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LDP 20회 정기공연
20년 세월을 마주한 LDP의 정기공연
김혜라_춤비평가

코로나 2.5단계로 거의 모든 공연이 온라인으로 전환되었고, 대면 공연은 30%만 허용되는 객석 상황에서 LDP(Laboratory Dance Project) 무용단의 스무 번째 정기 공연이 12월 11~13일 3일 동안(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9개의 작품을 선보였다. 20년 전 창단 때부터 현재까지 발표된 창작물 중 단원들이 가장 기억하고 싶은 세 작품을 뽑았고 현 단원들은 신작으로 무대를 꾸렸다. LDP 창단의 주춧돌 역할을 했던 미나유의 〈Portrait, 2006〉와 전미숙의 〈BOW, 2016〉, 김동규의 〈Look Look, 2017〉이 재연작이고, 올해 파라다이스 아트랩에서의 솔로를 군무로 변형한 LDP 초창기 멤버였던 차진엽의 〈원형하는 몸:round 1-1〉과 현단원인 김성현, 이정민, 장지호의 〈Record〉, 박지희의 〈Control-er〉, 정건의 〈The meeting〉, 정록이의 〈들어가지 마시오〉, 한대교 함의원의 〈2〉가 신작이다. 자연스럽게 20년 동안 LDP 단체를 거친 전 멤버들과 현 멤버들이 뭉치는 계기가 된 정기공연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보는 교량 역을 하게 된 셈이다.




미나유 〈포트레이트〉 ⓒBAKI




 티켓 오픈 5분 만에 매진된 12월 12일 공연은 미나유의 〈포트레이트〉와 전미숙의 〈바우〉 작품이다. 미나유의 〈포트레이트〉는 2006년 LIG극장 초청으로 만들어진 14년 전 작품이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유효한 메시지로 다가온다. 안무가의 일상적 삶을 살아가는 자기반성의 태도는 춤으로 매개되어 작품으로 결정체를 맺게 된다. 현실에서 체득한 삶의 이치와 예민한 감각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작품에서 노장이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은 매번 의미심장하다. 올 초 〈Body Rock〉(2020.2.19~20.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는 사회의 불합리성을 고발하지만 우리에게 암울한 사회에 맞서 락 스피릿으로 견디자는 메시지를 던졌고, 〈구토〉(2019.9.21~22.)에서는 죽음을 목도한 극한의 환경에서 자기구원이란 신이 부여한 자신만의 소명을 성실하게 다할 때 진정한 삶의 구원일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전작들과 유사한 기조로 작품 〈포트레이트〉에서도 욕망의 순간마다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반성)의 자리로 나오는 시간이 필요한 시대임을 안무가는 얘기한다.






미나유 〈포트레이트〉 ⓒBAKI




 일상적인 사람들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세 커플의 에피소드가 옴니버스식으로 작품 〈포트레이트〉에 담겨진다. 무대에는 댄서 둘만의 추억 사진이 걸려있고, 두 개의 묵직한 십자가 마크가 각인된 의자가 놓여 이 작품의 서사를 마련하는 축이 된다. 무대에 큼직하게 걸린 세 장의 사진은 찰나적 순간을 기념하며 지난 시간을 반성하게 요구되는 장치로서 의자와 함께 중요한 메타포이다. 각각의 신(scene)마다 커플들은 의자로 안내되어 그들만의 내재된 욕망의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김성훈 전환성, 이용우 정건, 김수인 김기훈은 그들이 꾸려온 일상생활의 궤적을 자연스럽게 감정과 움직임으로 녹아내며 드라마적 성격을 갖춘 춤을 춘다. 좀 더 직접적인 방법으로 김기훈은 노래로 김수인은 대사와 연기를 더하여 무대는 극적인 상황이 고조되며 둘의 이야기가 현실감이 있다. 매 에피소드마다 사용된 효과음과 음악의 결도 둘만의 예민한 감정을 강화시켜 한 편의 단편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미나유 〈포트레이트〉 ⓒBAKI




