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독일 현지 인터뷰
유럽을 흔드는 강심장 무용수, 허성임 (벨기에 니드컴퍼니 Need Company 소속)
정다슬

현 니드 컴퍼니 소속의 한국인 무용수 허성임. 두려움 따위는 없어 보이는 그녀의 에너제틱한 춤과 팔색조 같은 그녀의 연기력은 유럽의 관객을 사로잡고 있다. 이미 내놓으라 하는 유럽의 안무가들과 작업을 해온 그녀의 이야기를 한국의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니드 컴퍼니의 <머쉬룸> 세계초연이 있기 하루 전, 독일 에센에서 그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 춤을 어떻게 만나게 되었나?

어려서부터 춤이 나의 꿈이었다. TV에서 스쳐 지나가는 장면들에 매혹되어 혼자 거울을 보며 연습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학교 무용부 아이들이 부러워 문틈으로 연습을 훔쳐보곤 했다.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고 세 언니들이 모두 예능을 전공했기에 막내인 나는 늦은 나이에서야 무용을 시작할 수 있었다.

- 한국에서 석사를 따고 늦은 나이에 벨기에로 발걸음을 옮겼다. 벨기에 행은 어떻게 결정하게 되었나? 그리고 벨기에에서 활동하며 가장 많이 영향 받은 것은 무엇인가?
비엔나 임플스탄츠 페스티벌에서 로사스의 ‘레인’을 처음 보고, 그 날 끝없이 울었다. 이제까지 열심히 달려왔는데 아직도 내가 알지 못하던 무궁무진한 예술의 세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안느 테레사가 이끄는 학교 파츠에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입학을 하게되었다.
유럽에서의 경험 후 나는 기술을 중시하는 무용수에서 종합무대 예술인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익히던 테크닉을 넘어 무대 위에서 소리, 춤, 노래, 연기를 복합적으로 표현하게 되었다. 나의 몸에서 나오는 모든 것은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며 이로서 더 많은 가능성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벨기에에서 얀 파브르, 씨디라비 발레 그리고 니드 컴퍼니라는 유럽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 내놓으라 하는 컴퍼니에서 춤을 추었다. 각 컴퍼니의 캐릭터와 각 안무자와의 작업은 어땠는지 간략히 설명해 달라.
얀 파브르는 시각 예술인, 조형 예술인이자 무대 예술인이다. 그는 자신의 무용수와 퍼포머들이 가지고 있는 잠재 능력을 어떻게 하면 뽑아 낼 수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학교를 갓 졸업하고 그의 솔로 작품을 춤추게 되었는데 그 동안 내가 알지 못했던 나의 숨은 재능을 끄집어 내 주었다.
쎄드라베 발레는 음악과 춤, 동양과 서양, 음과 양의 조화를 매우 중시하는 컴퍼니였다. 단조롭고 심플한 컴포지션에 때론 실망하기도 했지만 인간미가 넘치는 아름다운 무용단 이었다.
현재 작업 중인 니드 컴퍼니는 춤, 노래, 연기와 행위 등이 광기어리게 펼쳐지는 다장르의 공연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무용수와 연기자, 음악가들은 모든 장르를 자신만의 색으로 소화해 내고 이 각각의 색이 조화되어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낸다. 공연자 개개인이 직접 자신의 캐릭터를 만들어 나가는 자유로움이 돋보이는 곳이다.


- 이런 다양한 무용단들에서 일하면서 동양인으로서의 장점은 무엇인가?
나는 동양인에게 밖으로 보이는 것보다 정신에 깃은 믿음과 아집이 있다고 생각한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끝까지 해내는 정신이 장점으로 부각되는 것 같다.

- 얀 라우어스의 작품들은 그 장르가 모호하다. 때로는 춤을 거의 찾아 볼 수가 없다. 당신에게 그것은 무엇인가?
얀 라우어스는 유럽에서도 가장 실험적인 작품을 만드는 사람으로 알려져있다. 그는 영화, 무용, 뮤지컬, 조형예술을 한 무대 위에서 볼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낸다. 어떤 한 장르에 속하지 않고 자신만의 특색 있는 작품 세계를 펼침으로서 더 인정 받는다고 생각된다.

