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비엔나국립발레단에 새로운 둥지 튼 발레리나 강효정
또 다른 성장을 위한 쉽지 않은 결단
장광열_춤비평가

발레리나 강효정은 2021년 12월 존 크랑코 안무의 〈오네긴〉 공연으로 정신없이 바쁜 일정을 보냈다. 그러나 그녀가 춤춘 타티아나를 볼 수 있었던 관객은 이전과는 달리 독일이 아닌 오스트리아 국민들이었다. 강효정은 2021년 9월1일부터 비엔나국립발레단(WIENER STAATSBALLETT)의 수석 무용수로 새로운 시즌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서 비엔나국립발레단으로 새로운 둥지를 튼 강효정을 줌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발레리나 강효정

 

 

장광열: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을 대표하는 무용수로 활동 중이었는데, 비엔나국립발레단으로 옮기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강효정: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 있은 지 오래됐고, 단장님과 부단장님, 그리고 무용수들까지 다들 너무 가족같이 지냈는데 다른 발레단으로 옮기는 것을 결정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어요. 코로나가 시작되기 바로 직전인 2020년 1월에 지금 빈 국립발레단의 단장님이신 마틴 슐랩퍼(Martin Schläpfer)가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으로 〈Taiyo to Tsuki〉의 안무를 하러 오셨어요. 그때 처음 작업을 해봤는데 리허설 때부터 너무 느낌이 좋았어요. 지금까지 많은 안무가들과 작업을 했었는데, 전혀 다른 느낌이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달랐나요?  

댄서들에게 자기만의 스타일, 자기만의 방법, 자기만의 공간을 내어 주셨어요. 첫 리허설 때부터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저한테 주고 제가 그것을 제 스타일대로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찾을 수 있는 시간을 주셨어요. 근데 그게 첫 리허설 때부터 쉽지가 않거든요. 왜냐하면 제가 어떤 무용수인지 잘 모르시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공간을 주고 믿음을 주고 서포트를 해주는 게 쉽지 않은데, 저는 좀 놀라웠어요. 대부분의 안무가들은 자기가 원하는 게 분명히 있고 그걸 무용수들한테 주문하는데 마틴과 작업할 때는 전혀 그렇지가 않은 거예요. 그래서 처음에는 적응이 안 돼서 이게 뭐지 했는데, 리허설을 하면 할수록 예술가로서 존중받는 느낌이 들었고, 저도 몰랐던 저의 장점을 새롭게 알게 되었어요.

 


비엔나국립발레단 〈오네긴〉 공연에서 강효정과 제이슨 레일리



 
객원 안무가가 슈투트가르트발레단과 작업한 것이 발단이 된 거네요?
공연을 끝내고 작업 과정에서의 느낌이 너무 좋아 그때부터 계속 연락을 했어요. 그러고 나서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공연도 많이 없어지면서, 공연을 기다리는 시간도 길어지고, 생각할 시간이 많아졌지요. 평소 같았으면 공연도 매일 있고 연습 때문에 가만히 앉아 생각할 시간이 전혀 없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그런 시간이 주어지니까 예술가의 한 사람으로 내가 진짜 지금 원하는 게 뭐고, 나에게 뭐가 필요한지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더군요.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서 이제는 발레단을 대표하는 간판스타가 되었고 안정적으로 공연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는 상황일 텐데, 다른 발레단으로의 이적은 의외였어요.
그렇지요. 제 자리도 분명히 있고, 단장님도 그렇고, 발레마스터도 그렇고 관객들도 다 너무 저를 잘 알지요. 새로 도전하면서 생기는 어떤 설렘, 그런 것들이 때론 두렵기도 하겠지만 예술가로서 또 한 여성으로서 좀 더 성장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 들었어요. 더욱 성장하려면 새로운 도전과 그 과정을 통한 경험 축적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서 출 수 있는 작품은 다 춰봤기 때문에 제가 시도해보지 못했던 그런 작품들, 그런 안무가들과 무용수들, 그런 발레마스터들이랑 새로운 작업을 해보고 싶었어요. 뭔가 새로운 것에 대해 목말랐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진짜 쉽지 않은 결정을 하게 되었어요.

