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제36회 서울무용제
반감된 열기, 새로운 활로 필요
문애령_춤비평가

 2015년 11월 3일부터 22일까지 제36회 서울무용제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열렸다. 8월 31일부터 9월 3일까지 강동아트센터 소극장 무대에 오른 전통춤 공연, 그리고 9월 5일과 7일 대극장에서 열린 청소년 무용축제가 서울무용제에 새롭게 포함되어 관심을 모았고, 기존 행사 진행은 작년과 동일했다. 개막식과 초청공연, 자유참가부문 6개 단체 경연, 경연대상부문 8개 단체 경연, 시상식 및 축하공연으로 막을 내렸다.




 11일에 시작한 경연대상부문 첫 작품은 어머니의 삶을 그린 신종철의 <존재의 이유>다. 관객에게 등을 보이며 돌아앉은 남녀 7인의 포즈가 무너지고 쌓기를 반복한다. 아들의 시선에서 바라본 엄마의 일생을 하나의 이미지에 압축한 장면으로 생각된다. 이 인상적 포즈 이후로는 묘사적 장면이 지속된다. 한 남자가 머리를 감고, 노래하며 빗질한다. 커다란 쿠션 덩이 사이에서 나오는 손이나 발은 아기의 탄생처럼 느껴진다. 방석에 몸을 던지는 여자, 여자에게 안기는 남자, 그리고 느린 행진과 조용한 무언극이 진행된다. 엄마를 부르는 남자와 가슴 치는 엄마가 대비되다가 엄마가 뿌려주는 물에 신종철이 머리를 적시는 장면으로 맺는다. 넌버벌 시어터에 가까운 연출로 인해 안무자의 장점인 기교 탐구를 부각시키지 못한 점이 의외이고 아쉽다.
 이경수가 안무한 <13의 아해>는 영상이 특히 화려했다. 안무자에 의하면, ‘아해’는 희망, ‘12’는 시간, 나머지 ‘1’은 자아라고 한다. 망사막에 행성이 빛나고 신비로운 우주가 보인다. 키 큰 군무와 대비되는 키 작은 소녀, 피아노와 관악기 소리의 혼재, 영상이 꺼지면 등장하는 한 노인의 웃음소리가 희망과 사랑, 절망과 해탈 등을 담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제목에 대한 교감이 편치 않고, 주요 춤 어휘가 반복적 행진이라 표현성이 약했다.
 최진수의 <자화상> 주인공은 빈센트 반 고흐다. 고흐의 ‘자화상’ 자체보다는 삶의 일화를 다루며 안무자의 감정을 섞어 넣었다. 노인과 빨간 구두 여자, 이동 가리개들, 초록. 빨강. 파랑 망토를 걸친 군무가 이어진다. 두 남자의 대결적 춤은 아마 남동생과 고흐의 만남일 듯하고, 그들이 여자 주역과 함께 한 3인무는 작품의 절정을 이뤘다. 정 박자에 발레 동작을 나열한 초반부 군무는 기교 부족을 드러냈으나 마지막 백조 풍 군무는 예술가의 고뇌와 연결되는 춤의 판타지로 손색이 없다.




 김혜림의 <뿔>은 부제가 언령(言靈)이다. 안무자는 “인간의 뿔은 혀”라고 말한다. “신성한 의지로 굳건히 바로 세워지는 자존이여 비상하라”는 혁명적 문구처럼 강인한 화려함을 과시했다. 육체와 마음과 영혼을 오가는 작품 내용을 상세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무대 분위기는 시종일관 역동성을 자랑한다. 자극적 음악, 출연진 전원이 하나씩 차지한 화려한 조명, 도약하며 피트로 떨어지거나 열린 배경막 밖의 사다리를 타고 무대로 내려오는 군무의 등장이 바쁘게 연결된다. 아름다운 숲, 뿔을 든 남자와 담뱃대를 든 남자, 파랑 의상과 빨강 의상, 살풀이춤으로 애도하는 여자 등이 멋진 춤 기량을 과시하나 내용이나 상상력을 공유할 여지를 내주지 않는다.
 이범구의 <에이디토피아(ADtopia)>도 어려운 제목이다. ‘예수 탄생 이래 변치 않는 인간의 이상향’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법하다. 안무자는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쾌락의 정원’이 모티브”라고 밝힌다. 그 본능적 쾌락을 “매력 있고 능수능란한 남자”인 한 현대인에게서 찾는다는 내용이다. 초상화가 남자를 타락하게 한다는 전제로 집사와 여인, 남녀 커플을 등장시켜 주인공의 변화를 그린다. 거문고, 타악기, 플루트. 가야금 연주가 무대에서 이뤄지고, 그림 조각이 떠다니는 영상이 보인다. 초상화가 무대에 등장하면 여자 주역이 상체는 현대적이고 다리는 고전적인 기교로 무대를 장식한다. 주인공 2인무의 원숙한 춤에 빠져들 즈음 눈동자를 확대한 영상에서 장미, 송아지, 권총, 돈, 사과, 뱀 등이 나온다. 뒤로 갈수록 연출에 활력이 생겼으나 정곡을 찌르는 심리극적 묘사가 빠져 아쉽다.




