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자유의 황홀함을 완성한 춤꾼 김선미
이지현_춤비평가

 그렇다, 그의 춤을 한마디로 한다면 그건 ‘황홀함’일 것이다.
 춤은 어느 예술보다 화려하지만, 빛이 들어오고 음악이 흐르며 펼쳐지는 모든 춤들이 황홀함을 안겨주는 건 아니다. 그리고 황홀함은 매우 자주 화려함과는 먼 곳에서 탄생한다.

 내가 비평가가 된 후, 비평가의 평정심을 잃는 기쁨을 준 몇 안 되는 작품을 보여준 춤꾼이 바로 김선미 선생이었다. 2009년의 〈볼레로〉는 유방암을 한차례 극복하고 하얘진 머리를 커트로 자른 채 흰색 의상을 입고 정말 딴 세계 사람으로 환생한 듯, 춤 매에서나, 춤을 대하는 자세에서나, 춤사위 자체에서 전혀 다른 경지의 ‘홑 춤’을 보여주어 객석을 황홀하게 만들었다. 그 춤을 본 대다수의 관객이 황홀함에 전율하다가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던 것은 가벼운 안쓰러움이 아니라, 병을 통과하며 새털처럼 가벼워진 몸이지만 병에 눌린 기색 없는 그 허허로움으로 자유 그 자체가 되어버린 그런 춤을 만났기 때문이고, 그 시간을 통과하며 인내로 빚어진 김선미의 진정한 문양(紋樣)이 드러난 춤이었기 때문이다.




김선미 〈볼레로〉




“저는 40년 이상 춤이 좋아서 춤만 춰온 춤바람 난 여자입니다.
매일 용서하며, 사랑하며, 감사하며,
욕심 없이 즐겁고 자유롭고 유려하게
저절로 추는 춤을 추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춤꾼인 나는 춤으로 업을 풀어야 했습니다.
난 오늘도 춤을 춥니다.
무엇보다도 자타가 인정하는 춤꾼 김선미라는 호칭을 받고 싶습니다.
누군가 제 작품을 보고 ‘정말 춤 잘 추더라’ 하면 정말 행복합니다.
앞으로도 행복하게 어디선가 또 춤을 추고 있지 않을까 합니다.
춤바람 난 김선미, 못 먹어도 고다. 가자! 김선미“
(2017년 9월 21일 연습실에서, 춤출 때 제일 행복한 김선미)

 그의 부고는 이 문자와 함께 왔다. 당신이 원하는 것이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드러낸 이 글은 단지 부고와 함께 와서라기보다는 그 솔직함에 몇 번이나 반복해서 곱씹게 만들었다. 내 첫 기억에 남은 생머리를 전부 뒤로 빗어 하나로 묶은 머리로 평소의 말이 없고 자잘한 것에 연연해하지 않는 성정처럼, 춤에 잔 기교를 부리려고 하지 않고 땅에 박은 듯 단단한 하체의 사위를 중심으로 자기만의 힘 있는 춤을 추었던 그 시절의 〈공으로 돌지(1985)〉, 춤에 대한 깊은 애착과 그 애상을 담은 〈추다만 춤(1992)〉의 하얀 가루가 흩날린 후 남은 여운, 그 이후 작품세계에 매우 뚜렷하게 남은 ‘달의 세계’ 즉 보이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陰의 세계와 그 그림자, 여운에 대한 깊이있는 작품들…. 그간의 행보의 근저에서 만나는 춤꾼 김선미의 묵묵함과 단단함은 몇 줄로 드러낸 앞의 매우 귀한 속내에서도 드러나듯이, 그 모든 것을 삼켜 용서하고, 사랑하고, 감사하며 오로지 춤으로 바꿔낸 그녀의 연금술의 뜨거운 연료였던 셈이다.




  

