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7월 춤계 이색 무대
변화는 계속 된다
장광열_춤비평가

7월 춤계에는 공연 기획과 제작에서 새로운 면모를 선보인 무대들이 유독 많았다. 젊은 연극인들과 젊은 무용인들의 만남을 표방한 ‘새 예술 새 무대 PADAF’(Play And Dance Art Festival)와 LIG문화재단이 제작한 다국적 아티스트들의 공동 작업 <플라잉 레슨>, 과천시시설관리공단 상주예술단체들이 의기투합한 댄스 드라마 <애.별>이 그것들이다. 우선 이들 무대는 정형화된 춤 공연의 제작 패턴에 변화를 꾀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새 예술 새 무대 PADAF> <애.별> <플라잉 레슨>


 7명의 젊은 연극인과 7명의 젊은 무용인들이 참여한 “새 예술 새 무대 PADAF”(Play And Dance Art Festival)는 7월 19일 개막, 9월 4일까지 대학로에 있는 노을 소극장에서 무려 7주 동안이나 계속될 예정이다.
 이 프로젝트는 연출가와 안무가가 함께 공연을 꾸미는 컨셉트를 갖고 있다. 연출가와 안무가로서 공동 작업을 하는 경우도 있고 각각 독립된 작품 두개를 1부와 2부에 나누어 공연하기도 한다. 연극 배우가 주축이 된 출연자 구성에 춤이 중심이 되도록 안무하거나 무용수와 배우가 뒤섞여 퍼포머로서 하나의 주제를 풀어나가기도 한다. 무용 쪽의 작업에 치중된 패턴을 연극 배우들이 소화해 내도록 한 작업도 물론 있을 것이다.
 7월 20일에 평자가 본 <서울 댄스홀을 許하라>에는 9명의 연극 배우들이 출연했다. 출연자들은 대본에 의한 대사와 각각의 캐릭터를 소화내내지만 상당히 많은 양의 춤을 보여주었다. 빠른 극 전개와 다양한 춤의 조합은 연출가 송은주(극단 바른생활)와 안무가 최성욱(블루댄스 시어터)의 몫이었다. 드라마와 캐릭터 그리고 춤의 조합은 메시지 보다 시각적인 볼거리를 제공하는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하고 있었다.
 이제는 ‘피지컬 씨어터’(Physical Theater)라는 단어가 더 이상 생소하지 않을 정도로 연극에서 몸은 매우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연극과 무용 쪽의 젊은 예술인들이 만나는 작업은 비록 하나의 ‘작품’으로서의 예술적인 완성도는 부족할지 모르지만 두 장르간의 양식적인 스타일과 아티스트들간의 서로 다른 작업 방식을 이해하는 것만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


<애.별>

 <애.별>은 과천시민회관을 주 무대로 활용하는 극단 모시는 사람들과 서울발레시어터의 공동제작 작업이다. 연출가 김정숙(극단 모시는 사람들 대표)은 오래 전 직업발레단의 주역급 무용수였던 김인희(서울 발레시어터 단장)를 무용수에서 배우로 변신시켰다. 그러나 김인희의 역할이 여러 명 배우들 중 한명으로 출연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 극을 이끌어가는 모노 드라마의 주인공이란 점에서 파격적인 시도가 아닐 수 없었다.
 수십년 경력의 일급 배우들도 힘든 모노 드라마를 이제 50대 문턱에 들어선 옛 발레 무용수가 소화내 내기란 버거울 수밖에 없다.
   그 때문인지 장 콕토의 <목소리>를 원작으로 연출가가 댄스 드라마로 만든 <애.별>(7월 23-24일, 과천시민회관 소극장, 평자 24일 공연 관람)은 전문 비평가의 시선으로 보면 아쉬운 점도 있었다. 그러나 이날 공연은 이 같은 아쉬움을 훌쩍 뛰어넘고도 남을 만큼 또 다른 감동이 있었다.

 <애.별>은 제목에서 느껴지듯 한 여인의 사랑과 이별에 관한 이야기이다. 댄스 드라마로 만들었다고 했지만 주인공은 적지 않은 양의 대사를 소화해 내야 했다. 여기에 사랑이 다가옴에 설레이고, 그 사랑이 멀어짐에 두려워하고, 마침내 깨어진 사랑에 절망하는, 한 여인의 심리적인 변화를 연기로 소화해내야 한다.

