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수호의 춤 〈미마지의 무악〉
닮은 듯 이질적인 한일 두 나라의 협업
이만주_춤비평가

 무대 뒤, 배경 영상 좌우에 각각 남자 4명, 여자 4명의 그림이 비추어져있다. 일본 나라현 아스카 촌의 다카마쓰 고분(高松塚 古墳)의 채색벽화다. 영상 앞에 실제 무용수 남녀 각 4명이 서있다. 이윽고 그들이 무대(무덤) 중앙으로 나와 춤춘다. 영화에서의 디졸브(Dissolve) 기법 같아 흥미롭다.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으로 2015년 8월 6일 저녁,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된 2015 국수호의 춤, <미마지(味摩之)의 무악(舞樂)>은 공연의 앞, 1부 순서로 사쿠라마 우진(櫻間右陣)의 노(能) <이즈츠(井筒)>가 곁들여졌다. 1,400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미마지 춤의 세계를 본다는 것과 한국의 국립극장 무대에서 일본 전통예술의 대표격인 노(能)의 공연을, 그것도 노의 사쿠라마가(櫻間家) 21대 당주(堂主)의 연희를 본다는 것은 의미있는 기회였다.




 공연이 시작되자 가가미이타(鏡板․경판)라는 소나무 영상을 배경으로 무대 뒤쪽에 북, 피리 등으로 반주를 하는 악사들인 하야시카타가 앉고, 객석에서 보아 무대 오른쪽에 일종의 코러스라 할 수 있는 여섯 명의 사람과 극의 주제와 진행과정 등을 노래로 설명하는 한 명의 사람으로 이루어진 지우타이(地謠․지요)가 좌정했다. 연희는 여자의 가면(女面․온나멘)을 쓴 시테(‘노’의 주역) 홀로 하는 셈이었다. 일본 전통공연예술에 익숙치 못한 우리에게는 ‘노는 보행의 예술’이 맞다고 할 정도로 연희가 걷는 동작으로 보였다.
 ‘노’에서는 모든 동작이 형(型․가타)으로 유형화되어 있다. 즉 우는 동작, 기쁨, 노여움, 달을 보는 동작, 잠을 자는 동작 등이 일정하게 정해져 있다. ‘가마에’라고 서 있는 자세가 가장 기본적인 동작인데 여성, 남성, 귀신 역할에 따라 조금씩 미묘하게 다르다. 가면음악극, 가면무도극, 가면음악무용극 등 여러 종류의 이름으로 불리어지는 노(能)는 일본의 전통공연예술이 형(가타)과 기본자세(가마에)의 예술임을 다시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일본의 전통예술은 엄격한 법식과 전통에 충실한 예술임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의 오랜 기간의 연습과 수련에는 무서움이 느껴질 정도였다.
 일본에 가보면 우리의 잃어버린 역사, 우리의 옛 문화와 전통이 곳곳에 남아 있어 놀라울 때가 있다. 중국 집안에 있는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는 춤추는 사람들 옆에 악사가 아닌 7명의 사람들이 앉아 있다. 현재의 우리 전통공연예술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이번 일본의 노(能) 공연의 지우타이를 보면서 그들이 구음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2부에 공연된 국수호의 <미마지(味摩之)의 무악(舞樂)>은 옛 백제기예의 복원이라고는 하지만 거의 창작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 같았다.
 “서기 612년, 백제 무왕의 지시에 의해 일본으로 기예(伎樂舞)를 전하러 갔던 미마지는 성덕태자를 만나 아스카 사쿠라이 지역 언덕에 토무대(土舞臺)를 만들어 놓고 춤과 노래와 음악을 가르쳤다.”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을 오늘에 잇고자 하는 국수호의 집념과 노력은 장구한 세월을 뛰어넘었다.
 춤은 일곱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소제목 [1]‘아스카(飛鳥) 벽화 속의 남녀’, [2] ‘미마지’, [3]‘성덕태자, 미마지’, [4]‘미마지의 고뇌 - 무악(舞樂)의 길’, [5]‘무악(舞樂) I 가루라(迦樓羅)의 춤 - 금시조무(金翅鳥舞)’, [6]‘무악(舞樂) II - 신무(神舞)’, [7]‘무악(舞樂) III - 비조무(飛鳥舞)’를 달고 이어졌다.
 다카마쓰 고분(高松塚 古墳) 채색벽화의 주인공들은 고구려인들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기록에 의하면 신라, 백제, 고구려의 말과 풍습, 문화가 비슷했다고 한다. 춤도 큰 차이가 없었으리라. 백제의 춤은 한민족 춤의 일부이다. 국수호에 의해 복원, 창작된 미마지의 춤은 전반적으로 한국의 춤 사상을 따르고 있다. 음양설에 입각해서 음과 양이 어우러져 태극이 되고 우주의 에너지가 되는 한국춤의 철학을 담았다. 또한 한국춤의 정중동 기본원리에서 생성되는 기(氣)를 활용했다.
 구체적인 소재로 미마지와 성덕태자와의 운명적인 만남과 춤의 길을 하사받은 후 미마지가 무악(舞樂)을 완성하기 위해 고뇌하는 모습을 그렸다. 일본궁중무용 부가쿠(舞樂) 중, ‘가루다 춤’을 복원하여 무용수 조재혁이 박찬수가 깎은 탈을 쓰고 춤을 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복원된 미마지의 춤은 마지막 부분에서 새처럼 하늘을 날고 바다를 건너 중국과 일본에 외백제를 세웠던 백제인의 자유로운 영혼을 그리면서 끝을 맺었다. 고구려 벽화에 나오는 4신도(四神圖), 일월도(日月圖)를 배경영상으로 또한 솟대를 마지막 무대 배경으로 사용했다. 악기로는 공후, 생황, 비파를 등장시켜 백제가 일원이었던 삼국시대를 상기시켰다. 무용수로 등장한 국수호가 악기와 소도구로 장구를 사용해 미마지를 연상시켰다.




