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SPAF(2) 춤, 현장: 국내공연 조형준 김동규 김재승 정현진
동시대 인간에 대한 치열한 고민
장혜선_전 월간 <객석> 기자
 올해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이하 스파프)를 관통하는 주제는 ‘과거에서 묻다’이다. 오늘 날,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는 소통을 단절한 채 서로 다른 깃발을 들고 불화한다. 이번 축제는 이러한 현대인의 해결점을 지나간 시간에서 찾아보자는 의도로 펼쳐졌다.
 스파프 측은 이번 참가작들을 “역사에 대한 반추를 통해 인간성 회복을 탐구하는 작품들로 구성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국내선정 무용작품들은 대부분 ‘과거’보다는 ‘현재’를 응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규칙에 갇힌 세상, 뭎 〈데카당스시스템〉

 데카당스(Décadence)는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부터 시작된 퇴폐주의를 가리킨다. 유미주의자들은 조화를 중시하는 미의식을 거부하고, 퇴폐적 문화에서 새로운 미의 기준을 수립했다. 뭎은 이러한 데카당스를 현대의 풍조에 맞춰 재해석했다. 인간을 퇴폐적으로 만든 건 바로 문명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규칙을 내세워서 자연스러운 본질을 억압했다.
 뭎의 〈데카당스시스템〉 공연은 9월 21-23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있었다. 뭎은 안무가 조형준과 건축가 손민선이 결성한 단체다. 안무가와 건축가의 만남은 그리 낯설지 않다. 그동안 다양한 예술가들이 움직임과 공간의 만남을 시도해왔다. 예컨대, 2015년 내한한 로사스무용단 〈드러밍〉에서도 스티브 라이히 음악에 맞춰 열두 명의 무용수들이 정사각형 반복 배열을 따라 무대를 종횡무진 누볐다. 




 〈데카당스시스템〉에서도 무용수들은 규칙적이고 기하학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형광색의 편한 복장을 입은 무용수들은 네 개의 정사각형 바닥을 일정한 배율로 늘려 나갔다. 무대는 마치 하나의 건설 현장 같았다. 바닥을 빗자루로 쓸기도 하고, 정사각형 틈새를 흰색 테이프로 꼭꼭 막기도 했다. 그러다 멈칫…. 에러가 걸린 듯 모든 이들은 잠시 동안 동작을 멈췄다.
 영상의 도움으로 무대 위에는 일정한 배열의 점이 생겼다. 이 점은 일종의 좌표 역할을 했다. 네 명의 무용수는 점을 밟으며 움직임을 확장해 나갔다.
 조형준은 이번 작업을 두고 “건축에서 자주 사용되는 패턴을 공간 구성에 활용하면서 그 패턴을 기록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안무가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건축이 들어오니 다른 방식도 안무로 표현할 수 있어서 재밌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공연의 핵심은 미디어 맵핑(Mapping)이다. 맵핑이란 물체의 표면에 그림을 입혀주는 작업을 일컫는다. 하얀 바닥에 영사되는 미디어 맵핑은 한정된 공간을 가상의 공간까지 확장시켜 줬다. 갇혀있던 움직임은 여러 영상과 조명을 거치면서 분열되어 갔다. 영상은 서광은과 박성수가 맡았고, 음악은 정혜민이 담당했다. 흥미롭게도 이 모든 매체가 라이브를 고수했다.
 무용수들이 즉흥적으로 패턴을 만들면, 영상과 사운드도 즉각 반응을 주고받으며 라이브 공연을 펼쳤다. 막바지에 다다르자, 2차원이었던 무대 바닥은 무용수들의 궤적에 따라 3차원의 공간으로 변모했다. 평평한 면이었던 무대가 하나의 방으로 바뀌면서 공연은 끝났다.
 수학적인 사고와 건축 패턴에 대한 지식이 필요한 공연이었지만, 이들이 새로 정의한 데카당스를 유추하는 즐거움이 가득했다. 패턴을 이용한 단순반복적인 움직임은 금기에 갇힌 세상을 상징하고, 이것이 흩어져야 인간은 능동적일 수 있다. 신체와 공간, 영상과 음악은 각각의 한계를 뛰어 넘어 조화를 이뤘다. 무엇보다 시간과 순간에 반응하며 극장의 현장성을 오롯이 담은 공연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은 열렬하고도 긴 박수를 보냈다. 

