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제14회 서울국제즉흥춤축제
카오스모스 난장 축제, 발랄한 생명성
김혜라_춤비평가

 14회를 맞이한 서울국제즉흥춤축제(Simpro)가 해를 거듭할수록 눈에 띄게 풍성해지고 있다. 서울과 부산으로 연계되었던 축제가 올해는 대구까지 지역을 넓혔으며, 프랑스, 독일, 일본 등에서 활동하는 즉흥 춤 전문가에서부터 일반인까지 다양한 국적과 연령대의 관객들이 참여했다.
 4월 4~12일까지 열린 축제는 워크숍과 크로스오버 즉흥, 릴레이 즉흥, 안무가와 한국 전통음악 협업 프로그램, 즉흥 잼, 야외 즉흥, 즉흥 난장 그리고 컨택 즉흥 같은 다채로운 프로그램 구성으로 북촌창우극장과 아르코예술소극장 그리고 마로니에 공원에서 선보였다. 이중 평자는 오프닝 즉흥, 야외 즉흥, 즉흥 난장, 컨택 즉흥 공연을 관람하였다.
 축제 전체 프로그램의 기획별 진행 과정을 면면히 살펴보면, 여러 국적의 사람들과 다른 장르와 협업, 우연성에 기초한 몸짓 대화 그리고 놀이로 자연스레 귀결되는 방식이 주를 이루고 있다. 즉흥의 모범을 보이는 작업에서부터 즉흥의 경계에서 헤매고 있는 작업들, 관객 참여형 작업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이 축제의 모습들이었다.


 



 오프닝 즉흥(4월 8일, 아르코에술극장 소극장)에서 Emmamuel Grivet와 이윤정의 즉흥은 두 명의 관객을 무대로 유도하여 관객과 춤꾼, 무대와 객석 그리고 오브제(의자)가 어떻게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는지를 보였다. 이를 통해 그들은 춤이 확정된 무엇이 아니라 대상과 능동적인 관계 맺기를 통해 발견되는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춤 전공자로 생각되는 참여자는 Emmamuel과 이윤정의 몸짓을 연결성 있게 따라 하고 때론 거칠게 리드도하며 무대를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특정한 이유 없이 분주하게 주고받기를 이어가던 4명의 참여자는 무대 한쪽에 쌓인 의자더미와 유사한 모양새로 포개진 채로 마무리 한다. 이것은 마치 오브제와 신체 관계가 치환되어 춤춘 듯 한 인상을 남기며 관객에게 여러 해석적 여지를 남긴 장면이었다.


 



