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기획연재_ 춤 관찰기: 다시 생각하는 아시아 춤 인프라
인도네시아의 춤 인프라(2)
서정록_춤연구가

학력이 곧 인생을 결정한다는 한국사회는 평생동안 순위를 매기는 것이 너무나도 익숙하고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순위 매기기는 개인의 차원을 넘어 회사는 물론 대학에까지 적용되고 있다. 사실 사람마다 선호하는 대학, 혹은 우수하다고 생각하는 대학은 다 다르기 때문에 어느 대학이 더 좋다라는 말은 성립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부터 평판도 혹은 인지도라는 그리 객관적이지 않은 근거를 가지고 학교의 순위를 매기고 이를 대단한 기사인양 해마다 언론에서 발표를 한다. 여기에 “세계” 혹은 “국제”라는 말이 붙으면서, 한국 사회는 이들 평가 기관들의 평가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학생들을 줄세워 뽑는 한국의 대학들이 ‘세계’대학의 '순위'를 모른 척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전세계에 대학 평가 기관들은 많이 있지만, 특히 한국에서 기사거리가 되는 것은 주로 영국 대학 평가인 QS 세계 대학 순위(QS World University Rankings)이다. QS 세계 대학 순위는 1994년부터 매년 시행한 대학들에 대한 평가표로, 전 세계 대학들의 학사 및 석사 과정에 대한 순위를 매기고 있다. 이 평가 방법도 사실 객관적 지표보다 인지도에 대한 설문조사나 교수 평판도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그런 점 때문에 이런 주관적인 평가요소를 중심으로 대학을 평가하여 그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있다. 여기에 QS 세계 대학 순위를 정하는 영국 고등교육 평가기관(Quacquarelli Symonds)은 세계 여러 대학들에게 순위에 대한 자문해 주는 것이 주된 사업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주식회사이다. 즉 자문과 평가를 동시에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랭킹이 가져다 주는 한국 사회의 파급력은 엄청나다. 때문에 평가 때마다 각 대학들은 모든 자원을 쏟아붓는다. 심지어 2017년 국내 모대학은 평가 자료를 조작하여, 국내외에 큰 무리를 일으키기까지 하였다. 한마디로 대학도 줄을 설 때가 있다는 것인데, 대학평가의 대상이 될 때 대학 역시 평가 받아야 하고, 그 순위에 따라 희비는 매번 엇갈린다.
 그렇다면 춤이 속한 공연예술(Performing Arts) 분야는 어떤지 살펴보자. QS 세계 대학 순위에서 최상위권이라고 할 수 있는 1위부터 10위권의 학교들은 1위인 줄리어드 음대(Juilliard School)와 2위인 영국왕립음악학교(Royal College of Music)를 비롯하여 전부 미국과 유럽 그것도 서유럽에 소재한 대학들이다. 게다가 이들 상위에 위치한 대학들 중 상당수는 무용 전공이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 이런 사실에서 QS 세계 대학 순위는 공연예술 분야에서 서구 중심적이며 음악 중심의 편향된 시각을 가지고 평가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인도네시아 국립 예술 대학교, 족자카르타




 그런데 놀라운 것은 공연예술 분야에서 아시아 권에서 제일 높은 대학은 인도네시아 국립 예술 대학교(인니어: Institut Seni Indonesia Yogyakarta, 영어: Indonesian Institute of the Arts Yogyakarta)로 17위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그 존재조차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인 이 학교가 어떻게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순위에 들 수 있는 것일까? 이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영국 고등교육 평가기관(Quacquarelli Symonds)이 인지도를 중심으로 순위를 매기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에 소재하고 있는 이 대학은 세계 특히 서구사회에서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Yogyakarta)에 소재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국립 예술 대학교는 1984 년 7 월 23 일 인도네시아 국립 미술원(ASRI Arts Academy, 1950 년 설립), 인도네시아 국립 음악원(AMI Music Academy, 1952 년 설립), 인도네시아 국립 무용원(ASTI Dance Academy, 1961 년 설립) 등 3개의 학교가 통합하여 설립되었는데,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큰 예술 대학이다. 이 학교는 현재 11 개의 학과에 세 개의 대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학부에서 박사 과정까지 존재한다.
 이 학교가 아시아 학교들 가운데 QS 세계 대학 순위에서 1위를 한 이유가, 여러가지 자료를 살펴보건데, 사실 이 학교의 학문적 성과나 교원과 학생들의 업적에만 근거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 대신, 이유를 추정해 보면, 역시 인도네시아의 전통예술에 대한 국제적인 인지도에 기인한 것이라 생각된다. 다시 말해서, 그 뿌리에 해외 특히 서구 학계에서 다른 아시아 전통 공연에 비해 비교적 많이 알려진 공연 형식인 가믈란(gamelan, 인도네시아 전통 음악), 와양(Wayang, 전통 그림자 인형극)과 따리(tari, 전통춤)의 오랜 연구와 관심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영국 런던대학교 가믈란 앙상블




