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코로나19 사태 / 미국
코로나19, 전시 상황 속의 미국 춤계
김채현_춤비평가

텅빈 공연 메카 맨해튼

지난 1월부터 두어 달 동안 미국 대통령은 코로나19에 자기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다는 자신감을 거의 매일 과시하였다. 그의 공언은 3월 중순 스스로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함으로써 빛바래기 시작하였다. 그렇더라도,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할 당시 미국의 코로나19 확진자는 1천명 대여서 많은 사람들이 사태를 어느 정도 낙관했을 것이다. 그로부터 3주 후인 4월초에 미국 확진자수는 이미 20만을 넘어섰다. 알려진 대로, 미국내 확진자 수는 이탈리아를 넘어서고부터 다른 나라와는 도저히 비교도 안 되게 세계 최다를 기록하고 있다.

3월 중순부터 미국에서 뉴욕을 중심으로 춤 무대 공연 취소는 대세가 되고 4월부터는 관행이 되었으며, 미국내 확진자 수가 170만을 넘긴 5월 하순 급기야 춤 분야를 비롯하여 올해 봄 시즌의 미국 내 모든 공연이 중단된 것으로 파악된다. 가을 이후 미국에서 공연이 재개될 것인지 지금으로선 매우 불투명하다.

뉴욕시의 문화예술산업 종사자들은 현 재난을 한 마디로 전시 상황으로 받아들인다. 〈워싱턴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뉴욕의 문화기관 대표자 연석회의체 주도로 3월부터 매일 오후 2시 170여 문화 단체 관리자들이 코로나19 대책회의를 열어왔다. 카네기홀부터 소공연장, 콘서트홀, 갤러리까지 뉴욕의 크고 작은 문화 현장 관계자들이 코로나19로 발생되는 온갖 현안을 탁자 위에 올려 중지를 모으는 중이다. 비워진 극장 공간을 코로나 응급실로 일시 전환시키는 방안도 대책회의에서 의논되었다. 뉴욕시의 문화산업 수입 규모는 연간 수십조원에 달하며, 그 경제적 파급 효과는 훨씬 크다. 입장료 수입이 핵심축인 문화예술산업에 사람이 모이는 것을 공략하는 코로나19가 뉴욕의 문화예술산업에 가하는 타격은 전시 상황의 위기감을 유발하고 있다.




극장 폐쇄로 텅빈 링컨센터, 4월 뉴욕타임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미국에서도 코로나19가 가장 기승을 부리는 뉴욕주에 속한 뉴욕시에서 미국의 다른 지역으로 원정가는 탈출이 빈번하다. 뉴욕시에서도 맨해튼 지역 거주자들의 탈출이 가장 뚜렷한 편이라 한다. 지난 3월 이래 뉴욕시에서 외부로 발송하는 우편 운송 의뢰 건수가 2배로 늘고 특히 4월에는 맨해튼의 어퍼 이스트 사이드와 어퍼 웨스트 사이드에서의 의뢰 건수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는 소식이다. 해당 지역에서 쓰레기 배출량이 준 것은 물론이다. 맨해튼에서 어퍼 이스트 사이드는 상류층이 거주하며, 어퍼 웨스트 사이드는 중상류층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두 지역은 그 사이를 센트럴 파크가 가로질러 나눠진 곳이다. 한 마디로 맨해튼과 뉴욕시가 비워지는 공동화(空洞化)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팬데믹은 도시를 비워내 보이면서 동시에 빈부 격차도 드러내 보인다.

맨해튼은 미국과 세계 공연예술의 가장 유력한 메카이다. 그런 곳에서 춤 무대 공연의 주관객층인 현지 주민이 떠나거나 두문불출이고 외부 관광객과 방문객마저 없으니 공연이 올려질 리 만무하고 올려져도 무의미하며, 코로나 전파가 극심한 터에 방역 차원에서 공연은 아예 불가능하다. 링컨센터, 브로드웨이, 오프브로드웨이와 타임스퀘어 현장에서 공연예술이 처한 상황은 맨해튼의 공동화 현상에서 더욱 실감이 날 것이다.




텅빈 도시, 타임스퀘어, 뉴욕, 4월 배너티페어




이 와중에 어느 젊은 무용가는 5월 16일 밤 미국 LA 산타모니카 공항 주차장에서 드라이브인 공연을 펼쳤다는 소식이다. 승용차로 입장하되 승차자는 모두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추첨으로 뽑힌 35대의 차량이 모였고 차량마다 100달러씩 기부금을 요청받았는데, 4000달러가 모였다 한다. 코로나19는 이런저런 식으로 무대 공연의 대안을 촉발하고 있으며, 지금 당장은 랜선 공연이 대세이지만 장기적으로는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댄스 스테이지는 분명 랜선 공연을 훌쩍 넘어설 것이다.


