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YAC 최은진〈유용무용론〉
젊은 안무가의 꽤 진지한 몸에 대한 탐구
방희망_춤비평가

 노자·장자가 말한 ‘쓸모없음의 쓸모’를 말하려 함인가. LIG문화재단의 젊은 예술가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Young Artist Club의 기획공연인 안무가 최은진의 신작 <유용무용론>(9월 26-27일, LIG아트홀 합정)의 첫인상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숱하게 들어온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 요즘에는 그것을 비틀어서 평생 모으기만 한 개미가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죽었다더라는 자조 섞인 결말도 나온다고 하지만 일반적으로, 그걸 해서 밥이 나오냐는 핀잔을 듣기 일쑤인 우리 예술가-베짱이들은 어떻게 해서든 그 쓸모를 증명하고 싶은 오기가 발동하게 된다.
 제목인 <유용무용론>을 보았을 때, 예술을 구현하는 고급스러운 몸이나 실제로 밥벌이를 하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그 몸에 대한 안무가의 저간의 생각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용이 얼마나 ‘쓸모’가 있는지 항변하고픈 욕심이 읽힌다.




 작품은 크게 세 파트로 진행이 되었다. 무대를 바닥으로 내리고 객석도 사방으로 두른 상태에서 그 절반의 공간은 의자들로 채워놓았다. 윤상은이 몸을 이리저리 천천히 움직이면서 관절과 근육의 변화를 느끼고 살피는 무용가의 모습을 보이는 동안, 위성희는 족히 서른 개는 넘어 보이는 의자들을 하나씩 머리 위로 들어 올려 무대 바깥으로 나가 치우는 동작을 잠자코 반복한다.
 이렇게 예술과 일상(노동)을 대비시킨 뒤 등장한 최은진은 널찍한 천막용 포를 펼치며 테이프를 두르면서 이번 작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설명했고, 이런 간단한 동작들을 하면서도 즐거움과 흥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마음, 그러므로 어느 것도 대충할 수 없다는 다짐 비슷한 고백을 하였다.




 위성희가 스티로폼 두 장을 들고 나와 그것을 부수기 시작하면서 객석 곳곳에선 웃음이 새어나왔다. 마치 장구춤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비트는 동작을 슬로우 모션으로 처리하듯이 움직이면서 스티로폼을 부수는 표정은 나른하게 풀려 있었다. 윤상은이 카트에 싣고 나온 고무나무 화분과 포대, 빈 화분을 두고 세 사람은 화분의 흙을 퍼내고 스티로폼을 부수고 그 잔해들을 화분에 담는 단순한 동작을 무수히 반복하면서도 그 동작들을 분절시키고 그 사이를 최대한 벌려서, 무용으로 철저히 훈련받은 신체가 아니면 소화할 수 없는 유연하며 힘이 집중된 동작들을 붙여 넣었다.
 그런데 이들의 표정들 모두가 무아지경이다. 마치 춤추는 우리는 일상적인 동작을 하더라도 이렇게 달라요 하듯이, 보통 사람들이라면 그저 얼른 끝마치는 데만 집중할 일들을 가능하면 끝내고 싶지 않다는 듯 일부러 틀리면서 연장하고 또 연장하면서 오르가즘을 느낀다.
 ‘일’을 똑 부러지게 끝내지 못하고 보란 듯이 바보(?)짓을 한 세 사람의 연기 덕분에 애꿎은 고무나무 화분은 파헤쳐지고 흙과 스티로폼의 잔해들로 무대 위는 한껏 흐트러졌지만, 45분의 공연은 춤을 전문적으로 추는 사람에게나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나 적지 않은 자극을 남길 만한 것이었다.




 늘 속도감 있게 완결된 ‘그럴 듯한 작품’만을 추구하는 입장에서는 애초에 무용수의 몸이란 노동하는 몸이라는 깨달음이 새삼스럽게 다가올 듯 하고, 노동을 지루하고 지겨운 것으로 무심하게 바라보던 사람에게는 감각이 확장된다면 일상조차 얼마나 근사한 자극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것인지가 새로운 발견이 될 것이다. 최은진의 <유용무용론>은 그렇게 사고의 전환에 밑거름이 되는 것으로써 ‘쓸모 있음’을 보여 주었다.

 다만 한 가지, 무대 규모가 작아서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진행하기 위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윤상은과 최은진의 발성은 따로 훈련되지 않은 채 소극적이어서 잘 들리지 않았다. 사실 안무가 하고픈 이야기에 부합하도록 이미 적절히 짜여 있어서 대사는 줄이거나 없애도 무방하리라고 본다. 그러나 관객과의 소통 측면에서 기왕 대사를 준비한다면 연기와 춤의 적극성만큼 발성도 개선되어야할 필요가 있겠다.

2014. 10.
사진제공_LIG아트홀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