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키스 앤 크라이〉
손가락 춤으로 풀어낸 멜랑콜리한 다섯 사랑이야기
김혜라_춤비평가

 최근 공연에서 부각되는 협업작업은 국내외에서 갈수록 더욱 가속화 되고 있다. 한 장르의 한계가 타 장르와 융합되면서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점이 이상적인 협업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면에서 <키스 앤 크라이>(3월 6-9일, LG아트센터)는 영화, 춤, 촬영기술, 문학이 결합되어 퍼포먼스의 현장성을 극대화시킨 성공적인 작품이었다.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알려진 <키스 앤 크라이>는 <토토의 천국> 및 <제8요일>의 영화감독인 자코 반 도마엘(Jaco Van Domael)과 그의 부인이자 안무가인 미셸 안느 드 메이(Michèle Anne De Mey)의 공동작이다. 이 작품의 이색적인 점은 작품의 진행과 결과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공연 방식이다. 관객은 무대 중앙 대형 스크린을 통해서 카메라에 찍혀 투사되는 손가락 춤과 여러 정경의 세밀한 부분을 볼 수 있으며, 동시에 카메라가 담지 못하는 전체 상황을 객석에서 관람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영화 같은 공연의 완성 과정을 경험하는 것이다.




 작품의 주제는 한 여인의 사라진 연인들에 대한 추억이다. 일생동안 만났던 다섯 명의 연인에게 느꼈던 사랑의 설렘, 애절함, 상실감, 분노, 관능의 감정이 손과 손가락의 완전한 언어로 표현 되었다. 손의 무한한 변신은 때론 내적 고뇌를 표현하기도 하고, 사람 모양의 외적 형태로 다채롭게 변형되어 손 언어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였다. 여기에 무대에 설치된 셋트인 기차역, 집, 모래사장, 벌판 같은 배경이 시간차를 두고 영상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시공간적 입체감을 더했다. 점차적으로 진행되는 상황은 한 여인이 연인을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에서 발견되는 내밀한 감정의 표현으로 읽혀진다.




 12세 때 기차역에서 스쳐지나간 사랑 이야기는 명장면으로 꼽히는데, 첫 사랑의 설렘을 완벽하게 재현하였다. 카메라 앵글은 레고 세트 같은 기차역을 비추며 그곳에 앉아 있는 늙은 여인의 회상임을 암시하였다. 한 카메라는 달리는 기차를 찍고 다른 카메라는 기차 안에서 손가락으로 첫 만남을 묘사하는 상황을 중첩시켜 스크린에 투사시켰다. 관객에게 달리는 기차의 모습과 기차 안 손가락의 미세한 떨림을 교차시켜 풋풋한 첫사랑의 감정을 전달한 것이다. 또 다른 기억인 본능적인 사랑이야기는 손가락의 요염함과 관능미가 넘치는 자태를 직설적으로 전달하였다.
 그리고 진실된 사랑이 아니었다는 여인의 기억으로 묘사된 장면은 그야말로 차갑고 냉소적인 감정 그 자체였다. 침대위에 누워 있는 남녀의 육체는 함께하고 있으나 정신적 교감이 전혀 없는 모습을 느끼게 하였다. 이와 같이 시간의 흐름과 공간적 상황을 다면적으로 편집한 방식은 다섯 명의 연인과의 만남과 이별의 감정을 깊이 있게 묘사하였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감독과 무용수 및 스태프들의 기술적 정확성이 현장에서의 긴장감을 주었고, 관객은 스크린과 무대 전체를 선택해서 관람할 수 있는 것이었다.
 또한, 유지태의 감성적인 목소리와 바로크, 샹송, 오페라 같은 음악은 서정적인 분위기를 더해주는 역할을 하였다. 현실과 환각적 이미지를 오가는 아름다운 영상은 한 여인의 감정의 파노라마를 전달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전체적으로 작품의 주요 흐름은 이별과 연결되는 죽음의 이미지가 가득 하였다. 불타버린 집, 짚 앞에 놓인 죽은 기린, 눈 위를 달리다 전복되는 자동차 같은 미니어처들이 우울한 실제 상황을 상상하게 하였다.
 공연이 진행될수록 손가락 움직임은 몸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통합된 몸 전체의 울림으로 다가왔다. 무용수인 미셸 안느 드 메이와 그레고리 그로장(Grègory Grosjean)의 검지와 중지로 표현되는 섬세한 호흡과 접촉은 단순한 접촉 그 이상의 온 몸의 정서가 접속되는 교감을 보여 주었다. 손과 장난감을 가지고 관객에게 이렇게 오묘한 감성을 자극하여 미세한 전율을 느끼게 해 준 것은 놀라운 능력이다.
 이는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이동하며 통합된 전체를 볼 수 있게 한 영화적 기법과 협업에서 생산되는 시너지로 주제의 심리적 깊이를 더 해 주었기에 가능했다. 아울러 한 여인의 심연에 있었던 봉인된 시간을 한 올 한 올 풀어내었기에 관객 누구에게나 있음직한 자신만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였을 것이다.




 <키스 앤 크라이>는 서구 예술을 관통하는 결정체인 멜랑콜리(Melancholy) 성격이 짙은 작품이다. 멜랑콜리는 고대로부터 예술의 영감이자 원천으로 인식되고 있듯이 인간의 보편적인 침울한 감정에 대한 것이다. 본 공연에서도 사랑과 죽음이 교차하는 심미적 감정이 시각적 이미지로 그 구체적인 양상들이 아름답게 드러났다. 그러나 다섯 명의 사랑에 대한 묘사가 감정은 다르지만 구조 방식이 유사하여 관객에 따라서 네 번째 사랑 이야기 즈음에서는 지루해 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죽음을 바라보는 서구적 시선이나 화자(話者)의 시선이 체념이어서 일까? 문화권에 따라서 관객의 공감도와 반응은 차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영화의 파편적 시각이 채울 수 없는 정감적 요소를 손가락 춤으로 촉각적 정서를 불러일으켜 서로의 부족한 행간을 채워주었다는 것이다. 

2014. 04.
사진제공_LG아트센터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