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벨기에 피핑탐무용단 정훈목
유럽 민간 무용단에서의 경험을 나눌 마음입니다
  • 일    시
    2022년 7월 25일(월) 오후 3시
  • 장    소
    아카데미아인(서울 동교동)
김채현_춤비평가


ⓒ춤웹진




김채현: 벨기에 피핑탐(Peeping Tom)무용단에서 활동하는 정훈목님이 최근 7월 중순에 〈아난〉(Anon)을 국내 무대에서 선보였지요. 한국인이 유럽의 정상급 민간 무용단에서 10년 넘게 있는 경우가 그다지 흔치는 않은데, 오늘 피핑탐무용단과 그곳 생활 등, 〈춤웹진〉 독자들을 위해 유럽 무용단의 한 예로서 무용단의 속살을 알고 싶고 여러 대화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바로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할게요. 벨기에에 언제 갔었던가요?
정훈목: 2009년 3월 15일에 갔습니다. 2008년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신진예술가 지원 프로그램에 선정돼 유럽 페스티벌을 관람하고 워크숍에 참여할 지원금을 받았고 비엔나 임풀스탄츠(Impulstanz) 현장에서 피핑탐무용단 오디션 공고를 보았죠. 그전에 개인적으로 주목댄스시어터를 창단하여 활동했으나 계란으로 바위치기였고, 스스로 무엇을 하고 있나 생각했는데 피핑탐에서 공개적으로 연 첫 오디션에 기회가 되어서 참가하게 됐죠. 프랑크 샤르티에(Franck Chartier)와 가브리엘라 카리조(Gabriela Carrizo), 메조 소프라노 유리디케(Eurudike) 드불, 시몬(Simon) 등으로 구성된 소규모 컴퍼니였는데, 당시 정말 소규모였습니다. 그러다 2008년 그해에 비엔나와 브뤼셀에서 피핑탐 최초로 그리고 자기들로선 대대적으로 오디션을 열었고, 비엔나에서 김설진님과 저가 무용수로 선발되어, 2009년부터 일하자고 제안받았었지요.

당시 2008년도에 피핑탐에서 몇 명을 뽑았던가요?
총 5명으로, 비엔나에서는 두 명을 뽑고, 브뤼셀에서 3명을 뽑았습니다.

김설진님이 피핑탐에서 몇 해 활동하다가 귀국했었고, 지금 국내에서 활동하는 것은 다들 아는 대로입니다.
2009년부터 2014년 무렵 귀국했습니다. 설진님과는 〈32 rue Vandenbranden〉과 〈A Louer〉, 두 작품을 함께 했어요.




정훈목 ⓒ춤웹진




2009년 3월 15일에 벨기에에 갔고, 입단했을 적에 정식 단원이었나요?
그랬던 셈이죠. 몇 년 계약이 아니었고, 작품 한 번 만들어보고자 했던 게 두 번째, 세 번째, 여섯 번째 작품까지 이어지게 된 거죠.

그후 그곳에서 눌러앉게 되었는데, 가족 관계는 어찌 되는가요?
아이가 있고 아내는 스웨덴 출신 피지컬 아티스트로서 벨기에에서 단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입단 후 피핑탐과 작품을 함께 만들었던가요?
네. 무용단 자체가 크리에이티브한 집단이라서 제목이 나오면 즉흥도 하고, 같이 만드는 시스템입니다.

홈페이지를 보면 콜래보라고 되어 있군요. 설진님하고 두 작품을 했다고 했는데 그 이후에 네 작품을 더 한 거예요?
네. 설진씨가 돌아간 후에 다른 멤버들과 〈A Louer〉, 연작 시리즈 〈Vader〉(아빠), 〈Moeder〉(엄마), 〈Kind〉(아기)에 참여했죠. 몇 년 새 멤버가 조금 바뀌긴 했습니다. 최근 오페라 합작 〈Dido & Aeneas〉도 함께 했습니다. 4개월 정도 작품 만들고, 1년 반 동안 투어하면 2년이 됩니다. 그렇게 여섯 작품을 만들다 보니 어느새 12년이 되더라고요.

쉴 틈이 없었겠군요.
중간 중간 있었고, 한국에 와서 조금 쉬었다 다시 갔죠.

국내에서 작품도 선보였잖아요.
네. 안애순 선생님 부탁으로 2013년 투어 중 ‘한팩 솔로이스트’에서 연로하신 분 여석 분을 출연시켜 〈존 막〉이라는 작품을 했었고, 2016년 ‘한국을 빛낸 해외무용스타’ 초청 공연에 참여했어요.

