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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 미디어를 만나다 10
통합형 인재 시대, 인문학이 필요한 춤교육
이단비_방송작가, 춤칼럼니스트

지금은 익숙한 단어가 되었지만 200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서는 융합, 통섭이란 말이 화두가 되었다. 사회생물학(sociobiology)의 창시자로 알려진 에드워드 윌슨(Edward Wilson, 1929년~)이 쓴 저서 『컨슬리언스(Consilience)』가 우리나라 최재천 교수에 ‘통섭(統攝)’이란 단어로 번역되면서부터다. 이 단어가 처음 등장한 건 훨씬 이전의 일인데다 윌슨의 의도와는 다른 번역이다, 오역이다, 말도 많았지만 어쨌든 ‘통섭’이란 단어는 우리 사회에 인문학,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을 통합하고 학문과 학문 간의 융합을 꾀하는 단어로 자리잡았다.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1941~)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나 『만들어진 신』도 이즈음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았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통합하고 통찰한 책이라서 통섭, 융합의 개념과 맞닿기 때문이다. 동시에 왜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책이 나올 수 없느냐는 질문은 쏟아졌다. 이유는 하나. 우리의 교육방향은 애초부터 문과와 이과를 나눠서 교육하고 통합형 인재를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두 가지 학문을 한 사람이 모두 섭렵할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두 가지 영역을 통합해서 공부한 인재가 없기 때문에 인문학과 다른 학문이 융합된 연구나 저서가 나오기 힘든 것이다.




  

『통섭 (Consilience)』 책 표지 │『이기적 유전자』 40주년 기념판 책 표지




 최근 이런 문제가 예술 교육 현장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공연은 물론 학교와 기관의 교육사업들이 영상으로 제작되는 일이 늘어나면서 공연계와 방송계의 두 영역 사이에서 활동하는 이력 때문에 내게 많은 자문과 협업 요청이 들어온다. 요청이 들어오는 작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실제 작업에 함께 하면서, 그동안 느껴왔던 우리나라 예술교육의 방향에 대한 고민이 더 굳어졌다. 그게 이 글을 쓰게 된 결정적인 이유이다. 예술에서도 기능적 인재가 아니라 통합형 인재가 절실하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무용가가 통합형 인재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통섭과 융합은 공존의 문제와 이어진다. 코로나19 이후 우리는 서구주의 중심으로 이어져 온 사회가 재편의 길을 맞았다는 것을 느꼈고, 개인이 개인주의를 주장하는 순간 모두 함께 자멸하는 길을 걷게 된다는 것도 알았다. 바이러스의 문제는 바이러스를 잡는 백신을 개발해야 하는 ‘이과형’ 문제뿐 아니라 이런 시대에 인간이 인간과, 자연과 더불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인문학적’ 고민까지 도출해내고 있다.
 이런 시기에 예술가들은 무대와 전시공간을 잃고 배고픔을 견뎌야 하고 언제 재개될지 모르는 공연과 전시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존재가 되었다. 이 문제를 경제적인 관점으로만 바라본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예술가의 배고픔은 우리의 문제가 아니고 예술이 이런 시대에 존재할 이유가 없어지고, 그 가치는 돌아볼 필요가 없는 영역이 된다. 동시에 예술가 스스로도 필요한 정책을 요구하거나 이 시대에 버텨나갈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문제는 여기에서도 발생한다. 한 번도 그런 일을 해본 적이 없는 것이다. 무대 위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기능적인 훈련을 해오는데 모든 에너지를 소진한 나머지, 그리고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인문학적 고민을 무용수들에게 요구한 적이 없는 나머지, 구조만 기다리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요구해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것이다.
 백신을 만드는 사람이 백신만 만들고, 정책을 만드는 사람이 정책만 만들고, 예산을 집행하는 사람이 예산만 집행하고, 무용가는 무대 위에서 춤만 춘다면, 그렇다면 이 사회는 척척 잘 돌아갈까. 적어도 코로나19가 발발하기 이전에는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한 가지를 예를 보겠다. 지난 5월 예술인 고용보험이 국회를 통과했다. 현장에서 많은 예술가들을 만나면서 물어보니 정작 수혜자가 될 예술가들, 무용수들은 뭐가 뭔지 잘 이해를 못하고 있고, 그저 법조계 사람들이 ‘알아서 잘’ 만들어 주겠지 라고 생각하는 분위기다. 그나마 문화예술계 노동조합과 몇몇 예술단체들에서 이 법안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나서고 있다. 당연히 예술인을 위한 법은 예술인의 목소리로 만들어져야 한다.
 무대에 서고 있는 무용수들에게 묻고 싶다. 과연 이 법안이 어떤 상태인지 이해하고 있는가? 정책을 만드는 사람이나 그 정책의 수혜자가 되는 사람이나 사회에 대한 통합적인 이해가 없으면 좋은 정책, 실효성 있는 법안이 만들어질 수 없다. 또, 예술가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지금은 배고프고 힘들다. 그런데 막연하게 예술이 필요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면 그 말이 받아들여질까. 이런 시기에 예술이 존재해야 할 이유를 무용수들과 예술가들 스스로 찾아내고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게 무용가들도 통합적 인재가 돼야 하고 그런 역량이 키워질 수 있는 교육 시스템 안에서 성장되어야 하는 이유다.


