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2015 현대춤작가12인전
신선함, 그리고 완숙한 움직임의 공존
문애령_춤비평가

 한국현대춤협회(회장: 손관중 한양대교수)가 주최하는 ‘현대춤 작가 12인전’이 4월 13일부터 18일까지 동숭아트센터에서 열렸다. 네 명이 한 팀을 이뤄 이틀씩 공연함에 따라 작품 길이가 20분 정도로 제한되고, 안무자가 반드시 출연해야 한다. 안무자의 연령대가 그룹 별로 나뉘며, 춤 전공별로 출연순서가 배정된다.
 첫날 첫 공연을 한 경희대 강사 이홍재는 김규동 시인의 ‘나비와 광장’에서 이미지를 따온 <나비로워>를 통해 “들판이 아닌 광장 속 나비”의 서글픔을 묘사했다. 가요 ‘아침이슬’ 가사가 반복되다가 상여가 나오고 슬픔이 고조된다. 출연자가 나비가 되어 답답한 현실을 토로하는 모양새로 한국 춤사위와 함께 표현주의적 감정 묘사에 집중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김동규는 <노우 엔트리(No Entry)>에서 ‘두려움’을 다뤘다. “소극적인 반응을 할 것인지,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안무자의 선택이 명확하지 않은 가운데 가면, 어두움, 무음, 혹은 소음과 타악의 혼성음 등이 두려운 분위기 제시를 지속한다. 느린 움직임이 점차 온몸의 유연성을 과시하는 기교로 발전할 즈음 '느낌‘에 대해 말하는 외국 여자의 노래 소리가 들린다. 주요한 춤 언어인 흐늘거림이 돋보이고, 심각한 분위기 속에서 마무리된다.




 한양대 강의교수 조원석은 이병률의 여행 산문집에서 발췌한 글을 바탕으로 <길에서 길을 묻다>를 만들었다. “그 길에서 헤맸고 추웠는데… 그 길을 다시 가고 있는 거지”란 내용을 아코디언 연주와 트렁크를 든 여행객이 나오는 춤극으로 구성했다. 중간 막을 내려 투사한 그림자 듀엣, 순수한 느낌이 가득한 장은정과의 예쁜 2인무, 트렁크에서 나온 사진을 들고 퇴장하는 남성의 모습까지, 발레 기교를 곁들인 ‘나의 길’ 반추가 수줍고 진지하다.
 국립무용단원 조재혁의 <현 ㅡ▗>은 자기표현이나 묘사의 단계를 뛰어넘은 안무의도를 지녔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악(樂)이 몸에 입(入)하여 마음으로 유입되는” 추상적 과정을 춤으로 풀며 장난기까지 덧붙이니 창작에의 부담을 슬쩍 감춘 여유가 돋보인다. <현 ㅡ▗>은 차를 나눠 마시는 두 사람의 대화 같다. 차를 따른 자의 아쟁 연주 소리에 차를 마신 자의 즉흥적 대무가 시작된다.
 나초 듀아토가 몸을 첼로 삼아 연주했듯 이번에는 몸이 아쟁이 된다. 무르고 부드러운 빠른 몸짓은 매우 독특한 현대춤 어휘다. 탈춤처럼 힘 있게 흩뿌리기, 무게감 있는 굴신과 회전, 로봇 걷기나 쟁기질 등이 대비 효과를 강조한다. 춤을 넘어선 작품세계 추구가 ‘작가전’의 진정한 의미를 상기시켰다.




 두 번째 그룹의 막을 연 한성대 교수 김남용은 작품 <먼>에 “시간의 소리, 과거와 현재, 생성과 소멸”에 대한 상념을 담았다. 가면은 현재와 미래를 구분하는 소품이고, 무대 중앙에 자리한 커다한 저울추는 삶과의 타협을 암시하는 상징물인 듯 보인다. 두 팔의 라인이 화려하고, 달리고 멈추는 가운데 주제의 무게가 전달된다.
 가림다무용단 대표 천성우는 카프카의 ‘어느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에서 연극 ‘빨간 피터의 고백’으로 연결되는, ‘인간으로 변신한 원숭이 이야기’를 춤의 소재로 삼아 ‘우리’를 설명하고자 한다. “우리는 자기편을 가리키는 의미이자 짐승을 가두는 곳이다.” 우리에서 탈출하고 싶었던 원숭이는 출구가 없었기 때문에,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 사람이 되고자했다.
 <류(類)를 이루는 사람6-빨간 피터의 고백>에서 천성우는 원숭이 역 두 친구와 함께 무리를 이뤘다. 광대이자 침팬지가 되기도 하는 배우 김선을, 음악 연주자 서동준이 함께한 광대극은 웃음과 비애를 오가는 고유한 매력을 재현해 간다. 연극이 초연된 1977년의 세상에 비해 현재는 뭐가 달라졌을까를 고민하는 안무자의 속내는 바나나를 들고 가볍게 웃는 원숭이의 외양과 달리 비관적이고 비판적이다.