피핑탐에 소속되어 있을 때 한국에 온 적 있어요?
네. 2013년에 LG아트센터에서 〈32 rue Vandenbranden〉을 공연했어요.

이번에는 어떤 계기로 귀국했습니까?
제가 나이도 들었고 다소 조금 지친 감도 있어요. 무용수로서 6편의 작품에 참여했는데, 한 작품씩 할 때마다 희열의 느낌, 바닥을 치는 느낌이 동시에 듭니다. 그간 한국과 좀 멀어진 것 같았죠. 또 저만의 예술적 방향성을 찾아보고 싶었어요. 코로나로 많은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그래서 무용수로 참여하지 않고 예술창작자로서 새 길을 열어보자는 취지로 국내에서 작품을 발표하게 됐습니다. 작년부터 국내 활동을 하려 했습니다만, 조금 미뤄졌습니다.




정훈목 〈아난〉, 2022. 7. ⓒ김채현




피핑탐무용단은 공연 일정을 보니까 7월에도 공연이 많더군요.
네. 두 안무자가 6~7년 사이에 NDT와 30분짜리 작품을 만들었고, 썩히기 아까워서 투어를 계획한 거죠. 3년 전에 투어를 위해 20대 남자 4명, 여자 4명을 뽑은 거예요. 한창 코로나가 시작할 때였죠. 그 작품 투어와 함께 우리 맴버들의 투어가 동시에 진행됐어요. 쉽게 말하면 피핑탐 A, 피핑탐 B가 있는 것이죠. 무용단 규모가 커졌습니다.

공연 일정이 굉장히 빡빡해 보여요.
네. 코로나로 2년 반 동안 공연이 취소되었고, 경영자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운영해야 하니까요.

2009년 입단할 때 정규 단원이었다는 거죠? 단원들 급수가 있어요?
워낙 가족 같은 시스템이고 급수는 따로 없습니다.

두 창립 안무가 모두 원래 무용가였나요?
네. 샤르띠에 같은 경우는 프랑스 프렐조카주, 베자르무용단, 드 케이르스마커의 로사스에 있다가 알랭 플라텔 컴퍼니에서 카리조를 만났습니다. 카리조는 아르헨티나 출신입니다. 댄서인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서 만든 게 피핑탐이죠.

유리디케 드불은 언제부터 참여했나요?
창단 멤버입니다. 알랭 플라텔과 일하고 있었는데, 1999년쯤 샤르띠에와 카리조가 신입 멤버로 영입을 한 거죠. 〈Caravana〉라는 작품부터 함께 한 거로 알고 있어요.

나 개인적으론 2003년 비엔나 임풀스탄츠에서 〈Le Jardin〉(정원)를 봤어요. 그때 피핑탐은 신생 단체였을 텐데, 노인이 출연했는데, 신선한 느낌이었어요.
그분이 시몬입니다. 현재 거의 은퇴했죠. 이번에 제 작품 〈아난〉에 출연한 제프(Jeff)와 동갑으로 75세입니다. 시몬은 당뇨증세도 있고 해서, 2년 전부터 투어는 그만뒀어요.

시몬은 훈목님이 입단할 때부터 있었나요?
네. 그런데 시몬은 띄엄띄엄 작품에 참여했습니다. 제프는 제 아내가 10년 전 작품을 만들 때,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피지컬한 오디션을 열었고 그때 뽑혔습니다. 원래 다른 일을 하다가 늦은 나이에 데뷔한 거죠. 제 와이프와 계속 일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아주 유명해져서 피핑탐에서도 작업하고 내년에는 울티마베즈에서도 일하더라고요.

급여는 어떻게 되나요? 월급을 받았나요?
당시에 한국인 둘을 데려와야 했고 매월 동일한 급여를 받았습니다. 영국이나 벨기에 출신의 다른 단원들은 또 다른 식으로 적용해서 매달 급여를 지급하더라고요.

입단 당시 무용단 식구는 총 몇 명이었나요?
우선 입단할 때, 유리디케를 포함해서 5명의 새 멤버와 2명의 안무가가 있었어요. 시몬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였고, 사무엘(Samuel)이라고 키가 조금 작은데도 불구하고 피지컬에 뛰어난 이 친구는 〈Le Salon〉하고 〈Le Sous Sol〉이라는 두 작품을 같이했어요. 이들을 멤버로 포함한다면 한 10명 남짓이었어요.

