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강미리할무용단 〈길에서 춤을 묻다〉
돌과 소금으로 조율해낸 생성의 춤
권옥희_춤비평가

 벗어난다는 것은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춤추는 몸과 동시에 마음(춤 사유)을 수양하고자 하는 목적은 몸과 마음의 동시적 훈련을 통해 유형화된 춤의 자아를 변혁시켜 본래의 자아를 사유하고 나아가서 어떤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데 있다. 강미리의 ‘할’ <길에서 춤을 묻다>(국립부산국악원 대극장연악당, 12월 16일)를 말한다.

 




 극장 로비에서부터 연악당으로 들어가는 바닥에 좁은 길, 길이 구부러지는 한쪽에 작은 돌무더기(서낭당). 신은숙(서예가)이 대형 붓으로 길 위에다 글을 쓰는 퍼포먼스로 시작되는 공연. “춤을 묻고 참 나를 찾아 길...”까지 읽고 극장으로 들어선다. 돌무더기에서 하나씩 집어 든 돌을 들고.
 객석 의자가 아닌, 무대에 오른다. 무용수들이 춤을 추는 공간을 중심으로 ㄷ자 형태의 간이 객석, 오케스트라 박스에 연주자들을 배치한 형태. 무대와 객석의 경계 어디쯤에 관객들이 집어 온 돌을 놓으니, 무대는 금세 다른 영역으로 바뀐다. 제의성을 띤 공간, 미묘한 변화. 무대 안에 놓인 돌이 영속하는 닫힌 존재라면 돌과 함께 있는 무용수는 변화하며 확장되어 가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돌의 상징체계를 인식, 그것이 의미하는 것을 관객이 감지할 수 있게 배치한 안무자의 감각, 뛰어나다.




 남자무용수(이용진) 바닥에 앉은 채 돌(빛, 생명)을 응시하고 있다. 강미리와 7명의 여성무용수들의 단단하고 건강한 생명력이 느껴지는 춤, 제의 같다. 서로 같은 춤(동작)을 추지 않는다. 저마다 다른 춤을 춘다. 모방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춤의 의미 확산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무용수들마다 자신만의 뚜렷한 춤의 특질을 가진, 크지 않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춤의 에너지가 인상적인 장이었다.
 남자가(이용진) 바닥의 돌을 싸안고 엎드린 채 하나씩 늘어놓는다. 징검다리를 놓듯. 마치 우주에 떠있는, 돌(별)이 구르는 듯한 소리, 파도소리. 조용하고 느리게, 그리고 천천히 호흡, 호흡으로 생성되는 여자무용수들의 춤. 달의 움직임에 따라 조수간만이 일어나듯, 희한하게 춤에서 밀고 당김이 일어난다.
 돌무더기를 온 몸으로 밀고 나오는 이용진. 끌을 대지 않은 둥근 돌, 여성을 상징하는. 이용진이 놓아 둔 돌에서부터 시작되는 강미리의 춤. 먼 곳에서 서서히 생성되는 춤. 낮게 움직이는 흰색의상의 이용진의 춤, 우뚝 서서 추는 검정색 의상을 입은 강미리 춤. 조화, 음양, 최초의 가치 곁에, 운명의 깊이와 질에 대한 명철한 인식의 춤이다. 빠르게 돌고 (이용진을 향해) 낮게 가다가 다시 멈춰서는 강미리의 춤은 어떤 것에의 희구인 듯. 가고자 하는 그곳이 어떤 곳인지 잘라 말하기 어렵다. 그리워하는 곳이지만, 지금 여기 서 있기 위해 그곳에서 떠나온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강미리는 춤이란 것이 절대적으로 아름답기 때문만이 아니라 지극히 원초적인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우연한 춤으로도 초월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하다.




 이어지는 우리가락에 얹힌 몸짓, 양손에 돌을 들고 추는 춤, 흥을 얹고 힘을 실은 춤의 언어가 결연하다. 마치 춤에 대한 믿음이 이 세대의(무용수들) 믿음이라는 듯. 정화의식, 홀린 듯, 마침내 접신, 춤에 신이 얹혔다. 나신의(그렇게 보이는) 이용진, 천천히 걸어 무대 가운데 이르자, 천장에서 내리 꽂히듯 쏟아지는 소금(모래) 줄기, 튀어 오르는 소금, 부서지는 빛. 소금 줄기에 굴복, 바닥으로 낮게 절여진다.
 흰색의상, 온 몸으로 추는 강미리의 춤. 점차 고양되는 춤의 기운, 어쩔 것인가. 가슴을 두드린다. 무용수가 지니고 있는 힘이란 무엇인가. 무용수의 힘은 관객을 감동시키는 생성적 힘이다. 그러나 이 힘은 항상 관객에 의해 부여받는 힘이기 때문에 상대적 힘이다. 강미리를 강미리이게 만드는 관객, 관객을 관객이게 만드는 강미리는 오직 하나의 힘만을 지닌다. 이때 힘은 무한하고 절대적 춤의 힘에 의하여 구성되고 해체된다. 그 힘은 내적(영혼)인 힘과 몸으로 표현되는 춤의 상호작용에서 나온다. 힘 있는 춤, 푸른색의 빛기둥. 무대 가득 내리는 소금 비. 강렬하고 아름다운 장이었다.
 피아노 음악에 겹쳐지는 구음. 우주의 기운을 안으로 담아 내리고, 또 위로 담아 올렸다가 다시 내려 안는가 하면 감아 모았다가 다시 나누어 올리는, 태극을 그려내는 것 같은 춤. 흰 소금 무대(땅)를 밟아 다지며 그려내는 삶. 덩실덩실 추는 춤. 관객들의 얼굴에 번지는 미소와 희열. 안무자 강미리의 ‘할’ 춤, 그녀의 철학이 그대로 구현된 무대였다.




 춤은 만들어지는 동시에 사라져 버린다. 스스로의 춤을 지우며 다시 생성되는 것이다. 춤추는 몸 또한 유형화된 춤추는 몸의 움직임에서 자유로운 춤을 추어야만 늘 변화, 생성하는 삶을 살 수 있다.

 강미리는 걸림이 없는 자유로운 춤으로 무대에서 끝없이 흐르고 있었다.

2016. 01.
사진제공_강미리할무용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