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대구, 전국무용제 들여다보기
권옥희_춤비평가

‘춤은 대구로, 꿈은 세계로’ 대구에서 개최된 28회 전국무용제(대구문화예술회관 및 대구일원, 9월 26일~10월5일)의 슬로건이다. 그동안 전국무용제는 ‘지역무용의 균형과 발전이 목표’라는 한국무용협회의 사업 취지가 무색하기 짝이 없는, 전혀 균형적이지 않은 작품수준은 차치하고 해마다 경연결과에 따른 공정성시비와 상금에 따른 잡음 등으로 그 폐해가 적지 않은 무용제였다.  왜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지 궁금했다. 때마침 가까운 지역이라 전체행사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만약 지역예선이 공정했다면 경연을 거쳐 올라온 단체의 수준이 곧 그 지역의 수준일 것이기에 전국의 춤 수준을 가까이에서 가늠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결과, 우선 작품의 수준에 있어 지역의 편차가 없지 않았다. 지역의 춤을 폄하할 생각은 없으나 몇 작품은 아직 20세기에 머물러 있었다. 몇 번의 클릭으로 세계예술의 흐름과 정보를 볼 수 있는 시대다. 교육 문제인지, 개인의 예술적 소양문제인지. 안무자에게 힘든 현실(인적 배경, 재정, 무용수 등)은 있어도 예술적 영감이 불가능한 불모의 상태, 고정된 삶은 없다. 안무자가 보는 것이 소재이고, 현실이고, 뉴스다. 그것이 안무자의 의식이다. 이러한 의식이 없거나 혹은 의식이 자는 중이거나 지극히 우발적인 이미지에만 천착하는 기술만 배운 이들을 창작하는 안무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한국의 발레를 세계로, 세계의 발레를 한국으로

사전축제행사인 ‘2019 월드발레스타 갈라’(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 9월 24일)는 무용수들의 기량과 연기가 ‘월드발레스타’라는 타이틀에 채 못 미치는, 다소 아쉬운 무대였다.  <해적> 그랑파드되와 <돈키호테> 그랑파드되를 춘 헝가리국립발레단의 타티아니 멜릭과 파트너 박티아르 아담잔은 나무랄 데 없는 기량과 연기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해적>에서 훌륭한 연기와 춤기량이 빛났던 아담잔이 <돈키호테>에서 체형에 가려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빛나지 않은 점이 아쉬웠다. 파트너인 발레리나 타티아니 멜릭은 두 작품에서 모두 안정적인 기량과 좋은 연기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헝가리국립발레단 〈해적〉 그랑파드되 ⓒ전국무용제




 반면 <오네긴> 그랑파드되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로레타 서머스칼레스(뮌헨주립발레단)의 불아정한 발목은 <백조의 호수> 3막 그랑파드되에서 많이 흔들리며 푸에떼 32바퀴를 간신히 소화 해냈다. 그런가하면 파트너 디미트리 비스쿠벤코는 그랑 제떼 턴을 도는 중 슈즈가 무대 위를 날아다니는 등 ‘세계발레스타’라는 이름이 민망한 수준이었다. 볼쇼이 발레단의 니나 캅초바와 알렉산더 볼치코프가 춘 <잠자는 숲속의 미녀> 그랑파드되와 <황금시대> 이인무는 대체로 무난한 연기였다. 더불어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의 창작발레 프로그램 배치는 적절했으나 <춘향> 파드되를 춘 유니버설발레단의 홍향기와 이동탁의 춤은 마치 시든 꽃(사랑)같아  아름답지 않았다. 강효영의 〈요동치다〉는 작품과 군무진의 춤 모두 평이했다.

 모처럼 지역 발레애호가들에게 클래식 발레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기회로 관객들의 호응으로 뜨거웠으나 무대를 지켜보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뮌헨주립발레단 <백조의 호수> 3막 그랑파드되, 유니버설발레단 <춘향> ⓒ전국무용제



국립발레단 <요동치다> ⓒ전국무용제


 



전국무용제 대통령상이 궁금하지 않는 이유

팔공홀에서 
8일간 펼쳐진 전국 16개 시 도 대표의 본 경연작품 중 충남의 ‘프로젝트 넘버’의(안무 차종현)의 〈삼탄〉(동상)은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현대무용 팀으로 같이 동상을 수상한 경북의 〈hold on to me〉와 금상과 안무상을 모두 가져간 대구의 〈Unspoken〉(안무자 권효원)의 작품 수준과 예술성 여부, 심사결과 여부에 관한 적절성 여부는 평가를 이미 받은 작품이기에 이 지면에서는 거론하지 않겠다. 인천광역시의 이데아 댄스컴퍼니의(안무자 김주성) 〈화류춘몽〉(동상)은 영화 연출 기법을 차용, 예쁘게 포장하였으나 안무자의 역행하는 춤 의식과 시대의식이 매우 유감인 작품이었다. 




