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추현주 〈스물일곱송이 붉은 향기〉
고통을 춤의 언어로 들어 올리는 힘
권옥희_춤비평가

 추현주가 안무한 <스물일곱송이 붉은 향기>(대구예술발전소 수창홀, 7월 19일)는 스물일곱의 나이에 죽은 조선중기의 여인 허난설헌을 소재로 만든 작품이다.
 허난설헌이라…. 겉으로는 잔잔하나 속으로는 깊은 고통과 비애가 있고, 고통의 큰 뿌리와 작은 뿌리에 구분할 수 없이 엉켜 있는 언어로 시를 쓴 여인. 그 시대 여성의 한계를 앞섰던 빼어난 문기가 비극이었던, 그래서 일찍이 많은 사람을 매혹시켰던 여인. 이 여인이 살아냈던 시간을 춤으로 춘다는 것, 쉬운 작업이 아니다. 그녀가 겪었던 그 고통의 자리로 함께 따라 깊숙이 내려가지 않으면.





 무대 가운데 붉은색과 흰색의 한지, 붉은 꽃 한 송이. 추현주(대구가톨릭대학교 겸임교수)의 솔로. 한지를 밟고 선 채 마음을 ‘붉게 피어올’리며 시작되는 춤. 인상적이다. 꽃 등잔 아래 펼쳐진 붉고 흰 한지 위에서 추는 춤으로 허난설헌의 맑고 깨끗한 시어(詩語)가 붉게 피어오르는 시간. 이 시간은 벌써 다른 세계의 시간이다. 자기 마음속을 깊이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들이라면 들어갈 수 있는 시간이기도. 추현주에게 이 시간은 허난설헌을 통해 꾸는 춤의 ‘뜨거운 열정’이자 ‘피와 같이 흐르는 생명수’이다.
 ‘불꽃같이 살다’에서 그려지는 여자무용수들의 듀오(김윤정, 박진미). 한 사람은 남성의 이미지이다. 사랑받고 싶었던 남편과의 관계이거나 허난설헌 자신의 자아와의 대립. 허공에 춤으로 그려내는 김윤정의 손짓은 남편을 향한 마음으로 보인다. 손으로 그려내는 춤의 순간이 허허로워 보이는 것은 그 손이 잡으려던 것을 놓쳐버린 이유 때문인 듯. 춤은 허난설헌이 바라던 삶의 현실을 놓아 보내면서 잠시 죽음의 세계를 그려낸다.
 마지막 장, ‘붉은 향기되다’에서 젬베 연주자(석경관)와 추현주의 솔로. 가장 간결한 동작으로 가장 많은 의미를 담아내고 가장 소극적인 것으로 가장 적극적인 것을 전개하는 우리춤의 멋을 잘 보여준 장이었다. 무대 벽에 일렁이는 꽃무리의 영상, 꽃이 일렁이는 벽을 따라 등장하는 추현주의 춤에서 슬픔이 흐른다. 무대를 가로 질러 바닥을 기는가 하면 앉아서 추는 즉흥춤. 전통춤의 호흡에서 시작된 춤이 자유로이 흐른다. 추현주만의 매력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장면으로, 그녀의 개성이 잘 드러났다.





 순결하게 춤의 의지 그자체가 되어 관객으로 하여금 무대에 몰입하게 만든다. 타악기의 두드림이 빠르게 치닫는데 느리고 고요한 호흡으로 추는 춤. 짧게 내뱉은 두 번의 숨 외엔 가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춤을 꽃을 피우듯 춤을 몰아붙이며 밀어 올린다. 춤의 맛을 안다.
 가슴부분에 그려 넣은 닥종이 자수는 종이와 먹의 상징으로 보인다. 추현주의 바지자락과 머리칼을 질끈 묶은 가늘고 붉은 띠는 부용꽃으로 피고(진) 허난설헌의 마음으로 읽히기도. 세 면의 무대 벽에 투사되는 꽃무리의 영상은 허난설헌의 죽음을 내포하고 있는 장치로 보인다, 눈에 띄는 연출이다.
 반면 추현주의 솔로에 이어 등장한 부용꽃송이(이라고 하자)를 든 무용수들의 군무는 <스물일곱송이 붉은 향기>에서 는 더 이상 필요치 않는 설명이다. 소극장 무대에 많은 숫자의 군무진을 세우는 것, 작품의 감상을 방해하는 요소로 위험하다. 팔을 밀어서 던져 올리는 동작이나 다리와 발을 많이 쓰는 움직임이 추현주만의 개성있는 춤의 어휘로 보이나 그 춤의 배치와 구성은 다소 진부했다. 춤을 보는 관객의 수준이 진화하고 있다. 과거 춤 형식 답습을 굳이 고집할 필요가 없다. 파격이 필요한 시점이다.





 허난설헌을 파괴하는 불행한 일상들이 바로 추현주의 <스물일곱송이 붉은 향기>가 되었다. 재능의 아이러니이다. 허난설헌은 고독한 자리를 지키며 자신의 모든 바람을 놓쳐버린 것에, 세상에 대한 원망과 회한이 있었을 터. 그의 재능과 비범함에서 나온 시는 그의 처음 선택이면서 동시에 그가 마지막까지 내몰린 궁지이기 때문에. 어쨌거나 그의 불행은 그의 운명을 엇나가게 했던 재난이 아니라 오히려 그 운명을 실현시키는 재능이 되었다. 허난설헌이 그렇게 태어나듯, 추현주는 허난설헌의 현실이었던 슬픔을 힘 있는 춤의 언어로 들어 올리며 태어나야 한다. 이 힘 있는 춤의 언어에서 발휘되는 힘이 바로 지금의 춤 현장에 떠오르는 또 하나의 힘이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힘으로 갈 수 있는 곳까지 가게 될 것이라는 것.

2014. 08.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