 지난 호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인도네시아의 전통 음악인 가믈란은 서양의 클래식 음악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고, 비서구권 음악 중 서양에 가장 영감을 많이 준 음악 양식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인도네시아의 전통 춤들도 루스 세인트 데니스(Ruth St. Denis, 1879 ~ 1968)를 비롯하여 여러 서양의 무용가들이 오리엔탈리즘에 입각해 열심히 모방하였다는 점에서 가믈란의 사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여기에 인도네시아 여러 지역의 다양한 춤은 무용학 뿐 아니라 인류학자들과 민족음악자들의 오랜 연구 대상이었다. 즉 서구 사회에서 인류학과 민족음악의 고전이 되는 연구들의 상당수는 바로 인도네시아 춤과 음악을 사례로 하고 있으며, 이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루스 세인트 데니스와 테드 쇼운 1925년 경




 한편 인도네시아 국립 예술 대학교는 교과과정에서 인도네시아 전통 예술을 상당히 강조하고 있다. 음악전공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가믈란이다. 무용학과의 경우도 이와 다르지 않다. 세부적으로는 현대무용과 전통 춤 실습 및 안무 과정이 있는데, 발레는 교과목에 따로 있지 않다. 인도네시아는 엄청나게 다양한 인종과 문화 종교로 구성되어 있는 나라이다. 그러므로 무용학과의 교과과정은 각기 다른 지역 출신의 학생들은 각자 고유한 전통을 보존하고, 자신의 민족성을 개발하고, 또 다른 여러 지역의 춤과 융합을 꾀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여기에다가 이론과 실기의 조화를 꾀하여, 춤 교과과정은 작품 분석과 창작에 목적을 두는데 창작과 학생들이 자신의 예술 작품을 발표하면, 이론과 학생들이 이 작품을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논문을 제출한다. 다양한 민족 문화의 이해는 궁극적으로 학생들의 예술 작품에 전통에 바탕을 둔 다양한 문화와 사고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창작을 가능하게 한다. 결론적으로, 이 대학 무용학과의 특징은 인도네시아 전통 예술을 중심으로 교과 과정이 짜여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해외에서 온 유학생들이나 교환학생들은 거의 대부분 인도네시아 전통 예술을 위주의 교과목 즉 전통 무용, 가믈란(Gamelan) 코스를 수강한다.




 

교환학생 전통 춤 수업




 이러한 인도네시아 국립 예술 대학교의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대학교를 국제적으로 자신들의 인지도에 맞추어 학교 순위를 매기고, 여전히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적인 시각이나 서구 중심적 사고로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국제 사회도 문제이다. 그렇지만 아무 비판 없이 이를 추종하고 있는 것이 더 문제이다. 부지런하고 근면한 덕분에 몇몇 응용 분야에서 세계에 조금 두각을 나타내긴 하지만, 여전히 맹목적으로 아둥바둥 쫒아가고 있는 현재 우리의 모습은 반성할 필요가 있다. 남의 생각과 전통을 베끼고 답습하기에 급급하기만 하면서, 우리 스스로도 우리의 전통에 대해 등한시 하고 무지한데, 그 누구도 우리를 제대로 평가해 주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가치나 창이적인 발상이 나오기 힘들다. ‘우리 것이 무조건 세계에서 제일’이라는 국수주의적인 발상은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 무지한 것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서정록

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이론과 교수. 태국 Mahidol 대학교 국제대학 강사, 국립대만대학교 초빙교수, 런던대학교 SOAS 연구원을 역임하였다. 한국춤 연구를 통해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및 중앙아시아의 문화 교류에 대한 역사 연구를 하고 있다.​ 

2019. 03.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