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2014 평론가가 뽑은 젊은 무용가 초청공연
편차 큰 작품성, 몇 개의 수작들
방희망_춤비평가

 ‘평론가가 뽑은 젊은 무용가 초청공연 2014’ 시리즈는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서 30분 전후 길이로 안무된 총 9편의 작품- 이영일의 〈Safari 2〉, 박종현의 〈She is cold〉, 이루다의 〈EGO〉(7월6-7일), 김보라의 〈Thank you〉, 이동원의 <기억력 테스트>, 형남희의 <부서진 이름들>(7월9-10일), 곽영은의 <우아한 시체놀이>, 송영선의 <미몽의 시간>, 전혁진의 <결혼>(7월12-13)이 선보였다.
 물론 완성도 높은 무대를 꾸밀 역량까지 충분히 갖추고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것을 기꺼이 양보하더라도 우리는 젊음에서 날카로운 자아의 고민과 현실 인식, 춤 언어와 형식의 참신함, 그를 통한 춤 세계 확장의 가능성 등을 보다 많이 발견하기 원한다. 요즘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와 경쟁에 지친 2,30대들의 무거운 현실을 반영하는 작품들도 있었고(〈Safari 2〉, <부서진 이름들>), 냉혹한 사회분위기 속에 건조하게 뒤틀려가는 관계를 들여다보고자 한 작품들(〈Thank you〉, <우아한 시체놀이>)도 있었는데 전체적으로는 큰 무대에서 제대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인지 연출에 과하게 힘이 들어간 작품이 많다는 인상을 받았다.




 전년도 우수 안무자로 선정되어 첫 테이프를 끊은 이영일은 무용극이라기보다는 뮤지컬에 가까운 형식으로 선회했다. 제목 〈Safari 2〉에는 도시의 삶을 약육강식의 정글에 빗댄 뜻도 있었을 것이고 인간의 내면에 감추어진 동물적인 에너지가 자연스럽게 발산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품은 불편한 딜레마를 노출했는데, 노래 연기 춤 모두 다 되어 재능있는 엔터테이너들(아마도 안무자가 재직 중인 가천대 연기예술과 학생들인 것으로 짐작된다)이 이미 경쟁사회를 초월하여 자유로운 마냥 끼를 뽐내고 관객을 향해 일갈하기도 하였으나 과연 그들 자신이 스타를 선망하는 욕구와 무관한지, 엔터테이너들을 소비하는 대중사회로부터 상처받지 않을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는 질문을 던지지 않은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PJH 댄스컴퍼니 대표인 박종현은 작품 〈She is cold〉를 통해 우리의 역사, 고루한 전통 속에 자신을 희생해 가며 살아왔던 여인들의 이야기를 새로운 시각으로 그려보고 싶었다고 한다. 무대는 현대적인 의상과 몸짓으로 꾸며져 이제는 더 이상 답답하게 순종적인 삶을 살지 않는 모던 걸의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이미 여러 번 되풀이되어 참신성이 떨어지는 주제를 자신만의 것으로 돌파해내기엔 설득력이 많이 부족해보였다.
 댄싱9 프로그램으로 이름을 알린 이루다의 〈EGO〉는 자신이 잘할 수 있고 좋아하고 원하는 것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는 이의 높은 집중력이 하나의 스타일로 깔끔하게 수렴된 뜻밖의 수확이었다. 물론 거창한 주제를 담지도 않았고 뮤직비디오나 광고필름에서나 볼 법한 스타일이라고 평가절하 당할 소지도 다분하지만, 춤꾼이 복잡다단한 비트를 몸으로 완벽하게 소화해낼 수 있는 음악성을 갖춘 것은 큰 장점이다. 그 감각은 강렬한 테크노 중간 적절한 타이밍에 유연하게 흐르는 발레 동작을 안무해 넣으면서 강약조절을 하는데도 이용되고, 무대 뒤편 영상에서 패턴화된 도형들을 리드미컬하게 배열하는 데서도 배어났다. 무대 위 모든 것이 음악과 춤으로 수렴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춤 아닌 대사와 연기, 무대장치가 오히려 춤을 잠식했던 다른 작품들에 비해 돋보였다. 한편 무대 위 등장한 춤꾼들이 모두 균등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나만의 〈EGO〉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EGO〉를 존중한다는 의미로 기억할 수 있겠다.





