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강수진 & 인스부르크발레단 〈나비부인〉
강철나비, 강수진의 카리스마
장광열_춤비평가

 7월에 가장 주목받은 춤 공연은 강수진 & 인스부르크발레단(TANZ COMPANY INNSBRUCK)의 <나비부인>(7월 4-6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필자 4일 관람)이었다.
 발레 <나비부인>은 인스부르크발레단 예술감독인 엔리케 가사 발가(Enrique Gasa Valga)가 무용수 강수진을 위해 안무한 작품이다. 한 무용수를 위해 만든 작품이라고는 하지만, 강수진 이외의 무용수는 결코 춤출 수 없다고 선언한 점이 바로 여타 작품의 제작배경과는 확연히 다르다. 따라서 이 작품의 관람 포인트는 바로 강수진에게 쏠릴 수밖에 없다. 또 다른 포인트는 우리에게 오페라로 잘 알려진 <나비부인>을 과연 90분 정도 길이의 컨템포러리 발레에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였다. 곧 안무가의 독창적인 해석과 연출력이 그것이었다.




 발레 <나비부인>에서는 1부와 2부 합쳐 90여분 동안 적지 않은 2인무를 볼 수 있었다. 오페라 <나비부인>이 드라마틱한 구조에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들의 캐릭터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구조라면, 엔리케가 안무한 발레 <나비부인>은 철저하게 전설의 게이샤 초초상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게이샤 초초와 함께 주요 배역인 그녀의 남편 핑커톤 조차도 초초상을 연기한 강수진의 카리스마 앞에서는 그 존재감이 여지없이 무디어졌다.
 안무가가 오페라로 유명한 작품을 발레로 만들기 위해 사용한 장치는 크게 세가지 였다. 운명의 양면성과 싸우는 강한 주인공의 캐스팅(강수진), 두 가지 세상의 대면을 위한 장치로 사용된 타악기- 대북(다이코)과 드럼 등의 라이브 연주, 그리고 운명의 양면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YIN과 YANG의 설정이 바로 그것이다.
 안무자가 작품 속에 담고자 했던 문화간의 갈등, 현실과 이상의 갈등, 그리고 사랑의 갈등은 이들 두 인물, 두 명의 여성 무용수가 춤춘 YIN과 YANG을 통해 가시화 되었다.




 안무가는 이 작품에서 주인공 초초상을 수줍어하고 감성적이고 그러면서도 섹시하고, 자존심 강한 여인으로 해석했다. 이 같은 안무가의 해석 -연약하면서도 감성적이고, 당당하고 강한 나비부인-은 그녀가 운명의 양면성과 싸우다가 후반부에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해방되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게 하는 구도에서도 드러났다.
 이는 강수진이 음과 양의 역할을 맡은, 초초상의 마음을 대변하는 두 명의 캐릭터 YIN과 YAN과 함께 추는 3인무, 자결하기 직전에 추는 독무, 핑커톤과 이별을 암시하는 마지막 파드되와 함께 작품 전편에 걸쳐 주인공의 심리적인 변화까지도 감지하게 하는 춤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남편이 곧 돌아오는지 잘 확인할 수 있도록 바다가 잘 보이는 가장 높은 곳에, 바위가 있는 산과 오두막을 위치시킨 게이샤의 집(세트 디자인 Helfried Lauckner), 일본의 종이미술에 영향을 받은 의상(Eva Praxmarer)도 시각적인 볼거리를 더해 주었다.




 그러나 이 작품을 존 크랑코 안무의 <오네긴>처럼 드라마 발레의 구조로 보기에는 주인공과 그 주변인물들의 캐릭터에 대한 비중에서 정도의 차가 너무 심했다. 군무진들의 활용에서도 안무가는 춤 그 자체보다는 의상이나 소품(게다 등) 등을 통해 시각적인 효과를 표출하는데 비중을 두었다. 이는 영상의 투사 등과 맞물려 전체적으로 일본적인 색채가 시각적으로 과다하게 배치되는 양상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가을 인스부르크에서 초연 후 불과 1년도 안되어 재 공연된 발레 <나비부인>이 한 무용수를 위해 만들어진 특별한 발레작품이란 프리미엄에도 불구하고, 다양성과 안무가의 독창적인 해석을 존중하는 컨템포러리 발레의 자유로움에 대한 매력에도 불구하고, 일본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나라에서는 예상치 못한 장애에 부디칠 가능성도 예측된다.




 발레 <나비부인>은 결국 스페인 출신의 안무가에게 보여진 이국적인 일본의 색채가 춤과 캐릭터 사이에서 정교하게 맞물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강수진과 핑커톤의 2인무 구성에서 기존 발레 작품의 움직임과의 유사한 동작이 여러 군데서 보여지는 것 또한 새로운 움직임의 창출이란 측면에서 보면 안무상의 약점으로 지적될 만하다.
 그러나 안무가로서 엔리케의 독창적인 해석과 연출력은 나름대로 평가할 만했다. 이 같은 몇 가지 허점을 결과적으로는 주인공 초초상을 맡은 빼어난 발레 무용수의 열연으로 달래주었기 때문이다.
 안무가가 특정한 무용수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창작하는 일은 그리 흔치 않다. 더구나 짧은 소품이 아닌, 한 시간이 훨씬 넘어가는 전막 작품이라면 더욱 그렇다.

 안무가와 무용수의 관계는 무용수에 의해 안무가의 작품이 더욱 빛날 수 있고, 안무가에 의해 무용수의 존재가 새롭게 부각될 수도 있다. 좋은 음악이 발레 작품을 더욱 빛내고, 훌륭한 안무가와 무용수가 작곡가의 음악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안무가에게 무용수는 영감의 원천이 될 수 있다.
 발레 <나비부인>에서 강수진은 안무가의 춤을 빛나게 하는데 모자람이 없었다. 그녀의 존재감은 작품 전편을 통해 무대를 압도했다. 강수진에게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강철나비'란 별명이 왜 무색하지 않은지, 이 작품은 증명해 보이고 있다. 강수진은 정말 나비처럼 사뿐하게 그녀의 몸을 온통 춤으로 도배하고 있었다.

2014. 08.
사진제공_크레디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