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한팩 ‘솔로이스트’ 1
움직임의 칸막이, 과연 불필요한가
김채현_춤비평가

움직임 기본이라 불리는 것들, 예컨대 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 같은 기본 사위들로 춤 장르는 정해진다. 이것은 오랜 관행이다. 움직임 기본의 차이는 춤의 차이이며, 그러한 차별성은 춤들 사이에서 칸막이 구실을 한다. 그런 칸막이가 치워지면 춤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한국공연예술센터(한팩)의 기획 프로그램 ‘2011 한팩 솔로이스트’(아르코대극장, 6. 10~11. & 17~18.)는 그런 조짐 또는 어떤 가능성을 타진하는 작업으로 해석된다.
 춤들 간의 칸막이는 진즉에 치워져 왔다. 혼합, 융합, 해체 등으로 불리는 작업들이 그에 해당하며, 앞으로도 칸막이는 계속 치워질 것이다. 움직임의 영역을 모든 방향으로 열어두고 확정하지 않는 시대에 아이디어가 무대를 주도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런 와중에 무대 위에서 움직임이 분명치 않아지고 춤꾼의 정체성이 모호해짐으로써 일종의 갈증 같은 증세도 있는 듯하다.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고 움직임의 잠재력을 탐색하는 작업에서 칸막이는 어떻게 인식되어야 하는가.
 ‘2011 한팩 솔로이스트’ 프로그램에서는 2일간씩 각각 4작품이 올려졌다. 여기서 김재덕-김재윤, 성한철-성현주 등 4쌍의 형제, 자매, 남매 춤꾼들이 각각의 안무가를 선택해서 만든 2인무들과 김은희, 김용걸, 이경은, 예효승 등 40살 전후 4인의 중견 춤꾼 역시 안무가를 선택해서 만든 독무로 구성되었다. 춤꾼들 중에서도 안무 경력이 긴 사람도 있다. 이번 프로그램의 특징은 우선 형제처럼 혈연 관계의 춤꾼으로 2인무를 안출한 점과 발레나 한국춤 춤꾼에게 현대무용 안무가가 안무를 제공한 점이 들어진다. 춤의 다른 장르들을 엇갈리게 짝짓는 이런 방식에서 칸막이는 이미 치워지고 있었다.
 ‘2011 한팩 솔로이스트’에서 김용걸 및 예효승과 같은 날 무대에 선 김재덕 형제와 이루다 자매의 춤에서는 어린 기색이 보였다. 이번과 같이 한 무대에 서서 개성적 색깔을 내기까지 그들이 더 성장하기를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김재덕-김재윤 형제의 춤은 화환이 담긴 쓰레기통이나 비닐 폐기물이 널린 쓰레기 처리장 같은 곳을 배경으로 하였다. 그들의 공동 작품 ‘마이너 룸’(소외된 자의 방?)은 김재덕의 대학 후배인 천종원이 안무한 점에서 우선 특이하다. 이 작품을 주도하는 정서는 제목이 시사하듯이 정상과 거리가 있는 사람들의 우울증 같은 것이다. 그리고 곡괭이나 도끼가 등장해서 둘이서 드잡이 하는 장면은 얼마간의 충격과 어두움을 환기한다. 형제가 펼치는 움직임들은 호흡에서 조화를 기하면서 섬세하면서 강렬한 느낌을 전달한다.
 칸막이를 치운 이 일련의 작품들 가운데 발레 춤꾼 김용걸이 출연한 ‘그 무엇을 위하여...’는 한마디로 발레를 탈색(脫色)시킨 작업으로서 주목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현대무용 혹은 현대춤의 신예 안무가 김보람이 안무를 맡은 이 작품에서 김용걸은 이전의 여러 이미지를 훌쩍 건너뛰는 놀라움을 선사하였다. 이번 작업은 그와 발레에 관한 일반적인 생각들을 따돌리기에 족하였고, 그만큼 이변이 돌출한 무대였다.

 

 

 


 조직폭력배와 수행 경호원의 트레이드 마크는 검정 정장과 검정 티(혹은 하얀 와이셔츠), 선글래스이다. 그것들을 김용걸이 걸쳤을 때, 트레이드 마크의 상징성은 달라지든가 않든가 그 어느 쪽일 것이다. 일단 발레라는 짙은 아우라를 배경으로 하면 그 트레이드 마크들은 다른 상징성을 띠기 마련이다. 그래도 조직폭력배와 수행 경호원과는 다른 차원을 획득하려면 어쩌면 그런 트레이드 마크가 걸쳐지는 지체(肢體)가 거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할 것 같다. 김용걸의 단단 반듯한 지체는 더욱 이런 지적을 가능케 할 것이다. 때문에 춤에서 움직임이 움직임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몸과 함께 전개된다는 움직임-몸-춤의 동반 관계를 김용걸은 ‘새삼’ 보여주었고, 상식적으로 알려진 명작 발레에서는 오히려 이런 점들이 간과되기 쉽다.
 막이 오르기 전에 조명이 훤한 객석 사이를 김용걸은 위의 트레이드 마크들을 착용하고 등장하였다. 그가 객석을 휘둘러보며 무대로 근접하는 자태에서 그의 정체는 여러 갈래로 해석될 만하지만 그래도 제임스 본드를 연상하는 즐거움도 있다. 역대 제임스 본드들 중에서도 90년대 후반의 피어스 브로스넌이 생각나는 것은 기억력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무대에 올라 아직 막이 오르지 않은 상태에서 안무자 김보람과 서로 테이크 아웃 커피컵을 들고 가벼운 너스레대화를 건네는 품새는 앞으로 이뤄질 일들이 어쩌면 일상성의 연장인 것을 암시하는 전단계로 느껴진다. 여기서도 발레와 일상 사이의 굳은 칸막이가 제거되는 것을 보게 된다. 여기서 우선,  때때로 불편한 것이 치워지는 홀가분함도 상상할 수 있겠다.
 