프로젝트넘버 〈삼탄〉 ⓒ전국무용제

 

쇼타임댄스프로젝트 〈hold on to me〉 ⓒ전국무용제

 

권효원&CREATORS 〈unspoken〉 ⓒ전국무용제




 대통령상을 받은 광주의 비상무용단의(안무 박종임) 〈펜로즈의 시계〉는 ‘전국무용제’의 수상을 염두에 둔 맞춤 작품으로, 대통령상을 가져갈 것이란 말들이 무성했다. 흥미로운 말이었다. 이 말은 곧 ‘전국무용제’가 선호하는, ‘전국무용제’만이 가지고 있는 심사기준이 있다는 의미와 같다. 정말 그런 작품의 형태가 있기나 한 것인지. 이상하고 궁금했다. 아니면 누군가 전국무용제 심사위원들의 수준(기호)을 간파하고 있거나.




비상무용단 〈펜로즈의 시계〉 ⓒ전국무용제




 “당신들이 얘기하고 있는 것은 오직 돈과 경제발전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이라는 옛날이야기 뿐이에요. 부끄럽지 않은가요!” 지난 9월 23일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스웨덴의 소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말한 내용이다. 지구 환경 문제에 이렇다 할 공헌을 못(안) 하고 있어 나는 부끄럽다.
 이번 무용제에 두 편(부산과 강원도)이 지구 환경문제를 들고 나왔다. 부산 대표의 한국춤모임 짓(안무자 배정현)의 〈푸른 점, 취한 꽃〉과 강원도의 최혜선다댄스컴퍼니(안무자 최혜선)의 〈검은 숲-깊은 잿더미 희망의 씨앗〉. 두 작품 모두 주제를 디자인한 선명하고 아름다운 영상이 감각적이었다. 심사위원장(안병주)이 앞으로 춤이 나가야 할 방향이라고 언급하였으나 두 작품 모두 수상권에 들지 못했다. 분별 있는 평가였으면 했다. 수상자 발표를 듣고 있자니 우울했다. 이래저래 부끄러웠다.




 

한국춤모임 짓 〈푸른 점, 취한 꽃〉 ⓒ전국무용제



최혜선다댄스컴퍼니 〈검은 숲-깊은 잿더미 희망의 씨앗〉 ⓒ전국무용제




 개념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 개념을 문제 삼게 되면 다툼과 혼란이 생긴다. 공정이 뭔지, 양심이 뭔지, 더 나아가 책임이 뭔지. 어디까지가 공정하고 어디부터 공정하지 않은지 말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쉽지 않다고 해서 말할 때가 되었는데도 말하지 않는 것 또한 쉽지 않다.

해서 말하기로 한다.  

 심사위원은 대상이 아니라 주체다. 완벽한 심사는 없다. 따라서 완벽하게 공정한 결과도 없다. 불완전함을 인정한다. 어쩌면 모든 경연과 심사는 특별한 조건에서만 잘 작동하는 체계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것도 폐쇄적인 심사위원들의 사고 속에서만 작동하는 체계 말이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들의 머릿속에서 공정했노라고 고집할 것이다. 검증할 길도 없다. 스스로들 양심에 맡길 수밖에. 

 그리고 공정한 결과는 심사위원뿐만의 문제가 아니라 무용제를 둘러싼 모든 이들의 역량과 사회적인 감수성 문제다. 우려겠지만 우선 이 영역에 무용제를 주관하는 지부는 물론 한국무용협회 집행부가 관여할 모든 여지를 차단하여야 한다. 