 

 



 개성을 잃어버린 세상, LDP 〈Look Look V2〉

 LDP의 〈Look Look V2〉는 10월 10-11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되었다. LDP 대표 김동규의 안무작이다. 이 작품은 지난 3월, 〈Look Look〉이란 제목으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초연했다. 당시에는 45분 길이였는데, 이번에는 60분으로 확장했다.
 이에 대해 김동규는 “그때는 버렸던 장면들도 많고 놓치고 지나갔던 장면도 많았다. 영국 안무가 작품을 포함해 두 작품을 올렸기 때문에 작품별로 집중하기 보다는 전체적인 느낌을 살려야 했다. 그래서 보여주고 싶은 모든 부분을 다 보이지 못했는데, 이번 스파프에서는 좀 더 폭넓게 작품을 보일 수 있어 재미있게 작업하고 있다”고 밝혔다. 

 


 LDP는 방송 출연의 영향으로 관객층이 두터운 편이다. 이번 공연에도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이 모였다. 특히 교복을 입은 10대 관객이 유독 많았다.
 공연시작 전, 얼굴에 망을 쓴 무용수들은 객석을 자유롭게 활보하며 춤을 췄다. 관객과 무용수가 교감하는 시간이었다. 무용수 대여섯 명은 관객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기도 하고, 함께 ‘셀카’를 찍기도 했다. 무용수들은 관객 뒤에서 갑작스럽게 등장해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교복 입은 학생들은 이러한 장난을 보며 까르륵 웃음을 터뜨렸다. 

 


 공연시간이 임박하자, 객석을 누비던 무용수들은 하나 둘 무대로 걸어갔다. 성큼성큼 올라가는 뒷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묵직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무대 위는 알록달록한 옷이 뒤죽박죽 널브러져 있고, 천장에는 수십 개의 옷들이 동아줄처럼 매달려 있었다. 무용수들은 튀는 색의 의상을 위아래로 맞춰 입고 얼굴을 망으로 가렸다. 본모습을 감추고 겉모습에만 치장하는 인간의 단면을 담아내려는 시도였다. 가식과 허위에 익숙해져 개성을 잃어버린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했다.
 무용수들은 어딘가 불편한 듯 절규하다가 몸을 비틀며 소리치기도 했다. 움직임은 지속적으로 ‘긴장-이완’을 반복하다가 끝이 다가올수록 격해졌다. 공연 후반부에는 LDP의 트레이드마크인 군무가 펼쳐졌다. 어딘가로 도피하고 싶지만 애써 절제하려는 몸짓이었다. 공연이 끝나자 무용수들은 얼굴을 가리고 있던 망을 벗어 던졌다. 얼굴을 드러낸 무용수들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관객과 눈을 맞췄다. 무거한 분위기였다. 조심스럽게 박수가 터져 나왔다. 공연이 끝나고도 엄숙한 분위는 오래도록 지속됐다. 

 

 



 벗어나고 싶은 세상, 마홀라컴퍼니 〈모래의 여자〉 & 컴퍼니J 〈언더스탠드〉

 지난해 스파프는 다크서클즈컨템포러리댄스의 〈노련한 사람들〉, 댄스프로젝트뽑끼의 〈75분의 1초〉, 나인티나인아트컴퍼니의 〈심연(深淵)〉을 한 무대에 올렸다. 세 개의 작품이 오르는 트리플 빌은 발레와 현대무용, 한국무용을 한 번에 감상하자는 의도였다.
 올해는 마홀라컴퍼니 〈모래의 여자〉와 컴퍼니J 〈언더스탠드〉를 더블 빌로 선보였다. 모두 스파프 초연작이다. 공연은 10월 14-15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1부와 2부로 나눠서 펼쳐졌다. 