 

 

 


 잠시 후 김보람이 퇴장하면 라벨의 그 ‘볼레로’가 은근히 들리면서 김용걸은 ‘그 무엇을 위하여...’ 발레를 연출한다. 약 15분간 펼쳐지는 발레의 장면들은 단적으로 말하면 발레 갖고 놀기라 표현될 것이다. 여기서 발레는 정통 테크닉을 주조로 하면서도 그것에서 예리함을 낮추고 부드러움을 투입한 일테면 연성적(軟性的) 발레이다. 발레의 기본 포즈들을 끊임없이 이어가는 가운데 출렁이거나 건들대는 몸짓들이 수시로 가미되었다. 둥근 커다란 스팟 조명이 때로는 작아지고 위치를 이동하는 순간 그것을 따라 허둥대는 춤꾼 모습도 더해진다. 그리고 ‘볼레로’의 선율과 박자 속에 마치 건성으로 몰입하는 얼빠진 듯한 모습은 어떤 외부 자극에 대해 마냥 반응하는 사람 같은 인상을 준다. 계속되는 그런 맹목적인 모습과 때로 허둥대는 순간들은 상당히 코믹해서 관객도 함께 발레를 갖고 놀게 하였다.
 분명 정상은 아닌 듯한 이 발레 춤꾼은 특히 후반부에서 고조되는 선율을 타고 여러 차례를 대도약을 거듭하였다. 그러기 전에 가열되는 몸을 이기지 못하는지 정장 윗도리를 일순간에 훌훌 벗어던지고선 회전들을 감행하고 대도약과 회전을 거듭하는 간간이 몸에서 작열하듯 흩뿌려지는 땀방울이 스프링 쿨러의 물살 같았다고 말해도 과장이 아니다. 발레에서 아마도 몸의 고역이나 생리 현상을 감추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오랜 관행을 벗어나는 그런 스프링 쿨러 식의 땀방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계속 객석이 숨죽일 수밖에 없는 ‘그 무엇을 위하여...’는 김용걸이 회전 동작 중에 권총을 쏘는 자세를 취하자 그 순간 등장한 안무자 김보람이 응사(應射)하여 김용걸이 쓰러지는 것으로 암전된다. 그 순간 객석에서 쏟아지는 탄성은 아무튼 대단원에 대한 반응인 것이며, 이 순간의 김용걸은 그런 트레이드 마크 차림새로 총을 쓰는 조직폭력배 아니면 수행 경호원 아니면 제임스 본드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 무엇을 위하여...’는 굳이 분류하자면 발레 누아르(홍콩 누아르에서의 누아르와 유사함) 혹은 액션 발레일 것이고, 우리 발레에서 전에 없는 장르를 예고하지 않았나 싶다.
 ‘그 무엇을 위하여...’는 긴박감과 흥을 위하여 과장되고 패러디화된 움직임을 동원하였으나, 그 저변을 이룬 것은 정통 기량이었다. 그렇더라도 새로운 발상은 이미 긴박감, 흥, 과장. 패러디 같은 착상 속에 녹아 있으며, 이런 발상을 가능케 했다는 차원에서 ‘한팩 솔로이스트’의 올해 취지는 의미심장하다.

 

 

 


 이번 프로그램에서 예효승은 ‘발자국’에서 흥보다는 절망감으로 관객들의 폐부를 파고 들었다. 후줄근한 일상복 차림의 청년 예효승이 패스트푸드점의 누런 봉투를 들고 나타나 한참 앞을 응시하고 중얼대면서 객석을 불편하게 한다. 봉투를 툭 놓고 샌드위치 조각을 우겨넣고 씹다가 봉투 속에 토하고 상의를 벗어 몸을 드러내면서 그는 몸으로 말한다. 이어 바닥에 수그려 흐느끼는 모습, 또 정신을 수습하고 몸을 삐딱하게 세우거나 비비꼬고 접치는 모습, 비틀대거나 물구나무를 서는 모습들에서 그는 각 부위의 관절을 분절시키는 방법으로 몸을 운용하였다.
 예효승은 청년의 결코 녹록치 않은 어떤 심경 즉 일종의 절망감 앞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는다. 외부 대상의 그 무엇을 묘사하기보다는 몸에서 우러나는 움직임들은 이 같은 정서를 진하게 표출하기에 족하였다. 내면을 가감 없이 노출하는 데 있어 균형으로 다듬어진 몸을 불균형의 모습으로 제시함으로써 ‘발자국’은 춤과 춤꾼의 진정성을 유감 없이 발휘하였다.
 다시 생각해보자.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고 움직임의 잠재력을 탐색하는 작업에서 칸막이는 어떻게 인식되어야 하는가. ‘2011 한팩 솔로이스트’에서 보는 것처럼 정통 움직임은 무시되지도 없애지지도 않는다. 다만 기본 움직임에 정통한 것이 과거의 솔로이스트였다면 오늘의 솔로이스트는 기본에 정통하기와 아울러 옆 칸을 끊임없이 곁눈질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2011 한팩 솔로이스트’가 남긴 시사점은 무엇보다도 칸막이 속에 맴돌면 칸막이가 굳는 법이고 칸막이를 넘어서면 칸막이가 없어지는 간명한 원리가 아닌가 한다. (한팩 리뷰, 2011. 8.)

2011. 08.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