 김용복 안무 <서천꽃질>은 제주도 굿에 나오는 “서천꽃밭으로 가는 꽃길”을 뜻한다. 아이를 잃은 엄마들은 진흙탕을 지나고 바람의 길을 건너 잠이 든다. 꿈속에서 서천꽃밭으로 들어간 엄마들, 아이들과의 만남, 삼신할미의 축복으로 장이 나뉘고, 삼신할미의 선물인 동백꽃이 아름다운 색감으로 무대를 빛냈다. 바닥을 어루만지며 수축과 이완을 강조한 여성 군무, 청아한 가야금 연주에 춤을 연결하는 안무 감각이 여유롭다. 피트에서 들풀 더미가 올라온 후, 애기들이 다시 등장해 밝은 분위기를 만들고, ‘울 어머니 보거들랑 울더라고 일러 주오’ 등의 가사에 삼신할미가 춤춘다. 할미의 솔로 구성이 다소 약했으나 출연진의 기량이 고루 뛰어나고 조화로워 오랜만에 정돈된 한국 춤을 관람했다.
 김진미 작 <거짓말쟁이 여자, 영자>는 매년 빠지지 않는 위안부 문제를 다뤘다. 신문 보는 노파, 빗장이 걸리는 문을 보여주는 영상, 손수건을 든 소녀들, 민요 소리, 노파와 젊은 여자의 2인무, 그리고 빨간 조명에 옷이 벗겨지는 장면이 연결된다. 몸을 씻은 할머니는 철문을 북춤 장단처럼 후려친다. 철문이 열리고 흰 의상의 소녀들이 전진한다. 희망적 분위기가 할머니 영자를 감싼다. 할머니를 화자로 정해 무대에 머물게 함으로써 극적 연계성을 강화시킨 점이 색다른 연출이다.
 한정미의 <사이(間)-보이지 않는 거리>는 논리적인 영역을 다루고자 했다는 점에서 남다른 창의성이 보인다. “서로의 관계에서 적당한 거리”를 찾고자한 작가는 “친밀함의 거리, 개인적인 거리, 사회적인 거리, 공적인 거리”를 구분했다. 탁자에 몸을 기댄 흰색 양복의 남자가 군무 사이를 지나가며 ‘사이’를 의식하도록 했고, 중앙에 정좌한 여자의 몸짓이 동양적 현대춤 어휘로 독특했으며, 여성 5인무는 주제와 조화를 이룬 독자적 장면이었다. 반면, 접촉 군무가 지나치게 어두웠고, 주홍 드레스 여인들의 춤은 대조적으로 들떴다. 이미지의 폭이 넓으면서도 통일감이 중요한 주제라 안무의 어려움이 컸을 것 같다.
 




 제36회 서울무용제에 출품한 안무자들은 지난해에 비해 평균 연령대가 낮았고, 한국무용계열이 5개 팀인데 반해 현대무용 계열이 한 팀에 불과했다. 대상, 우수상, 안무상 수상자도 모두 한국무용계열이다. 세계무대를 기준으로 작품의 현대성과 대중성을 겨눈다는 관점에서 이 결과는 어딘지 어색하다. 예비심사에서부터 요란한 경쟁을 치렀던 과거의 서울무용제 열기가 재현되기 바란다.

 올해는 공교롭게도 서울무용제와 거의 같은 기간에 근처의 대학로예술극장에서 무용창작산실 우수작품 공연이 있었다. 레퍼토리 육성을 목적으로 2008년에 시작된 창작산실은 무용계를 활성화시키는 희망적 행사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서울무용제 입장에서는 상대적 빈곤을 느끼게 하는 대상이다.
 서울무용제와 창작산실 공연지원금은 대략 네 배 차이가 난다. 극장 규모는 서울무용제가 크고, 작품 길이는 창작 산실이 25분정도 길다. 세트와 의상 등에 드는 비용은 양쪽이 거의 동일할 것이고, 무대를 향한 열정 역시 유사해 보인다. 문제는 서울무용제 지원금으로는 작품을 제작할 수 없다는 데 있다. 30년 전 연기상 부상이 삼백만원이었으나 현재는 백만 원이다. 기울어가는 이런 경제적 기반이 서울무용제의 미래상을 어둡게 만든다.

2015. 12.
사진제공_(사)한국무용협회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