의 탄력, 객석을 응시하는 포즈, 우주의 별자리를 집어내는 듯 보이는 손동작 등 김매자 창무춤이 아니면 결코 볼 수 없는 창의적 동작이자 훌륭한 기량의 무용가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기교가 연속된다.
 


 네 제자의 춤 이후 재등장한 김매자의 독무가 시작되었다. 오래 춤춰 온 몸에서는 강한 동시에 연약한, 우리가 자주 ‘기’라고 묘사하는 어떤 힘의 흐름이 지속된다. 춤을 만드는 몸, 그녀가 움직이니 춤이 되었다. 작품의 절정은 대전 시립무용단원 육혜수와 정세연이 앞장 선 마지막 군무, 탐미적 행진과 포즈였다고 생각된다.
 하체를 과장되게 만든 드레스를 입은 여인들은 길게 끌리던 천을 감아 든 단순한 동작만으로도 환상적인 세계를 만들었다. 주요 단원들이 하나씩 등장해 솔리스트 앙상블을 이루니 성숙한 춤의 향연이 더 없이 화려하다. 여성 창에 맞춘 이 매력적 춤이 끝날 즈음 귀에 익은 가요가 흘러나온다. 무대에서 내려와 객석에 선 군무는 관객과 함께 주인공의 봄날을 응시한다. 무대 뒷문이 열리면 극장 밖 공간에서 뛰노는 아이들이 보인다. 봄날을 보내는 주인공과 봄날을 맞이할 어린이들이 함께 꽃비를 맞는다.
 

 



 2000년, 프랑스 리옹 댄스비엔날레에 참가한 김매자 무용단원에 대해 예술감독 기 다르메가 진심을 담아 칭찬했던 기억이 난다. 서양의 전문 댄서들이 급료나 배역에 따라 자주 무용단을 옮기는 현상과 비교하며 도제교육의 산실인 창무회를 고유한 예술성에서 최고로 평가한다는 요지였다. 창무회는 한때 이화여대 동문단체였지만 현재는 그 성격을 완전히 탈피했다. 급료가 없으니 직업무용단은 아니지만 작품 제작과 해석의 세련미에서는 직업단체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한국적 요소를 중심에 둔 창작 무용가는 많지만 김매자 만큼 꾸준한 발전을 이룬 인물은 극히 드물다. 무용가이자 안무가로서 그 존재가 갈수록 빛을 발하니 선생은 후학들의 귀감이자 한국 무용계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2014. 04.
사진제공_김중만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