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제5회 대한민국 발레축제
축제 운영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문애령_무용평론가

 2015년 6월 4일부터 6월 28일까지 예술의전당에서 제5회 대한민국 발레축제가 열렸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축제이니 당연히 멋진 작품에 기뻐하는 다수의 관객이 연상되나 그런 이상적인 광경은 보기 어려웠다.
 “발레의 저변확대와 창작욕구 고취, 레퍼토리 개발”을 목표로 하는데, 이번에는 후자 쪽에 지나치게 기운 행사가 되고 말았다. ‘저변확대’는 대중에게 인기 작품을 제공할 때 얻을 수 있는 효과고, ‘레퍼토리 개발’은 전문가 집단의 실험적 반복을 전제로 한다. 이 두 가지 목표는 관객과 전공자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는데, ‘대한민국 발레축제’는 아무래도 대중적 취향을 보다 중시해야 할 행사다. 창작 무용가들이 지속적으로 활동하기 어려운 현실이고, 창작 레퍼토리 축적도 중요하지만 이 축제의 가치와 매력은 최고 수준의 고전에서 찾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올해는 전문단체들이 모두 야외공연에 배정되었고, 그나마 날씨 탓에 계획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오페라극장에서 6월 24일부터 28일까지 공연한 국립발레단의 <백조의 호수>가 아니었다면 축제명과 크게 동떨어진 행사가 될 뻔했다. 일 년에 한 번, 유명단체의 작품들을 저렴한 가격에 연달아 제공한다면 모두가 이 축제를 기다리게 될 것이다. 그럴 리는 없지만, 매년 같은 작품을 한다 해도 나쁘지 않다. 수십 번 봐도 다 다른 그 묘미를 대중이 알면 안 될 이유가 없다.




 6월 4일, CJ토월극장에서 축제 개막을 기념한 김용걸댄스시어터의 <인사이드 오브 라이프(Inside of Life)>는 새로운 동작 생성을 위한 안무가의 노력과 출연진의 통일된 기량이 돋보였다.
 6월 7일 공연한 박상철발레단의 <오텔로>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요약해 한 번은 언어로, 다시 한 번은 발레 동작으로 설명한 구성이다. 같은 날 공연한 최소빈발레단의 <레가토>는 ‘사의 찬미’를 부른 윤심덕의 사랑이야기를 영상, 노래, 춤으로 묘사했다.
 6월 11일에는 김길용 와이즈발레단과 서발레단이 공연했다. 와이즈 발레단은 노래나 대사, 탭댄스에서 힙합까지를 자유로이 수용하는데, 이번 <먼 옛날 발레에서(Once upon a time in 발레)> 역시 유사한 연출이다. 서미숙의 <아 따블르>는 ‘식사하시오’란 뜻이다. 한 여성을 식탁에 올린 안무자는 인간의 욕망을 전채 요리, 주요리, 후식 등과 비교했다.
 6월 14일에 공연한 백영태 발레류보브의 <데미안>은 소설 주인공의 심리를 묘사하는데 집중했고, 김선수의 <춘향>은 판소리로 차별성을 강조했다.




 토월극장 공연은 모두 한 번에 불과해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웠다. 동원된 관객이 많아 가족잔치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고, 대규모 대학생 군무를 활용한 몇 작품은 대한민국발레축제가 아니라 대학무용축제 분위기를 만들었다. 기교상의 부족함도 문제지만 아라베스크 라인을 골반에서 비틀거나 발목 힘을 빼는 방식으로 다리 선을 길게 만드는 구태는 정직한 훈련보다 손쉬운 속임수를 교육한 결과로 보여 착잡했다. 예외적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은 무용축제 수준을 격하시키지 않는다. 결국 문제는 신분이 아니라 수준이니 작품 선정에 이 점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 또한 “발레를 보러왔는데 토슈즈조차 구경할 수 없다”는 일반 관객의 의견 역시 참고할 사항이다. 이 무대는 발레감상 교육장이 아니다. 이미 검증된 최선의 작품을 제공한다는 서비스 정신이 없다면 관객 저변확대는 공염불에 불과하다.




