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김용걸 댄스 시어터 5주년 공연
발레 하는 몸, 그 대안을 탐문하다
김채현_춤비평가

 변동하는 춤 세계에서 발레도 예외가 아닌 줄 누군들 모르겠는가? 변동하는 속에서 발레가 컨템퍼러리 발레로서 컨템퍼러리 세계에 진입한지 한 세대는 흘렀다. 그 세월만큼 발레가 걸쳐본 모습도 각양각색이어서, 컨템퍼러리 발레가 무엇인지 물음이 없다면 도리어 이상하다.
 연전에 ‘댄스 매거진’에서 컨템퍼러리 발레가 무엇인지 안무자들에게 공개 질문지를 돌렸을 때, 안무자마다 답은 응당 제각각이었다. 당연히 토슈즈 고수파도 있고 어느 안무가는 무대 위 춤꾼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을 주시할 것을 권하고, 또 누구는 컨템퍼러리 발레가 애매모호하다고 하는 등등.


 



 김용걸 댄스 시어터의 최근 공연(12월 15-17일, 아르코대극장)은 여러 면 컨템퍼러리 발레에 관한 김용걸의 관점을 담아내었다. 5주년 기념으로 올려진 이번 공연에서는 한 무용단의 5주년이라기보다 김용걸이 국내에서 작품 활동한 지 5주년을 되돌아보는 취지가 더 앞서 보였다. 그가 그동안 발표한 작품들을 주로 발췌해서 진행된 이번 공연은 〈윤회〉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체〉 〈기억을 지우는 주문(呪文)〉 〈워크 2S〉 그리고 〈빛 그리고 침묵〉 등 7레퍼토리로 구성되었다.
 기존의 여러 작품을 모아 전시하는 이번 공연에서 특정 작품을 논하기는 어렵고, 그보다는 지난 5년을 관통하는 어떤 맥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들 작품을 한 자리에 모은 결과 더 인상 깊게 부각되는 공통점이라면 나로서는 무엇보다 인체의 라인을 꼽아야 할 것 같다. 말하자면 김용걸의 컨템퍼러리 발레는 우선 이 인체 라인 살리기의 묘미 같은 것을 보는 이들이 감지하도록 한다. (고전) 발레에서 테크니컬한 동작이 그려내는 라인의 아름다움은 일반적으로들 추구하는 바이지만, 김용걸에게서는 동작 선이 인체 선으로 물 흐르듯이 전이해서 인체 선을 부각시키는 효과가 크다. 그것은 움직임에 의해 조성되는 것으로서, 포즈에서의 라인과는 성격이 다르다.


 



 주지하듯이 인체를 드러내면서도 상당 부분을 가리는 것이 고전 발레이며, 그래서 고전 발레에서는 주로 사지(四肢)의 형상미와 몸 자세의 균형미가 강조된다. 이러한 강조점이 컨템퍼러리 발레에서 반복되면 어색하거나 촌스러워지는 것은 이미 컨템퍼러리 발레가 인체에 대해, 그리고 동작과 인체에 대해 열린 사고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용걸에게서 인체 선은 몸통을 주축으로 한 몸 전체의 선이며 움직이는 몸통 전체와 움직이는 사지는 단숨에 조화를 이뤄내면서 형상과 균형의 미에 근접한다. 바 워밍업을 군무진이 전시하는 것으로 진행된 〈레 무브망〉에서도 몸통 전체와 사지의 조화를 위해 워밍업은 시종일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고, 그래서 그것은 흔한 바 워밍업의 복제가 아니었다.


 



 인체 라인과 동작 라인의 조화를 고전 발레가 ‘부분적으로’ 달성한 데 비해, 컨템퍼러리 발레에서는 굳이 그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이와 같이 컨템퍼러리 발레와 비교해보면 고전 발레가 보수적이라는 사실은 더욱 확연해진다. 몸, 움직임, 형상미, 균형미 전반에 걸쳐 고전 발레 식의 보수적 태도를 벗어나 발레는 널리 널리 확장하는 중이다. 이번 공연작들에서는 지난 5년 김용걸이 발레 하는 몸에 대해 일종의 대안을 모색해왔음이 읽혀진다.
 이번 공연작들처럼 김용걸은 공공의 공식 같은 발레 어법과 상투적 스토리텔링을 배제해왔다. 몸통과 움직임 사이의 관계에서 그가 마련하는 새로운 출구를 사람들은 즐기는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려면 안무 이전에 기량이 준비된 무용수들도 있어야 한다. 춤꾼들은 매우 유연한 순발력으로 다채로운 조화를 발랄하게 표출하였고 때로는 고혹적이기도 하다. 안무자가 춤꾼들로 하여금 은유하도록 한 것은 생(生)의 면면들이었고 우리 사회의 드러난 병리 현상도 예외는 아니었다.
 김용걸의 컨템퍼러리 발레는 컨템퍼러리하면서 이처럼 상당히 리얼한 점도 있다. 다만 아직은 출연진들이 일부 작품에서 생의 면면을 표현하기에는 더러 앳되어 보이고 텍스트 구성에서는 입체감을 입힐 필요도 있었다.


 



 컨템퍼러리 발레를 국내에서 더러 의식하고 있음에도 사실 뚜렷한 흐름을 이룰 안무자들을 우리 주변에서 거명할 수 있을 만큼 익숙한 그런 장르는 아직 아니다. 왕왕 지적하듯이 공공, 민간을 막론하고 고전발레 편식이 과도하며 그 저변에서는 발레에 대한 고정관념 또한 완강하다. 이의 대안으로 컨템퍼러리 발레를 염두에 둔 작업들이 있었고 또 계속 권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고전발레의 틀에다 현대적 또는 비고전적 스토리를 삽입한다고 컨템퍼러리 발레가 되는 것은 아니다. 유리 그리가로비치의 〈스파르타쿠스〉를 컨템퍼러리 발레로 분류하겠는가. 더욱이, 어쩌다 고전발레 틀에다 컨템퍼러리 틀을 접목시켜보는 일과성의 작업으로써 컨템퍼러리 발레 단체가 되는 것도 아니다. 뼈대와 속마음은 그대로인 채 색다른 옷을 한번 걸쳐보았다고 사람이 달라지는 경우는 매우 희귀하다. 그래서 국내 단체나 개인들이 컨템퍼러리 발레 나름의 양식을 숙지하고 창작을 일구려 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지적(知的) 수련도 필요불가결하다.
 5주년 공연작들에 담겼듯이 김용걸이 몸에 대한 열린 시각으로써 발레에 얽힌 제약을 파기하고 컨템퍼러리 발레에 집중하며 자신의 틀을 탐문해온 것은 아무튼 의미심장한 일이다. 

2016. 02.
사진제공_김채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