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신은주 〈時-撫, 시간을 만지다〉
강한 에너지와 조형성
김태원_춤비평가

 LIG아트홀 부산이 기획한 ‘부산 안무가시리즈’에서 올려진 두 번째 춤(첫 번째는 현대무용가 박은화)인 신은주의 창작춤 <時-撫, 시간을 만지다>(6월 13-14일)은 자신의 앞선 작품 <止-서다>(2009)와 연결되는 주제성을 담고 있었다.
 그것은 도시적 삶 속에서 한 인간의 현존(現存)의 의미인데, 이는 이중의 접점을 통해 작품에서 보여진다. 그 하나는 도시적 삶의 어두운 상황 속 고독과 타인에 대한 익명성을 띤 숨은 응시라 하겠고, 다른 하나는 끊임없이 어떤 시원(始原)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그것이다.
 그런 가운데 작품 속 존재자(신은주)는 그 두 방향의 접점이나 그 부딪힘의 사이에서 현재의 삶의 의미를 최대한 음미하고 배가(倍加)시키려 한다.
 시원으로 향하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이 원초성과 제의성을 지닌다. 공연의 첫 오프닝은 무대 한구석에 긴 머리칼을 가진 한 존재(일본인 현대무용가 스미 마사유키)가 어슴푸레 거의 나신의 형상으로 바닥에 등을 대고 누운 자세를 보여주면서 천천히 뒷 엉덩이를 보이며 몸을 일으켜 세우는 모습과 동시에 큰 흰 종이꽃을 머리 위로 든 다섯 명의 여성무용수들이 사선으로 정적을 띠고 서 있는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낮은 톤으로 들리는 말러 교향곡은 마치 계곡에서 새어나오는 바람 소리와 같은 음향과 뒤섞여 깊은 신비스러움의 분위기를 조성하며 작품에 무게를 더해 주었다. 여기서 춤은 그런 느린 몸 부석거리며 일어남과 무대 한구석으로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신비스럽게 멀어져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리고 여성무용수들이 그렇게 종이꽃을 들고 마치 헌화하듯 정적(靜的) 속에 가지런히 서 있는 포즈를 보여주는 것만으로 족했다.




 이어 등장한 연한 붉은 색감의 헐렁한 의상을 입은 신은주의 춤은 일종의 자유표현적 동작으로 몸을 다소 경사지게 눕혀서 두 팔을 앞으로 평행되게 뻗는 듯 하면서 그러나 몸의 무게 중심을 낮춰 마치 가슴 앞으로 큰 공 하나를 껴안고 있는 듯한, 그런 중에 자신이 점하고 있는 시공간을 최대한 내실 있게 점유(占有)하면서 자기 것으로 만들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이것은 여성 군무진이 일렬로 정렬하거나 흩어져 어둠 속에서 각자 상체 혹은 하체 중심의 조형적이거나 기술적 몸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과 대립되어, 기교와 멋부림에 사로잡혀 있는 젊은 몸과 그렇지 않은 자유로운 몸과의 대립 및 또 다른 의미에서 공존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무대 안 춤의 모습은 그러나 누군가에 의해 끊임없이 응시된다.
 스미 마사유키를 비롯 박병철·손영일과 같은 남성 춤꾼, 그리고 다섯 무용수들은 무대 양옆의 블라인드와 그 뒤의 위쪽에서 쏟아지는 조명 아래에서 검은 코트와 모자를 쓰고 침묵으로 서 있거나, 때론 무대 중앙으로 낯선 이처럼 이동하면서 춤과 일종의 퍼포먼스가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같이 검은 코트를 입은 응시자들은 춤추는 이(몸)를 둘러싸고 있는 도시문명적 모습의 상징체라 하겠다.




 이 공연은 퍼포먼스 효과를 지닌 묵극(黙劇)의 움직임을 의미 있게 활용하면서 시원(혹은 과거, 혹은 전통)을 내적으로 갈망하되, 그러나 갈 수 없는 현존의 상태를 공력(功力)이 탄탄히 쌓여 있는 신은주의 자유 몸동작과 나름대로 앙상블을 이룬 남녀 무용수들의 탄력적 몸 움직임이 가미된 모습을 보여주면서 지금 이 시간, 이 장소의 결정(結晶)이 주는 ‘삶의 의미란 무엇인가’를 춤추는 이 자신에게나 또 관객들에게 질문하고 있었다.
 그런 중에 신은주 자신의 춤과 특히 전공이 다른 이들이 한데 섞인 여성 군무진(김근영 김도은 김현정 장정희 최지은)의 탄력 있는 신체미는 우리 창작춤의 자유로운 표현적 가능성을 열어주면서, 춤에 실존적 사색성을 첨가하고 있었다.




 잡히지 않은 시간―오늘의 삶―의 의미를 어떻게 춤을 통해, 또 춤 안에서 잡을 수 있을까. 공연 속 이미지들은 다소 잘 맞물려 있진 않았지만, 춤은 강한 에너지와 조형성, 그리고 주관적 사색성과 현대적 감성이 함께 결합되어 채워지지 않은 존재의 갈망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공연의 종반부에서 디도의 아리아 곡이 들리는 가운데 낮은 자세에서 높은 극장의 천장에서 뿌옇게 쏟아져 내리는 빛을 향해 두 팔 올린 신은주의 모습은 그런 상징적 포즈였다.

 실존적 개체이되 끊임없이 타자(他者)와 연관되면서 조화/부조화스럽게 공존하고 있다는 생각. 공연은 이재환의 미니멀한 공간 디자인, 전정호의 조명, 김재철의 현장연주와 어울려 지역에서지만 공연의 전문성을 크게 높이고 있었다. 내게는 신은주 춤의 내공이 더할 나위 없이 높아진 것, 그리고 정예화 된 젊은 부산 춤꾼들의 날카로운 감성을 본 것이 큰 소득이고 즐거움이었다.

2014. 07.
사진제공_LIG문화재단 /김상협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