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해외현지취재 노르웨이(1) 베르겐 ICE WET
메이저 댄스 플랫폼과 연계한 미니 춤 축제
장광열_춤비평가

자국의 춤 상품을 알리고 국제 춤 관계자들과의 네트워킹을 확장하려는, 유럽 여러 나라의 댄스 플랫폼(Dance Platform)들은 대부분 짝수 연도에 열린다.

2019년 코로나 바이러스 발발로 인해 2022년에는 축소되거나 비대면 프로그램으로 운용되었던 유럽의 댄스 플랫폼들은 코로나 팬데믹 종식 이후인 2024년 올해 대부분 다시 정상적으로 재개되었다.

그동안의 공백기 때문이었던지 2월에 필자가 참가했던 두 개의 댄스 플랫폼인 ICE HOT(노르웨이)과 Tanzplattform(독일)에는 예년에 비해 훨씬 많은 게스트들과 아티스트들이 참가했고, 더 많은 프로그램들이 운용되었다.

여기에 더해 두 댄스 플랫폼들은 효율적인 운영을 통해 성과를 극대화시키려는 듯 세밀하고 다양한 운영 시스템을 가동했다. 돈을 더 들여서라도, 인력을 더 운용해서라도, 프로그램의 효율성을 높이고 이를 통해 사업의 성과를 극대화하려는 주최 측의 의지들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특히 올해는 2월에 댄스 플랫폼을 개최하는 몇 개 나라들이 개최 시기를 조율해 더 많은 국제 게스트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일종의 연합전선을 펼쳤고, 미니 페스티벌을 포함 3개의 플랫폼에 참여한 필자는 같은 게스트들을 여러 도시에서 또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3개국의 춤을 소개한 세 번째 Baltic Dance Platform이 2월 9일부터 11일까지 라트비아의 수도인 리가(Riga)에서, ICE WET이 2월 10일부터 13일까지 노르웨이의 베르겐(Bergen)에서, ICE HOT이 2월 14일부터 17일까지 노르웨이의 수도인 오슬로(Oslo)에서 열렸다. 독일의 Tanzplattform은 2월 22일부터 25일까지 프라이부르그(Freiburg)에서, 스위스의 Swiss Dance Day는 2월 28일부터 3월 2일까지 취리히(Zurich)에서 연속해 열렸다.


노르웨이 서쪽 지역의 무용을 집중 소개한 미니 댄스 축제

노르웨이 제2의 도시 베르겐(Bergen)에서 열린 ICE WET(2월 10일~13일)은 노르웨이 웨스트 지역인 Vestland 주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무용가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네트워킹 확장을 위해 올해 처음 개최된 것으로 북유럽 5개국의 댄스플랫폼인 ICE HOT과 연계해 치러졌다. 베르겐은 Vestland 주의 주도이다.



  

노르웨이 제2의 도시인 베르겐은 노르웨이 웨스트 지역인 Vestland의 주도이다. ⓒ장광열



  

노르웨이 국립 현대무용단인 CARTE BLANCHE의 스튜디오. 블랙 박스 씨어터로도 활용 가능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장광열



로비에서 공연을 기다리고 있는 관객들 ⓒ장광열



개인 무용가와 단체 등을 합쳐 4일 동안에 걸쳐 모두 31개의 작업들이 소개된 ICE WET은 댄스 플랫폼이라고 하기 보다는 작은 규모의 페스티벌에 가까웠다. 주최 측은 해외에서 온 게스트들에게는 숙소와 교통편을 제공했고, 축제가 끝난 다음 날에는 ICE HOT의 개막 공연 시간에 맞추어 오슬로까지 7시간이 소요되는 열차 티켓을 제공하는 등 ICE HOT에 참가하는 게스트들을 베르겐으로 오도록 하는 데 공을 들였다.



  

베르겐의 공연예술 극장인 BIT Teatergarasjen 외관과 USF 극장 안 ⓒ장광열



  

베스트랜드 주의 무용진흥센터 역할을 하고 있는 베르겐 댄스 센터 안 스튜디오와 로비 ⓒ장광열



    

(왼쪽부터)행사를 총괄한 베르겐 댄스 센터 감독인 Liv Basberg. 노르웨이 국립 현대무용단 까르뜨 발랑쉬의 예술감독인 Annabelle Bonnery. 해외 게스트들과의 소통을 포함 프로그램 디렉터 역할을 맡았던 베르겐 공연예술 극장의 Ingrid Ellestad. ICE WET은 노르웨이의 국립 현대무용단과 베르겐 댄스 센터, 베르겐의 공연예술 극장이 긴밀하게 협력해 운영되었다. ⓒ장광열



ICE WET은 노르웨이의 국립 현대무용단인 까르뜨 블랑쉬(Carte Blanche)와 베스트랜드(Vestland)의 무용 진흥 센터인 베르겐 댄스 센터(Bergen Dance Center), 베르겐의 공연예술 극장인 BIT Teatergarasjen가 긴밀하게 협력해 프로그래밍과 조직, 운영을 맡고 있었다.