 세 에피소드를 짚어보면, 김성훈과 정건은 갈등하며 힘겨루기를 하다가도 자신들의 사진을 바라보며 과거의 순간들을 돌아보는 듯하다. 이내 서로에게 손을 내밀며 화해라는 회개의 본연적 임무에 다다른다. 이용우와 전환성은 십자가 의자에 서로 앉아 보려 시도하지만 진심이 아닌 행위로서만 강요받는 모습으로 비춰진다. 결국 둘은 진정한 회개의 순간을 맞이하지 못한다. 원망과 배신으로 남루해져 버린 불통의 남녀 관계로 설정한 김수인과 김기훈에게 회개의 자리는 사치스러운 남의 일로 보인다. 뒤죽박죽 섞인 세 편의 이야기는 여러 양태의 우리네 삶의 단면을 보여준다. 유치한 신파적 결말을 유도하지 않은 세 편의 에피소드로 미나유 안무가는 우리에게 ‘자신을 들여다보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허나 결코 강요하지 않는다. 십자가 의자로 나아가 앉을 것인지는 우리 각자의 선택에 달려있다. 인간의 감정과 정서를 움직임 언어로 표현하는 춤의 고전적 정의에 가장 충실한 안무가는 미나유 선생이다. 그래서 그의 춤에는 항상 생생한 삶의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는 우리에게 일상을 환기시키며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미나유 〈포트레이트〉 ⓒBAKI




 전미숙의 〈바우〉는 국내외에서 여러 번 재연되며 호평을 받은 작으로, 출연진이 거의 비슷하고 댄서들의 연습량이 축적되어 있어 노련한 춤 구성미를 재확인시킨 작품이다. 특히 오브제(부채)를 다루는 댄서들의 기량이 물에 올랐고 김재덕의 감각적인 음악이 입혀져 무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편안한 작품이다.
 안무가는 인사라는 행위에 담긴 사회적 기호를 탐색하며 인간관계의 진정성을 묻는 의도로 출발한다. 첫 장면에서 마스크를 쓴 남자에게 종종걸음으로 조심스럽게 다가와 절하고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에서 안무가의 질문이 선명하게 제기된다. 예를 갖춘 행위와 그 이면에 담긴 마음 사이의 간극이랄까? 이어지는 술잔, 부채, 멍석, 사발 같은 한국적인 제재를 활용하여 공손함을 상징하는 댄서들의 모습에서 안무가는 인사라는 태도가 윤리적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동양의 미덕인지 관습적인 행위인지 다시 질문을 제기한다. 질문을 던진 후 안무가는 구체적인 몸짓이 아닌 배경 화면에 형형색색으로 바뀌는 색감을 대안으로 관계 사이에서의 심리적 거리나 진위를 찾도록 열어놓는다.






전미숙 〈바우〉 ⓒBAKI




 사실 이 작품이 주력한 부분은 다양한 무대 배경 색감 속에 포근하게 담겨진 동작들의 바리에이션인 듯하다. 안무가는 인사라는 동작에 내포된 사회적 함의를 치밀하게 파헤치기보다는 인사 동작의 ‘형태적 변주’가 주는 시각적인 유희에 무게를 두었다. 한마디로 개념이나 생각보다 형식미에 초점을 둔 것이다. 전미숙만의 시니컬하고 내적 서사에 주력했던 많은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안무방식이다.






전미숙 〈바우〉 ⓒBAKI




 이 작품은 재연될 때마다 조금씩 수정되었다. 2014년 타리댄스 페스티벌에서 시작하여 라반 콘서바토리와 독일의 탄츠메쎄 같은 해외에서 공연될 때마다 20분에서 40분, 스위스 스텝스 축제에서는 60분의 길이로 늘어난 작품이다. 필자가 스위스 몽테 극장(Théâtre du Crochetan, 2018.4.22.)에서 봤을 때는 전반적으로 한국적인 색채가 강조되었다. 오브제들은 그 자체만으로 당연하고 구부린 몸통으로 호흡을 수렴한다거나 허튼춤 춤사위를 차용한 동작들이 댄서들의 몸에 체화되지 못한 인상이었다면, 이번 공연에서는 한국적인 동작의 요소가 약화되었는지, 댄서들의 기량으로 극복되었는지 모르겠으나 무대를 지배한 한국적인 정서가 오히려 모던한 미감으로 느껴졌다. 또한 작품 중반 쯤 이주미가 마치 제단(멍석)에 바쳐진 신물처럼 거꾸로 매달려 있고 그녀를 둘러싸며 예를 표하는 댄서들의 군무 장면이 전작보다 강조되어 인상적이었다. 일상적 습관에서 부터 제의적인 관습까지도 질문의 영역으로 확장하여 강화된 점이 전작과의 차이점으로 보인다. 매번 리바이벌마다 작품 〈바우〉는 변화를 모색하며 진화중이다. 그러나 여전히 의미심장한 안무가의 질문은 질문으로만 남아 있다.