극장 가동 정지가 부른 랜선 봉사

지금 시기에 한국에서는 차선책으로 관객 수를 줄여서 여는 이른바 거리두기 공연이 부분적이나마 실행되고 있다. 그러나 뉴욕에서는 아예 극장이 가동되지 않는다. 뉴욕 예술춤의 중심 조이스 씨어터(브로드웨이와는 뚝 떨어진 맨해튼 남쪽 소재) 역시 일단 8월까지 모든 공연을 취소하였고 언제 공연을 재개할지 밝히지 않은 터다. 여러 매체의 보도에서는 브로드웨이 극장들이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될 때 아니면 2021년 연초에 문 열 것이라는 전망들이 나돈다. 한국의 상황이 최악의 미국보다 낫다는 것은 적으나마 행해지는 거리두기 공연만으로도 짐작이 간다.

조이스 씨어터는 대면 공연을 취소하는 대안으로서 랜선 스트리밍을 진행하고 있다. 극장 측은 극장에 모이지 못 하는 대신에 춤을 가정에서 즐길 방법은 많다는 소개를 붙여서 〈가정에다 춤을〉 무료 프로그램을 개설하였다. 극장의 예정된 공연 가운데 일부를 랜선 공연으로 송출하거나 춤예술인들의 긴 토크 프로그램들을 다수 송출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예매권 환불과 관련한 방침이 눈길을 끈다. 예매자들에게 전액 환불과 기부, 둘 가운데 하나를 택하도록 하고, 해당 공연 개막일까지 별 응답이 없으면 환불 조치한다. 일단 기부할 의사가 있으면 조이스 극장 측에 환불을 요구한 다음 해당 공연 단체의 웹사이트에서 기부를 신청할 것을 안내하는 공지문을 내보냈다. 이런 방식을 다른 극장이나 단체들에서도 택하고 있다.

랜선 송출에 주력하는 뉴욕시티발레단(지난 호 ‘춤, 현장’ 기사 참조)은 자체 웹사이트에서 랜선 공연에 관해 관객 반응을 파악하는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NYCB's Digital (Spring) Season 프로그램은 ① 관객이 보았던 공연, 볼 공연, ② 해당 프로그램과 접속할 때 동원하는 기기, ③ 해당 프로그램에서 접속한 내용, ④ 해당 프로그램을 알게 된 경로를 단체 사이트에서 조사하는 중이다. 비단 뉴욕시티발레단만이 아니라 랜선 송출 당사자라면 관객 반응이 궁금할 것이므로, 이런 조사 아이디어가 특출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뉴욕시티발레단이 굳이 조사 작업에 나선 것은 무엇보다 앞으로도 랜선 송출을 지속할 의지가 강력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랜선 송출은 실제 공연의 실감을 온전히 전달하기 어려운 제약이 있는 반면에 이점도 크다. 그 이점에 착안해서 랜선 송출에 주력하는 이면에서는 뉴욕시티발레단의 경영 전략도 크게 작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위기 선상의 극장 경영과 무용인들


평소 뉴욕시티발레단은 연간 입장료 수입이 500억원(하루 평균 1억 4천만원, 2018~19년 회계연도 기준)에 육박한다. 단원(100명)과 교향악단(62명), 행정 및 스탭진(200명 이상)의 규모에서 뉴욕시티발레단은 그야말로 방대하다. 코로나19로 인해 6월말까지 봄 시즌 입장료 수입이 전무해도 피고용 구성원들에게는 평상시 급여가 그대로 지급되어야 한다. 단체는 코로나19로 인해 올 상반기에 약 100억원 규모의 입장료 손실액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고, 이 추세라면 올해 말까지 막대한 적자가 확실하다. 한 단체의 연간 예상 적자가 100억, 200억 규모인 것은 미국 춤계에서도 흔한 일이 아니겠으며, 우리로선 아예 익숙치 않은 사실이다.

2018~19 회계연도에 뉴욕시티발레단의 연간 운영비는 1100억원이었다. 이를 가능케 하는 수입은 관객 입장료 및 순회 공연 수입이 500억원, 투자 등 수입이 130억원, 임대 수입이 130억원, 지원금 및 후원금이 230억원, 자산 수입이 110억원 정도였다. 이러한 수입·지출 구조에서 상반기에만 100억원의 손실은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다.

