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김영희무트댄스 〈이제는...〉
나아가지 못하고 머물러 있는 춤
방희망_춤비평가

 한국 창작춤의 2세대로 불리며 꾸준히 창작활동을 지속해온 김영희무트댄스가 창단 20주년을 맞아 6월 27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신작 <이제는...>을 무대에 올렸다. <이제는...>은 과거에 대한 기억들, 그 속의 미련과 후회, 그리움 등을 모두 지우고 ‘이제는’ 미래를 위해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담았다고 한다.
 암전이 되기 전부터 자못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느낌까지 주는 음악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막이 오르고 어두운 무대 공간에는 높은 위치에서 쏘아 내린 빔 조명들이 바닥부터 점점이 쓸어 올리며 검은 하늘 속 떠있는 별빛 우주를 연출한다. 이어 화려하게 디자인된 나선 은하 모양 조명을 떨어뜨리며 김영희무트댄스의 20주년 축하 자막을 내보냈다.
 그런 가운데 시작된 본 공연은 무대 뒤편 중앙에 악기 주자들을 앉히고 그 좌우에 비스듬히 세운 막대 끝에 커다랗고 하얀 원 두 개씩을 배열해 두어 마치 네 개의 달이 뜬 어느 미지의 공간 속에 와 있는 듯한 풍경으로 연결되었다.





 거문고와 대금, 다양한 종류의 타악기가 얽히며 호방하게 분위기를 주도하면서 앞서 나가면 검은 색 슬리브리스 긴 치마 차림의 춤꾼이 등장한다. 두 팔을 온전히 드러냈기에 어깨와 손목에 가하는 탄력으로 운용하는, 과히 무겁지 않으면서 힘 있는 동작들이 확연히 보인다. 중간 중간 뒤돌아선 채 멈추어 양팔을 세로로 길게 뻗을 때는 하늘로 뻗은 고목 같은 정지된 오브제로서의 감각도 살려낸다. 네 개의 달이 뜨고도 어둠 속에 가라앉은 어느 메마른 행성, 춤꾼은 주술적이면서도 절도 있는 몸짓으로 정지된 시간을 잇고 미처 드러나지 못한 무엇-빛-을 불러내려는 것 같다.
 이지적이면서 모던한 춤사위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질 무렵, 세 번째 무용수가 등장할 때부터 시작된 필요 이상 애절하게 구성진 여인의 구음은 그러나 그 기대를 배반하였다. 기억이 담긴 과거로 회귀하기 위해 일부러 계산하여 넣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우주로 유영하려던 상상력은 여지없이 끄잡아 내려졌다.
 여기에 절규하는 남성의 목소리까지 얹으며 공연 끝까지 밀고 나갔는데, 공연장을 압도하는 강렬한 음악을 시종일관 구사한 것은 구성상 기승전결이 없는 반복된 안무와 더불어 관객의 피로감을 증가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이야기가 있는 극만 기승전결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동작의 요소들을 발전시키는 변주가 어느 정도까지 이루어졌는지, 춤 단위의 발전-확장과 소멸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가 안무의 기승전결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을 텐데, 검은 옷을 입은 다섯 명의 무용수와 흰 옷을 입은 아홉 명의 무용수가 번갈아 무대를 메웠어도 서로 간에 별다른 얽힘 없이 각자의 춤만 선보이다 내려가는, 극히 개인적인 공간 사용 방식으로 긴 시간을 채웠기 때문에 결국은 단순한 구성이라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근래 들어 여러 공연들에서 조명을 다는 바(bar)를 내려 중요한 무대장치로 이용하는 것이 유행이라면 유행이다(김용걸 댄스씨어터의 <Work 2 S>, 국립무용단의 <단>, 아크람 칸의 <Desh> 등등).
 이 작품에서도 흰 천을 그곳에 각각 높이를 달리 하여 길게 둘러 단 다음 계단식으로 내리니 어두운 뒤 배경을 가리면서 조명의 효과를 고스란히 반영하여, 주황빛 조명 아래 좌우로 움직이는 무용수들의 모습이 여명을 밝히는 여신 오로라처럼 보일 정도로 환상적인 효과가 있었다. 여러 개가 겹쳤지만 산뜻한 흰 천의 질감 덕분에 점진적인 입체감이 잘 살았고 배열에 신경을 많이 썼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공을 들인 무대 디자인이었다.
 힘을 바로 반영하지 않고 흡수했다가 한 템포 늦추어 튕겨내는 탄력 있는 춤사위, 그것을 구현하는 무용수들의 탄탄한 실력은 김영희무트댄스의 확고한 스타일로 자리매김할 만하다.




 그러나 무대와 조명, 음악 등 안무 외적인 요소가 그 살덩이를 불렸을 뿐 스타일을 ‘제시’하는 것 외에는 응집력이 부족했던 춤 공연은, 나아가지 못하고 머물러 있는 듯 보였다. 춤이 움직이는 회화(繪畫)에 머무는 것도 나름 존중받을 선택이고 개성이지만, 동시대에 대한 고민과 주제 의식으로 김영희무트댄스가 추구하는 ‘흐름’이 무대 위 무용수들의 흐름으로 끝나지 않고 객석까지 흘러넘치면 좋겠다는 것은 지나친 바람일까.
 공연 시작 전 받아든 프로그램 북을 보니, 보통 며칠간 치러지는 행사에 각기 다른 공연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담는 것이 일반적인데 비해 같은 크기 다른 색깔로 네 번 공연의 프로그램 북을 따로따로 만들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만큼 20주년 기념공연 준비에 공을 들였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축사와 연혁, 김영희에 대한 평문 등을 싣는데 많은 분량이 할애되어 있고 정작 신작 <이제는...>에 대한 소개는 한 페이지에 그친 점 역시 아쉬웠다.

2014. 07.
사진제공_한용훈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