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임학선 일무(佾舞) 창작춤 〈영웅 이순신〉
콘텐츠와 결합된 창작춤의 확장
이만주_춤비평가

 세계 해전사(海戰史)의 3명의 제독인 이순신, 영국의 넬슨, 일본의 도고 헤이하치로 중에서 사가들은 이순신을 으뜸으로 친다. 넬슨과 도고는 위로는 군주로부터 아래로는 전 국민이 일치단결하여 그들을 도왔지만 이순신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신하들은 모함했고 임금은 그를 감옥에 집어넣고 고문하고 죽이려고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순신은 외로이 왜의 수군을 대적하여 23전 23승, 모두 이기며 나라를 구했다. 신(神)에 가까운 그에게 ‘영웅’이라는 칭호도 사실 어색하다.
 ‘이순신 장군’을 주제로 창작춤을 만들었다는 얘기, 그것도 일무(佾舞)의 무무(武舞)를 바탕으로 만들었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순신을 거론하려면 또한 임진왜란이 필수적인데 그런 거대 담론들로 춤을 만든다는 것과 대하소설에 해당하는 분량을 1시간 조금 넘는 공연으로 집약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9월 18일(1회 공연)과 19일(2회 공연),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 임학선 연출․안무의 창작춤 <영웅 이순신>은 그런 염려들을 불식시켜 주었다.




 작품은 춤 창작이란 무엇인가, 춤 창작에 있어 축약과 상징과 은유란 무엇인가, 한국 창작춤의 영역은 어디까지 확장될 것인가, 일무란 한국춤의 자산에 있어 어떤 자리를 차지하는 것일까와 같은 여러 명제들을 생각해 보게 했다.
 한국춤의 원리와 미학을 천착한 안무자가 이 작품을 위해 실로 많은 연구와 노력을 기울였음을 작품 곳곳에서 읽을 수 있었다. 작품은 이순신을 축으로 조선 수군, 일본 수군, 선조 임금과 왜장, 어머니, 의기 내산월, 조선 백성들과의 복선과 긴장 관계로 줄거리가 구성되었다. 백의종군한 직후의 어머니의 타계, 나흘 동안 말미를 얻어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뒤 삼년상을 뒤로 한 채 다시 전선으로.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는 그 사실 자체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안무자는 작품의 첫 부분에서 현대적인 무대 테크놀로지와 그녀의 연출력으로 거북선과 바다를 특유의 상징으로 처리한 것을 시작으로 작품 내내 무수한 상징과 은유를 사용하는 능력을 보였다. 또 다른 예로 작품의 후반에서 왜군의 침략은 깃발춤으로, 판옥선의 조선군은 간척의 춤으로 각기 상징화 했다. 깃발춤과 간척의 춤은 서로 직접적인 접전을 하는 대신, 구성과 춤의 특성을 통해 나아감과 물러감을 나타낸 것이다.




 이 창작춤은 무엇보다 ‘문묘일무(文廟佾舞) 콘텐츠 프로젝트’의 일환임을 밝히며 일무의 춤 동작을 사용하고 응용한 것이 특색이다. 안무자에 의해 2004년 발표된 창작춤 <공자>는 양손에 약적(피리, 꿩깃)을 들고 추는 문무(文舞)를 기본으로 구성되었던 것과 달리, 이번 <영웅 이순신>에서는 간척(방패, 도끼)를 들고 추는 무무(武舞)가 기본이 되었다.
 안무자는 2007년 문화관광부 지원으로 참여했던 둑제(원래는 조선시대 군대의 행렬 앞에 세우던 대장기‧大將旗인 둑‧纛에 지내는 제사. 일반적으로 무인인 이순신 장군의 제사도 둑제로 불림) 복원사업에서 익힌 간척무, 궁시무, 창춤, 칼춤 등도 이번 작품에 참고했다. 그러면서 한국춤의 검무, 임진왜란 기원설의 강강술래, 통영승전무 역시 효과적으로 섞어 넣으며 한국 춤의 풍부한 자산을 보여 주었다. 어떤 장면에서는 한국춤의 난만한 아름다움이 총체적으로 연출되어 놀라웠다.




 한국춤, 나아가 동양의 춤 철학을 바탕으로 한 안무의 원리도 눈여겨 볼 만 했다. 이순신과 선조라는 두 캐릭터의 춤을 문답(問答)적으로 구성하면서 이순신의 춤을 음유(陰柔)의 춤으로 선조의 춤을 양강(陽剛)의 춤으로 안무했다. 통곡하는 바다는 여성군무로 이순신의 슬픔은 그가 홀로 추는 상여춤으로 표현한 것도 동양적인 미학이었다.
 큰 키의 김주빈은 앞서의 작품 <공자>에서도 타이틀 롤을 맡았었고, 이번 작품에서도 이순신 역을 맡으며 연기력과 춤 실력을 발휘해 발군의 남성 무용수로 발돋움했다. 의기 내산월 역으로 세 공연에서 각각 정향숙, 유혜진, 정보경이 트리플 캐스팅 된 것은 관객들로 하여금 각기 다른 무용수의 개성을 즐기게 하면서 ‘댄스 위‧We 무용단’의 주(主) 무용수들에게 고른 기회를 준 배려였다고 생각된다.




 이번 작품은 한국 창작춤의 또 다른 확장이었다. 아카데미즘과 현장성을 갖추고 한국 창작춤을 개척한 세대의 일원인 안무자 임학선은 한국 창작춤의 경계를 계속 확장하고 있었다. 안무자는 일무에 관한 한 권위자다. 일무에 있어 한국이 권위를 갖고 그 일무의 춤사위를 사용하여 한국 창작춤을 만든다는 것은 일무가 한국춤의 엄연한 자산임을 웅변하는 것이다.
 이순신의 죽음과 관련해서는 “살아보았자 또 어떤 모함과 위해를 당할지 모르니, 자신의 역할을 다한 후, 그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는 자진설(自盡設)”이 있다. 슬픈 이야기이다. 이번 공연의 마지막은 이순신에 대한 육일(六佾) 무무의 헌무였다. 그 헌무가 이순신 장군의 영혼을 위한 위무의 춤이 되었기를.

2015. 10.
사진제공_임학선댄스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