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현대무용단 김성용 〈KAYA-Unspeakable〉 & 노정식 〈상처〉
‘작품’ 속에서, 더 발화되지 못한 ‘몸’
장광열_춤비평가

 한국의 춤 제작환경이 컨템포러리 댄스가 가장 핫한 유럽의 그것과 가장 다른 점은 안무가들의 수평이동의 부재이다. 유럽의 경우 직업무용단은 물론이고 프로젝트 체제로 운영되는 무용단에서도 객원 안무가들과의 작업은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
 그러나 정작 우리나라의 경우는 무용단 운영에서 외부 안무가들에게 문호를 개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인색하다’는 수준을 넘어 아예 ‘금기시 한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정도로 닫혀있다.
 그런 점에서 국립현대무용단의 ‘발화하는 몸’ (11월 14-16일 CJ토월극장, 평자 16일 공연관람)은 공공 직업무용단인 국립현대무용단이 객원 안무가들을 초청, 신작을 선보이는 기획공연이란 점에서, 외국의 안무가가 아닌, 국내 안무가들에게 문호를 개방했다는 점에서, 또한 6개월 동안의 레지던시 작업을 통한 창작작업이란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이같은 시도는 또 공공 직업무용단으로서 국립현대무용단이 만들어 가는 창작 시스템의 자리잡기 과정이란 점에서도 눈여겨 볼만했다.




 레지던시 과정에서 국립현대무용단이 안무가들에게 제안한 ‘발화하는 몸’이란 화두는 ‘몸을 통한 컨템포리댄스 작업’이란 측면에서 보면 분명 흥미로운 도전이 될 수 있었다.
 선정된 두 명의 안무가들은 ‘발화하는 몸’으로 춤 작품에 접근하는데 있어 김성용은 ‘정신이 깃든 신체에 대한 집중탐구’를 표방하면서 동양적인 시선으로, 노정식은 상처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통한 사회 문화적 관계 속에서 접점을 찾으려 하면서 각각 차별성을 보였다.
 〈KAYA-Unspeakable〉에서 안무가 김성용은 작품을 통해 ‘몸의, 몸에 의한, 몸을 위한 탐색’을 표방했다. 다소 제의적인 분위기가 언듯언듯 보이는 가운데 안무가는 무용수들의 몸을 작품의 마지막까지 느리게 조율했다. 검은색 레오타드를 입은 균형 잡힌 댄서들에 의해 절묘한 움직임들이 만들어지고 그 과정에서 몸과 몸이 만들어 내는 조형적인 아름다움, 형(形)과 형(形)이 만나 만들어내는 구성의 조화는 절제와 균형을 보여준다. 그리고 간간이 무용수들의 몸에 투사되는 영상(David Moreau)은 신체에 각인된 문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몸에 힘을 주어 형을 만드는 것에 익숙한 무대 위의 몸들은, 허공을 가르는 연기와 같은, 부드러운 질감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마치 고급 레스토랑에서 멋지게 치장한 요리를 대하는 느낌이었다. 요리의 색깔, 형태, 질감, 향은 나무랄 데가 없었으나 우주의 생동하는 기와 같은 오묘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무대 위에는 그저 인간의 노력에 의하여 만들어진 인공적인 아름다움이 있었을 뿐이다.
 무대에서 전해지는 느낌은 원시적 소리와 신비로운 우주의 기와는 상당히 다른 개념으로 각인된다. 몸에 힘을 주고 형을 만들면 만들수록 연기와 같은 기는 몸과의 조화를 포기했다.
 어느 순간, 무용수들은 양 손을 가슴에 두고 몸 안의 에너지를 공간에 투사하려는 몸짓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것은 짧은 순간이었고 가장 ‘몸’에 집중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장면은 발전되지 못하고 이내 사라져버렸다.
 무용수들의 집중력, 명상적인 때로는 감각적으로 청각을 자극하는 선곡된 음악은 정신과 몸의 합일에 일조하나 안무자가 추구한 ‘정신이 깃든 신체에 대한 집중적 탐구’의 밀도에는 미치지 못했다.




 <상처>에서 노정식은 '몸'의 발화를 ‘형’ (形)으로 이해한 듯 했으나 정작 안무가의 작품에서 느끼는 중요한 소스는 따로 있었다. 바로 시간성이다. 안무자에 의해 조율된 멈추어 있는 시간과 움직이는 시간의 절묘한 조화는 예사롭지 않았다.
 '시간‘에 대한 감각은 가장 본능적인 것이다. 본능은 결국 몸과 가장 깊숙이 관계하고 있으니 애써 ‘동양적임’을 외치지 않아도 이미 안무가는 내면과 연결이 되어있는 감성적인 무용가로서의 감각을 보여준다.
 무대 공간의 상단을 종횡으로 가로 지른 직시각형의 무대미술과 그곳에 투사되는 영상은 앞에 공연된 김성용의 작품과는 다소 다른, 무용수들의 꽤 구체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움직임을 통한 현실의 모습과 묘하게 배치된다. 그러나 관객들이 움직임과 무대미술과의 조합을 통해 안무자가 의도한 현실 이면의 ‘자연‘으로 연계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안무가에 의해 조합된 움직임은, 컨템포러리 춤에서 자주 보여지는 관절의 분절을 통한 움직임 만들기, 힘이 빠진 여자를 남자가 다양한 방법으로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어가는 방법 등 이미 너무 많은 안무가들에 의해 유행처럼 번지는 패턴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안무가 모두 상당한 에너지를 무대 위에 쏟아냈으나 새로운 움직임의 조합이나 작품을 풀어내는 아이디어, 음악 의상 조명 영상 등과의 협업 등에서 기대한 만큼의 완성도 있는 작업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간헐적으로 개개 댄서들의 춤의 질, 몸성(性)을 표출하고자 하는 시도 등도 엿보였으나 컨템포러리댄스로서 30분 길이의 작품 안에 담아낼 수 있는 이미지, 댄서들의 움직임, 그리고 비주얼 이미지와 음악과 춤의 넘나듦을 통한 극장예술 작품으로서의 감흥은 상대적으로 미미했다.




 국립현대무용단이 올해 내건 ‘역사와 기억’은 한국의 컨템포러리 무용사에서 중요한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작업이다. 한국의 컨템포러리 댄스를 리드하는 기수로서 국립현대무용단의 역할은 중요하다. 무절제하게 외국의 안무가를 수입하기보다 창의적이고 독특한 한국의 젊은 안무가를 발굴하여 창작의 기회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레퍼토리로 확보해 나가는 것 역시 공공 직업무용단으로서 국립현대무용단이 추구해야하는 것들이다. 그런 점에서 레지던시를 통한 객원 안무 시스템 정착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시행되어야 한다.

2014. 12.
사진제공_국립현대무용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