- 무대에 설 때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인가? 반면 무대에 설 때 가장 즐거운 것은 무엇인가?
두려움이 있다는 것이 가장 두렵다. 아무런 두려움 없이 확신을 가진 예술가가 되고자 매번 노력한다. 반면 어떤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본인을 더 섬세하게 만든다는 것 또한 항상 인지하려고 한다. 무대에 서는 나를 가장 즐겁게 하는 것은 소통의 기회이다. 나에게 관객과의 소통 그리고 동료들과의 소통이 잘 이루어질 때 오는 기쁨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값진 것이다.

- 벨기에 혹은 유럽의 현대무용과 한국의 현대무용이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하나. 한국 춤계가 가장 중점적으로 발전시켜야 할 부분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사실 한국을 떠난 지가 오래되어 한국 춤계의 실정을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내가 경험한 가장 큰 차이점은 교육이다. 유럽에서는 무용수나 안무가가 자신만의 독창적인 테크닉과 작품을 만들어내는데 주력하는 반면 한국에서는 콩쿨에서 상을 받을 만한 테크닉이 좋은 무용수를 만드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또한 유럽의 경제적 위기에도 불구하고 젊은 예술인들을 위한 지원이 끊임없이 이루어진다. 그들이 자신만의 실험적인 예술 세계를 만들어 나가며 도전하고 작업에 몰두 할 수 있도록 뒷받침을 해준다.


- 해외에서 인정받는 무용수와 국내에서 인정받는 무용수,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국에서 한번도 아름다운 여성 혹은 무용인으로 인정 받은 적이 없는 나에게 유럽에서의 호평은 때로 낯설게 다가온다. 외적 조건과 시작적 아름다움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한국의 관점과는 달리 유럽에서는 한 인간이 갖고 있는 내적 에너지를 아름다운 예술인으로 인정하는 데에 차이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 유럽의 무용 혹은 본인을 한국에 더 알리고 싶은가?
한국은 나에게 항상 가장 중요한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배우고 익힌 다양한 지식들을 한국에서 나누고 싶은 마음이 항상 자리잡고 있다.

- 2012년 Freiburg 의 Residency를 에서 Freiburg 정단원으로 있는 한국인 장수미 씨와 듀엣을 만들고 호평을 받았다. 평소 안무가와의 작업 외에 창작 작업에도 관심을 갖고 있는가?
자기 만의 작품을 만드는 데에 시간을 투자하고 연구하는 시간들을 그리웠었다. 장수미씨와는 친구 간의 사랑은 어디까지 인가라는 소재로 듀엣을 만들었고 독일에서 많은 호평과 주목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벨기에, 스위스, 독일 등에서 지원을 받아 내년에 올릴 다른 작품을 구상 중이다.

- 예술이 사람에게 주는 영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예술은 사회적으로 금기 시 되는 것을 표현하고 이야기하는 자유를 줌으로서 정신적인 자유를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은 곧 사회에 정신적인 자유를 불어넣어준다고 믿는다.

- 현재 한국 무용수들은 유럽에 많이 진출해있고 진출하고 싶어한다. 조언 한마디 부탁한다. 그리고 향후 계획은 어떠한가. 한국에 돌아와 춤을 가르칠 생각은 없는가?
처음 유럽으로 무작정 건너와 알아 듣지 못하는 언어로 오디션을 보던 기억이 난다. 백 번에 가까운 실패 끝에 나에게 필요했던 것을 찾아 낼 수 있었다. 오디션에 낙방하며 상처도 컸지만 매번 도전을 통해 나 자신을 더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고 담대해 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예술 특히 춤은 개성이 가장 중요하고 자신만의 색을 찾는 일은 예술인으로서 쉬지 않고 이어나가야 할 여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여기서 찾은 나의 향로를 한국에서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언제든지 나눌 생각이다. 

정다슬
본지 독일 통신원, 독일 부퍼탈 저주, 부퍼탈탄츠테아터 소속
2013. 05.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