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코로나 시대에 대처해온 독일 춤계의 흐름들
정다슬_안무가

포스트 펜데믹 Post Pandemic

지난 12월 23일 보건복지부는 보도 자료를 통해서 ‘실내 마스크 착용 전환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을 토대로 한다면 2월 중순쯤이면 우리는 마스크를 벗고 생활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에게도 포스트 펜데믹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상황은 유럽의 상황과는 꽤 큰 차이가 있다. 국가별로 조금씩 다른 지점이 있을테지만 이미 작년에 많은 유럽 국가들이 실외 마스크를 해제했고, 현재는 마스크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모습이다. 코로나의 시작과 펜데믹 그리고 포스트 펜데믹과 엔데믹을 거치는 동안 독일의 무용계는 어떻게 움직이고 있었을까. 독일의 대표적 페스티벌과 담론이 이루어지는 여러 장들에서 어떤 키워드들을 가지고 공연을 진행하며 논의들이 이루어졌는지 간략히 둘러보고자 한다.




Ulrich Weichert/BKM, “Coronavirus in Deutschland”, 독일 연방 정부 홈페이지, 2022년 12월 30일 접속,
https://www.bundesregierung.de/breg-de/themen/coronavirus/unterstuetzung-fuer-kuenstler-und-kreative-1732438




다시 시작하기 Re-Start

먼저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독일 연방 정부를 포함한 다양한 예술 기관들이 코로나의 피해를 입은 예술가와 예술 단체들을 위해 수십억 상당의 대규모의 경제적 지원금을 투입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한국에서도 독립 예술가, 문화예술기관에 대한 여러 지원이 이루어졌으나, 그 규모나 지원 방법에서 차이가 있다. 독일의 경우, 크게 민간 기관이나 무용단 같은 단체에 대한 지원 그리고 소속 없이 활동하는 독립 예술가들에 대한 지원으로 나뉘어져 있어 기관과 예술가 중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형태로, 한국의 코로나 관련 지원금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던 부분들이 보완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독일 연방 정부에서 제공되는 ‘문화의 새로운 시작’ (NEUSTART KULTUR) 라는 지원금은 주로 민간 자금으로 운영되는 문화기관을 지원하였으며, 2023년 중반까지 지원이 연장되었다. 이 지원금은 민간 예술 기관이 다시 문을 열고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하도록 함으로써 이러한 지원이 예술가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도록 돕는다.

유럽의 경우 코로나 초반과 중반 셧다운이 강력하게 적용되어 극장과 무대가 굳게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 이는 예술가들의 일자리가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 때문인지 독립 예술가들을 위한 지원금 역시 다양하게 조성되었다. 크게는 독일 연방 정부의 지원금-한국의 코로나 지원금과 흡사하다-을 시작으로 하여, 각 연방 주에 따라 예술가 지원금이 조성되었고, 보다 작게는 연방 주 안의 문화재단 등에서도 지원금을 조성하였다.

예를 들어 함부르크에서 거주하는 독립 예술가의 경우, 연방 정부의 코로나 지원금, 함부르크 주에서 조성된 예술가 지원금, 함부르크 문화재단에서 조성된 지원금까지 다양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형태였다. 이런 지원금들은 일회성이 아닌 연속적 형태로 지원되었으며, 간단한 신청과 절차를 통해 어렵지 않게 받을 수 있고, 그 금액도 적지 않아 어떤 예술가들은 코로나 기간이 경제적으로 가장 풍족했다는 우스갯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이러한 탄탄한 지원 제도는 독일의 현장 예술가들은 물론 기관들에게도 예외 없던 강력한 셧다운을 거친 후 다시 시작하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 큰 기여를 했을 것이다.


다시 연결하기 Re-connect

3년에 한 번씩 개최되는 독일의 무용회의, 탄츠 콩그레스(Tanzcongress)는 2019년 드레스덴에 이어 2022년 마인츠에서 ‘잠재성을 공유하기(Sharing Potential)’ 라는 주제로 그 문을 열었다. 탄츠 콩그레스는 “문화예술 시스템이 점점 더 상호 연결적으로 발전되고 있는 동시대에 잠재성을 공유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이라고 말하며 첫째, 전문 무용수의 실상, 둘째, 교류와 협력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강화하기, 셋째, 레퍼토리 기반의 극장과 독립 무용 신 사이를 연결하는 새로운 다리를 건설하기 라는 세 가지 토픽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탄츠 콩그레스의 중심 주제에서는 비단 독일 뿐 아니라 전 세계의 무용계, 나아가서는 개별적 독립체를 다시 연결해야 한다는 목적 의식이 드러난다. 하나의 공동체로서 서로 같거나 다른 문제와 이슈,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는 일들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러한 일들이 어떠한 시너지를 이끌어 낼 수 있는지에 대해 세부화 된 주제가 제안되었고, 구체적인 논의와 실천을 이어갈 수 있는 담화, 워크샵 등이 구성되어 있었다. 그 중 이러한 주제들을 흥미롭게 반영하고 있는 몇 가지 프로그램들이 있어 공유해본다.