 남정호와 Justin Morrison의 즉흥 무대는 의도하지 않은 것 같은 오묘한 상황을 연출 한 무대였다. 비상구 문을 열며 손을 잡고 등장하는 두 사람의 외양은 무언가 조화롭지 않게 보인다. 남정호는 머리에 꽃을 꽂고 발랄한 웃음을 머금은 채로 셔츠 안에 숨겨 놓았던 꽃을 관객들에게 나누어 준다. 그리고 이내 팔다리가 길고 젊은 Justin과 상대적으로 작고 나이가 지긋한 남정호는 부자연스러워 보이던 관계를 자연스럽게 풀어나갔으며 그것은 두 사람이 조심스럽게 배려하며 놀이를 하듯 소극장 공간을 밝은 에너지로 채울 수 있는 내공이 있기에 가능했다.
 이미영과 김기영의 작업은 현대음악과 전통춤의 협업 무대였다. 이미영은 커다란 항아리를 무대 가운데로 가져다 놓고 그 위에서 춤사위를 펼치다가 항아리를 던져 부수는 해프닝으로 이어갔으며 이 퍼포먼스는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진행되었다. 반면에, 김기영의 강한 음악에 무게감이 실려 두 장르의 협업 이상의 즉흥적인 맛을 느끼기에는 다소 아쉬움이 있었다. 이를 통해 즉흥의 맹점이 어느 한쪽으로 분위기가 집중되면 전체적인 균형이 깨지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즉흥춤을 볼 때 드는 생각 중 하나는 어디까지가 실연자의 의도이며, 어디서부터가 시공간에 내던져진 몸과 의식이 발견해내는 순간들인지 구분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더불어 이러한 형태의 즉흥이 실연자 자신을 탐색하고 상대와 접촉하여 생성해내는 의미있는 행위인 것에 반해 관객에게 줄 수 있는 부분은 상대적으로 미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점을 다시 생각해보게 한 춤판이 있었는데, 즉흥춤개발집단 몸으로(4월 12일 13시, 마로니에 공원)의 춤이 그것이다. 이를 통해 즉흥이 흥미로운 예술적 체험임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었다.
 꽃망울을 터지게 하는 봄기운을 받으며 마로니에 공원에서 춤추는 춤꾼들은 관객에게 인간이 자연의 일부이자 변화의 흐름을 인지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 야외무대의 장점은 객석과의 엄격한 구분과 경계에서 자유롭다는 것이고 이는 즉흥춤의 정신과 어울리는 하나의 모습이다.
 공연을 돌이켜 보면, 돌 의자에 춤꾼들은 서 있고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 옆에 누워 있다. 또한, 무대와 바닥사이 틈에도 춤꾼은 너부러져 있는데 마치 그 장소와 물체의 연장선인 듯한 인상을 주었다. 리더인 사람이 모자를 매개로 서로 연결시키고 해산되는 흐름을 연속적으로 유도하고, 이 모습은 물결과 유속에 따라 모이는 흐름 같이 혹은 바람결에 따라 이끌리는 나뭇잎 같은 느낌을 주었다.
 처음엔 사방을 주시하다가 어느 새 한 방향을 주목하여 바라보기를 반복하게 되고, 마침내 한쪽에 자리 잡은 커다란 나무로 춤꾼들의 호흡과 움직임은 쏠리면서 춤꾼들은 마치 나무뿌리에 흡입되어 빨려가듯 무대 이곳 저곳을 전방위적으로 맴돌다가 하나 둘씩 나무 위로 올라간다. 자연스럽게 점진적인 확산과 흩어짐이 반복되면서 관객들의 눈길과 호기심을 자극하였고, 이를 지켜보며 앞으로 달려드는 어린아이들의 눈망울과 기대에 찬 몸짓이 그러한 현장의 기운을 확인시켜 주고 있었다.
 ‘이곳에 나무가 자리하고 있었나?’ ‘이곳에 편히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있었구나!’라는 인식을 할 수 있게 한 즉흥춤개발집단 몸으로의 짜임새는 상당히 수준 있는 예술적 체험을 제공하였다. 우연히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과의 미리 준비되지 않은 소통과 자극이야말로 즉흥춤이 줄 수 있는 최고의 매력인 것 같다.


 



 이어진 즉흥난장(4월 12일 14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 참가한 작품들 중 많은 작업은 소리에 즉발적으로 반응하는 신체와 춤추는 자신과의 일치를 추구하는 작업들이었다. 즉흥의 속성상 자신을 자극하여 춤추게 하는 근원적인 그 무엇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지 않는가.
 이준욱 도도무브댄스시어터는 투박한 솥뚜껑 같은 행드럼의 영롱한 울림이 이준욱의 유연한 춤으로 형상화 되는 공연을 보여 주었다. 또한, 메이드인댄스 예술원은 젊은 춤꾼다운 발상으로 쇼셜네트워크(SNS)로 송수신되는 “톡” 소리에 반응하는 몸과 영상 속 현실 및 소극장 무대로 실시간 연결되는 공간 속에 존재하는 자신들의 모습을 그려내었다.
 한편 On & Off의 도유와 한창호는 상당히 능숙한 듀엣 즉흥을 보여주었는데, 마치 알에서 깨어나는 새끼 새의 지저귐을 표현하는 소리에 대응하는 경쾌하면서도 아기자기한 기운을 관객들에게 전달하였다.
 서울탄츠스테이션의 춤꾼들은 정돈되어 있지 않은 몸짓과 외모지만 각자가 꾸밈없이 열중하는 모습들이 오히려 어떤 매끈한 춤보다 즉흥춤에는 잘 어울리는 모습으로 여겨졌고, 마지막으로 윤성은의 무대는 에어캡 일명 뽁뽁이 더미를 몸으로 터트리며 무언가를 해소시키려는 의도가 다소 과열되게 보였지만 열정과 끼로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다.