이적을 효정님이 먼저 제안한 건가요? 아님 마틴이 먼저 제안한 건가요?
그게 거의 동시에 일어났어요. 저도 마틴과 작업하면서 예술가로 존중을 받게 되면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구나 하고 새로운 작업 방식이 좋았거든요. 그런데 마틴도 저랑 작업하면서 저의 작품 해석력이 마음에 들었나 봐요. 작업 기간 동안에는 거의 시간이 없었는데 프리미어 공연이 끝나고 파티 때 서로 대화하면서 9월부터 자신이 뒤셀도르프발레단을 떠나 비엔나국립발레단의 예술감독으로 일하게 되었다면서 ‘네가 꼭 발레단으로 왔으면 좋겠다. 네가 올 수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말하더군요. 뭔가 상황이 되게 잘 맞아떨어졌어요.

2020년 1월에 안무가로 만나 작업을 했고 비엔나 국립발레단으로 이적한 것이 2021년 9월이니 이적까지 거의 1년 반 이상의 시간이 걸린 거네요. 마틴 슐랩퍼 이전에는 마누엘 리그리(Manuel Legris)가 오래 동안 예술감독을 했었지요? 입단이 결정된 것은 언제인가요?
2021년 3월이에요. 2021년 9월부터 마누엘 리그리를 이어 마틴이 새 예술감독을 맡았으나 코로나 때문에 쉽지가 않았던 것 같아요. 규정상 누군가를 해고할 수 없는 그런 법이 있어서, 마틴이 거의 1년 정도 제 자리를 찾기 위해 많이 힘쓰셨던 것 같아요. 근데 약속을 지키셨죠. 네가 올 수 있으면 자기가 어떻게든 자리를 마련할 테니까 제가 오면 너무 좋겠다는….

비엔나국립발레단으로 옮긴다고 말했을 때 현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예술감독인 타마스(Tamas Detrich)의 반응은 어땠었나요?  

마틴 예술감독님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1주일 정도 고민했어요. 타마스 예술감독님이 저를 정말 예뻐하시거든요. 제가 옛날에 〈로미오와 줄리엣〉 주역했을 때 기억나시죠? 그때 타마스 감독님이 발레마스터였어요. 제가 발레단 들어왔을 때부터 저를 쭉 아셨던 분이어서 말하기가 너무 쉽지가 않은 거예요. 그렇다고 제가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 불만이 있어서 가는 것도 아니고…. 제가 이적 결심을 알렸더니 할 말을 잊으신 듯 한동안 말씀이 없으셨어요. 솔직하게 거듭 제가 생각하는 것, 제가 원하는 것, 제가 느끼는 것을 모두 이야기했더니 한편으로는 이해하시는 것 같았어요. 3월에 말씀드리고 나서 제가 7월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을 떠나기 전까지 눈만 마주치면 서로 눈물을 글썽였어요.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서의 고별공연이 끝난 후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서의 마지막 작품은 어떤 것이었나요?

코로나 때문에 공연이 쉽지가 않았어요. 제가 3월에 이적을 말씀드렸던 당시에는 공연도 관객들 없이 그냥 라이브 영상 공연으로 할 때였지요. 예술감독님께서 저의 마지막 공연으로 〈오네긴〉을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관객이 들어올 수 있을지, 공연을 할 수 있을지 모든 게 확실하지가 않았어요. 결국 〈오네긴〉은 취소가 되고, 〈소얼사이드 블레이크 웍스〉로 마지막 공연을 했어요. 다행히 관객들도 극장의 반 이상 객석을 가득 메웠어요. 제 삶에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행복하고, 잊지 못할 순간이었고, 눈물도 태어나서 제일 많이 흘렸고… 정말 행복했던 하루였어요.