 단국대 교수 최소빈은 이명헌, 신현지와 함께 <레이디 인 레드(Lady in Red)>를 개작 공연했다. 작곡가 조르주 비제와 오페라, 그리고 소설의 두 주인공 카르멘과 돈 호세가 자유로이 교감하는 구성이다. 비제 역 신현지는 작곡가의 고뇌를, 최소빈과 이명헌은 명곡과 그 내용을 춤으로 풀며 정형적인 발레 기교에 도전했다.
 용인대 교수 남수정은 <청춘무명>에서 김남용과 유사한 주제를 다뤘다. “흘러간 청춘을 아련히 관조하는 중년의 춤”은 “어둠이 지구를 정복했다. 어디에 도착한 것일까?” 같은 녹음된 독백으로 시작됐다. 과거에 조급했던 감정을 산문시처럼 낭송한 후, 천과 조명으로 좁힌 공간에서 남수정과 박이표가 대무한다. 춤사위가 힘 있고 시원하다.




 마지막 그룹 첫 작품은 박해준의 <저 너머>다. 경희대 현대무용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인 박해준은 “임을 기다리는” 솔로 <저 너머>에서 어떤 경지가 느껴지는 연기를 펼쳤다. 빨간 모자, 검정 점퍼, 안경을 착용한 남자와 의자, 암전 이후 사라진 소품들, 행진과 물러서기를 반복하는 느린 전진, 그리고 고유한 동작들을 덧붙여 안정된 구도를 만든다. 특히 굴신 세 번 후 펴며 이동하는 섬세하고 독특한 다리 동작이나 몸을 돌린 후 어눌한 듯 재빨리 팔을 뻗는 몸짓에 고수의 흥취가 담겼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김용철의 <흑살풀이>에도 다작의 연륜이 담겼다. 검정 천속에 감금된 주인공은 천의 떨림으로 존재를 드러낸다. 무대에 자리한 두 명의 악사, 긴 치마꼬리를 끄는 독무 행진은 살풀이 본연의 역할인 무속 제례 중임을 알린다. 점차 드러나는 몸, 검정 천을 펄럭이며 접신의 경지를 연기하는 표정, 보다 극적이고 보다 역동적인 살풀이춤이다.




 <프렐류드 Ⅴ-현기증>을 안무한 안양예고 무용부장 이고은도 “어제, 오늘, 내일”을 다뤘다. 다른 작가들이 과거나 미래에 초점을 둔 반면 이고은은 “마침표를 끝없이 찍고 있는” 현재를 중심에 두었다. 타악기와 현악이 신비한 분위기를 만들고, 남녀의 듀엣이 시작된다. 작은 변화만을 허용하는 반복적 점증 패턴과 구획된 공간 활용이 현대발레의 세련미를 드러낸다.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 교수 이윤경의 <홀로 아리랑 2015>는 “내가 무용이다”라는 카롤린 칼송의 미학을 연상시킨다. 특히 <홀로 아리랑> 시리즈에서는 더 이상 춤의 과제를 따질 필요가 없다. 자유자재로 몸짓의 뿌리를 탐구하는 그녀에게는 춤의 장르 구분 역시 별 의미가 없다. 털어내기, 눌러 내리기, 균형감, 관객을 취하게 만드는 열정까지, 무속장단과 종소리가 종교적 느낌을 가미하는 그녀의 현대 춤은 매번 객석을 압도한다.




 제29회 현대춤 작가 12인전은 처음 참가한 30대가 많아 신선했고, 특히 50대의 기량이 탁월해 즐거웠다. 내년에는 지난 30년 간 다수 출연한 작가들을 재초청할 예정인데, 그간 무용계를 이끌어온 주요 인물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귀한 무대가 될 것 같다.

2015. 05.
사진제공_한국현대춤협회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