 


 〈모래의 여자〉는 김재승이 안무하고, 임선경이 각색·연출을 맡았다. 이 작품은 일본 작가인 아베 코보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원작 배경은 사막이라는 환상적인 공간이다.
 주인공 준페이는 사막에 사는 신종 곤충을 채집해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남기고자 한다. 하지만 모래에 빨려 들어가 그의 이름은 세상에서 완전히 소멸되고 만다. 모래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지 존재를 유지할 수 있는 곳. 준페이는 낯선 여자의 집에 머물려 끊임없이 탈출을 꿈꾸지만, 이내 모래구멍의 안과 밖이 별 차이가 없다고 인지한다. 자유와 구속, 인간과 자연, 자아와 타자를 구분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무대에서 준페이는 대사를 던지며 연기했고, 다른 출연진들은 움직임과 눈빛으로 공연을 이끌었다. 배우와 무용수가 한 호흡으로 빚어내는 앙상블은, 나와 너를 분리하는 우리의 사고를 되돌아보게끔 했다. 새로운 해석보다는 원작의 충실한 재현이 돋보이기도 했다. 원작이 주는 힘이 어마어마해서 서사에 관해서는 시비를 가릴 필요가 없다. 다만 원작의 주제를 포착하되 동시대의 감각으로 재구성했으면 어땠을까.
 준페이는 탐험가 복장을 입고 연기했다. 모래의 여자는 오묘한 분위기를 풍겼고, 사막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전통적인 원주민의 형태로 그려졌다. 거칠고 원초적이었다. 원작을 뛰어넘는 신비로움은 발견하기 힘들었다.




 20분의 인터미션이 끝난 후, 컴퍼니 J의 〈언더스탠드〉가 이어졌다. 공연 시작 전부터 바이올린 소리가 무대커튼을 뚫고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막이 올라가자 테이프로 공간을 분리해놓은 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데크(deck), 보이드(void), 룸(room), 엔트런스(entrance)로 나눈 것을 보니 무대는 하나의 집을 상징하는 듯 했다. 마치 큰 설계도 같았다. 한 남자는 테이프로 입체적인 건물들을 그리기 시작하고, 바이올리니스트는 한쪽에서 불협의 화음을 쌓아갔다. 무용수들은 바이올린 소리에 맞춰 손과 발을 사용하며 움직임을 이어갔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울증과 조울증, 강박증 같은 기분장애다. 이들은 이러한 원인이 가족과 집에서부터 기인한다고 바라본다. 그에 대한 해결책은 ‘이해’다. 제목인 ‘이해(understand)’는 ‘언더(under)’와 ‘스탠드(stand)’가 합쳐진 단어로, ‘상대방의 아래에 있으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다.
 무용과 미술, 음악은 한 공간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주제를 해석하고 소통했다. 무용수들은 인간의 정서를 묘사하고, 미술가는 한쪽 벽면에 테이프로 집을 그렸다. 이들의 불화를 의미하듯 바이올리니스트는 불협화음을 발현했다. 춤과 설치미술, 바이올린 소리가 무대에 동시에 노출되어 마치 세 가지 퍼포먼스를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필자는 10월 14일 토요일 3시 공연을 관람했다. 이날은 5시부터 소극장에서 프랑스 떼아트르 드 랑트루베르의 얼음인형극 ‘애니웨어’가 공연될 예정이었다. 더블 빌 무대를 관람한 몇몇의 관객은 공연이 끝나자마자 빠른 속도로 소극장으로 뛰어 내려갔다. 인터미션 때도 여러 관객이 공연장 안내원에게 공연 종료 시간을 재차 확인했다.
 주말에는 한 관객이 몇 개의 공연을 관람하기도 한다. 스파프 측은 이 점을 간과한 듯하다. 화장실을 들릴 여유도 없이 아래층으로 뛰어가는 관객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다음부터는 조금 더 면밀히 공연 시간을 배치하길 바래본다.
 10월, 스파프의 공연들은 다채로웠다. 누군가에게는 생각을, 누군가에게는 이해를, 누군가에게는 의아함을 남겼을 것이다. 과거를 기억해야지 현재를 직시할 수 있고, 현재를 사유해야지 과거를 되찾을 수 있다. 그렇기에 동시대 인간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깃든 공연들이 반가웠다. 
장혜선
공연예술전문지 월간 〈객석〉에서 클래식 음악과 무용담당기자로 일했다. 현재 세종문화회관에서 발간하는 〈문화공간175〉의 객원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바른 시선으로 무대를 영원히 기록하는 사람이 되고자 부단히 글을 쓴다.
2017. 11.
사진제공_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2017)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