김선미 〈달하〉 2018. 6. 남산컨템포러리





 2019년 마스크와 장갑을 끼고 할 수밖에 없었던 한예종 무용원 1학기 수업을 마치고, 가을부터 병세가 악화되어 병원을 드나들 무렵에도 선생의 춤을 좋아하는 화가 김연주씨의 전시회를 맞아 기획한 김선미, 김재철, 김연주의 〈3 Artists Collabo 시간여행〉 (2019. 10. 26. 종로구 갤러리FM) 공연이 그녀의 마지막 공연이었다. 이미 복수도 꽤 차있었고 보통 사람이라면 와병해야 할 상황이었음에도 거의 초인적으로 공연은 성사되었고 그 공연을 김연주 화가는 이렇게 기억한다.
 “팔다리 움직임이 어눌하여 춤을 출 수 있을지 공연 전날까지 걱정하셨습니다. 그렇게 힘드신데 춤을 추시냐고 춤추다 쓰러지면 어쩌나 콜라보 하는 입장에서 혹여라도 몸 상하실라 조바심이 여간 아니었는데, 김선미샘 언젠가 하시던 ‘춤꾼이 춤추다 무대에서 쓰러지면 그보다 영예로운 일이 어딨겠냐’는 말씀이 생각나 조심스레 선생님 호흡에 따랐습니다.
 무대가 전시장인 관계로 선생님 열렬한 팬들과 가까운 지인들이 모였고, 벽에 걸린 제 그림과 김재철 선생님의 연주, 그림 보러온 관객들 사이에 깡마른 모습의 선생님 춤사위는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운 몸짓이었습니다. 전혀 멋지지도 힘이 넘치지도 않은 꾸미지 않은 순수 자연바람처럼, 아이의 몸짓 같은, 훌훌 모든 걸 비워낸 도인의 그 무엇처럼 인연의 실타래를 김재철 선생님의 고요한 선율에 맞춰 풀어내는 모습이 공간속에 그림, 춤, 관객들을 완벽하게 하나로 묶어 사랑과 감동의 시간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마지막 불꽃을 혼신을 다해 피워낸 선생님의 춤사위는 가슴 저 밑바닥까지 울음으로 씻어주는 치유의 시간이었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천상의 춤꾼 김선미 선생님답게 하늘로 돌아가 그곳에서도 훨훨 자유롭게 유영하듯 거듭 나시길…. 사랑합니다 선생님!”(해아 김연주 화가의 문자 메시지)




  

고 김선미 선생 빈소




 구정 연휴가 시작된 지난 1월 24일, 새벽부터 시작된 발인식에 유가족과 친지, 그리고 와병기간 동안 정성으로 함께했던 창무회와 제자들이 함께 했고, 세브란스를 나선 고인의 장례행렬은 화장장으로 가기 전에 포스트극장에서 가볍게 노제를 치뤘다. 30년 가까이 짧지 않은 세월을 드나들었을 창무 포스트극장의 지하계단, 선생의 춤추는 모습과 중첩되는 딸이 들고 있는 영정 속의 모습, 여느 공연에서처럼 김재철 악사의 이끎에 몸을 맡겨 영정이 포스트극장 무대의 중앙에 섰다. “저절로 추는 춤을 추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는” 선생은 기도는 또다시 시작된 듯하다. 그 기도를 마치고 선생은 “언제 어디서라도 행복하게 추고 싶었던” 그 춤을 추기 시작했고, 우리 모두는 침묵으로 그 마지막 춤을 지켜보았다.
 창무예술원과 창무회의 예술감독 김선미 선생은, 허리가 세워지고 팔다리가 움직일 때까지 춤을 추었던 그의 몸은 이제 작은 함에 놓여 해가 잘 드는 따사로운 납골당에 안치되었다.




 




 병 때문에 춤출 수 없어 안타까웠을지언정 병에 춤을 양보하지 않았으며, 병을 내 몸의 일부로 끌어안고 춤을 추었을지 언정 춤의 길을 막게 하지는 않았던 그 단호함,
 가녀려 약한 듯 하나 춤을 추지 못하게 하는 것들을 스스로 모두 막아내고 걸러냈던 철저함,
 말하지 않아 모두 알아채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으나 말없음 끝에 드러난 모두를 놀라게 한 자유의 황홀한 문양.
 선생의 춤은 어느 무엇도 막을 수 없는 그런 춤으로 세상에 남았다.
 세상 모든 것에 신기해하며 풀잎을 건들고, 흙 땅을 살포시 밟던 〈볼레로〉의 그 황홀한 춤처럼, 선생의 춤은 삶과 죽음 밖에 서서 서툰 우리의 울음을 막으며 우리를 보고 추어지고 있다.
 

(2020년 2월 23일, 오후 4시 포스트극장에서 고 김선미 창무회 예술감독의 추모모임이 있을 예정이다.)

 

이지현

춤전문지의 공모를 통해 춤비평가로 등단했다. 2011년 한국춤비평가협회의 정회원이 되었으며, 최근 비평집 『춤에 대하여』를 출간했다. 현장 춤비평가로 왕성한 비평 작업과 함께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강사, 서울무용센터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 ​ ​ 

2020. 2.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