 자유소극장 공연은 6월 17일에 시작했다. 유회웅의 <비겁해서 반가운 세상>은 작년에 호평 받았고, 그에 대한 일종의 부상처럼 이번에 단독무대가 주어졌다. ‘발레’의 특징을 잃지 않으면서도 소품 활용이 창의적인 모범적 사례다.
 6월 20-21일에는 김지안과 최진수가 각각 <악마의 선율 파가니니 Ⅱ>와 <새장의 시선(The eyes from a cage)>을, 6월 24-25일에는 고현정과 김성민이 각각 <코나투스; 존재의 힘>과 <변형된 기억>을 공연했다. 동문발레단의 풍성한 인력,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동영상으로 강조한 연출, 운동화를 착용하고 비발디 음악에 도전한 신선함, 무대 변환 활용도가 특히 높았던 구성 등이 차례로 떠오른다.




 대극장 공연이 기존 작품을 잘 다듬은 차원이었다면 소극장 공연은 보다 진취적인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해서 그 작품을 길게 늘려 단독 공연하도록 유도하는 축제 운영에는 문제가 있다. 소품을 발전시켜 대작을 만들도록 하고, 소극장 공연을 대극장으로 이동시켜주는 혜택은 예술적 발상이 아니다. 어린 사람은 소극장, 나이 들면 대극장 등의 구분도 마찬가지다. ‘창작 의욕 고취’는 적절한 극장 배분과 무관하지 않고, 예술 앞에서의 평등을 우선 인정해야 안무 스타를 보다 자연스럽게 배출할 수 있다.
 마지막 슬로건 ‘레퍼토리 개발’은 반복 공연을 전재로 하며, 레퍼토리는 변형보다 보존이 중요한 작품을 지칭한다. 작품의 길이나 무대 공간이 지금처럼 매번 달라져야 한다면 십중팔구는 첫 작품을 훼손하는 차원에서 길을 잃을 수밖에 없다.
 유회웅의 <비겁해서 반가운 세상>은 다행히 원작을 유지한 채 그 뒤에 독자적 장면을 연결해 축제가 원하는 레퍼토리 확보 방식에 성공적으로 적응했다. 작품을 더 길고 더 크게 만들기 위해 안무자는 풍선처럼 부푼 의상을 입고 즐기는 20여 명의 남성 군무를 동원했다. 작품의 미래를 생각하는 사실적 대사와 아마추어 댄서들의 유희가 객석을 압도했다. 하지만 원작을 10분가량 연장시킨 45분 정도의 단독공연은 관객을 당황스럽게 했다. 이 상황에 대해 시간을 채우지 못한 안무자를 탓하기 보다는 원작을 고수하며 황당한 지시에 응한 그의 천재성에 감탄해야 마땅하다.




 창작발레 안무가전처럼 진행된 이번 대한민국발레축제에는 무려 12명의 안무가들이 참가했다. CJ토월극장에서 7개 단체, 자유소극장에서 5개 단체가 명작이 될지 말지 모를 작품을 놓고 고민했다. 서류심사를 통과했다고는 하지만 대중에게 선물할 ‘대한민국 발레’로는 허전함이 없지 않았다. 차라리 초청 방식을 통해 몇몇 창작발레를 소개한다면 레퍼토리가 저절로 확보되는 효과는 물론 안무가들의 지속적인 활동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축제는 조직위원회와 예술의전당이 공동주최하는 행사로 알려졌으나 앞장서 끌어가는 책임자가 없는 것 같다. 목적과 관점이 부각되지 못한, 별로 즐겁지 않은 축제가 시간 따라 흘러간 느낌이 안타깝다.

2015. 07.
사진제공_예술의전당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