 



 마지막날 즉흥의 묘미를 보인 컨택 즉흥(4월 12일 18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은 이탈리아, 독일, 일본, 미국, 프랑스, 모로코, 한국의 전문가들에 의해 수행되었다. 국적에 상관없이 춤꾼들의 개성 있는 실행능력은 의식과 신체를 자극하는 동기에 집중되어 있었다.
 Davide Sportelli, Marcus Grolle, Makoto Matsushima, Justin Morriosn, Emmanuel Grivet, Sylvie Nova, 김윤정과 차진엽, 여기에 모로코에서 온 연주자 Omar Sbitar는 민주적인 균형감을 잃지 않으며 통합된 주최로서 힘의 배치, 신체 접촉의 선형적인 연결성, 그리고 신체의 건축적인 형태를 만들다가 신속하게 해체해 버리는 컨택 즉흥의 모범을 보였다. 특히, 매 단계 마다 누군가의 동기에 협응하며 끊임없이 목적 없는 접촉을 해내었으며, 관객의 구두를 갑작스레 전화기로 변모시킨다거나 테이프를 이용해 공간의 구획과 목표를 향해 가는 듯 하다가 무산되어 버리는 행위들이 연속적으로 펼쳐졌다.
 최소한의 합의로 이뤄낸 무대는 춤꾼들도 예상하지 않았던 순간적인 상황들이 중첩된 상태로 이뤄졌고 그 흐름을 객석으로 확산하여 소통하고자 했다.
 관객과의 컨택을 시도한 춤꾼들은 능숙하게 마지막 뒤풀이 난장의 판을 준비하여 스스로 나가는 아줌마와 이끌려 나가는 젊은이들 모두가 신나게 어울렸다. 현학적인 의미부여는 접어두고 보다 순간적인 욕구에 집중하여 현장의 열기에 취하는 것만도 즉흥춤의 의미로 충분할 것 같고, 즉흥춤은 자발적인 참여형 축제 성격에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이 아닌가 싶다.
 꽤나 오래 지속되었던 난장의 판에서 숙련된 전공자나 일반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어린아이 같은 발랄한 생명력이었고, 이것은 자기(생각)를 내려놓는 순간에만 발산되는 열기이며 카오스모스(Chaosmos)의 놀이 공간이자 즉흥만의 독자적인 세계인 것으로 보이고 이런 모든 것이 춤추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무대였다.


 



 즉흥춤 작업은 작품에서 의미 주체에 대한 파기, 대상과의 관계에서 즉발적으로 구현되는 시공간을 발견하는데 의미를 두고 있다. 다시 말해 인위성을 거부하며 자연스럽게 자신을 이끄는 무엇에 순응과 대응을 반복하며 관계 속에서 자기 인식을 귀착시키는 작업인 것이다. 결국 이런 과정을 통해 자신도 깨닫지 못했던 근원 혹은 본질현상에 집중력을 발휘하여 발견되는 내적 환희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즉흥춤 축제와 작업들이 실연자들과 지켜보는 관객에게 현장적 의미를 넘어 창작적 도화선이 될 지, 아니면 스테레오 타입화 된 즉흥을 위한 즉흥춤 공연일지는 정확하게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양식화된 춤언어나 고착된 생각에 분명히 즉흥이 어떤 새로운 길을 뚫어줄 시발점이 될 것만은 분명하다. 

2014. 05.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