무용학과의 교과과정, 문제없을까

그런데 우리나라의 무용학과 교과과정은 과연 통합형 인재를 키워낼 수 있는 교과과정과과 구조를 가지고 있을까? 적어도 기능에만 집중된 무용수가 실기와 이론이 겸비된, 진정한 무용학도로 성장시키는 커리큘럼을 가지고 있을까? 아쉽게도 여기에 긍정적인 대답을 하기는 어렵다.
 현재 우리나라 4년제 대학에서 무용과를 비롯해 생활무용학과, 공연예술무용과, 실용무용전공, 민속무용학과 등 무용학과가 개설돼 있는 학교는 총 33곳. 학교마다 커리큘럼이 조금씩 다르고 중점을 두는 부분도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적인 부분들은 있었다. 무용학과로 진학하기 위해서는 실기가 중점이 되고, 졸업 후에도 일단 무용수로 무대에 서겠다는 목표가 전제되어 있다 보니 실기에 비해 이론 수업의 비중이 현저히 낮다.
 대체적으로 무용학과에 개설돼 있는 이론 과목들은 무용학, 무용사, 무용 인류학, 무용미학, 무용비평, 무용미학, 무용사회학, 예술비평, 예술경영 등. 그런데 최근에는 이마저도 과목이 줄어들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학교의 재정 때문이다. 강사를 줄이면서 개설 과목 수도 줄어들고 있고, 실기 수업을 가르칠 수 있는 강사를 통해 이론 수업까지 맡기는 경우도 많다. 이론이나 인문학적 수업의 질이 떨어지거나 제대로 이론 수업을 받지 못하고 졸업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시대는 통합적 인재를 원하는데 통합은커녕 본인 전공에서 이론적 뒷받침마저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졸업을 하게 된다는 건 심각한 문제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학생들이 무용(학)과를 졸업하고 무용단이나 발레단 입단에 실패하면 진로 선택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사실상 무용단이나 발레단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은 한정돼 있다. 현실적으로 무용학과를 졸업하는 많은 학생들이 무대가 아닌 다른 곳에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해야 하는데 자신의 다른 재능과 가능성을 발견하고 성장시킬 기회를 가진 적이 있었을까. 대학이 아카데미즘을 잃어가고 있고 취업 준비소로 전락하는 현상은 전 학과에 걸쳐 일어나는 현상이기는 하지만 전공을 결심한 그 순간부터 실기와 기능 중심으로 치우쳐 있다는 점은 무용학과가 갖는 치명적인 문제점이다. 대학이 아카데미즘을 잃고 있는데 예술을 가르치는 일반 사설학원들은 오죽 하랴.
 무용학과 학생들이 갖는 가장 큰 장점은 몸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무용역학, 무용교육에 대한 공부만 제대로 되더라도 진출할 수 있는 분야는 많다. 몸과 역학에 대해 알고 접근해야 하는 영역은 체육학과 출신들이 선점하고, 교육학이나 이론에 관한 부분은 인문학과 출신들이 선점한다. 최근에는 장애예술이나 치매노인을 위한 예술교육 분야도 커지고 있고 이 분야에 특화된 강사들도 많이 필요한데 무용학과에서 제대로 교육이 되지 않고 관련 정보도 알려주지 않아 연극과 미술 전공자들에게 기회와 예산이 넘어가고 있다.
 사회에서 무용 전공자를 필요로 하는 영역, 흡수할 수 있는 분야는 많은데 전문적으로 훈련된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냥 춤만 추다가 졸업하기 때문에. 적어도 학교 내에서 학습이 제대로 되지 않더라도 진로 탐색에 대한 가이드만이라도 제대로 된다면 무용학도들이 우왕좌왕하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통합형 예술인재가 필요한 시대