기록을 보니 효정님이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 입단한 것이 2003년 9월이더군요. 2021년 7월에 그만둔 것이니 거의 20년이 되네요. 그날 공연이 효정님의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서의 마지막 공연이란 것 관객들도 알고 있었나요?
네, 신문에도 보도되었어요. 레드 엔더슨 전 감독님도 오시고, 마르시아 하이데 전전 감독님도 모두 무대 위에 올라오셔서 꽃도 전해주시고, 뒤에 현수막도 사실 저는 기대도 안했거든요 워낙 코로나 때문에… 근데 정말 무용수들도 하나같이 다 같이 울고, 단장님도 다 같이 울고 정말 감동이었어요. 제가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이 싫어서 떠나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비엔나국립발레단 생활이 처음 시작된 것이 9월 1일이라면 첫 공연은 어떤 작품이었나요?
조지 발란신의 〈Symphony in 3 Movements〉였어요. 이 작품은 비엔나국립발레단 무용수들이 작년 시즌 6월에 공연을 했었어요. 댄서들은 거의 한 달 반 정도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저는 순서를 일주일 만에 배워서 2주 정도 연습을 하고 공연을 했어요. 한 번도 서보지 않은 극장 무대, 무대 크기도, 관객도, 객석은 얼마나 밝은지 어두운지, 바닥은 미끄러운지, 머리를 해주는 사람은 어디 있는지, 의상은 어디서 찾는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첫 공연을 하려니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왜냐하면 조지 발란신 작품이 진짜 쉽지가 않거든요. 제가 보통 음악을 듣고 순서를 배우는 것은 꽤 빨리하는 편이거든요. 근데 이번에 했던 작품 음악이 굉장히 어려워요. 그래서 제 발레마스터가 음악을 카운팅할 수 있도록 종이에 써줬어요. 근데 종이를 읽으면서 음악을 들어도 카운팅을 못할 정도로 음악이 굉장히 힘들었거든요. 어떤 것은 무음인데도 계속 카운팅을 해야 하고 계속 리듬이 바뀌고 그래서 음악이 제일 힘들었던 것 같은데, 막상 무대에 서니까 그냥 너무 행복했어요.

 




〈Symphony in 3 Movements〉 연습 장면 ⓒAshley Taylor



 
발란신 작품에서는 음악과의 매칭 못지않게 파트너와의 호흡도 매우 중요한데 처음 만난 파트너와의 호흡은 어땠나요?
같이 춤을 췄던 마르코스(MARCOS MENHA)는 마틴 감독님과도 꽤 오래 작업했던 브라질에서 온 친구에요. 만난 지 2주밖에 안 된 상태에서 같이 춤을 춘 거잖아요. 근데 저와 결이 비슷하고 성향도 비슷한 아티스트인거예요. 저는 시간을 즐겁게 보내면서 연습하는 걸 되게 좋아하거든요. 근데 이 친구도 비슷했어요. 짧은 시간에 빨리 배워서 공연을 했는데 그게 힘들지 않았던 것은 연습하는 과정을 즐겁게 할 수 있는 파트너라서 첫 춤을 추는 건데도 굉장히 편하고 행복했어요. 다행이죠, 이런 좋은 무용수를 여기서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간판 무용수가 비엔나국립발레단으로 이적한 것과 함께 비엔나의 관객들을 만나는 첫 공연이라 화제가 되었을 텐데 관객들의 반응은 어땠어요?
비엔나에서도 저의 이적 소식을 크게 보도했더군요. 관객들의 반응도 되게 좋았어요. 제가 첫 공연하기 전에 한 30분 정도 관객들에게 설명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서 수석 무용수가 와서 오늘 첫 공연을 한다며 저에 대한 설명도 다하고, 인터넷 매체에도 모두 보도가 되고… 마틴 감독님께서 저를 위해 배려하는 게 느껴졌어요.

비엔나국립발레단은 슈투트가르트발레단보다 규모가 크지요. 발레단 단원들의 분위기는 어떻던가요?  

단원들은 100명 조금 넘는 것 같아요. 단원들 이름은 거의 다 외웠어요. 컴퍼니 분위기는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 비하면 조금 더 자유로운 것 같아요. 오스트리아 무용수들이 별로 없고, 슈투트가르트발레단처럼 전 세계에서 온 무용수들이 많죠. 그런데 마틴이 뒤셀도르프발레단에서 이곳으로 오면서 무용수들을 꽤 많이 데리고 왔어요. 그래서 작년 첫 시즌 때는 비엔나에서 오랫동안 있었던 무용수 반, 마틴이 데려온 무용수 반 정도 해서 분위기가 처음에는 어색했대요. 무용수들끼리고 친해질 시간이 필요하고, 새로운 단장님을 받아들이는 것도 힘들고, 코로나도 겹치고 해서 작년에는 분위기가 그렇게 지금처럼 좋지는 않았다고 해요. 그런데 지금 시즌은 다들 저를 너무 환영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여성 수석 무용수들이 7명이나 되던데, 메이저 발레단이다 보니 아무래도 새로운 수석 무용수에 대한 경계심도 있을 텐데요.