전미숙 〈바우〉 ⓒBAKI




 12월 13일 공연은 차진엽의 〈원형하는 몸:round 1-1〉과 김동규의 〈룩 룩〉이 올려졌다. 먼저 차진엽은 댄서로서도 훌륭하지만 사회적 이슈와 트렌디 한 형식을 산뜻하게 연결(〈로튼애플〉,〈마우싱〉)시키는 안무가로 기억한다. 우리는 올해 팬데믹 현상을 목도하며 물리적인 이동 제한이 인간의 정신까지도 고립하게 하는 현실을 경험하고 있다. 따라서 인문학적인 토대에서 인간을 이해하려는 관심은 인류학적 관점으로 확대되어 호모사피엔스로서 자연과 인간 공존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근원’ ‘공존’이란 사회적인 화두는 차진엽의 신작 〈원형하는 몸:round1-1〉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차진엽은 시각적인 조형성에 심혈을 기울이며 이미지의 환영감을 유발하여 물과 몸이 순환되는 과정을 비쥬얼 아트와의 협업으로 도전했다.






차진엽 〈원형하는 몸:round 1-1〉 ⓒBAKI




 ‘원형하는 몸’이란 제목에 충실하게 무대는 원형의 형태감 표현에 모든 시각적 장치가 동원된다. 작은 원에서 시작한 빛(조명)의 영역은 무대 바닥에서 크기가 증폭 되면서 조형성을 갖추게 된다. 무대바닥 큰 원 안에서 빛의 물결은 출렁이며 그 안에서 유영하는 댄서들의 움직임과 만나 3차원의 입체적인 이미지로 완성해 나간다. 이어 프로시니엄 무대에서 공간적 환영을 더하기 위해 무대 배경 양쪽에 거울을 설치해 한 명이 움직이지만 여러 명이 동시다발적으로 춤추는 듯한 원형 공간의 착시효과를 일으킨다.(필립 드쿠블레 〈샤잠,1999〉에서도 동일한 방식으로 표현) 이와 같은 시지각적 원형의 형태감은 빛으로 구성된 영상바닥에 청명하게 떨어지는 물소리와 움직임이 더해져 무대에서 춤추는 댄서의 몸이 풍부하게 해석될 공감각적 배경을 조성한다. 이상적인 협업으로 보이는 비쥬얼아트와 춤의 케미(화학반응)로 물과 몸이 변형되는 불명확한 과정이 무대에서 나름 이해되는 측면이 있게 된다.






차진엽 〈원형하는 몸:round 1-1〉 ⓒBAKI




 또한 안무가는 원형의 형태감에서 나아가 물의 속성인 순환 과정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려 수피댄스의 양식(이슬람교 수피즘의 종교 의식춤으로 평자가 본 터키 콘야지방의 수피 댄스는 수년간 허드렛일을 마치고 마지막 단계에서만 접할 수 있는 수행 과정이었다. 수 십분 간 턴을 하며 엑스타시의 순간에 신과의 교접을 하는 일종의 종교 행위인 것이다)을 차용한다. 무대 천장에 얼음을 매달아 놓고 얼음이 녹으며 떨어지는 물방울을 오목한 그릇에 담아낸다. 이는 단순히 물이 고체에서 액체, 액체에서 기체로 증발하는 물리적인 과정을 표방하는 것만은 아닌 듯하다. 댄서들의 연속적인 트리플 턴 동작이 산발적으로 벌어지는 군무가 정점에 이르게 되면 일련의 이미지들이 융합되어 수피댄스의 엑스타시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아(無我)의 상태를 지향해 보이기 때문이다. 무념무상으로 빠르게 턴을 도는 댄서들의 몸은 실제 상태에서 다른 자아로 전이되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되며 마치 물이 기화되는 상태와 오버랩 된다. 댄서들의 몸은 공간에서 빛의 형체와 긴장 관계에서 서로 침투하고 흡수되며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 작품은 추상적인 이미지(비가시적 비물질적)를 우리의 일반적인 언어체계로 이해하려는 관객들에게는 다소 어렵게 다가온다. 점진적으로 확장되는 시각적 장치의 효과와 댄서들의 움직임으로 긴장감이 고조되는 무대를 보며 관객(평자도 마찬가지로)은 상상력을 발휘하여 안무가의 의도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요구되는 작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진엽의 〈원형하는 몸〉은 자연의 원리인 순환과 회귀라는 동시대적 고민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내고자 노력하였다.