평소 뉴욕시티발레단이 뉴욕시로부터 받는 보조금은 30억원(전체 수입액 대비 2~3% · 입장료 및 공연 수입 대비 6%)이 채 되지 않는다.(한국에선 공공무용단의 경우 입장료 수입의 몇 배나 되는 국고 지원 또는 공공 지원을 받는 게 일반적이다.) 올해는 특별한 경우라 뉴욕시로부터 특별 교부금이 추가될 가능성이 높다 해도 뉴욕시티발레단만 어려운 것은 아니므로 뉴욕시 특별 교부금 또한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뉴욕시티발레단은 후원 기부금 모금에 더 적극 나설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사태가 없었던 평소에도 미국의 크고 작은 춤단체들은 후원금 모금에 열과 성을 쏟아왔다. 그러나 이전에 없던 랜선 공연이라는 프로그램을 코로나19에 당면하여 굳이 활용하는 배후에는 관객·후원자·사회와의 연결을 지속하면서 관심을 유지하고 배가하여 그 속에서 지금의 재난에 대처할 자구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경영 판단이 매우 강력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80주년 기념 시즌 공연 취소를 밝히는 ABT 웹사이트 공지문, 4월




뉴욕과 미국에서 뉴욕시티발레단과 쌍벽을 이루는 아메리컨발레씨어터(ABT, 2018년, 2017년 기준 연간 입장료 및 순회 공연 수입 240억원; 연간 예산 600억원)는 올해 창단 80주년을 맞았다. 뉴욕시티발레단보다 먼저 창단되었고 그 역사는 미국 발레의 역사와 함께 하였다. 올해는 특별히 창단 80주년을 겨냥하여 5월~7월 80주년 기념 시즌 공연을 마음먹고 준비했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모두 취소되었다. ABT의 80년 역사 가운데 과거와 현재를 조명하는 대작들을 재연하는 등등 그야말로 다채로운 프로그램들이 일단은 중단된 상태다. 이 행사를 10월 하순부터 진행하기로 연기한 상태지만, 코로나 사태 전개에 따라 개최는 유동적인 것 같다. ABT는 80주년 기념 봄 시즌 공연뿐 아니라 올해 시카고, 디트로이트, 영국 더럼, 아부다비 등지의 순회 공연마저 취소하였다. 입장료 수입, 순회공연 수익, 교육사업 운영 등이 모두 끊긴 상태에서 ABT는 올해 손실액을 220억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ABT는 현 상황을 위기로 규정한다. 이 단체가 새로 신설해서 공지문에 올린 ‘ABT 위기 구호 기금’의 명칭이 그것을 말해준다. 기금은 소속 단원 등 예술인들에게 보조 수당과 금융 지원을 제공하는 데 쓰인다고 밝혔다. 사이트에서 파악되는 구호 기금의 내용은 아주 간략하다. 기금의 기부 액수는 무제한이고, 기부자의 주소, 지불 수단을 적는 것이 전부인데, 익명으로도 기부가 가능하다. 다만 이 기금의 기부자에 대한 혜택은 일체 명시되어 있지 않은데, 기부의 일반적 관행을 벗어나는 그 만큼 현재 드리워진 위기감이 느껴진다.

절박한 위기감은 미국 곳곳에서 확인된다. 미국 무용인들의 전국 조직체인 Dance/USA(1982년 창설)는 코로나 관련 연방 구호 시책을 입안하는 연방의원들을 향해 무용인들이 여론을 모아줄 것을 호소하고 나섰다. 여론 정치가 강한 미국에서는 평소에도 연방의회는 물론 주의회, 시의회를 상대로 사회 온갖 부문의 로비가 활발하다. 5월 14일 댄스유에스에이는 무용인들이 더 많은 지원 혜택을 받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팬데믹 실업수당 수령 기간 연장, 긴급 대출 지원 등 무용인들이 연방의원들에게 압력을 가할 필요가 있는 13가지 사항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그리고 뉴욕의 무용인 연합체 Dance/NYC도 5월 20일 뉴욕시의회에서 2021년도 회계연도 예산 확정을 위한 여론 수렴 기간이 임박한 시점에 맞춰 무용인들이 시의회 계정으로 힘모아 이메일을 보낼 것을 촉구하였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를 비롯 다수의 논문,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 ​
2020. 6.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