 한 예술가가 옛 명인의 사라진 예술세계나 작품을 복원하기 위해 무수한 자료를 참고하고 관련지역을 수없이 답사해도 풀리지 않는 부분이 있을 때, 마침내 찾아오는 직관과 영감에 의해 목적을 이룬다고 한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끝없는 집념과 노력 끝에 옛 명인의 혼이 예술가를 찾아와 몸 속에 깃드는 경지에 이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백제가 멸망한 후, 사라진 한국의 춤 유산을 찾겠다는 집념으로 20여년 전부터 무수한 자료를 참고하고 봄, 여름, 가을, 겨울, 일본 현지를 답사한 국수호의 경우도 미마지의 혼이 그에게 깃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떠올리게 했다.

 그뿐만 아니라 일본화된 음악이 아닌 미마지의 음악을 얻겠다고 천착한 작곡가 강상구, 부가쿠 가루라춤의 탈을 복원한 목조각가 박찬수, 당시의 복식을 재현한 의상 디자이너 한진국과 의상 제작자 이호준 그들 모두에게도 미마지의 혼이 찾아온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춤 작품의 제목 <미마지(味摩之)의 무악(舞樂)>에 ‘초견(初見)’이라는 낱말을 덧붙여 놓고 안무자 자신이 이번 작품은 프로토타입(Prototype)이라고 지칭했다. 첫 선을 보이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을 보면 누구보다도 그 자신이 이번의 복원, 창작에 대하여 부족함과 아쉬움을 느끼는 것 같다. 평자의 눈에는 한 예술가가 사명감을 갖고 긴 세월 들인 노력과 많은 예산의 출혈이 보여 작품을 비판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어떤 부분이 보완되어야 하는가는 그 자신이 가장 잘 알 것이다.
 미마지의 후원자였던 쇼토쿠(聖德)태자로 특별출연한 사쿠라마 우진(櫻間右陣)과는 다시 이어지는 한국과 일본 기예의 교류이며, 콜라보레이션 작업이라 할 수 있겠다. ‘노’와 한국춤과의 콜라보레이션은 닮은 요소를 갖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가장 이질적인 두 나라 전통공연예술의 어우러짐이다. 안무자는 이 작품의 완성을 내년으로 잡고 있다. 그때 과연 1,400년을 뛰어넘어 새로 도래한 백제의 미마지에게 일본인들은 어떠한 반응을 보일런지 궁금해진다.

2015. 08.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