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정영만과 남해안별신굿보존회 무관
교방춤과 무속춤의 외연을 넓힌 굿춤 한 판
김영희_전통춤연구가


 남해안별신굿의 예능보유자 정영만과 남해안별신굿보존회가 남해안별신굿에서 추는 춤들을 모아 6월 17일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 수요춤전에 춤으로 굿판을 벌였다. 제목은 ‘정영만과 남해안별신굿보존회 무관’. 무관은 남해안별신굿에서 춤을 뜻한다고 한다. 이 공연은 무속춤의 또 다른 양상을 재발견한 기회였다.




 남해안별신굿은 경남 통영을 중심으로 남해안 일대 농어촌에서 지내는 굿으로, 1987년 중요무형문화재 82-4호로 1987년에 지정되었다. 예능보유자 정영만을 중심으로 그 자녀들과 제자들이 통영 인근 남해안 일대에서 행하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굿판에서 추는 춤들을 추려내 <혼맞이굿>, <올림무관>, <통영진춤>, <승방무관>, <용선놀음>, <송신굿>을 올렸다.
 대금 소리로 굿판이 시작되었다. 남해안별신굿에서 대금은 특별한 역할을 한다. 곧 모든 굿이 대금 소리로 시작하고 끝맺는다. 대금 소리가 정신을 깨우듯 사람을 부르듯 울렸고, 정영만의 구음 소리에 객석에서 길베를 펴들고 등장한 승방들이 무대에 오르자 <혼맞이굿>이 시작되었다. 신을 무대로 모시기 위한 굿이며, 승방이란 여자 무녀를 말한다.(굿에 참여하는 남자 악사는 ‘산이’라 한다.) 이 공연의 승방은 이수자 이선희, 전수자 공임정, 심민서, 하선주였다. 무대를 가로지르는 길베를 두 승방이 양 끝에서 잡고 주무 승방인 대모가 무가를 부른다. 또 다른 승방은 신이 좌정한 신광주리를 길베 위에 띠워서 어른다. 무가가 끝나자 대모가 신광주리를 받아들어 춤추고, 길베를 양팔 길이로 접어들어서 간단하게 춤추었다.




 다음은 <올림무관>이다. 남해안별신굿에서는 큰 굿에서 주신을 모시기 전에 굿청의 부정을 가시기 위해 이 춤을 춘다고 한다. 부정을 치는 춤이다. 가운데 한 명의 주 승방과 좌우에 보조 승방이 벌려 서서 춤추었다. 손에는 신칼을 들었는데, 승방들은 신칼에 매달린 가늘고 긴 지전을 날렵하고도 흩뿌리듯 장단에 맞춰 휘둘렀다. 무심한 듯 휘두르는 신칼의 지전놀음에 약간의 중독성이 있었으며, 마지막에 어지럽게 휘두르지만 장단과 들어맞는 신칼놀음이 인상적이었다. 신칼이 다른 지역 굿에서 사용하는 것과 달랐으며, 신칼의 놀림도 독특했다. 원래 독무로 추지만, 이날의 춤판을 위해 3인으로 구성했다고 한다.
 그리고 <통영진춤>이 이어졌다. 사투리로 진춤은 긴 춤이란 뜻이다. 일종의 수건춤이며 허튼춤이다. 붉은 치마에 녹색 저고리를 입었고, 수건을 목에 두르고 등장해 좌우로 인사를 하는 듯 하고 손춤을 춘다. 팔을 들어 손을 턱 놓고 내려놓은 손을 땅에 꽂는 듯하다. 굿거리 끝 무렵에 목에 두른 수건을 꺼내 앞으로 길게 드리운 후에 엎드린 자세에서 수건을 들고 춤추다 일어난다. 수건을 기교적으로 놀리지 않고 그냥 들고 추거나 위로 뿌려 늘어뜨린다. 잦은모리 대목에서 수건을 아래로 늘이고, 수건을 기둥삼아 한 바퀴 돌더니 사방으로 뿌렸다 모았다 한다. 마무리는 다시 굿거리장단으로 돌아와 수건을 짧게 접어들었다가 머리 뒤에서 길게 뒤로 늘어뜨리고 어깨에 걸치고 앉아서 절을 한다.