예술교육과 춤이 갖는 긍정적인 효과는 계속 이야기되어 왔다. 지난 2018년, 전문무용수지원센터에서 주최한 댄스 포 디멘시아(dementia·치매) 국제 심포지엄 현장에 간 적이 있었는데 치매의 치료, 진행 속도를 완화시키는 데 춤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들을 수 있었다. 이 자리에서 박건우 고려대 의과대학 신경과학교실 교수는 뇌를 활성화시키는 데 독서는 35%, 퍼즐을 할 경우 47%, 그런데 춤을 출 경우 78%의 효과를 거둔다는 연구결과에 대해 이야기했다. 신경전달 물질을 촉진해서 새로운 세포 만들어내는 데에 유산소 운동이 중요하고 여기에 재미와 사교성이 더해지면 효과는 더 커지게 때문이 춤이 뇌 건강에는 최적화된 움직임이란 점도 강조했다.
 이런 효과를 알게 되고 치매 노인을 위한 춤 교실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더라도 우리에게는 미해결된 과제가 남아있다. 누가 그 프로그램을 맡아서 진행할 수 있을까. 역시 춤을 전공한 예술강사가 필요한데 단순히 춤 테크닉만 배운 사람이 아니라 생애주기별 신체 변화와 발달사와 치매에 대해 공부한 인재가 이 프로그램을 맡을 수 있다. 역시 무용 테크닉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오히려 이 경우 무용 테크닉보다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의학적 지식이 더 앞선다.




2018 Dance for Dementia 국제 심포지엄 현장 ⓒ전문무용수지원센터




 같은 맥락에서 유아나 어린이들,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도 마찬가지다. 최근 서원대학교 문화예술교육센터에서 충북지역에서 초등학교, 특수학교 국어과목을 예술과 접목시켜 개발한 통합예술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데 이 작업을 함께 하고 있다. 코로나19로 2학기에도 온라인 수업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강의를 영상화하고 있는데 이 작업에 함께하면서 동일한 문제와 필요성을 실감했다. 이 프로그램은 국어 과목을 국어만이 아니라 연극, 무용, 미술 등 예술과 통합해서 국어 교사와 예술강사가 함께 수업을 이끌어 가는 방식으로 처음 들었을 때부터 그 기획이 아주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서울문화재단에서 국어, 사회, 산수 과목에서 학교 교사와 예술강사의 협업으로 교육을 5년 간 실시했는데 긍정적인 결과들이 나오면서 앞으로 이런 통합예술교육 분야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예술교육만으로도 교육적 효과는 크지만 이것이 교과목과 연계되고 통합된다면 그 시너지 효과에도 기대가 된다. 이런 수업 방식이 충북지역뿐 아니라 다른 지역까지, 국어뿐 아니라 다른 교과목까지 확장될 수 있다면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예술 전공자들의 일자리 창출에도 효과적이겠다.




  

2019 충북지역 초등교과 연계 통합예술교육 진행 모습 ⓒ서원대학교 문화예술교육센터



2020 충북지역 초등교과 연계 통합예술교육 영상화 작업 ⓒ이단비




 문제는 이것이다. 이런 통합예술교육을 진행할 수 있는 예술강사가 얼마나 있을까. 과연 이 프로그램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거나 다른 교과목까지 확장된다면 이걸 함께 할 예술강사들은 존재하는가. 좋은 프로그램이 개발되면 그걸 흡수하고 펼쳐나갈 강사진이 그만큼 수혈돼야 하고 양성돼야 하는 건 선결과제다. 이런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는 예술강사는 2012년에 관련법이 개정되면서 만들어진 문화예술교육사 자격제도를 통해 양성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제도에도 허점은 많다. 이 제도는 무용학도들에게 또 하나의 가능성을 던져줬지만 문화예술교육사가 되기에는 여러 난관이 있다. 문화예술교육사가 되기 위해 이수해야 하는 필수 교과목들이 있지만 대부분의 학교가 재정적인 문제로 그 과목들을 전부 개설하지 못하면서 결국 졸업 후에 지정기관이나 지정학교에 가서 추가적으로 비용을 내고 수업을 듣게 되는 경우가 생겼다.
 문화예술교육사나 예술강사가 되더라도 실제 교육현장에서 문제는 또 발생한다. 예술에 대한 심도 깊은 학문적 탐구 과정은 없이 예술 체험 위주의 커리큘럼만 이수하고 학교로 진출한 예술강사는 전문적인 수업을 이끌어 갈 힘이 부족하다. 인문학적 배경이나 지식, 교육학적 방향에 대한 고민과 공부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좋은 프로그램이 기획되고, 거기에 걸맞는 예술강사들이 교육 시스템 안에서 양성되고, 그들이 학교 안에서 아이들에게 양질의 교육 콘텐츠를 나눠주는 선순환 구조가 절실한 시기이다. 이 모든 것은 따로 따로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커다란 원을 그리며 서로 결합이 돼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학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그리고 지금 코로나19와 같은 시대적 문제 안에서도 통섭과 융합은 공존의 문제와 이어진다.




