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김치는 먹을수록 그 맛에 길들여집니다
해외춤탐방 : 아따깔라리 인디아 비엔날레(Attakkalari India Biennial)
김신아

 아따깔라리 인디아 비엔날레(Attakkalari India Biennal) 폐막을 장식하며 관객을 기립박수 치게 만들었던 K-Style은 “되새김질하는 시간의 가치”를 증명해낸 프로그램이다. 2007년 발표한 것부터 2010년 초연한 작품에 이르기까지 국내는 물론 유럽, 남미, 북미, 아시아, 중동 등을 대상으로 수차례 검증 받고 다듬기를 반복해 농익은 레퍼토리들이 2013년 2월 3일의 주인공이었으니, 음악의 66음계를 만들어낼 정도로 뿌리 깊은 예술적 취향을 가진 인도인들의 입맛에도 곰삭은 김치의 감칠맛 나게 톡 쏘는 풍미는 충분히 맞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영국에 뿌리내린 아크람 칸이나 쇼바나 제야싱 등은 카탁과 바라타나티얌을 독자적 무용어법으로 소화해 국제적 명성을 쌓았다. 많은 인도출신 안무가들 역시 영국에서 이와 유사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는 과거 식민지에서 새로운 현대예술의 정체성을 수혈 받아 상품화하는 프랑스, 네덜란드 등과 유사한 문화제국주의 전략과도 무관하지 않겠지만 인도출신 무용가들은 영국 국제무용 행사의 20~30%를 차지하는 것은 물론 자국 무용가들에게도 활동 발판이 되어주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인도 내 현대무용이 전망은 밝으나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점을 고려해 “다양성, 작품성, 표현의 완성도를 다 보여주겠다”고 작정하며 시작했으니 무용담론 코너에 초청받아 미리 축제에 와있던 일본 무용평론가 무토 다이수케(Daisuke MUTO)가 “매우 영리한 프로그래밍이다. ‘관객과 호흡하는 작품성’과 ‘화려한 볼거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으니 그 어떤 축제에 갖다 놔도 폐막에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프로그램은 없을 것이다.”라며 흥분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우리와도 인연이 깊은 무토는 공연저널리즘 서울포럼(Seoul Performing Arts Critics Forum) 참가자 및 타 행사 게스트로 자주 방한하며 LDP와 김재덕을 외국 축제에 추천하기도 했는데 그가 손꼽는 한국현대무용의 강점은 “노, 가부키 등 과거 예술형태와 완전히 결별한 일본 현대무용과 달리 한국 현대무용에는 전통적인 호흡과 춤사위가 바탕에 깔려있어 독특하게 매력적일뿐더러 우리 전통문화에서 따온 관객과의 소통법도 차용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K-Style이 보여준 작품 모두 이런 강점이 가장 잘 살아있기 때문에 세계무대 어디에서도 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02년 시작해 올해 6회째를 맞은 아따깔라리 인디아 비엔날레는 영국에서 현대무용을 공부하고 무용단을 만들어 활동하다 귀국해 1992년 아따깔라리 움직임 연구소(Attakkalari Centre for Movement Arts)를 설립한 자야찬드란 팔라리(Jayachndran Palazhy)가 창설했다. 올해는 22개국 약 250여 명 예술가들이 참가해 1월 25일부터 2월 3일까지 열흘간 인도 남부 벵갈루루에서 랑가 샹카라극장(Ranga Shankara), 자야마할 팰리스 호텔(Jayamahal Palace Hotel), 쵸디아 메모리얼 홀(Chowdiah Memorial Hall), ADA 랑가만디라(ADA Rangamandira), 구르나낙 바란(Gurunanak Bharan)과 알리앙스 프랑세즈(Alliance Française)등 6개 공연장과 독일문화원 세미나실 그리고 아따깔라리 움직임 연구소 등 다양한 장소에서 열렸다. 프로그램도 여느 국제행사 못지않게 화려했는데 벨기에 시디 라르비 셰르카위(Sidi Larbi Cherkaoui), 호주 청키 무브(Chunky Move) 등을 비롯해 프랑스, 독일, 스위스, 영국 등에서 다양한 무용단을 초청했다. 또한 매년 진행하는 레지던스 프로그램(FACETS)에는 부르키나 파소, 일본, 이스라엘, 독일, 미국, 싱가포르, 호주, 노르웨이, 한국 및 인도 안무가들이 참가해 2개월 여 인도체류경험을 바탕으로 각자 작품을 만들어 발표했다. 그 밖에도 프랑스 리옹 페스티벌의 도미니크 에르비유(Dominique Hervieu), 독일 탄츠메세의 카요 넬레스(Kajo Nelles), 프로그래머 탕 푸 쿠엔(Tang Fu Kuen), 안무가 기데온 오바르자넥(Gideon Obarzanek)을 비롯한 각국 축제 및 극장 예술감독, 프로그래머, 저널리스트, 예술가들을 초청해 포럼과 워크숍 및 무용담론(Writing on Dance) 코너를 진행했다. 팔라리는 특히 아시아 현대무용 육성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남아시아 플랫폼(Platform 13: Emerging South Asia)을 마련해 자국뿐만 아니라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이란 안무가들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등 프로그램과 규모에 있어 손색없는 국제행사의 면모를 갖추어 놓았다. 인도 물가수준에 견주어 상당히 큰 액수인 약 3천만 루피(한화 약 6억 3천만 원)에 이르는 예산은 중앙 및 지방정부 그리고 초청 대상자 해당 정부, 문화원, 기업 등으로부터 후원 받고 일부는 자체적으로 조달한다.