수석 무용수 중에 루드밀라(Liudmila Konovalova)란 러시아 무용수가 있어요. 그 무용수로부터 제 첫 공연인 발란신 작품의 제가 추는 춤을 배웠거든요. 그런데 그 친구는 제가 리허설 할 때 와서 꼭 앉아서 봐요. 한번은 저한테 ‘네 리허설을 들어가서 보는 게 괜찮아?’ 하고 묻는 거예요. 보통 다른 무용수들이 리허설 할 때 보는 게 실례거든요. 근데 저는 그냥 괜찮더라고요. ‘너는 다른 댄서들 리허설 보는 게 도움이 되니?’ ‘아니 다른 댄서들 리허설 보는 건 도움이 안 되는데 네가 춤추는 리허설을 보면 도움이 돼’라면서 항상 제 리허설을 봐요. 저에 대해 질투하고 시기하고 하는 것보다 제가 가지고 있는 걸 더 배우고 존중해주는 그런 분위기여서 되게 좋은 것 같아요.

첫 작품 이후에는 어떤 작품을 했나요? 12월 23일과 28일 공연된 작품에서는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서 함께 춤추었던 제이슨 레일리가 출연했던데?  

조지 발란신의 〈Symphony in C〉도 했고요. 〈오네긴〉은 원래 파트너였던 로만(Roman Lazik)이 다쳐서 제이슨이 독일로부터 급히 날아왔어요.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레드 엔더슨 전 예술감독님께서 이번 비엔나국립발레단의 〈오네긴〉 캐스팅하러 오셨다가 저에 대해 좋은 얘기를 많이 해 주셨나 봐요. 마틴도 그렇고 발레마스터도 ‘레드가 너를 진짜 사랑하나봐’ 라고 이야기하시더라고요. 얼마 전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 있던 제이슨이 저한테 문자가 왔어요. ‘너무 보고 싶다’고… 항상 저랑 같이 춤추다 제가 없으니까 새로운 파트너를 찾아야 했었죠. 제이슨도. 근데 이렇게 함께 춤출 기회가 주어졌어요. 슈투트가르트발레단 타마스 감독님께서 제가 떠나기 전부터 ‘효정아 우리가 무용수가 필요하면 너한테 꼭 연락하겠다, 같이 와서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계속 이야기 했었거든요. 제 생각에는 친정집인 슈투트가르트발레단과도 함께 공연하는 날이 올 것 같아요.

 






 
2022년 새해에는 새로운 둥지 비엔나국립발레단에서 강효정 수석 무용수의 성공적인 여정이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강효정
선화예술중학교, 워싱턴 D.C.의 키로프 발레 아카데미 졸업
2002 로잔 국제 발레 콩쿠르 참가
슈투트가르트 존 크랑코 발레학교 수학
2004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입단
2008 데미 솔로이스트 승격
2010 솔로이스트 승격
2011 수석 무용수 승격
2021 비엔나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

주요 출연작
〈Onegin〉에서 Tatyana와 Olga, 〈Romeo와 Juliet〉에서 Juliet, 〈Swan Lake〉에서 Odette/Odile, 〈Swarm shrew)에서 Catherine.
〈지젤〉 〈잠자는 숲속의 미녀〉 〈카멜리아 레이디〉 등의 작품에 주역으로 출연.  

George Balanchine, Maurice Béjart, Jorma Elo, William Forsythe, Itzik Galili, Johan Inger, Jiří Kylián, Sir Kenneth MacMillan, Natalia Makarova, Hans van Manen, Roland Petit and Jerome Robbins 안무가의 작품에서 주요 배역.

 

장광열

1984년부터 공연예술전문지 〈객석〉 기자, 편집장으로 20여 년 활동했다. 춤비평집  『변동과 전환』 , 『당신의 발에 입맞추고 싶습니다』 등의  저서가 있으며, 서울국제즉흥춤축제 예술감독 등을 맡아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숙명여대 겸임교수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 ​ ​ ​ ​​​ ​ ​​​

2022. 2.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