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LDP 신창호 안무 〈Graying〉
나이듦에 대한 중첩된 역설
이지현_춤비평가

 LDP 두 편의 신작 중 하나인 〈Graying〉(신창호 안무, 4월 4-5일 LG아트센터)은 여태까지의 LDP 스타일을 벗어나려는 노력 중 가장 눈에 띠는 ‘탈피’를 시도하였다.
 ‘댄싱 9’으로 가장 대중들에게 ‘핫’해진 무용수들의 대다수가 LDP와 이런저런 연을 갖고 있다보니 LDP에 대한 관심도 이제는 무용계 내적인 것만이 아니라는 것이 객석에서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번 신작이 LG아트센터의 제작으로 진행된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대중, 방송 등 이런 휩쓸리기에 쉬운 흐름 속에서 신창호는 오히려 역으로 그 흐름을 LDP 본래의 지점이었던 춤예술로 가져오려는 의도를 분명히 하려는 것처럼 주제나 형식에서 예상외의 수를 두었다.




 안무가 신창호가 나이를 얘기할 나이는 아니다. 이제 채 마흔에도 도달(到達)하지 않아서 머리가 히끗해진다는 graying, 늙어감을 주제로 삼는다는 것도 어쩌면 이미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놀이가 될 것이라는 한계가 보이는 게 공연을 보기 전 예측이었다. 물론 누구나 인생의 주제를 논하고 표현할 수 있다. 꼭 늙은이들의 주제는 늙은이가 다루어야 한다는 것도 심한 편견과 고정관념 중 하나일 수 있고, 젊은이는 젊은이 얘기만 해야 한다면 그것도 참 답답한 노릇일 것이다. 하지만 여태까지 LDP는 자신의 젊은 몸과 젊은 감각만을 알 뿐 인 것처럼, 아이처럼, 그렇게 젊음을 누리기도 바빴다.
 하지만 신창호는 이 작품에서 전혀 다른 춤을 보여주었고, 공연이 진행되면서 허리를 세우고, 눈을 부비고 보게 만드는 새로운 실험을 펼쳐보이고 있었다. 원형의 고리인 듯, 소용돌이인 듯 보이는 흰색의 거대한 무대장치가 천정에 매달려 공중에 떠있다. 전체적으로 흰색의 장치와 조명을 white out시키는 방법이 주로 무대를 눈부신 빛의 공간으로 만든다. 늙어감을 다루는 신창호의 방법은 그것을 순환의 고리 속에서 해석하는 것이라는 암시가 분명하다.




 사람들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가정은 아마 삶이 영원하다면이란 것일 것이다. 죽음과 함께 설정된 삶만이 고통스러움에도 불구하고 간절하고 절박한 아름다움을 만들듯이, 늙어감도 밝음과 젊음과 힘 속에서 설명하려는 의도는 밝게 처리된 영상과 더불어 무대 위에서 강렬한 빛과 같은 긴장을 유지시킨다.
 무대 안으로 세상에 던져지듯이 달려 들어오는 무용수들이 달리고 멈추기를 반복하면서 그들은 늙음이 뒷머리라도 잡힌 듯한 느낌으로 암전과 더불어 제동이 걸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프롤로그 역할을 하는 첫 장면 후에 주춤거리게 만드는 다이나믹과 역방향으로 흘러가는 에너지는 이제 무겁게 몸을 바닥으로 무너지게 만들거나, 늘어지게 만드는 시간의 흐름으로 변환된다.
 무용수들을 찍은 확대된 모습이 백색의 이미지로 장치에 간헐적으로 투사되고, 장치는 서서히 움직임을 알아채지 못할 속도로 움직이면서 원이 돌고 도는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한명의 무용수가 빗자루 질을 하는 것처럼 무대 공간에서 에너지를 변화시키면 무용수들의 춤이 시작되고 군무로 이어진다.