 <승방무관>은 이번 공연에서 초연되는 춤이라 했다. 굿에서는 천왕굿이나 탈놀이에서 추며, 독무나 2인, 3인으로 추기도 하는데, 이 날은 네 승방이 좌우로 갈라서 마주보며 추었다. 무복 위에 흑장삼과 흰 고깔을 썼으며, 고깔 위로 비녀를 꽂았다. 초반에 대금의 청아한 소리가 있었고, 영남풍류가락을 바탕으로 가락이 다양하게 변화한 점이 특이했다. 염불에서 바닥에 납작 엎드려 춤이 시작되었고, 일어나서 짧막한 무가 소리를 했다. 느린 타령이 지나자 장삼을 벗고 진쇠를 들고 치면서 좌우로 디딤하며 맞춤을 추었다. 마주보거나 등지기도 하고, 저정저정저정 장단에 진쇠를 손에 든 채 춤추기도 했다. 끝 무렵에 합장하며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고 굿거리 장단으로 몇 장단 춤추고 맺었다. 무속과 불교와 교방춤이 섞인 듯하였고, 장단 변화도 다양했다.




 <용선놀음>은 오른손에 부채, 왼손에 넋전이 달린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든 승방과 용선이 등장한다. 간단한 극(劇)적 구성이 있어서, 산이가 “용선아 ~ ” 하고 부르자 용선이 등장했다. 용선은 배 모양 같기도 하고 거북선 모양 같기도 한데, 앞에는 용의 머리가 붙었고, 가운데는 작은 누각이 올려져 있다. 배의 둘레를 꽃으로 장식하고, 속에 연희자가 들어가 춤추었다. 승방과 용선이 대무를 하듯, 승방이 손을 들자 머리를 치켜들기도 하고, 어깨를 맞대고 춤도 춘다. 용선이 실컷 놀고나서 퇴장했는데, 산이가 제 흥으로 춤을 추자, 다시 등장하여 산이의 진쇠를 입에 물고 극적 상황을 연출한다. 다시 용선을 달래기 위해 상황극이 벌어지고 관객들에게 노자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모님을 불러 한 번 논 후 다시 퇴장하며 끝이 났다.
 <용선놀음>이 끝나자 자연스럽게 뒷굿으로 이어졌다. <송신굿>은 무복을 벗고 흰 치마저고리에 솔가지를 든 승방들이 나와 무가를 불렀다. 굿판에 온 관객들의 명과 복을 빌고 흥을 돋우는 판이었다.
 그렇게 춤으로 벌린 굿판이 끝났다. ‘정영만과 남해안별신굿보존회 무관’의 공연은 서울에서 보기 드문 남해안별신굿의 일면을 보여주었으며, 그중에서 춤 즉 무관을 중심으로 모아봤다는데 의미가 있었다.
 춤들은 경상도 춤사위의 특징을 보여주었다. 호흡을 내려놓는 손사위라든가 손바닥을 보이며 추는 대목이 많았으며, 동작이 복잡하지 않았다. 굴신이 많지 않았으며, 전반적으로 단아하고 담백했다. 연풍을 돌때는 무속춤답게 모두 시계방향으로 돌았고, 춤은 무속 굿 장단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이 춤판에서 주목한 춤은 <통영진춤>과 <승방무관>이었다. <통영진춤>은 살풀이춤 내지 수건춤의 시야를 한층 넓힌 춤이다. 붉은 치마에 녹색 저고리를 입고, 수건을 들고 추며, 시작에는 서서 끝에서는 앉아서 절을 하는 방식이라든가, 허튼춤으로도 추었다는 점이 교방춤적 특징과 살풀이춤의 특징을 모두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연풍은 시계 방향으로 돌았다. 1895년에 통영교방청이 해체되고 신청(神廳)으로 통합되면서 무속 예능과 기생들의 가무가 상호 습합되면서 추어진 듯하다.

 <승방무관>이란 춤도 색다르고, 승무 내지 무속의 진쇠춤의 다양성을 볼 수 있는 춤이었다. 우선 장삼을 입고 춘다던가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한 점이 그러하며, 북이나 바라가 들어오지 않고 진쇠를 들고 쳤다는 점이 그러하다. 무속과 불교가 탄압받으며 교합했다고 하는데, 이 춤이 추어지는 굿거리 전체 속에서 본다면 춤의 연원이나 특징을 좀 더 알 수 있을 듯하다.
 남해안별신굿의 춤과 춤가락들은 다른 굿춤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은 편이다. 전라도 씻김굿이나 동해안 별신굿 사이에서 크게 조명되지 않았으나, 통영 지역의 특성상 교방이나 군영과의 관계 속에서 남해안별신굿이 독특한 춤 유산을 갖고 있으리라 본다. 이번 공연은 춤만 떼어내 보았다. 하지만 이 춤들이 각 굿거리 과정에서 추는 모습을 본다면 남해안별신굿 굿춤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더욱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2015. 07.
사진제공_국립국악원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