차진엽 〈원형하는 몸:round 1-1〉 ⓒBAKI




 김동규의 〈룩 룩〉은 보는 시점과 보여지는 시점이 혼재되어 있어 맥락을 잡기가 쉽지 않다. “나는 어떻게 보여지고 보고 있는가?”라는 안무가의 물음은 화려한 꽃무늬 수트를 입고 얼굴을 숨긴 마스크에 가려놓은 댄서들의 모습에서 단서를 찾을 수도 있다. 화려한 외모 뒤에 숨겨진 온전한 모습을 타인은 볼 수도 없고 보여 질 수도 없음을 은유하는 것일까. 안무가의 혼재된 시점과 혼란스러운 심경은 과장되고 카오스적인 군무로 대체하는데 거의 시간을 소비하지만, 애초부터 안무가의 생각은 낙관적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무대는 천 뭉치들로 난장판이 되고 에너지가 소진된 댄서들은 마스크를 벗으며 마지막에 관객을 의미심장하게 응시한다. 상대방을 어떤 장벽 없이 있는 그대로 보고 동시에 보여지는 관계가 불가능함을 역설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김동규 〈룩 룩〉 ⓒBAKI




 현재 무용단에서 활동하는 단원들의 짧은 소품으로 구성된 신작들은 11일에 선보여졌다. 그중 정록이의 〈들어가지 마시오〉 작품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안무가는 움직임을 구성하는 짜임새도 개성이 있고 안무 방식도 언어적 설득력을 갖추었다.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경고문을 풀어가는 방식에서 그녀만의 체계로 강력한 메시지를 전한다. 섣불리 질서를 어기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주된 경고는 밧줄과 손수레를 이용해 응징의 오브제로 사용하고 있으며, 몽롱하고 오묘한 분위기에서 춤으로 재간을 부리는 부자연스러운 조합이 낯설어서 신선하다. 경고를 어긴 결과로 댄서는 밧줄에 몸이 묶이고 수레에 실려 약속된 자유는 반납되고 구속된 삶이라는 결과를 얻게 된다. 마사 그레이엄의 〈미궁으로의 사자〉를 벤치마킹한 인상도 받았고, 하나님의 경고를 어긴 아담의 원죄가 모티브가 된 듯도 하며 여러 해석 가능한 요소를 갖춘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정록이 〈들어가지 마시오〉 ⓒBAKI




 정건의 〈더 미팅〉 작품도 슬로모션과 영화 장면의 적절한 타이밍을 이용해 관계의 불합리성을 공감대 있게 안무했다. 김성현, 이정민, 장지호 공동작인 〈레코드〉는 무대에서 벌어지는 남녀간 일상을 영상으로 기록한 뒤 되감기(rewind)로 보여주는 아이디어가 단조롭지만 상큼했다. 박지희의 〈컨츄롤-러〉와 함대교 함의원의 〈2〉 작품은 분명한 안무 의도를 읽어내기는 어려웠고 오히려 감각적인 움직임 구성에 많은 할애가 된 작업이다. 안무가들의 다양한 철학과 관점들이 자신만의 형식적 표현으로 성취된 9개의 작품을 보며 LDP 무용단의 지난 20년의 경과가 자연스럽게 짚어졌다. 기량 있는 댄서들이 모여 있는 민간단체로서 지속해서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창작물의 결과를 낸 노력과 어려운 시기에 작품에 참여한 모든 출연진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정건 〈더 미팅〉 ⓒBAKI



김성현, 이정민, 장지호 〈레코드〉 ⓒBAKI



박지희 〈컨츄롤-러〉 ⓒBAKI



함대교, 함의원 〈2〉 ⓒBAKI






 
인터뷰_ 김동규 LDP 대표 

 

 