관점을 바꾸면 다르게 할 일이 바뀌고 무용 생태계도 나아진다.
 ​무용계(제)에 필요한 건 무엇일까. 김종덕(전국무용제 예술감독)이 올해 전국무용제 및 ‘무용역사기록학회’ 심포지엄(대구문화예술회관 비슬홀, 10월3일)에서 발제한 “지역무용의 활성화를 위한 전국무용제의 역할과 위상 제고”을 보면 2018년 ‘전국무용제의 변화’된 항목 중에 ‘평가는 더 공정하고 엄격하게 개편’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어떻게?  내용을 들여다보니 ‘전문심사위원과 시민심사위원’의 공정한 평가를 더 했다고 밝히고 있다. 지난해, 일회성에 그친 것인지 대구에서는 ‘시민심사위원’제도를 볼 수 없었다. 시민심사위원 제도는 먼저 심사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경연작품을 모두 봐야한다는 전제가 마련되어야 한다.  ‘창작산실’ 쇼케이스처럼 시민심사위원제도를 작동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 협회가 바라마지 않는 ‘무용가들에게 긍정적인 인식과 작품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려면 공정한 평가가 우선이다 



춤은 대구로, 꿈은 세계로

성공적으로
잘 치른 행사였다. 2년에 걸쳐 전국무용제 대구유치와 성공을 위해 두 차례의 ‘아트포럼’을 열고 여론을 수용하면서 적극적으로 대구시의 지원과 협조를 얻어낸 점. 시민들이 춤을 더 많이 향유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사전행사를 기획 실행하였다는 점 등은 무용인들도 치밀하게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는 예술인들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준 점에서 고무적이었다. 대구시지회 강정선회장은 학연, 지연으로 관계망을 형성하는 게 자연스러운 장년 세대여서 행사에 기여한바가 크다. 예컨대 ‘구청장의 날’을 정해 개폐막식을 포함, 열흘간 팔공홀(966석)을 찾은 시민관객들이 춤 감상은 물론 타 지역에서 온 팀을 박수로 응원하고 격려한 점 등은 강정선회장이 책임을 다한 성과다. 동시에 대구무용계 내부 문제(두 세력으로 나눠진 무용인들의 반목)로 야기된, 무용제를 훌륭하게 치러내기 위한 연대와 협력이라는 가치를 훼손한 것에 대한 추궁 또한 아프게 견뎌야 했다.

 모든 게 관행으로 점철된 무용계의 행사(공연) 조직을 혁신한다는 큰 꿈의 시작점을 또 지나쳤을 지도 모른다. 세상은 가난만큼 무서운 게 없고, 대구시지원금은 행사를 원활하게 치러낼 수 있는 밑거름이었지만 반목을 불렀다. ‘24년만의 대구개최’라는 슬로건으로, 시로부터 적지 않은 지원금(9억)을 받으며 지역의 언론매체로부터 스포트라이트와 지탄을 동시에 받았으니, 대구시민들과 무용계에 어느 정도 예술적 기여와 명예회복을 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대구시지부는 최선을 다한 듯싶다. 지원금이라는 게 창작비에 주는 소액이 아니다보니 ‘실패해도 괜찮으니 너희가 하고 싶은 해보라’고 하진 않을 터. 무엇보다 자신이나 단체를 위해 세금이 쓰인다는 것을 끝까지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한국무용협회는(지부를 포함하여) 누군가가 경고를 들어야 한다고 촉구한다고 해서, 그가 자신들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까지 알려주리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 목소리는 다만 자신들이 지금 어떤 난관(오류)에 빠졌는지 알게 도와줄 뿐이다. 그 말에 귀 기울이되, 그 말은 완전히 중립적이지도, 어느 한 쪽 편이지도 않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의 사고지평을 넘어 사고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분명한 것은 우리 무용계 전체에 춤에 대한 새롭고 자유로운 무용제의 기획과 실행을 제시 촉구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된 말이라는 것. 

 앞으로 한국무용계를 비롯하여 대구무용계의 과제는 지금 젊은 세대가 각자도생하는 사회 속에서 어떻게 고군분투하는지, 한번 실패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은 사회에서 실패해도 괜찮은 기회를 얻는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좀 더 세심하게 젊은 세대를 살피고 그들에게 중책을 맡기는 등 인재를 키워내야 한다. 동시에 과거의 청년 세대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지금의 젊은 예술인들을 실오라기만큼이라도 고르게 신경 쓰고 있다는 신호를 줘야 하고 젊은 무용가들은 이를 잘 포착하여야 한다. 

 언제쯤이면 무용인들에게 좀 잘하자는 필요성을 애타게 설명하지 않아도 될 때가 올까.

권옥희

문학과 무용학을 전공했다. 자유로운 춤, 거짓말 같은 참말로 춤이 춤으로 진실(춤적 진실)을 말하는 춤을 좋아한다. 스스로 자유로워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춤을 만드는 춤작가와 무용수들을 존경한다. 대구, 부산 공연을 많이 보고 있다.​ ​ ​ ​ 

권옥희_춤비평가
사진제공_전국무용제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