 춤은 원래 중력을 거스르는 가장 분방(奔放)한 방법이자 가장 강력한 방법으로 문화사적 의미를 가져왔다. 중력에 따르며 죽음을 택할 때 인간은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거나, 목을 맨다. 하지만 중력을 거스를 삶의 에너지가 충만할 때 몸은 바닥에서 튀어 오르고, 관절은 중력이 원하는 위치를 벗어나며 온몸이 엉키고 꼬이거나 비틀리면서 중력과 숨바꼭질을 하는 것, 그것이 춤 생성의 물리학이었다.
 〈Graying〉은 중력에 저항하는 동작으로 중력에 딸려가는 늙어감을 묘사한다. 6명의 무용수가 1부 김판선의 〈12Mhz〉에서 전혀 다른 동작을 그것도 상당히 강력하게 분출시키는 동작을 보여주다가, 2부에 이 작품에서 전혀 다른 스타일의 춤을 보여주었는데, 사실은 그 지점이 LDP의 역량을 새롭게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했다. 공연 때야 연습하던 것을 보여주는 것이니 그렇게 되어지는 것이지만 연습을 했던 몇 달간 전혀 다른 두 개의 움직임 스타일을 만들고, 몸속에 담고 살아야 했을 무용수들의 고행(苦行)이 보였다.
 그만큼 〈Graying〉의 춤은 색다른 것이었다. 신창호는 이 움직임을 위해 “공원에서 노인들의 동작과 그들의 일상을 관찰했고, 그것에 숨어있는 자연스러움을 포착해 춤동작이 아닌 이완된 움직임, 그것의 기분 좋은 ‘흥’과 같은 동작을 만들었다”고 한다. 마치 취권처럼 무용수들과 많은 토론과 학습, 연구를 통해 점차 자신을 버리고 해탈되어가는 자유의 몸짓, 그 몸짓에 해방의 기쁨과 환희가 강하게 녹아있는 〈Graying〉의 ‘춤’은 그야말로 ‘춤’의 원형에 가까웠다.
 마치 LDP 무용수들이, 특히 류진욱과 김성형이 듀엣을 추는 장면에서는 젊음의 아이콘인 그들이 마치 노인이 되어버려 막걸리 한 잔 걸치고 춤추는 이상한 시공간으로 변화되면서 ‘춤과 몸이 역설적으로 중첩되는 환각’을 일으켰다.
 이 강렬한 ‘연기춤’-마치 늙는 것을 연기하는 것과 같은-은 고도의 인위적인 표현으로서 늙어감을 해석하는 춤으로 이미 자신들의 몸에 젖어 있는 동작을 중화(中和, counteractivation)라도 시키려는 것처럼, 여태까지의 동작 습관을 벗어나려고 하는 극도의 노력으로 보였다. 노력은 매우 의도적이고 의지적인 행위이다. 그렇기 때문에 힘이 들어가는 건 당연하다. 이 새로운 춤도 아직은 힘이 완전히 빠져있진 않아 부담스러운 면도 있었으나 그 경지는 차츰 갈고 닦음 속에서 이뤄지리라 본다.




 부모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사춘기의 일탈은 고통을 동반하나 중요한 과정이고, 자기를 인식하고 자신을 벗어나려는 몸부림은 성인이 되었음을 증표하는 일일 것이다. 이번 공연이 늙어감을 얘기했지만 LDP의 성인식이 아니었나 싶다. 자기 스타일이 어느 정도 안정된 연후에야 그것은 인식되며, 인식이 되어야 의지를 갖고 그것을 탈피할 수 있다. 그리고 탈피를 맹렬하게 습성적으로 하는 것은 예술가의 기본 덕목이라고 본다. 그간 LDP는 스타일을 만드는 데 여념이 없었고, 〈Graying〉에서 보여준 ‘흥춤’으로 자신의 스타일도 중화를 시켰으니 그 흐름을 끊지 말고 당분간 이어가는 것이 ‘차원이 다른 춤세계’로 가는데 중요한 자양분이 될 것이다.

 늙음이 외면의 쇠락함속에 내면의 또 다른 충만이 있는 것처럼, 그들의 춤도 깊은 멈춤(deep stillness)을 갖추어야 역설적으로 더욱 역동적(dynamic)일 것이다.

2015. 05.
사진제공_신창호/LG아트센터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