김혜라: 팬데믹 상황에서도 LDP무용단의 스무 번째 정기 공연이 올려졌다. 두 차례나 공연이 취소되었다고 알고 있는데 이렇게 무사히 공연을 올리게 된 것 축하한다. 프로그램을 보니 3일간 각기 다른 안무가들의 재연작과 신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LDP 창단에 주춧돌 역할을 하셨던 미나유 선생과 든든한 후원자이신 전미숙 선생 그리고 초창기 단체에서 오래 활동했던 차진엽씨가 참여했다. 더불어 김동규 회장과 현 단원들의 작업들로 구성되어 있다. 마치 과거를 조망하고 현재를 진단하며 미래를 예측해 보려는 의도로 짚어지는데, 20회를 기념한 특별한 기획 의도였는지 궁금하다. 
김동규: 저희가 내부적으로는 테마를 정해서 기획을 하자고 한 뒤 구성하다 보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 딱히 과거 현재 미래를 테마로 한 것을 아니지만 그렇게 된 셈이다. 저희는 미래지향적인 생각으로 공연을 기획할 때마다 긴 회의를 한다. 먼저 올해는 무용계가 힘든 환경 속이지만 우리 단체만이 할 수 있는 기획 공연이 어떤 것이 있을지 고민했다. 저희는 민간단체이지만 단원이 많다 보니 장기공연을 해보자고 했고, 신작과 재연작으로 다양하게 구성해 보자고 논의가 되었다. 먼저 우리가 다시 보고 싶고 기념하고 싶은 작품들을 고르고 싶어서 미나유, 전미숙 선생님들 작품부터 초청하고자 했다. 또한 LDP 창단멤버들부터 그동안 활동했던 사람들과도 같이 해보고자 시도했다. 처음에는 11개 작품으로 기획을 했고 대학로 대극장으로 2주 대관 승인이 되었다. 각각의 프로그램을 패키지로 하려고 5월에 결정했는데 코로나19로 취소되었다. 어떤 작품은 다른 페스티벌로 들어가기도 하고 어떤 신작은 다른 작품과 연결시키기도 하며 몇 개 작품이 떨어져 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나머지 작품 9개를 3일 안에 해 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올해 모두가 어려운 상황에서 적절한 구성과 기획으로 보인다. 더불어 20년 동안 지속적인 정기공연을 올린 열정과 노력을 인정하고 싶다. 반면 현재 Laboratory Dance Project 단체의 이름에 걸맞은 실험적인 작업들이 최근 창작되고 있는지 질문하고 싶다. 동문단체로서 초창기 10년은 기초를 다지고 안정을 찾는 과정이었다고 보고, 그 이후 10년의 활동을 보면 단원들이 돌아가며 안무를 한다는 인상이 들었다. 훌륭한 댄서들과 한예종이라는 프리미엄으로 팬덤을 형성하고 있지만 일종의 매너리즘에 빠진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개인적으로 LDP 초창기 때의 신선하고 에너지 넘치는 작업들에 환호했고, 점점 그 또한 익숙해지며 그 이상의 것이 나오길 기대했다고나 할까. 동문단체의 장단점이 있을 테지만…. 
저희는 동문단체이다. 그 안에서 동문단체가 갖는 폐쇄성도 있을 것이다. 일단 저희는 공개 오디션을 통해 한예종 출신이 아니더라도 타학교 단원들도 뽑는다. 그리고 학교 와 연계가 있어도 저희끼리 독립적으로 결정하고 회의하고 공연을 만들어내고 있다. 아무래도 보여지는 것이 동문단체 관성이 짙다 보니 외부에서는 그렇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저희도 그러한 단점을 벗어나고자 노력을 하는 중이다. 그 울타리 안에서 안무자가 돌아가며 하는 형식으로 비칠 수 있으나 저희 정기공연이나 다른 공연들을 잘 보면 해외 게스트 안무자와 작업도 자주 하고 있다. 
 저희가 외부의 시선에 따라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아니다. 저희 단원들이 다수여서 하나의 의견으로 통일하기가 쉽지는 않다. 저희는 다양한 작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간 노력하며 진행했다. 저희가 매 공연을 프로젝트로 진행하기에 매번 어떤 안무가가 있으니 같이 무용수로 작업하고 싶을 땐 지원해 달라고 내부에 공고한다. 그리고 안무 기회가 있을 때도 추천해 줄 것을 공지한다. 작년에 LG극장 공연 때에도 트리플로 객원 안무자를 초정했고, 정기공연 때도 정지윤 안무가가 함께 작업했다. 또 국제교류나 해외 페스티벌에 저희 무용수들이 작업하기도 하고 공동안무를 한다. 물론 저희 단원 중에도 안무에 재능과 열정이 있는 친구가 있을 때 같이 돕고 추천도 한다. 