행사를 총괄한 베르겐 댄스 센터 감독인 Liv Basberg는 개막 직전 인사말에서 “오래 동안 베르겐 댄스센터는 노르웨이 서쪽지역에서 활동하는 무용가들을 지원하고 그들의 창작활동을 독려했다. ICE WET은 베르겐과 Vestland 지역 무용가들의 작업을 소개하는 장이다. 아이스 웻은 단순히 완성된 작품을 선보이는 것이 아니다. 생각과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공유하여 전문적인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데 중점을 둘 것이다. 일부 행사는 주로 전문가를 대상으로 하는 반면 다른 행사는 대중의 관심을 끌 것이다. 우리는 서구의 맥박을 매핑하기 위해 다양한 형식과 표현을 제시하고자 한다”라며 개최배경을 설명했다.

전문 공연장에서 완성된 작품들과 개별 주제를 세분해 집중적으로 논의하는 세미나 프로그램이 배열되는 댄스 플랫폼과 달리 실제로 ICE WET은 훨씬 더 자유로운 형식으로 소박하게 운영되었다. full-length 작품 공연 외에도 work process 공연, 피칭 세션을 통한 아티스트의 작업 소개, 스튜디오에서의 쇼케이스 및 네트워킹을 위한 부대 프로그램 등이 펼쳐졌다.

해외 게스트들과 시작 전부터 소통했던 Ingrid Ellestad(Interim Artistic Director)는 “ICE WET은 노르웨이 서쪽 지역 무용가들의 작업을 국제 춤 시장에 소개하고 지역 무용가들끼리는 물론이고 국제적인 무용 인사들과의 네트워킹을 확대하고 이 지역 무용가들의 작업을 국제적으로 소개하기 위해 마련했다. Ice Wet은 더 많은 교류, 더 큰 근접성을 확보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특히 해외 게스트들에게 Ice Wet은 서부 노르웨이의 댄스 필드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올해 처음 열린 ICE WET에는 다른 나라와 노르웨이의 타 지역에서 온 30여 명의 게스트와 지역 무용가들, 큐레이터 등 100여 명이 지속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부대행사로 마련한 야외 사우나 체험과 트레킹 프로그램은 도시의 특성을 활용한 네트워킹 확장을 위한 유용한 프로그램이었다.

공연은 Carte Blanche가 메인으로 사용하는, 소극장 공연이 가능한 Studio Bergen과 Bergen Dansesenter가 전용으로 사용하는 Studio Kaien, BIT Teatergarasjen의 블랙 박스 극장인 Studio USF에서 열렸다.

3개의 공간이 모두 가까이 붙어 있어 30개가 넘는 공연과 쇼케이스, 피칭 세션이 유연하게 진행되었다. 이로 인해 게스트들은 오전부터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다른 댄스 플랫폼과는 달리 훨씬 여유롭게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었다.

ICE WET에서 만난 아티스트들의 작업은 융복합, 즉흥, 다문화, 장소특정, 아카이브를 활용한 작업, 씨어터 댄스, 동물과 함께 하는 공연 등 무척 다채로웠다. 전문 공연장에서의 full-length 작품을 많이 볼 수 없었던 것은 아쉬웠지만 work process 공연, 쇼케이스, 피칭 세션을 통해 만난 그들의 작업은 많은 수의 아티스트들이 참여한 만큼 소재나 표현방식, 작품을 풀어내는 아이디어 등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이 적지 않았다.

노르웨이 국립 현대무용단인 Carte Blanche는 ICE WET과 ICE HOT 모두에서 서로 다른 작품을 공연했는데 확연하게 다른 콘셉트로 단체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2월 13일 Studio Bergen에서 오픈 리허설 형태로 공연한 〈But Then, We’ll Disappear(I’d Prefer Not to)〉는 이동하는 스탠드 조명기기, 스탠딩 마이크, 소파 등이 오브제로 사용되면서 60분 동안 10명이 넘는 댄서들의 즉흥적인 움직임이 무대를 가득 채웠다. 댄서들마다 춤의 질감에서 차별성이 드러났고, 컨택 즉흥을 통해 이어지는 움직임의 연결성, 공간의 활용, 변화무쌍한 템포 조율 등 즉흥 공연에서 볼 수 있는 특유의 매력을 한껏 음미할 수 있었다.

Carte Blanche 예술감독인 Annabelle Bonnery는 “컴퍼니 단원들은 14명으로 모두 상주 무용수들로 이루어져 있다. 노르웨이 정부는 지역 간의 균형 발전을 위해 노르웨이 국립발레단은 오슬로에, 노르웨이 국립현대무용단은 베르겐에 베이스를 두도록 했다. 객원 안무가들을 활용해 지속적으로 새로운 작품을 창작하고 있고, 해외 공연도 시행하고 있다. 우리는 다른 유형의 작품들을 보유하고 있는데 며칠 후 ICE HOT 공연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노르웨이 국립 현대무용단 Carte Blanche 의 오픈 리허설. 즉흥에 기반 60분 동안 펼쳐졌다. 댄서들 마다 춤의 질감에서 차별성이 드러났고, 컨택 즉흥을 통해 이어지는 움직임의 연결성, 공간의 활용, 변화무쌍한 템포 조율 등 즉흥 공연에서 볼 수 있는 특유의 매력을 한껏 음미할 수 있었다.