 

 

 

 한 가지 매우 놀라운 것은 “난 40명의 가장이다”라고 말하며 웃음 짓는 팔라리가 격년제이기는 하지만 축제개최와 더불어 약간의 정부보조 외에 현지 자동차회사 TATA이 적극적인 후원으로 아따깔라리 움직임 연구소 소속무용수와 스태프를 먹여 살린다는 점이다. 그가 인도 내 현대무용을 일궈가는 개척자라고는 하지만 기업의 후원이 국립도 아닌 민간단체운영에 결정적으로 주효 하다는 것은 향후 인도 현대무용의 전망이 매우 밝다는 것을 시사한다.

 

 

 



 


"가사를 알아듣지 못했어도 상관없다. 충분히 가슴을 울렸기 때문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권영빈)가 주최하고 인도한국문화원(INKO Centre)이 협력한 아따깔라리 비엔날레 한국특집, K-Style의 주인공은 최상철 현대무용단(대표 최상철)의 <논쟁>, 브레시트 무용단(대표 박순호)의 <人_ 조화와 불균형>, EDx2 무용단(대표 이인수)의 <현대적 감성>과 <헬프> 그리고 레지던스에 참가했던 나연우의 <저 질문 있어요>였다. 행사 개막 전부터 화제였던 한국특집에 대해 예술감독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인도에서 좋은 한국 작품이 많이 소개돼 한국 공연에 높은 기대치를 갖고 있다"며 "가장 중요한 개막과 폐막 작품으로는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갖춘 아시아 작품을 올리고 싶어 한국 무용단을 초청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공항에 도착하자 “K-Style이 매진되었다”는 소식이 첫인사였는데, 티켓가격 200루피(한화 약 4,000원). 25루피(약 500원)면 햄버거를 사먹을 수 있는 인도에서 고가(高價)였음에도 불구하고 공연당일 좌석이 모자라 상당수 관객이 복도에 주저앉아 공연을 볼 정도로 한국공연에 대한 관심은 실제로 대단했다. 객석풍경 역시 전날 박수도 나오지 않던 공연장과는 사뭇 대조적이었는데 쥐 죽은 듯 조용히 집중하던 관객들은 레퍼토리가 끝날 때마다 기립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인도에서 사업을 한다는 싱가포르 관객 고기곡(Kee Kok Goh)씨는 “남아시아에서 가장 규모 큰 현대무용축제라서 몇 개 공연을 봤는데 오늘 노래가사(판소리 수궁가 중 일부)를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내용에 상관없이 가슴을 울렸다”며 <人_ 조화와 불균형> 음악감독 박종호씨를 잡고 한동안 놓아주지 않았다.

