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더 깊고 넓은 춤으로의 소통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수석무용수 강효정
  • 일    시
    2013년 3월 4일 월요일 오후 2시
  • 장    소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 단장실
김나희

슈투트가르트에서 만난 강효정은 첼로를 가장 좋아하는 악기로 꼽았다. 베이스부터 소프라노까지 인간의 음역을 닮은 악기가 주는 깊고 진한 울림과 서정성처럼, 그녀의 춤이 관객들에게 더 깊고 넓게 그리고 아름답게 다가서기를 바란다는 강효정은 다시 무대에 서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여전히 소녀의 얼굴을 한 그녀는 나직한 목소리로 발레에 대한 첫 만남, 몰입과 집중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부상 중이라 공연을 하지 못했다고 들었다.

 부상 중이라 쉬고 있어서 아쉬움이 많다. 무용수로서 남들보다 유연한 몸을 가지고 있어서 몸에 무리가 되는 동작, 남들은 쉽게 할 수 없는 동작들을 더 시도할 수 있다. 물론 내 몸의 유연함이 장점이 되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까지 이 유연함의 한계에 도전을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이 정도까지 해도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 선을 넘어버렸는지 부상이 온 것이다. 통증을 느껴도 참고 무대에 서는 경우도 많다. 무용수들은 다들 어느 정도 부상을 달고 있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몸의 한계는 아마도 경험으로 알아가는 것이 아닐까. 욕심이 많이 나는 작품들이었지만, 우선 이번에는 좀 쉬는 것이 장기적인 안목에서 현명한 선택일 것 같다. <볼레로>나 <Slice to Sharp> 모두 연습을 마친 작품들이고 무대에 오르기만을 기다렸기 때문에 아쉽다. 어쩌면 좀 순조롭게 여기까지 왔다고 남들 눈에는 그렇게 보일 수 있겠다.
 워싱턴 키로프 아카데미 유학, 로잔 콩쿠르, 존 크랭코 아카데미 연수,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입단, 수석무용수로의 승급까지…하지만 그 단계 사이마다 힘들었던 순간들 역시 많았다. 사실 집안에는 지휘자 출신인 외할아버지부터 성악을 전공한 이모까지 음악가들이 더 많다. 그런 만큼 태어나면서부터 주변에 자연스럽게 음악이 가까이 있었다. 발레와 함께 어린 시절에 병행했던 피아노도 콩쿠르에 나갈 정도로 아주 열심히 쳤다. 모차르트의 <작은 별 변주곡>이었다. 정말 사랑스러운 곡이다. 아무래도 다른 무용수와 비교했을 때, 악기를 어느 수준 이상 다룰 줄 알기 때문에, 음악에 대한 반응이 더 빠르고 섬세하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워낙 어릴 때부터 춤과 음악을 같이 했기 때문에 어쩌면 내 몸은 무의식 적으로 음악을 받아들이는 지도 모르겠다.




 처음에 발레를 어떻게 시작했는가?

 내가 발레를 한 것은, 무엇보다 내 의지가 컸다. 처음에는 다수의 여자아이들이 피아노와 발레를 배우듯이 그냥 동네 발레 학원에 갔다. 그나마도 중간에는 아버지를 따라 사는 도시를 옮기게 되면서 관둘 수밖에 없었다. 서울에서 대전으로 가면서 아무래도 발레를 계속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이사를 간 이후로 자연스럽게 발레를 관뒀는데 너무 다시 춤을 추고 싶었다. 초등학교 4학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 부모님께 앞으로 공부를 더 열심히 할 테니, 발레 학원에 다시 보내달라고 막무가내로 졸랐다. 학교 공부도 소홀히 하지 않고 더 열심히 하고 남는 시간에만 춤을 추러 가겠다고 했다. 내가 간절했던 탓인지 그렇게 다시 발레를 하게 되었다. 이후에 선화예중 입시를 준비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예술학교 입학을 목적으로 일찍부터 입시를 준비하며 철저한 스케줄에 의해 발레를 한 것이 아니었다. 학교에 들어가 보니 뛰어난 동급생들이 많이 있었고 당연히,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물론 좋은 신체 조건을 타고났기 때문에, 연습을 많이 하지 않아도 남들보다 쉽게 되는 면이 있었고 그것 때문에 발레에 대해서는 얼마쯤 게으른 편이었다. 그래도 늘 발레에 대한 열망은 뜨거웠다.
 선화예중에서 1년을 다니고 워싱턴 키로프 발레 아카데미로 유학을 간 것도, 그렇다. 부모님은 정말 내가 갈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으셨지만 나는 더 큰 세상에 가서 춤을 배운다는 생각에 두렵고 고생스러울 거란 생각보다 설레는 마음이 앞섰다. 무조건 가겠다고 했고 그걸 실행에 옮겼다. 물론 키로프 아카데미에서 정말 많은 고생을 했고, 바닥부터 다시, 엄한 호랑이 선생님으로부터 정말 많이 혼나면서, 많이 울어가면서 춤을 처음부터 배웠다. 내가 프로 무용수가 될 수 있는 기반은 사실 그때에 다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발레를 한다는 건, 그 인물이 되어서 삶을 다시 무대 위에서 살아내야 한다는 면에서 연기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 물론 언어가 아닌 춤으로 연기를 한다는 다른 점이 있지만, 감정을 전달하고 관객들에게 다가가는 점, 두 시간 남짓한 제한된 시간 속에서 때로는 수십 년의 세월을 뛰어넘고 입체적으로 변해가는 캐릭터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려면 원작 텍스트에 대한 이해가 필수이다.
 <오네긴>의 타티아나는 무용수로서 절대 잊을 수 없는, 가장 마음 깊은 곳에 새겨진 역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내 심장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역할이다. 소설을 여러 번 읽었고, 리허설이 있는 날이면 책을 가져와서 마지막 오네긴과 타티아나의 파드되 장면을 추기 전에 해당 페이지를 다시 읽고 감정선을 잡았다. 물론 리허설과 무대는 다르다. 분장도 의상도 준비되지 않았지만, 리허설에서부터 완전한 몰입이 필요했다. 타티아나와 오네긴 사이의 진한 감정을 담아내려면 우선 내 감정 상태를 기억해야하기 때문에, 타티아나라는 인물을 불러내기 위해 매번 그렇게 했다.