 LDP 단원이며 Art Project bora 대표인 김보라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행해오던 인사법과 예의에 주목한다. 그녀의 작품 〈Thank you〉는 상대에 대한 공경과 감사를 표현하는 수단이어야 마땅할 ‘인사’가 숱한 인간관계 속에 무수히 반복되면서 본래의 의미를 잃고 기계적인 습관으로 퇴색되어가는 풍경을 그려낸다. 작품 전반부의 잠자리 날개 같은 구조물, 프로펠러 달린 모자와 그것을 조종하는 리모콘이 등장하는 것은 머리로 관계를 가늠하고 계산하면서 부자유하게 된 우리 모습 같다.
 이런 오브제들을 동원한 것은 관점에 따라서는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실험의 일환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작품의 핵심은 우리를 동심으로 돌아가게 만든 후반부에 있었다. 차분히 반복되면서 추억의 밀물을 일으키는 서정적인 피아노 반주 음악 속에 잠방이를 입은 단발머리 소년(지경민)과 소녀(이윤희)가 뛰놀면서 허리를 깊숙이 숙여 인사한다. 장난감 부족한 어린 시절에 손과 팔, 다리를 총동원하며 몸으로 접촉하고 정을 쌓았던 그 무수한 유희들이 허리 숙인 인사와 경계 없이 자연스럽게 녹아 섞였다.
 아르코대극장 뒤편의 장치반입구를 들어 올려 네온사인 번쩍이는 바깥 대학로 풍경을 그대로 노출하고 두 무용수가 거기까지 뛰어나가 나무를 타고 담에 뛰어오르며 서로를 부르고 어울리는 장면은 이번 공연 전체를 통틀어 가장 아련하고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기억력 테스트>는 안무가 이동원이 라식수술을 하고 눈을 뜨지 못한 채 보냈던 일주일 동안,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면서도 아내와 다른 기억을 갖고 있더라는 경험을 토대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소재를 다루어서인지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배우의 내레이션을 넣었는데 그 분량이 지나치게 길고, 전문적인 용어를 여과 없이 읽어 내려서 초반부터 피로감을 준 것은 개선해야 할 점으로 보인다.
 무대 가운데 직사각형의 구획을 만들고 그 안에서 블로킹을 하는 것은 이동원이 즐겨 쓰는 구성방법인 것 같다. 마지막에 바닥에 깔았던 판을 천정 고리에 걸어 들어 올리면서 그 위에 있던 무용수들을 무대 바깥으로 굴려 밀어내는 연출은 결국 그 복잡한 ‘기억에 대한 논의’조차도 한 번씩 포맷해야 한다는 뜻이었을까. 의미심장한 마무리였을 수도 있지만 본 무대의 장광설 때문에 이벤트성 퍼포먼스로 비추어질 위험도 있다.
 Flow Dance Project 대표 형남희의 <부서진 이름들>은 감정노동자들을 주인공으로 한다. 출근하려다 몇 번이고 망설이고 주저앉는 여성의 모습 위로 언어폭력이 난무하는 상담전화의 실태가 영상글씨로 깔린다. 얼굴도 모르는 타인이 무차별적으로 쏟아내는 ‘화(火)’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되어 감정노동자들이 고통 받는 것을, 무대 위와 옆에서 ‘火’를 쓴 종이 수백 장이 떨어지고 그것을 구겨서 뭉치거나 밟아서 소량 해소해도 점점 더 많은 분량이 쏟아져서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것으로 표현했다. 사회적인 이슈를 시의성 있게 다루었고 직관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연출로 풀어내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무용과 퍼포먼스 사이 어중간한 정체성이 아쉽다.