 

 

 

 

​미지의 땅 인도, 현대무용이 꾸는 꿈

 찬란한 인더스 문명을 일군 드라비다족을 정복하며 아리아인은 ‘카스트제도’를 만들어냈다. 이를 카르마(Karma), 즉 업보로 알고 순종하라 가르치는 힌두교와 함께 헌법상 공식적으로 폐지(1950년)된 카스트는 지금도 인도를 지배한다. 대도시에서조차 여전히 신분의 높낮이에 따라 감히 눈을 마주칠 수 없고, 노예계급 수드라보다도 낮은 불가촉민(不可觸民) 도비왈라(Dhobi-walah)는 평생 남의 빨래만 하다 죽어야 한다. 운전을 하겠다고 나섰다가는 중국이나 인도네시아에서보다 더 험한 꼴을 당할 수도 있다. 횡단보도는 고사하고 중앙선도 없는 대부분 도로에는 자동차, 오토릭샤, 오토바이와 사람이 마구잡이로 섞여 아수라장이다. 마스크를 써도 목이 따끔거릴 정도로 오염이 심각한 도심 곳곳에는 버려진 공사판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방치되어 있다. 좀 더 들어가 보면 각종 오물과 식 음료는 말할 것도 없고 언제 무너져 내릴지 모르는 건물과 작은 회교사원이 즐비하게 늘어선 새로 세상에 있을법한 모든 악취를 풍기는 시장 골목을 만날 수 있다. 그곳에서는 마차와 오토바이 그리고 맨발의 천민들이 사리(Saree, 여성의 전통복장)와 추리타(Churidar, 젊은 여성이 주로 입는 화려한 사리) 차림의 여성들, 쿠르타(Kurta, 남성의 전통복장)나 현대식 복장을 한 남성들과 부딪치지 않도록 조심하며 일상을 살아간다. 이런 인도, 세계 최고의 제작편수와 관람객수를 자랑하는 영화산업(볼리우드로 대표됨. 연평균 1,000여 편 이상 제작, 연간 50억 명 이상 관람)을 이룬 나라라 해도 현대무용을 내놓겠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지 모른다. 

 

 


 

 물을 함부로 마실 수도, 아무 음식이나 입에 넣을 수도 없다. 눈 감으면 코에다 귀까지 베일수도 있다. 그러나 12억,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 인도. 앉은 자리에서 며칠 동안 연주를 듣고 느리게 시간을 살며 사색하는 사람들이 거기 있다. 그리고 2009년 처음 시댄스 초청으로 한국과 인연을 맺었고 2011년 댄스시어터 까두(대표 박호빈)와 공동제작을 했으며 “김치를 먹어본 사람이 그 맛에 길들여지는 것처럼 현대무용도 일단 맛을 들이면 대중으로부터 충분히 사랑 받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축제를 만들어낸 팔라리가 있다. 그는 차기 한국 프로그램에 관해 의논하자는 메일에서 “폐막공연에 대한 현지 반응이 놀라운 것이었기 때문에 앞으로 한국과의 교류를 더 확대하고 싶다”고 전해왔다.
 “마음을 비우고 가라”고 했다. 제대로 된 장비는 고사하고 철석같이 마무리를 약속했던 무대 크루는 느닷없이 업무 종료를 선언한다. 후미진 극장 주변에서는 찻집 하나도 찾아보기 힘들다. 심지어 객석 의자에는 씹다 버린 껌이 눌어붙어 있다. 그러나 프랑스, 독일, 영국, 스위스를 비롯해 유럽 열강은 이 미지의 땅에 기꺼이 투자를 결정했다. 현대무용이 정체된 유럽이 시장으로나 자산에 있어서나 충분한 잠재력을 가진 인도를 투자대상이라 판단한 것이다. 