 타티아나는 1막에서는 순수하고 어린 소녀이지만 3막에서는 공작부인이 되고, 불과 몇 시간 사이에 다른 사람처럼 변하는 입체적 인물이다. 20대의 발레리나로서 3막의 연기는 좀 더 어렵지 않았나?
 메서드 연기를 하는 것처럼 완전히 그 인물이 되려고 하는 건, 어쩌면 더 인위적이고 어색해질 수 있는 함정이 있다. 내가 상상하고, 만들어 낸 캐릭터가 과연 100퍼센트의 타티아나인지 이게 맞는 건지 장담할 수가 없다. 원작의 내용과 줄거리를 다 알고 있으니, 춤을 추면서 그때그때 몰입하는 것이 나만의 타티아나가 되어가는 방법이다. 다른 무용수들은 아마도 다른 방식으로 연기를 할 것이고, 인생을 더 많이 살아본 선배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녹여낼 수도 있겠지만, 설령 내가 아직 어리고 경험이 부족하더라도 춤을 통해 무대 위에서 소통하는 건 또 다른 차원의 일이다.
 나는 자연스럽게 강효정이라는 무용수의 색이 유화 캔버스에서 비쳐 보이는 빛색처럼 드러나고, 타티아나라는 인물이 다채로운 팔레트처럼 장면마다 변해가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매일의 컨디션에 따라, 기분에 따라, 무대 위 파트너와의 감정선에 따라 조금씩 다른, 타티아나를 연기하게 된다. 천편일률적이고 인위적인 연기가 아니라 인간의 온기가 묻어나는 연기를 하는 것이 내 바람이고 나아가 강효정이라는 한 인간의 색깔이 묻어나는 춤을 추고 싶다.
 만약 내가 무용수가 아닌 일반 연기자였다면 나이와 경험에서 오는 것이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하겠지만 우선 나는 무용수이기 때문에 나만의 춤언어를 가지고 있고, 이 춤의 언어는 나만의 고유의 것이라, 내가 작품을 통해 줄리엣이 되거나 타티아나가 되거나, 컨템퍼러리 작품들을 하거나 그 뿌리는 변하지 않는다. 어떤 작품을 하더라도 얼마만큼은 ‘강효정'임을 드러내는 것도 무용수로서 필요한 부분이다. 이곳의 관객들은 열광적이고, 전 시즌의 작품과 모든 캐스트를 다 보면서 늘 2000여 석의 극장을 꽉 채우기 때문이다. 결국 다수의 관객들은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오네긴>의 스토리를 다 알고 있고 그들이 만나러 오는 것은 줄리엣 혹은 타티아나 역할을 하고 있는 강효정이다.

 



 현대작품들은 아무래도 낯설 수 있지만 안무가와 처음부터 만들어 갈 수 있는 작업이기 때문에 좀 더 무용수로서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다. 모든 무용수가 제각각의 빠르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같은 춤을 배운다고 하더라도 그 움직임의 디테일은 제각각이다. 아마 그 부분을 해석(Interpretation)이라고 할 수 있겠지. 이 해석의 부분에서만큼은 무용수는 자유롭지만 또 자유롭지 않다. 자신만의 문법으로 무대 위에서 세계와 직면한다는 점은 자유에 가깝지만 철저히 안무가의 의도에 충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클래식 레퍼토리와 모던·컨템퍼러리 작품은 어느 정도 상호보완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요구하는 움직임의 기본적인 스타일이 좀 다르기 때문인데… 그래도 다양한 스타일의 춤을 추기 때문에 무용수로서의 역량도 크게 성장한다. 현대 작품을 하면서도 우선 클래식에서 배운 기초를 더 탄탄히 해야 하고, 현대 작품 속에서 요구하는 동작과 동작사이의 이완된 움직임이 클래식 작품에도 녹아 들어가면 좀 더 강약이 있는 춤을 출 수 있다. 모든 현대 안무가의 작품이 다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존 노이마이어와의 작업은 무용수로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객과 소통하고, 감정을 전달하고, 무대 위에서 움직이는 한 걸음마다 신중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걸 배울 수 있다. 그 이후로 춤에 대한 개념이나 마음가짐이 완전히 달라질 정도로.