 마지막 날 공연에서는 곽영은의 <우아한 시체놀이>가 돋보였다. ‘우아한 시체’는 초현실주의 작가들이 작업했던 방식 중 하나인데, 서로 앞서 그리거나 쓴 것을 보지 않은 채 종이를 접어 이어 그린 다음 펼치면 전혀 다른 생경한 것들이 바로 만나는 데서 오는 충격과 거기서 나오는 영감을 의도한 것이다. 안무가는 이 개념을 더욱 발전시켜, 겉으로는 우아한 척 하지만 잔혹한 소재들에 몰려다니고 즐기면서도 무감각한 현대인의 이중성을 그려내고자 했다.
 작품은 굵직한 몇 개의 시퀀스로 나뉘고 다시 그 안에서 분화된 장면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지는데, 중앙에 놓인 테이블을 기준으로 대강 세 그룹으로 나뉘어 움직인다. 어느 하나도 유사성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이질적인 춤으로 변주를 거듭하기 때문에 두 눈과 뇌는 긴장을 늦출 수 없이 그 양상을 관찰해야 하는데 후반부로 가면 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변신을 거듭하는 그림들까지 배경으로 보태져 습관적으로 합리에 기대려는 의식 작용을 방해한다.
 ‘논리적으로 말이 안 돼’라는 첫 반응 이후 무디어져 어느새 그것을 즐기는 자신을 발견하면 이 작품 또한 지적인 유희, 퍼즐 게임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염려되는 부분이 있다. 죄의식 없는 관음으로 잔혹한 현대인들의 모습을 형상화하기엔 전체 그림이 예쁘게 나와 버렸다는 것도 문제일 수 있다.
 김영희 무트댄스의 수석무용수인 송영선의 <미몽(迷夢)의 시간>은 소속 단체의 20주년 기념공연이 끝난 지 얼마 안 되는 시점에서 무대에 오른 터라 기시감(旣視感)을 피하기 힘들었다는 점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무대와 조명, 의상도 비슷한 분위기로 전개되었고 무트댄스 특유의, 무대 위에 병렬된 무용수들이 마치 보이지 않는 막으로 둘러싸여 있듯이 자신만의 공간 구사로 춤을 끌고 간다는 것을 여기서도 확인하게 되었다.
 2013년 최우수 안무자로 선정되어 끝 순서에 배치된 전혁진은 5월의 MODAFE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기에 기대를 모았었다. 그의 작품 <결혼>은 라벨의 볼레로를 음악으로 사용하였는데 원형으로 드러누워 펼치는 군무에서 베자르의 <볼레로>나 모다페 폐막작이었던 키부츠 무용단의 〈If at all〉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신부(bride)가 원형 안으로 들어와 추는 춤이며 마지막에 사열에 썼던 형광봉으로 치마처럼 꾸미고 입혀 들어 올리는 장면까지 세부적인 것은 물론 다르지만 큼직한 동선 전개에서 그런 인상을 받은 것이다. 춤사위 자체는 아름답게 세공되어 있었으나 감동을 받지 못했던 건 그런 이유에서다.





 주최측에서 밝힌 젊은 안무가 선정기준은 ‘대학교수가 아니며 공인된 공연장소에서 2~3회 이상의 작품 발표 경력이 있는 신진으로서 계파를 초월하여 춤평론가의 추천이 있는 우수한 젊은 무용가’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이영일의 경우 대학교수가 아니어야 한다는 기준과 어긋나고, 초청된 안무가들마다 작품 발표 경력도 편차가 커 보이므로 평론가들이 심사한 관점이 어디에 방점이 찍혀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명시되었어야 한다고 본다.
 컨템퍼러리 춤에서 연극-무용-퍼포먼스의 경계선이 모호해져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가장 본연의 핵심은 춤에서 찾아야 한다는 건 양보할 수 없는 명제이다. 젊은 안무가들에게 모처럼 주어진 소중한 기회를 평소 여건상 실행해보지 못한 아이디어들을 구현하는데 쓰는 것도 좋겠지만, 언술(言述)로 설명하기보다는 춤으로 응집시킨 결정체를 보여주었으면 한다.

2014. 08.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