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마기 마랭ㆍ다비드 망부슈 〈징슈필〉
종이얼굴로 하는 그림자놀이- ‘한계자유’에 대해
권옥희_춤비평가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마기 마랭과 다비드 망부슈(Maguy Marin&David Mambouch)의 <징슈필>(Singspiele)>(9월 25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무대, 흰색의 낮은 벽, 벽에 부착된 옷걸이. 세 곳에 걸린 여러 벌의 옷과 가방, 성별의 구분은 물론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의 것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이 공간을 누군가 기거하는 곳이라 치자. 한 사람만의. 무대 위 공간은 정치적이고 유기적이며 사적인 공간이 된다. 흔히 우리는 그 공간 안에 있는 사물로, 그곳(그나 혹은 그녀)에 관한 정보를 수집한다. 그런데 이 공간의 주인은 여자? 남자? 배우? 주부? 노동자? 도대체 알 수가 없다. (모호한 것은 반칙인데) 도대체 뭐지? 이쯤에서 우리는 그(그녀)가 ‘광인’ 이거나 ‘성 소수자’ 일 것이라고 단정해버린다. 사회가 강제하고 규정한 잣대에 맞지 않으면 ‘정상’이 아닌 것이 된다. 규정된 장치의 틀이 작동하게 되는 과정이다.
 남자(다비드 망부슈), 여러 겹의 얼굴 사진으로 된 마스크를 썼다. 팬티를 입고 얼굴사진을 한 장 뗀다. 다른 얼굴. 바지를 입고 또 한 장을 떼니, 여자(로 보이는) 얼굴. 립스틱을 꺼내더니 (사진의)입술, 눈, 온 얼굴에다 칠을 한다. 립스틱에 뭉개져버린 여자의 얼굴. 슬퍼 보인다. 무릎에 놓여있던 수건으로 바닥을 닦는다.
 옆으로 비스듬히 앉아 조신하게 ‘걸레질’하는 행위와 ‘립스틱’을 바르는 ‘그(그녀)’는 분명 여자다고 우리는 인식한다. 그런데 여자처럼 생긴 얼굴로 ‘립스틱’을 바르고 조신하게 움직이면 반드시 여자인가. 남자면 안 되는가. ‘가면’과 ‘립스틱’ 조신한 행동이 ‘규정된 장치’가 되어 우리의 인식을 조정하게 된다는 것.




 미라와 인도의 수행자는 흰색의 커다란 흰색타월의 한 자락으로 나뉘고, 벗은 몸이 자세에 따라 근사한 남자가 되었다가 접어올린 다리에 무심한 듯 팔을 얹으면 뇌쇄적인 여인으로 변신한다. 소녀얼굴은 수줍은 듯 얌전하게 옷을 갈아입고, ‘소피아 로렌’의 얼굴은 반지 낀 손가락을 만지작거린다. 무릎을 꿇고 앉은 일본여인은 종이를 구겨서 버리는데, 소리조차 내지 않는다. 문화가 습관의 상징적 권력화임을 절묘하게 보여준다.
 뚜렷한 춤의 선도 감정의 기복도 없는 단단하고 유려한 사고의 조각들이 무수한 변형을 만들어내는 <징슈필>. 다비드 망부슈의 몸은 만화경이고 그의 뇌는 마치 만화경 안의 색종이 같았다. 마술을 부리는. ‘필립 장띠’의 마술인형과는 다른 차원의 우아함. 그는 마스크의 인물에 따라 옷을 갈아입는 과정을 치밀하게 계산된 춤(몸짓)으로 보여준다. 다리를 벌려 서고, 무릎을 모으고, 손과 팔을 신체 어느 부분에 두느냐에 따라 끊임없이 다른 사람으로 변신한다. 관객이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 때쯤의 공기 또한 귀신같이 알아챈다.
 객석으로 던지는 유머. 물을 따른 뒤, 물이 든 컵을 마스크 쓴 얼굴 앞으로 가져간다. 자신의 진짜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도 마실 것처럼. 어떻게 마시지? 예측하고 상상하느라 잠깐 머릿속이 복잡하다. 그냥 마스크를 벗는다. 그리고 물을 마신다. 예상을 간단하게 뒤엎는다. 맞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물을 마실 수가 없다. 복병처럼 장치한 유머이다. 손 위에 올려놓고 한참 들여다보는 빨강색 하이힐, 신고야 말겠다는 듯. 신지 않는다. 천연덕스런 배반의 전개. 중요한 것은 거칠게 내놓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는 관객을 만족시키려 들지 않는다. 눈치를 보지 않는다. 관객을 그냥 믿는다. 그 믿음은 깊은 사유와 작품에 대한 자신감에서 나온다.
 공연 내내 작품으로 묻는다. 당신이 인식하고 있는 것이 진실이라고 믿는가? 종이얼굴이 만들어내는 이 만화 같은 그림자놀이를. 대답은 관객의 몫.




 <징슈필>은 현실을 반영한 폭로이고 철학이며 초월의 의지까지 아우르고 있다. 좋은 작품이었다. 결코 가볍지 않은, 장난기 가득한 유머와 재치는 덤. 그것은 작가가 세상을 보는 방식이고, 그의 유연한 삶의 태도에서 나온다. 우리 작가들한테서는 잘 보이지 않는 부분.

 푸코는 “광인은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고 했다. 보이지 않는 권력에 의해 움직이는 세상이다. 자신도 모르게 조정당하지 않게 조심할 일이다.

2014. 11.
사진제공_SIDance2014/박상윤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