 무대가 두렵지는 않나?
 입단하고 3년 정도는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무용수로서 도태된다는 두려움과 어쩌면 나에게 영영 기회가 오지 않을 거란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 전에 학교에 있을 때에는 남들보다 쉽게 무대가 주어졌기 때문에 그 기회가 소중하다는 걸 몰랐다. 코르드 발레에서 작은 역할을 할 때에도 최선을 다하면서 무대에 섰다. 작은 역할일지라도 분장을 하고, 의상을 입고 수천 개의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는 무대 위에 선다는 것은, 뭐랄까 그 곳에서는 다른 차원의 삶이 이어진다. 무대에 대한 갈증과 동시에, 그만큼 기회가 적었고 소중했기 때문에 실수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지금이야 이 두려움을 적당한 긴장으로. 긍정적으로 승화시킬 수 있지만 나는 여전히 악몽을 꾼다. 내가 꾸는 최악의 악몽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안무도 잘 모르고 몸에 익지 않았는데 급하게 리허설을 하고 무대에 올라야 한다는 연락을 받는 꿈이다. 꿈속에서 완전히 무대를 망치고 내려오는 건데 얼마나 두려움과 압박감에 짓눌리는지, 꿈이지만 다시는 꾸고 싶지 않을 정도로 괴로워한다.
 무대에 대해 이중적인 감정(열망과 경외)은 모든 무용수들이 다 가지고 있지 않을까. 어떤 날에는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성공적으로 공연을 하기도 한다. 아마도 어떤 존재가 나를 보호해주면서 함께 해준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돌이켜서 생각해보면 ‘내가 어떻게 저렇게 했지?’ 싶다. 신의 도움이 함께 한걸까. 아주 성공적으로 무대를 마친 날에는 커튼콜이 수없이 이어지고, 관객들의 흥분과 열광이 그대로 전해진다. 그런 밤이면 체력적으로 완전히 방전되어 쓰러질 것 같지만, 의식은 점점 더 또렷해진다. 어떤 노력을 해도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다. 무대에서 느낀 흥분과 다채로운 감정을 몸이 기억하는 것 같다. 아니면 전혀 다른 인물이 되어, 다른 차원과 시대를 살고 돌아오면서, 내 영혼의 일부가 극장에서 다 돌아오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다시 태어나도 발레를 하고 싶은가? 발레리나로서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사람으로, 이런 신체조건을 가지고 태어날 수 있는 행운이 주어진다면 그때에도 또 할 것이다. 발레가 어려운 예술이고 대중들에게 멀리 있는 장르라고 여겨지는 것이 무용수로서는 가장 안타깝다. 현재 슈투트가르트의 수석무용수라는 위치에 있는 것만으로도 큰 행운이다. 무용수로서 상을 받거나, 이런 건 앞으로 춤을 추다보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지 그게 목표가 될 수는 없다. 쉬고 있다 보니 춤을 추지 않는 하루가 지루할 정도로 길다는 걸 새삼스럽게 느낀다. 시즌 중,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고 오로지 춤만 존재하는 일상을 매일 살았다.
 누구나 음악을 듣는 순간, 아무런 이유나 설명도 필요 없이 마음이 움직이고 감동을 받는다. 내 춤이 그런 감동을 줄 수 있었으면 한다. 단지 표면적인 아름다움만 갖춘 춤은 테크닉적으로 완벽할지라도 공허할 뿐이다. 인간의 희로애락과 삶의 단면에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이 내 춤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달되기를, 마음 깊은 곳에서 내가 전달하고자 했던 그것들을 느끼고 얼마만큼은 치유되는 경험을 하길 바란다. 사실 그런 춤을 추기 위해 매일을 살아왔다. 앞으로 경험이 더 쌓이면 좀 더 쉽게 이런 경지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무용수로서, 내 춤으로 더 깊고 넓게 관객들에게 다가서는 것, 그 생각을 하면 앞으로가 더 기다려진다.

 

 
 

에디터_ 손혜정 본지기자 

김나희
월간 <객석> 파리통신원. 파리 제3대학 누벨 소르본에서 언어학을 전공했고, 파리고등사범음악원에서 프랑수아즈 티나(피아노)를 사사하며 음악이론과 음악사 디플롬 학위를 받았다. 파리국립음악원 바로크 음악학부에서 쳄발로와 바소 콘티뉴오 과정을 마쳤고 현재 파리 2대학 팡테옹 아사스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있다.
2013. 04.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