 

 

 

 


"강렬하면서도 감각적이고, 역동적이면서도 우아한 한국 현대무용" 

 

 중국처럼 자본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과거 일본이 그러했던 것처럼 막강한 경제파워가 한국 무용가들의 국제 활동에 큰 배경이 되어주는 것도 아니다. 아니다. 그러나 중국보다 세련되고, 일본보다 감각적인 한국 현대무용은 지금 유럽인들에게는 ‘매력적인 콘텐츠’로 남미나 아시아인들에게는 ‘배워야 할 대상’으로 비춰지고 있다. EDx2 무용단은 인도에 이어 Kore-A-Moves 프로그램으로 유럽에서 공연하고 베네수엘라 공연을 앞두고 있다. 브레시트 무용단은 미국에서 합작제의, 멕시코 무용단으로부터 안무가 초빙 제안을 받았으며 8월 브라질 공연을 준비 중이다. 최상철 현대무용단은 무용수를 유럽에 진출시켰으며 북미와 유럽공연을 타진 중이다. 양국 문화교류에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앞장서며 이번 프로젝트의 파트너였던 인도한국문화원의 라띠 자파(Rathi Jaffa) 감독은 하반기 한국공연 인도투어를 추진해 보자고 출국 전날 제안해 왔다.

 

 

 



공연예술, 눈을 놀라게 하고 심장을 움켜쥐어야 한다  

 

 K-Style의 주인공들은 세상에 내놓아 짧게 2년에서 길게는 5년간 빈 구석을 채워주는 박수를 양식으로 부단한 담금질을 통해 예술감독의 표현처럼 “강렬하면서도 감각적이고, 역동적이면서도 우아한” 한국 현대무용으로 끊임없이 발전해온 작품들이다.
 하루에도 몇 편씩 수개월 공들에 만든 작품에 무대에 올라간다. 하지만 국내여건이 녹록하지 않고 국제무대도 만만히 오를 수 없기에 대부분 작품은 잊히고 만다. 그 중 극소수만이 재공연 기회를 갖고 그 중 또 소수가 국제무대를 경험한다. 수차례 외국무대에 작품을 소개하면서 체감한 것은 철학적 배경이나 매력적 코드건, 엔터테인먼트적 화려함이건 결국 “작품이 의도한 목표를 보편적 화법으로 완성해 내었는지 여부”가 성과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물론 시장에 따라 작품 선정은 완전히 달라진다. 그러나 앞서 평론가가 지적한 ‘관객과의 소통’이 전제된 후에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작품의 완성도는 흡인력을 갖게 마련이고 대중에게 읽힐 수 있는 보편적 코드는 엄청난 철학적, 인문학적 무장을 요구한다. B-Boy는 눈을 놀라게 한다. 인간문화재들의 내공과 신명 담은 우리소리는 관객의 심장을 움켜쥔다. 다만 이것이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무용가들이 익숙한 무대를 벗어나 낯선 관객을 유혹하겠다는 각오로 작품을 만들고 관객은 작품이 회를 거듭해 발전해 나가는 과정에도 기꺼이 박수를 쳐줄 수 있다면 우리무용이 유럽 유명무용단 못지않게 비싼 몸값을 받으며 세계를 놀라게 하는 날이 생각보다 빨리 올 수도 있다. 한국무용이 매력적인 문화콘텐츠로 혹은 학습대상으로 부각하는 바로 지금 그래서 우리무용가들은 기회를 맞았지만 피할 수 없는 도전과도 직면해있는 것이다.

 

 

 

서울세계무용축제, 다수의 국제교류 프로젝트 및 공동제작, 디지털 댄스 페스티벌, 공연저널리즘 서울포럼을 비롯해 아프리카•아랍문화축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2011년까지 서울세계무용축제 사무국장으로 재직했으면 현재 프리랜서 아트 프로듀서로 무용 및 음악 파견 프로젝트를 기획 및 운영하며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등에서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3. 03.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