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기획연재_ 춤 관찰기: 다시 생각하는 아시아 춤 인프라(10)
한국 궁중 춤과 남면(南面)
서정록_춤연구가

무대 위에서 연출되는 궁중 춤 공연을 관람하게 되면 무대 배경에 궁궐이라는 장소를 나타내거나 혹은 그것을 관람하였을 인물인 왕이나 왕실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사진이나 그림들이 종종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주로 사용하는 이미지로, 장소를 강조할 경우 궁궐의 대표적인 건물인 경복궁의 근정전(勤政殿)이, 후자의 경우 임금을 상징하는 해와 달 앞의 다섯 산봉우리를 그린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가 흔히 쓰인다. 이러한 배경 사진이나 그림은 아마도 궁중 춤이 궁궐 혹은 임금과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관객들에게 이를 공연 내내 상기시키려는 목적이 있을 것이다.




근정전




 그런데, 이러한 배경 사용은 과연 적절한 것인가? 이 질문은 “궁중 춤의 관람 위치는 어디인가?”라는 것으로 바꾸어도 무방하다. 이는 궁중 춤이 왕을 비롯하여, 왕실, 대신들, 혹은 외국의 중요한 사절들을 위한 공연으로, 당시 이들의 관람 위치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왕은 반드시 ‘남면(南面)’을 하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서, 공연자의 입장에서 볼 때, 왕은 북쪽에 위치하고, 공연자의 뒤 배경은 남쪽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남쪽을 상징하는 무언가를 공연의 무대 뒤 배경에 등장하여야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과거 시험에 시험관으로 참여한 정약용이 출제한 “동서남북에 대하여 물음(問東西南北)”이란 제목의 문제가 〈여유당전서〉 제9권 〈책문(策問: 과거 시험 문제)〉에 수록되어 있는데, 이 문제에 ‘남면’과 관련된 사항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에 이 개념은 제법 중요한 사항이었던 것 같다.
 그러면, 왕의 위치가 왜 남면(南面) 즉 남쪽을 향하여야 하는지 그리고 그 뜻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첫 번째로, 왜 왕의 위치가 ‘남면’인지에 대해서 알아보자. 〈논어〉 위정 편을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공자는 “정치를 덕으로써 함은 마치 북극성이 북쪽 자리에 있고 많은 별들이 이를 향하는 것과 같다(子曰 爲政以德 譬如北辰 居其所 而衆星共之).”고 말하였다. 이 구절을 풀어보면, 하늘에서 임금의 별자리는 북극성에 해당한다. 그리고 북극성은 북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 방향이 남쪽을 향하게 된다. 그러므로 임금의 자리를 뜻하는 말로 ‘남면’이라 쓴다. 그리고 〈주역〉 설괘전에 “이는 밝음이니, 만물이 모두 서로 보기 때문이다. 이는 남방의 괘이다. 성인이 남면하여 천하를 듣고, 밝은 곳을 향해 다스리니, 여기에서 그 뜻을 취하였다(離也者 明也 萬物皆相見 南方之卦也 聖人南面而聽天下 嚮明而治 蓋取諸此也).”라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임금이 ‘남면’을 하는 이유는 임금이 “향명(嚮明, 밝은 곳을 향함)”하기 위함이다.
 두 번째로 그 뜻을 살펴보면, ‘남면’은 동양 정치의 가장 이상적인 통치 모습을 보여준다는 의미가 있다. 이러한 사실은 다음에서 알 수 있다. 〈논어〉 위령공 편에 보이는,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무위로 천하를 다스린 사람은 순 임금이다. 그분께서는 어떻게 하셨는가? 공손한 태도로 남면하여 앉아계셨을 뿐이다(子曰 無爲而治者 其舜也與 夫何爲哉 恭己正南面而已矣).”가 바로 그 구절이다. 여기서 인용된 순 임금은 동양에서 요 임금과 함께 가장 이상적인 통치자로 묘사되는 인물이다.
 그런데, 이 구절에서 핵심은 ‘무위(無爲)’이다. 그런데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에 대해 주자(朱子)의 주석을 보면 이것이 어떤 뜻인지 대강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이 구절에 대해 “무위로 다스린다는 것은 성인의 덕이 성대하여 백성들이 감화되어 성인께서 작위 하는 바를 기다리지 않는 것이다(無爲而治者 聖人德盛而民化 不待其有所作爲也).”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무위’의 반대 의미로 ‘작위(作爲)’라는 말을 쓰이고 있다. ‘작위’라는 것은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도 그렇게 보이려고 갖가지 수단을 사용한다” 혹은 “억지로 꾸며 무엇을 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에 〈예기(禮記)〉의 예기(禮器) 편에 보이는 ‘남면’에 관련하여, “그러므로 옛적에 선왕이 덕이 있는 이를 숭상하며, 도(道) 있는 이를 높이며, 재능이 있는 이에게 맡기며, 어진 이를 들어서 제자리에 앉히며, 무리를 모아 경계하였다…… 이 때문에 성인이 남면하고 서 있으면 천하가 크게 다스려지는 것이다(是故昔先王尙有德 尊有道 任有能 擧賢而置之 聚衆而誓之… 是故聖人南面而立 而天下大治).”라는 말이 있다. 이를 상고해 보면, ‘무위’는 “어떤 사안에 대해 매우 잘 파악하고 있으며, 그것에 대해 적재적소 혹의 시의 적절하게 잘 대응한다는 것을 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남면’을 단순히 임금의 정치나 통치의 개념으로만 이해할 것이 아니다. 바로 궁중 춤을 감상하는 감상자의 마음가짐으로 적용하여 이해해도 크게 문제는 없어 보인다. 즉 감상자는 작품을 ‘작위’하지 않고 ‘무위’ 하여야 한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춤을 감상하는데 아무 것도 모르는데 무엇인가 아는 것처럼 꾸며대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그 작품에 대해 자세히 이해하고 있어야 하며, 겸허한 자세와 열린 마음으로 작품과 적절하게 교감하며 대하여야 한다고 볼 수 있다.