 


<애.별>

 

 관록의 배우들에게서 보여지는 카리스마는 없었지만 김인희는 풍부한 감수성으로 무대를 가득 채웠다. 그런 그녀에게서 예술가에서 행정가로 변신했지만, 아직도 여전히 어쩔 수 없는 예술가의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나이 오십의 문턱에 들어선 전 발레 무용수를 배우로 둔갑시키고, 그를 위해 안무(서울 발레 시어터 상임안무가 제임스 전)하고, 단체의 주역급 배우와 무용수가 함께 출연해 만든 두 상주예술단체의 협업은 시도 그 자체만으로도 관객들에게는 특별한 서비스가 되었다. 




<회색의 방>, 플라잉레슨

 LIG 문화재단이 제작한 ‘플라잉 레슨’(7월 22-23일, 토월극장, 평자 23일 공연 관람)은 어느 부분 발레 갈라 공연의 양식을 갖고 오면서 타 장르 예술가들의 협업을 시도한 국제적인 프로젝트였다. 한국의 세 명 여성무용수와 설치 미술가와 패션디자이너, 그리고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세 명의 남성 무용수와 안무가들이 이번 작업에 참여했다.
 6명의 무용수를 포함한 이들 다국적 아티스트들은 10분 길이의 2인무와 25분 길이의 소품을 이번 무대에서 초연했다. 25분 길이의 작품 제목인 ‘플라잉 레슨’을 전체 타이틀로 내세운 이 공연은 무엇보다 한국의 무용계가 국제적인 협력작업을 통한 새로운 작품의 제작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여기에 특히 무용수들과 안무가들만의 참여가 아닌 조명과 의상 등 극장예술에서 필요로 하는 부문이 함께 한 작업이었다는 점에서 기록될 만하다.

 이 작품의 제작을 지휘한 프로듀서 조성주(LIG문화재단 예술감독)은 올해 서울과 도쿄, 몬트리올의 소극장들과 연계, 공동 제작공연과 투어를 추진한데 이어 이번 프로젝트까지 무용 부문에서 국제적인 협력 작업을 한국이 주도해 실현시키는 성과를 보여주었다.
 특히 이번 프로젝트는 무엇보다 확실한 컨셉트와 제작과정에서 아티스트들의 서로 다른 생각과 아이디어들을 조율해 나가는 만만치 않은 과정을 거친 작업이었다는 점에서 향후 그 여파는 다양한 부문에서 국내 공연예술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플라잉 레슨>

 

 2인무 위주로 구성된 1부 순서에서 김세연과 김지영(무용), 이재환과 Peter Leung(의상), 조민상(설치와 조명 디자인)이 보여준 <나를 마셔, 너를 먹어>(안무 Peter Leung, 조안무 Charlotte Chapellier)는 이번 공동작업의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준 작품이었다.
 사각형의 작은 공간을 기묘하게 분할한 조민상의 무대미술은 무용수들에 의한 몸의 언어를 무한대로 확장시키며 관객들을 자극했다. 처음엔 다소 어색해 했지만 공간에 적응한 김지영과 김세연 두 지체의 마술사들은 특유의 감각과 순발력으로 무대를 수놓았다. 수직 뿐 아니라 수평 공간을 분할한 선명한 직선은 무용수들이 움직이면서 만들어내는 다양한 지체의 선이 더해지면서 또 하나의 상상 속 공간을 만들어 냈다. 무대 위 검정과 백색의 공간에 더해진 무용수들 컬러풀한 의상도 환상적이었다.


<플라잉레슨>

 ‘플라잉 레슨’은 조민상의 이미 완성된 기존의 작품(키네틱 조명)과 새로운 무대미술이 강렬했다. 그의 움직이는 조명과 이동하는 무대미술은 수직 공간을 변화시키면서 극장예술의 영역을 확장했다. 이 작품에 접목된 춤 구성이 보다 다양하고 이들 춤과 변화하는 무대미술의 속도감이 좀더 세밀하게 조합되었더라면 더 큰 감흥을 전해주었을 것이다.
 신선한 프로젝트 ‘Flying Lesson’은 말 그대로 ‘날기 위한 연습’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번에 공연한 두 개의 신작 <나를 마셔, 너를 먹어>(dRiNk Me,eAt Me)와 <플라잉 레슨>(Flying Lesson)에다 극장예술의 새로운 협업 작업을 표방한 한 두개의 작업이 더해진다면 이 프로젝트는 국제적인 투어 상품으로서의 경쟁력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무용예술이 또는 무용수의 몸이 다른 장르로부터 러브 콜을 받는 경향은 앞으로 더욱 농후해질 것이다. 비슷한 유형의 공연에 식상한 관객들의 새로운 것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뿐만 아니라 새로운 예술작업을 향한 프로듀서들의 강렬한 욕망도 식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2011. 08.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