지금은요?
객원을 포함해서 스물 대여섯 명 정도 됩니다. 작품마다 무용수가 다르고 최근 8명의 무용수를 새롭게 선발했으니까요.

모두에게 월급을 지불하나요?
네. 사람마다 급여 체계가 조금씩 달라서 개별 계약을 하죠. 저는 3~4년 정도 풀 급여를 받았다가 재정 상황에 따라 단체의 공연 수당과 예술인 공적 휴업 수당을 받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벨기에에서 예술인으로 증명만 되면 어느 시기 일하지 않아도 공공 급여가 나옵니다.

프랑스의 앵테르미탕(Intermittent)과 비슷한 거예요?
네. 비슷합니다. 한 해에 정해진 몇 회 정도만 활동의 증명이 되면 종신으로 일하지 않아도 돈이 나옵니다.

그걸 뭐라 부릅니까?
쇼마쥐(chômage)라고, 예술인 휴업 수당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저도 계속 받고 있습니다.

휴업 수당 대상임을 증명하려면 아무래도 경력이 되어야 하겠군요.
어느 정도 세금을 내면 예술가로 인정해주는 것이죠. 제가 알기론 기본 2년 정도 경력이 되어야 하고, 햇수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기본 2년으로 알고 있습니다.

2년 동안 열심히 일하면 휴업 수당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된다는 말이네요. 상당히 너그러운 제도로 보입니다.
네. 그래서 무용하는 친구들이 많이 몰리는 것 같아요. 한국 댄서들도 알면 좋겠죠. 프랑스는 이러한 시스템이 많이 축소됐고, 벨기에가 낫거나 유일하다고 알고 있어요.

예술인 복지가 기본은 돼 있다는 말이군요. 수당을 받으면서 자기 예술 활동을 하는 거지요. 단체에서는 어느 정도 경력 이상이 되면 정규 급여를 크게 부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네. 그러니까 단체의 유지가 가능한 것 같아요.

훈목님 개인은 예술인 휴업 수당과 공연 수당 비율이 어느 정도 되나요?
지금은 투어가 덜 잡혔지만, 공연을 많이 할 때는 한 달에 6~7회 정도 공연합니다. 한창 투어할 땐 공연 수당이 2, 휴업 수당이 1 정도 됩니다. 투어가 없을 땐 휴업 수당만 받죠. 일하지 않아도 월 1,300유로, 180만 원 정도 받는 거죠. 공연 수당을 받으면, 공연한 날은 수당에서 페이가 없는 거죠. 한 달을 30일이라고 치면, 일요일을 제외하면 25일이 되는데 공연하지 않으면 25일에 대한 수당을 받는 거예요. 25일 중 5회 공연을 하면 5일이 제외되는 거죠.

매달 다르겠군요.
네. 처음에는 매달 계산했습니다만, 매번 달라지니까 계산을 아예 포기했어요.(웃음)

매달 급여를 계산하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누구든 마찬가지일 것 같고요. 지금 어디에 살고 있어요?
거주지는 브뤼셀입니다. 5~6년 전에 아내와 함께 집을 샀어요.

한국에서 집값은 심각한 이상으로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거기는 집값이 그렇게 높지 않지요?
벨기에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아마 10배 정도 차이 나는 것 같아요. 한국 집값을 들었을 때 깜짝 놀라죠.

벨기에의 다른 단체들도 쇼마쥐 제도를 활용하겠군요? 혹시 제도를 악용하는 경우도 없지 않을 듯하고요.
모두 제도를 선용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악용하는 경우가 간혹 있는 모양입니다.




김채현 ⓒ춤웹진




그간 공동 작업을 6편 정도 했고, 만족감도 들었을 텐데 벨기에에 있겠다는 판단도 했을 듯한데, 혹시 언제 그런 판단이 들었던가요?
한국에 돌아가야 하나 하는 생각은 늘 있었죠. 그런데 거기서 가족이 생긴 게 컸죠. 두 번째 작품 끝내고 고민하던 중에, 아내를 만났죠. 그러다 세 번째 작품에 참여하게 되고, 2년 후 결혼하면서 더 지내보기로 했고, 아이가 생겼죠. 가족 상황이 영향을 준 것 같아요.