ⓒ마인츠 시립극장 비메오




스테파니 아프리파(Stephanie Afrifa)와 펠릭스 베아너(Felix Berner)는 〈커뮤니티와 함께-창작하기(Co-creating with communities)〉라는 제목으로 커뮤니티와의 공동 예술 작업에서 어떤 도전과 기회, 마찰과 잠재성이, 어떠한 맥락에서 발생하는지 묻고 어떤 협업의 형식과 모델, 유토피아가 존재할 수 있는지 질문을 던졌다.

파비안느 빌 (Fabienne Bill)은 ‘무용단 혹은 그룹의 내부로부터 어떻게 발전이 가능한가? 어떻게 개인과 단체의 발전이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기반으로 출발한 〈공동 성장>(Collective Growth) 이라는 제목의 세션을 이끌었다. 세션의 소개에는 “이미 확립되어 있는 방법론을 보존하는 동시에 협업의 새로운 방법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모두에게 개방되어 있어야 하며 수용 가능해야 한다.” 라는 문구가 있었다. 이러한 선언은 본 세션이 단체와 개인 간의 발전 사이에서 소외되는 쪽이 없이 균형적 발전을 이루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이상적인 공동 개발 과정이 어떻게 디자인 될 수 있는지 고민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드러낸다.

탄츠콩그레스의 프로그램 디렉터 호네 도어만(Honne Dohrmann)과 큐레이터 토르센 토이블(Thorsten Teubl)은 〈새로운 우정!? - 독립 신과 문화 기관 (New Friendship!? Independent Scene and Cultural Institutions)〉이라는 세션을 마련했다. 이러한 세션은 밀레니엄 전환기 이후 독일에서 자리잡은 변화들, 즉 레퍼토리를 기반으로 한 극장들이 문을 열고 구조를 변화하는 동시에 독립적으로 활동하던 그룹들이 하나의 새로운 기관으로 변모하는 현상들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분명 협업의 형태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세션에서는 첫째로, 제도화된 기관 그리고 독립 무용 신이 분리된 형태와 방식을 이야기하며 그 문을 여는 방법을 제시하는 동시에, 어떤 도전이 필요하고, 어떤 기회가 있으며, 누가 한계를 정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다룬다. 또한 유럽의 비교적 젊고 새로운 기관과 무용단을 예시로 삼아, 이상적 사례를 탐색하면서 기관은 어떻게 민첩하게 유지될 수 있는지, 동시대의 문제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동시에 예술가, 후원가 그리고 관객에게 안정성을 제공할 수 있는지 탐구하는 세션으로 소개되었다.

필자에게 이 세션의 소개는 특히나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 이유는 과거 한국 무용 신에서 이루어지는 담론들이 대체로 유럽의 담론을 따라가거나 가져오는 형태에서 발전하여 한국에서도 유럽에 뒤쳐지지 않는 그리고 한국에 필수적인 흥미로운 담론들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세션의 주제는 아직 한국에서 적극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았으나 가까운 미래에 한국의 현상을 반영하면서 논의되고 다루어질 만한 주제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한국 무용 신은 크게 독립 무용 신과 기관으로 분리된 형태를 띠고 있다. 그리고 그 큰 두 개의 가지 사이에 교차점, 교류는 거의 부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무용 신에서 이러한 주제를 다룸으로써 한국 무용 신의 지형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새로운 고용 형태와 구조를 상상해보며, 가까운 미래에 실현 가능한 작업 모델을 수립하는 것은 유의미한 일일 것이다.




탄츠 임 어거스트 2022의 매거진 커버




다시 일어서기 Re-Standing

독일의 대표적인 무용 축제인 탄츠 임 아우구스트(Tanz im August)는 페스티벌에서 자체 발행하는 매거진을 통하여 축제에 참가한 예술가들의 다양한 배경과 문화적 다양성을 반영하는 정치적, 사회적, 예술적 비전을 둘러싼 대화를 통해 2022년 축제의 주제 의식을 제시했다.