2014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예술의 身-과학을 통해 예술의 身이 되다!’ ⓒ홍댄스컴퍼니




춤과 예술의 가치를 입증하는 인문학

좋은 무대는 당연히 말이 필요 없이 사람들에게 감동과 예술의 의미를 선사한다. 하지만 모든 무대와 공연이 항상 완벽하게 구현되지는 않는다. 춤으로 말을 하는 사람들이지만 춤으로 어떻게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춤과 무용, 예술이 가치를 갖고 사회에서 더 좋은 입지를 갖기 위해서는 왜 우리에게 춤이 필요하고 무용교육, 예술교육이 필요한지 인문학적, 철학적, 사회학적 관점에서 피력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인문학적 고찰을 통해 사회에서 그 가치와 의미를 인정받기 않고서 그 학문이 중요하게 자리 잡기는 어렵고, 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입지가 좋아지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은 더더군다나 그렇다. 무대에서 춤을 추는 무용수가 사회에서 중요한 인물로 인정받고 춤과 무용교육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도 예술과 춤이 갖는 가치가 평가절하되지 않기 위해서는 왜 그래야만 하는지 인문적 접근, 역사적 접근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일을 누가 할 수 있을까. 무용과 예술을 전공하는 사람이 하지 않으면 인문학, 철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서로 간에 간극과 장벽이 생긴다. 물론 인문학을 하는 사람도 춤을 경험해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는 무용을 전공해서 실기를 이미 경험한 사람이 이후 학위나 학업을 이론으로 이어간 경우 좋은 교육자가 될 수 있다. 대학도 실기 강사를 선발해 이론까지 어떻게든 한 번에 커버하려는 태도보다는 이런 사람들을 적극 수용하고 또 이런 인재를 양성하는 방향도 고려해야 한다. 실기가 이론보다 위에 있다고 생각하고 실기만 하는 순간, 예술가는 주체를 잃어버리게 된다. 적어도 무용을 전공한다면 춤과 예술이 갖는 가치는 자신의 목소리로 피력할 수 있어야 한다. 앞서 예술인 고용보험을 이야기할 때도 강조했지만 ‘누군가 알아서 잘 해주겠지’가 아니라 무용을 전공한 사람 스스로가 나서서 해야 한다.
 이 글을 쓰기 전에 많은 고민이 있었다. 교육계 안에 발을 푹 담그고 있는 사람이 아닌데 예술교육에 대해 이야기를 해도 되는 걸까라고. 어쩌면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 안에 있기 때문에 더 소리를 내기 어려울 수도 있겠고, 한 발 떨어져 있기 때문에 잘 보이는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우리 춤 생태계가 더 건강해지고, 세계적인 무용수뿐 아니라 세계에서 러브콜 하는 우리 안무가들을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길은 기능형 인재가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과 춤에 대한 다양한 이론, 역사에 대한 이해가 장착된 통합형 예술인재가 키워져야 가능하다는 것을 확신한다. 적어도 예술가에게 인문학적 성찰과 공부가 왜 필요한지 인식하는 자세는 필요하다.

이단비

KBS, SBS를 시작으로 다양한 매체에서 방송작가로 활동했으며 MBC에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담당했다. 발레를 비롯한 공연예술 다큐멘터리 제작과 집필에 매진하고 있으며, 발레와 무용 칼럼을 쓰면서 강연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 ​​ 

2020. 8.
사진제공_전문무용수지원센터, 서원대학교 문화예술교육센터, 이단비, 홍댄스컴퍼니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