부인은 피지컬시어터 종사자인데, 주로 어떤 걸 소재로 다뤘나요?
와이프인 안나 닐슨(Anna Nilsson)의 단체 이름은 Petri-dish입니다. 시험관 그릇이라는 뜻이에요. 서커스를 기반으로 하는데, 시어터가 많이 가미되었습니다. 서커스이지만 극장에서 많이 하죠. 벨기에 서커스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20대 초반에 세계적인 컴퍼니와 2~3년간 투어한 이후 20대 중반에 동료들과 만든 단체를 5~6년간 운영했고 새로운 단체 Petri-dish를 만들었습니다.

두 분의 수입으로 생활하는 건가요?
네. 제 아내도 휴업 수당을 받고 있으니까요. 일을 안 해도 둘 다 수입이 있죠. 10년 이상을 꾸준히 일했잖아요. 그리고 바캉스 수당도 한 해에 3~400만 원 정도 나옵니다. 무용만 한 거 치곤 많이 버는 편이다 보니 돈을 모아서 집도 구한 거죠.

피핑탐 입단 이전에 피핑탐 작품을 알고 있었나요?
국내에 〈Le Salon〉이나 〈Le Jardin〉이 소개된 걸로 알고 있었어요. 웬만하면 공연을 보는 편인데 이 작품들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약간 크레이지한 그룹이라고만 알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브뤼셀에 허성임님이 있었고, 전화했더니 꼭 오디션을 보라고 추천하더라고요.

입단 후 작품을 해보니까 어땠어요?
잘 맞았습니다. 제가 가진 것을 잘 끌어주었고 저 역시 그분들이 어디를 해결하고 싶어하는지 알겠더군요. 작품 만들 때 예술적 접근이 흡사했고, 서로 만족했었죠.

거기서 제일 처음 만든 작품이 몇 년도예요?
2009년 11월에 초연한 〈32 rue Vandenbranden〉이 첫 작품이었죠. 3월부터 한 4개월 정도 작품을 만들었어요. 무용단 투어 일정이 있어서 빨리 초연작을 만든 셈이죠.

피핑탐 홈페이지를 보면, 하이퍼리얼리즘이라고 표현해서 현실적이면서 환각적이라고 그럴까요. 주로 그런 무드더라고요. 피핑탐에서 작품 만들 적에 작품 성향에 동의한다기보다는 작품 성향에 끌려 들어가야 할 거 아니에요. 작품 내용 전개에서 대화를 통해 풀어갈 테니까요. 환각적이면서 하이퍼리얼한 것을 발굴하면서 정리하고 또 춤으로 풀어내는 과정이 궁금합니다.
두 창설 안무가의 예술적인 관점이 매우 다릅니다. 〈32 rue Vandenbranden〉는 같이 만들었고 〈A Louer〉와 〈Moeder〉는 여성 안무가 혼자 만들었고, 〈Vader〉와 〈Kind〉 남성 안무가가 만들었죠. 같이 한 건 딱 한 번뿐이었고 〈Kind〉는 같이 했는데 두 사람의 의견이 너무 달라서 중간에 여자가 빠졌어요. 〈32 rue Vandenbranden〉 같은 경우에는 신인 그룹이었고 워낙 프레쉬한 멤버들이다 보니까 조율이 잘 됐는데, 그 이후부터는 따로 만들었어요. 본인들의 큰 그림을 먼저 만들어 놓는 것 같아요. 움직임이라든지 캐릭터에 대한 것, 혹은 관계 같은 것을 우리가 계속 만들어서 보여주면, 그걸 조금 지도하고 마지막에는 안무가가 최종 편집을 하는 편입니다. 남성 창설 안무가의 경우에는 비주얼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을 강조하는 반면에 여성 창설안무가는 여성적으로 심오하게 더 깊이 다루려고 합니다. 둘의 색깔이 다르다 보니 조율할 때 약간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들을 더 알게 되다 보면 제 의견이 더 생길 수 밖에 없지요.

피핑탐 작품에서 출연진이 가장 많이 나온 작품은 몇 명쯤인가요?
작년에 한 오페라 작품인데, 그때 합창단이 15명~20명, 싱어가 4명, 무용수가 6명이었으니까 25명~30명 정도 되는 출연했어요.

피핑탐 같은 경우 벨기에서 어느 정도 위치의 무용단이라 이야기를 할 수 있나요?
컴퍼니의 가치는 나라에서 주는 지원금을 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있어요. 벨기에는 3년마다 지원금을 주는데, 내후년이 작품 제작 지원금을 받는 해인데, 피핑탐은 거의 2배 이상 증액되었다고 합니다. 그전에 피핑탐은 메이저급에 들락날락하는 그 경계에 있었거든요. 이제는 메이저급으로 올라가지 않았나 해요.