축제에 참가한 예술가들의 대화를 들여다보면 기후 위기, 불평등의 심화, 극단주의의 부상, 점점 약화되는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우려가 나타난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일관되게 포스트 휴먼 담론으로 도달하면서, 현대무용보다 인간의 재개념화에 대해 다룰 수 있는 곳은 없다고 말한다. 예술가들은 자유는 예술의 전제 조건이자 예술적, 사회적, 정치적 비전이 만나는 곳임을 강조하고, 스스로 문화 노동자(Cultural Workers)로서 예술가의 삶과 자유를 둘러싼 상황에 대한 우려를 드러낸다. 이러한 맥락에서 언급되는 자유의 의미 그리고 ‘예술가의 권리가 곧 인권’이라는 표현의 의미는 곧 스스로를 표현할 자유, 의견을 가질 자유로 읽어낼 수 있을 듯 하다. 즐길 수 있는 견해와 비평적 견해가 검열되고 금지되는 현상들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이를 작업과 담론이라는 실천으로 연결해나가는 예술가들과 페스티벌의 태도에서 용기와 굳은 단결력이 느껴졌다.

또한 탄츠 임 아우구스트는 탄츠 콩그레스와 마찬가지로 다양성, 특히 기관과 독립 예술가 사이의 작업 방식에 대한 새로운 상상을 함께할 것을 제안한다. 축제는 ‘다양성’이 모든 문화예술 기관의 캐치프레이즈로 작동하면서도, 실제로는 다수의 대형 프로덕션에서 다양성이 배제되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때문에 탄츠 임 아우구스트는 12개의 타 축제와 함께 손을 잡고 다년에 걸친 EU 프로젝트를 시작하였으며, 이는 신진 안무가들이 그들의 작업 규모를 확장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러한 고민과 실천 속에서 탄츠 콩그레스나 탄츠 임 아우구스트 외에도 유럽의 무용 신들이 예술이 자유로운 생각의 흐름과 새로운 비전을 제공할 수 있는 장소로 인식하고, 가까운 시간에 도래할 미래에 대한 상상을 ‘함께’ 하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Dock 11 digital”, 덕 엘프 홈페이지. 2022년 12월 30일 접속, https://dock11-berlin.de/en/digital




다시 탐색하기 Re-search

베를린에서 가장 대표적인 무용공간이자 실험공간 중 하나인 덕 엘프(Dock 11)는 독립 무용가들 사이에서는 필연적으로, 어떤 이유로든 방문할 수 밖에 없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러한 덕 엘프가 펜데믹을 겪으며 디지털 공간으로의 이동을 감행했다. 이러한 시도는 덕 엘프가 디지털 기반의 프로젝트들과 디지털 장비에 대한 지원금 수혜를 받으며 ‘덕 디지털’(Dock Digital)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다. 덕 디지털은 디지털 전문가와 기술적 시도에 관심있는 예술가들을 연결하는 연구소를 조직하고, 기술적인 노하우들을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그리고 덕 디지털의 목표는 영구적으로 재정적 도움을 받아, 가능한 많은 예술가들에게 디지털 자원에 접근 권한을 제공하는 공간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덕 디지털은 VR 조각만들기 (VR Sculpting), 페이셜 모캡 (Facial Mocap), 움직임 연구와 기술에서의 모션 캡처, 인터렉티브 AR 루프 머신 (Interative AR Loop Machine) 등의 워크샵을 제공하는데, 짧게는 1시간부터 길게는 4일까지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워크샵에서는 각 기술의 개념을 설명하는 것부터, 디지털 프로그램을 이해하고 이러한 기술들을 통해 예술가들이 영감을 받고 작업으로 구현하도록 돕는다.

코로나 유행 초기 독일의 무용 신에는 디지털 공간, 디지털 기술의 유입에 대해 유독 부정적인 시선이 전반을 이루었다. 극장이 완전히 문을 걸어 잠근 셧다운 기간 동안 독일의 예술가들은 공연을 할 수 없었지만 영상으로 대체되는 공연, 온라인으로 공간을 옮기는 공연들에 대해서 회의적인 목소리를 내고 실질적인 예술 활동을 멈추었다. 그러나 포스트 펜데믹이 시작되며 독일의 무용계 역시 디지털 무대의 필요성과 역할에 대해 인식하고 있는 듯하고, 기술을 통해 구현될 수 있는 새로운 잠재성을 용기내어 탐색하기 시작한 듯 보인다.

독일의 변화는 한국보다 조심스럽고 더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단순히 기술과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하는 작업을 위한 지원금을 무분별하게 쏟아내는 것에도 역시 단점이 존재한다. 준비가 되지 않은 예술가들에게 무분별한 협업과 작업을 재촉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매체와 조우하고 친숙해질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고, 예술가들이 그것들을 자신의 도구이자 새로운 영감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실질적이고 실천적인 제도적 지원이 뒷받침 되어야 하지 않을까.

정다슬

독일 함부르크와 한국 서울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인간의 성질과 개인이 지니는 가치를 주재료로 하는 작업을 추구하고, 안무의 개념과 가능성을 넓히는 데에 관심을 두고 타장르와의 협업도 지속하는 중이다. 춤웹진에 2013년부터 비정기적으로 글을 게재하고 있다. ​

2023. 1.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