LDP의 장점은 동문단체이긴 하지만 그 안에 매여 있지 않고 매 프로젝트에 따라 자유롭게 프리랜서처럼 활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안에서 민주적 절차를 거쳐 다양성이라는 모토로 단체가 지속적인 활동을 하는 것 같다. 
물론 무용단의 주요 행사가 잡혀 있을 때는 일정을 조율하기도 하지만 다 개인 활동이 가능하다. 

창단 20년으로 성년의 나이가 되었다. 앞으로 단체의 방향성에 대한 논의가 있는가? 
구체적으로 앞으로의 방향성을 진지하게 토론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프로젝트 무용단이라는 장점과 다양성에 좀 더 집중하고 있다. 개개인의 성격이나 기질이 너무 다르기에 단원들이 자기 성향에서 빛을 발하도록 무용단에서 논의하고 있다. 올해도 스위스 설치 미술을 활용해서 안무하는 분과 전시에서 움직임을 모티브로 해서 하는 안무자와 저희 무용수가 협업하며 장기 공연 기획을 잡았다. 프랑스 무용단 안무가와도 저희 무용수가 해외 투어를 하고 그 프랑스 무용단이 역으로 한국에서 투어하기로 계획을 했었는데 이 코로나 19 상황 때문에 취소가 되었다. 이러한 다양한 협업의 방향성도 갖고 있습니다. 저희 이미지가 다이나믹하며 군무를 파워풀하게 하는 장점을 좋게 보는 관객들 덕분에 그런 작품들이 국내외 페스티벌이나 쇼케이스에 많이 초정된다. 그렇다 보니 저희가 대표적인 작품만 한다고 볼 수도 있겠는데, 그 부분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 논의하고 있다. 

단체의 방향성이 ‘다양성’에 초점을 둔다고 했다. 단원들의 개성을 살피고 내재된 무엇을 발화시키는 것도 다양성에 속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의 언급에서 여러 시도가 부각되어 다른 안무방식으로 도출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보다는 단체의 장점인 화려한 춤태 구성을 강화시키는 데 흡수되어 버린 인상이 든다. 쉽게 말해 춤을 매우 잘 추고 움직임 구성을 빈틈없이 짤 수 있지만 그것을 내려놓고 춤과 안무에 대한 다른 질문을 제기하는 다양한 접근도 고려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예를 들면 이번 시댄스에 올린 〈라벤더 벤더〉는 김동규 회장의 예전 작품과는 달리 많은 얘기를 하지 않고 한 가지 주제를 담기 위해 무언가 많이 덜어낸 느낌이었다. 오히려 이러한 방식이 안무가의 의도를 읽어내는 데 훨씬 용이했다고 본다. 이러한 변화가 단체에도 영향을 주지 않을지 개인적 생각도 해본다. 
저에게도 도전이었다. 작업하면서도 확신이 들지 않는 생각을 계속 비워내려 했다고나 할까. 우리는 그동안 너무 피지컬하고 에너지 넘치는 것으로 관객을 만족시키려 했다는 생각을 댄서들과 공유하며 고민한 작품이다. 

그러한 고민이 깊어져 한국의 대표적 무용단체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다양성이 세계적 추세이지만 다양한 데 비해 먹을 것은 빈약한 뷔페처럼 외형적으로만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이 아닌 내실 있는 작업 방식을 좀 더 고민하는 선도적인 단체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단체의 자산인 댄서들의 가치를 살려내는 작업도 지속하는 단체가 되길 응원한다.

 

 

김혜라

춤웹진 편집위원. 춤미학과 비평을 전공하였고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비평가로 등단했다. 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심의전문위원으로 할동하며, 〈춤웹진〉에 정기적으로 평문을 기고하고 있다.​ ​ ​ ​ ​

2021. 1.
사진제공_BAKI, LDP(Laboratory Dance Project)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