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현대무용단 〈이미아직〉
얼마간의 몰입, 설익은 상징성
김채현_춤비평가

 세월호 대참사 와중에 국립현대무용단 <이미아직>이 올려졌다. <이미아직>이 죽음을 주제로 했고 세월호 사고가 워낙 엄청난 국가적 대참사라 두 사안을 연결시키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두 사안 사이에 어떤 인과 관계가 설정될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이미아직>은 죽음에 관한 전통적, 즉 한국적 관념을 부각시켜 오늘의, 그리고 현대의 삶을 환기한다. 세월호 대참사가 현실의 사건인 데 비해 <이미아직>은 전통적 생사관(生死觀)이 현대적 춤과 삶에서 수행해낼 가능성을 타진하는 차이가 있다.
 <이미아직>은 죽음을 황폐로 몰아가는 현대사회를 향한 이의제기로 읽힌다. 세월호 대참사는 죽음을 황폐로 몰아가는 현대사회 가운데서도 한국에서 발생한 참사라는 특수성을 갖는다. 세월호 대참사에서 보듯이, 그런 현대사회에서 국가가 죽음을 무책임하게 대하고 죽음에 대비하지 않을 경우 죽음은 극도로 황폐해질 뿐만 아니라 ‘우리’의 죽음은 더 더욱 ‘저마다’의 죽음 이상이 아니게 된다. 죽음이 삶의 한 과정이라는 뜻에서 그처럼 황폐한 죽음은 곧 그처럼 황폐한 삶의 이면이다. <이미아직>은 현대적, 즉 서구적 죽음 관념을 훌쩍 넘어 삶과 죽음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 죽음이 삶에서도 존중받는 전통적이며 다분히 무속적인 죽음 관념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미아직>의 그 애매한 제목은 ‘이미 죽었지만 아직 살아 있다’를 축약한 것이다.


 


 전체 여섯 대목으로 짜여진 <이미아직>은 죽음이 임박하여 저승의 문턱에 이른 어떤 망자의 모습을 단서로 제시한다. 이후 인간계와 귀신계가 거의 구분 없이 공존하는 분위기를 거쳐 열 명 남짓의 인간들은 서로 간에 얽힘과 결합, 분리, 유인과 같은 삶 속의 행위들을 펼치다가 일곱 명의 남성들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문다. 그런 다음 남녀 모두들 망자를 보내는 넋전 춤 의식을 치르며, 정면 배경으로 설치된 대형의 검정 구조물이 무대 쪽으로 엎어지면서 강렬한 조명이 쏟아져 들어오며 작품이 끝날 무렵 어두워진 무대에서 한 남자가 거울을 들고 돌린다.
 전통적인 것이라 쉽사리 치부하기 일쑤인 삶과 죽음이 혼연(渾然)한 세계는 우리로선 생소한 세계가 아니다. 이 세계를 국립현대무용단은 <이미아직>으로 탐색하였고, 안애순 예술감독이 전부터 자주 모색해온 전래의 세계를 현대무용화하는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이미아직>은 이루어졌다. 국립현대무용단의 내실있는 경쟁력을 위해 이런 유형의 작업은 다양하게 모색될 필요가 있다.


 


 이 세계를 상징하는 존재로서 <이미아직>은 꼭두를 내세웠다. 과거 상여의 아래 위 층층이 배열되었던 꼭두는 이승과 저승, 인간과 비인간, 꿈과 현실 같은 다양한 층위의 경계에 위치한다. <이미아직>을 관통하는 주제는 꼭두 세계의 소생이며 그 이미아직의 세계를 주관하는 존재 역시 꼭두이다. 주재환의 무대 미술로 간간이 출현하는 꼭두 형상은 늘상 보아온 이미지들을 더욱 동화적이면서 몽환적으로 처리하였다. 여기서 노화가(老畵家) 주재환은 죽음은 그로테스크한 것도 기괴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죽음은 가까운 존재라는 것을 감지하도록 권하는 화술(畵術)을 동심처럼 발휘하였다.
 그리고 <이미아직>처럼 정가와 기악의 음색을 살리는 국악을 춤에서 보는 것은 흔치 않다. 이태원과 박민희가 음악 제작과 성악을 맡은, 교교하거나 기괴한 분위기를 타다가도 정갈하면서도 정교한 음 구성은 이번 공연에서 인상적인 느낌을 주었다.


 


 이미아직의 세계는 꼭두의 세계이다. 작품 중반부에 접어들어 밝은 무대에 일곱 남성들은 웃통을 벗어 상체를 드러내면서 춤의 흐름을 가파르게 펼치고 점차 꼭두의 세계로 흘러들어갔다. 근 20분 동안 진행된 이 부분은 <이미아직>의 허리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여겨진다. 그들의 흐트러진 군무는 마치 난전을 이루듯이 진행되었으며 춤꾼들의 몰입도는 매우 높아 보였다. 사이키 뮤직에다 타악과 종소리, 때로는 바다 갈매기 소리가 섞였다. 광란의 비틀대기 와중에 그들은 점차 팬티 차림새로 변해 갔으며 마침내 기진맥진하였다.
 여기서 남성들은 제각각 상체와 상체의 관절로써 행할 수 있는 움직임과 몸짓을 가능하면 다 해본 것 같았다. 욕망, 감정, 집착, 가장 등 현실 곧 삶의 허물벗기로 해석되는 이 20분간의 대목은 그러나 설득력이 약하였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물어뜨려간다는 취지로 진척된 춤은 그 몰입도와는 달리 오히려 관념적이었다. 다시 말해 그러한 취지를 난전의 춤이 달성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유사하게, <이미아직>에서 작품의 여섯 대목들 간의 이음새도 그다지 탄탄하지 않은 탓에 말하자면 여섯 대목은 나열에 머문 편이었다. 한마디로 대목들 간의 유기적 연결은 취약하였다. 이와 같은 경향은 춤의 전개에서도 짚어진다. 길게 말할 것 없이, 전반적으로 보아 <이미아직>은 부분 부분에서 상당한 설익음을 노출하였다. 이런 문제점들로 인해 작품이 겨냥한 상징성 즉 삶과 죽음은 하나라는 인식이 객석을 설득하기에는 무리였다. 아무튼 국립현대무용단은 그 위상과 현실을 고려해보면 무엇보다 작품(레퍼토리) 확보 측면에서 획기적 전략을 새로이 강구하고 실현하는 데 분골쇄신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2014. 06.
사진제공_국립현대무용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