메이저급으로 어떤 단체를 꼽을 수 있나요?
로사스는 워낙 오래됐고, 울티마베즈, 세드라베 무용단이 있죠. 또 지원을 많이 받는 단체는 니드 컴퍼니입니다.

두 배라는 액수라면 어느 정도인가요?
이번에 5년짜리를 받았네요. 78만 5천 유로인데요. 10억원 정도입니다. 프로덕션 말고 작품을 만드는데 1년에 2억 정도 쓸 수 있는 거죠. 한국도 지원금을 많이 준다고 들었지만, 투어를 하는 단체는 한정적입니다.

투어를 하면 수익이 얼마나 올라요?
그렇죠. 작품을 만들기 전에 팔리는 경우도 있어요. 세계적으로 다양한 네트워크를 구축한 기획사가 있어요. 작품을 보지도 않고 이미 몇 년간 투어가 결정돼 있더라고요.

벨기에 다른 단체에서 피핑탐을 어떻게 평가 내지는 소감을 이야기하나요?
글쎄요. 코로나 이후로 워낙 교류가 없었습니다. 피핑탐의 장점으로 두 안무자의 색깔이 묻어나서 항상 어느 정도는 정점에 이르고, 파고드는 게 느껴진다는 것을 꼽죠. 단점으로는 항상 비슷하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개성이라고 할 수 있죠. 그렇지만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그 말을 들으면 바꾸려고 단체에서 노력할 거 아니에요.
네. 저도 다섯 작품 이후에 조금씩 느끼는 것 같아요. 제가 백날 이야기해도 안무가들은 좋아하는 걸 하고, 그 색깔이 나오죠.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것, 내 걸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더라고요.

단원들이 총 몇 개국 사람인가요?
프랑스, 아르헨티나, 한국, 대만, 벨기에, 아이슬란드, 포르투칼 등 최소 15개국 정도 될 것 같습니다. 일할 땐 영어로 합니다.

샤르티에가 67년생, 카리조가 70년생이네요. 이 두 분은 언제 벨기에 왔어요?
알랭 플라텔이랑 작업할 때니까요. 99년도에 첫 작품을 했으니까 아마 샤르티에는 90년대 초반이었을 것 같고요. 카리조 같은 경우는 90년대 중반이었던 것 같아요. 둘 다 세드라베에서 엄청난 무용수였죠..

훈목 씨를 뽑을 땐 두 사람 다 갓 마흔이었죠? 두 사람이 기반을 빨리 쌓았네요. 훈목씨는 내년에 곧 컴퍼니와 함께한 지 14년이 되어 가는데 앞으로 언제까지 함께 할 건가요?
이번 신작할 때 14년 만에 국내 복귀작이라고 홍보했는데, 앞으로 한국과 교류를 자주 할 생각입니다. 코로나도 있지만, 브뤼셀에 계속 있다 보니 영감이 덜한 것 같아요. 14년 동안 가족들과 너무 붙어 있었고, 독립하고 싶은 마음도 들고요. 내년에는 한국과 벨기에를 오가며 안무할 계기를 잡아보려고 합니다.

그쪽에 훈목씨 팬들이 있어요?
조금 있는 것 같기는 해요.(웃음) 저를 알아보시는 분들이 있는데, 제가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SNS 등으로 관리를 잘 한다고 말하기는 애매합니다.

피핑탐이라는 단체 이름을 가지고 단원들끼리 이야기해본 적은 있어요?
그렇게 만든 단체이고 브랜드화가 되었죠. 전 컴퍼니 이름을 부르기보단 짧게 P컴퍼니라고 불러요. 이번에 작품을 만들 때 피핑탐이 제 하나의 뿌리이지만, 최대한 P컴퍼니가 하는 것을 배제하려고 했어요.

선택의 문제인데 그래도 피핑탐적인 걸 한두 편은 더 해봐도 되지 않을까 해요. 한국에 들어올 계획이 있나요?
내년 일본 공연 직후, 3월부터 6개월 정도 체류할 예정입니다. 무용수 역할을 조금씩 내려놓고 벨기에와 한국을 오가며 여러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활동을 하며 피핑탐에서의 경험을 나누고 싶습니다.

피핑탐무용단의 성장기에 쌓은 경험들이 우리 춤계에서 참고되었으면 합니다. 오늘 말씀 감사드립니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 ​​​

2022. 8.
사진제공_김채현, 춤웹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