오프닝 공연으로 선보인 90분 동안 이어진 full-length 작품 〈Donkey(iteration II)〉. 설치미술을 중심으로 퍼포머들의 공연이 결합되고, 관객들은 퍼포머들의 동선을 따라 이동하며 공연을 본다. 조명과 스모그, 다양하게 변주되는 음악 등 비주얼과 청각적인 효과 등이 버무려진 실험적인 다원예술 작업이었다.



Yohei Hamada(사진) & Olga Regitze의 work in progress 공연



 

Shelmith Oseth는 노르웨이로 건너 온 이민자이다. 기타 라이브 연주에 함께 선보인 그의 솔로춤 〈Wakati〉는 다문화인으로서의 기대와 한계를 몸으로 담아낸, 말과 몸짓으로 표현된 한 편의 춤의 시 감았다. ‘wakati’는 스와힐리어로 시간을 의미한다.



 

Cesilie Kverneland 〈ADHD-dansen〉. Dance and Presentation으로 진행되었으며, 동물이 등장 함께 춤춘다.



Nicola Gunn의 work in progress 공연 〈Chechov Project-Studies in Waiting〉. 안톤 체호프의 희곡 '세 자매'를 재해석한 공연으로 두 명의 퍼포머가 희극과 비극을 끊임없이 오가며 기다림의 심리적 상태를 표출한다.



Solveig Styve Holte는 노르웨이 최초의 전문 무용단인 Høvik Ballet의 아카이브에서 찾은 〈Fra form til Famling〉 공연에서 발췌한 20분 분량의 작품을 통해 자신의 예술성을 드러내 보였다. ⓒAndreas Langenes



오프닝 공연으로 선보인 90분 동안 이어진 full-length 작품인 〈Donkey(iteration II)〉는 설치미술을 중심으로 퍼포머들의 공연이 결합되고, 관객들은 퍼포머들의 동선을 따라 이동하며 공연을 본다. 조명과 스모그, 다양하게 변주되는 음악 등 비주얼과 청각적인 효과 등이 버무려진 실험적인 다원예술 작업이었다.

ICE WET에서 만난 몇몇 아티스트들은 개성적인 움직임과 매우 독창적인 콘셉트로 눈길을 끌었다. 노르웨이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무용가들 중에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 싱가포르, 태국 등 아시아 쪽 무용가들도 있었다. 의상을 전공하다 무용가의 길로 유턴했다는 이상훈은 노르웨이 무용학교에서 춤을 수학한 후 이 지역을 거점으로 독립 안무가로 활동하고 있었다.

마지막 공연을 장식한 셸미스 오세스(Shelmith Oseth)는 노르웨이로 건너 온 이민자이다. 기타 라이브 연주에 함께 선보인 그의 솔로춤 〈Wakati〉는 다문화인으로서의 기대와 한계를 몸으로 담아낸, 말과 몸짓으로 표현된 한 편의 춤의 시 같았다. ‘wakati’는 스와힐리어로 시간을 의미한다.

베르겐을 중심으로 한 노르웨이 서쪽 지역의 무용계는 극장과 스튜디오를 갖춘 베르겐댄스센터를 중심으로 창작과 교육, 유통을 매우 효율적으로 실행하고 있었다. 베르겐 댄스센터는 전문 무용수들을 위해 기획공연뿐 아니라 스튜디오를 제공하고 있었고, 어린이 청소년 성인들을 위한 다양한 무용 교육 프로그램과 무용 축제 등을 주립 공연예술 극장과의 협력을 통해 효과적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무용 전용극장은 차치하고 무용센터 하나 없는, 구호만 요란하게 남발되는, 대한민국의 문화예술 정책 운용과 확연히 비교되었다.

BIT Teatergarasjen, Carte Blanche 및 Bergen Dansesenter가 여러 프로젝트에서 정기적으로 협력하고 있는 것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극장과 무용단체, 그리고 무용센터가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창작 작업과 공연, 그리고 교육 프로그램을 시민들에게 제공하고 있었다.

무엇이든 새로운 것을 처음 시작하는 것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올해 첫발을 내디딘 ICE WET은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미래를 위한 중요한 연결을 만들 수 있는 독특한 기회가 될 것이다“라는 west 노르웨이 무용가들의 바람을 현실로 만들었다.

장광열

1984년 이래 공연예술전문지 월간 〈객석〉 기자와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1995년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를 설립 〈Kore-A-Moves〉 〈서울 제주국제즉흥춤축제〉 〈한국을빛내는해외무용스타초청공연〉 등 국제교류 프로그램을 정례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정책평가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국제교류 위원, 호암상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춤비평가, 한국춤정책연구소장으로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2024. 3.
사진제공_장광열, 2024 ICE WET/Andreas Langenes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