일월오봉도




 지금까지 한국 궁중 춤의 공간에 대해 소략하게 살펴보았다. 전통적인 궁중 춤의 연행 공간에서 관람자인 임금은 북쪽에 위치하여 남쪽을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춤 공간에 대한 의미 부여는 당시 매우 중요한 사항이었음을 찾아 볼 있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하면, 현재 춤 배경에 궁중이나 임금의 이미지로 종종 사용되는 근정전이나 일월오봉도와 같은 그림은 임금이 위치한 북쪽을 상징하므로, 전통 춤 전승의 입장에서 볼 때,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종묘제례악의 일무(佾舞)는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신위를 향하여 그들을 위하여 드리는 제사에 등장하는 춤이다. 그러므로 이 경우도 종묘의 정전의 모습을 배경으로 하는 것은 그 의미가 맞지 않다. 이러한 오해의 원인은 우선 우리의 전통에 대한 무지, 급격한 서구화 과정에서 무비판적으로 도입된 액자형 무대 즉 프로시니엄(proscenium)과 전통 공연의 충돌, 그리고 종합예술인 춤을 춤 동작으로만 국한하여 이해하려는 모더니즘(modernism)의 영향 등등 여러 가지 사항들이 어우러져 생겨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궁중 춤 공연 장면



종묘제례악 일무 공연




 우리와는 달리 식민지 경험이 없이 근대화 과정을 비교적 주체적으로 이끌어낸 일본의 경우는 우리와 이런 점에서 다르다. 전용 가부키(歌舞伎) 극장, 노(能) 극장, 그리고 일본 왕궁의 궁내청 내의 가가쿠(雅樂) 무대 등은 그 형태를 온전히 보전하며 그 장소에 담겨있는 공연도 비교적 온전히 내려오고 있는 덕분에 이러한 문제에서 제법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그 상황이 매우 다르다. 주지하듯이, 일본과는 대조적으로 급격하게 말살되는 한국의 전통들을 보존하려는 여러분들의 피눈물 나는 노력이 있었다. 그들에게는 변변한 지원이나 관심도 없었고, 그 와중에 눈 앞에서 사라져가는 많은 전통들을 지키는 와중에, 미쳐 세세하게 돌아볼 경황이 없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살벌한 식민지시대와 급격하게 이루어지는 서구화와 근대화라는 급류 속에, 많은 전통들이 왜곡과 단절의 위기 가운데 희미한 기억에 의지한 극적인 복원 과정을 거치며 전승되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일본 궁내청 가가쿠 무대




 비록 이 문제가 작은 사안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우리도 우리의 전통을 여전히 잘 모르고 있었다는 제법 불편한 진실의 증거이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전통을 보존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전통을 바탕으로 한 창작의 문제와도 연결이 된다. 전통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는 말을 자주 언급한다. “옛것을 바탕으로 새 것을 창조한다”는 뜻으로 창조성, 창의력이 중요해지는 요즘 더욱 눈에 띠는 말이다. 본래 이것은 18세기 선각자 박지원(朴趾源)이 설파한 개념이다. 이 말은 그의 아끼는 제자인 박제가가 지은 〈초정집(楚亭集)〉의 서문을 써주며, 그의 글을 격려하면서도 ‘창신’ 즉 ‘창조’만을 추구하려는 그에게 ‘법고’의 중요성을 일깨우려 할 때 등장한 말이다. ‘창조성’, ‘창작력’과 같은 말들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 요즘 다시 한번 눈 여겨 보아야 할 대목은 아닐까?

서정록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이론과 교수. 태국 Mahidol 대학교 국제대학 강사, 국립대만대학교 초빙교수, 런던대학교 SOAS 연구원을 역임하였다. 한국춤 연구를 통해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및 중앙아시아의 문화 교류에 대한 역사 연구를 하고 있다.​ ​​​ 

2019. 07.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