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특집_ 서울국제즉흥춤축제 20주년 라운드테이블
2020년 오늘, 대한민국의 즉흥춤

일시: 4월 24일 (금) 10:30 전문무용수지원센터 세미나실

참석자: 김화숙, 국은미, 장은정, 최상철
모더레이터: 장광열 (예술감독)
기록: 장수혜

 


올해 서울국제즉흥춤축제는 2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과 함께 부대 행사가 마련되었다. 〈2020년 오늘, 대한민국의 즉흥춤〉이란 주제로 개최된 라운드 테이블은 국내 즉흥춤의 변모 과정과 현재를 교육, 창작, 공연, 커뮤니티 영역에서 진단하고 그 방향을 조망했다는 점에서 국내 즉흥 춤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는 기회가 되었다. 〈춤웹진〉에서 그 생생한 발언들을 담았다. (편집자 주)


1. 즉흥춤과의 인연

장광열: 오늘 이 자리는 서울국제즉흥춤축제 20주년을 맞이하여 현재까지의 즉흥춤을 다양한 관점에서 되돌아보고자 마련한 자리이며 한국에서 즉흥을 이끌어 온 전문가들을 모시고 교육부터 창작, 공연, 커뮤니티 등에서 즉흥춤이 변모한 과정들을 살펴보며 현상을 돌아보고 문제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또 앞으로 즉흥춤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논의해보고자 한다. 먼저, 각자 ’즉흥춤‘과 어떤 인연이 있었는지 알고 싶다.

최상철: 이 자리에 나오면서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나 많은 고민을 했는데, 우선 김화숙 교수의 논문 중, 무용즉흥법에 대한 연구를 먼저 언급하고 싶다. 그 논문은 80년대부터 창작무용교육에 큰 기여를 했으며 무용즉흥법이라는 연구가 당시 한국 창작무용교육 환경에 맞는 좌표를 심어주었다. 또, 즉흥법이 적용된 B.M.I.I라는 프로그램도 개발하셨다. 그 시기에는 국내 무용학에서 즉흥이 언급이 안 되어 있었을 텐데 어떻게 그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김화숙: 언급하신 연구자료는 “무용 즉흥법에 대한 실험연구: 중학교 일학년을 중심으로” 라는 1976년 석사학위 논문이다. 당시 논문 지도교수이셨던 육완순 선생님을 댁 서재에서 기다리면서 우연히 책장의 원서들을 보게 되었고, 책을 펼친 순간 ’즉흥‘이라는 단어가 크게 눈에 띄었다. 그리고 또 다른 자료들을 보면서 해외 무용이론에서 꼭 한 단원씩은 자리 잡는 것이 즉흥이라는 것을 알았고, 관련 연구를 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창작의 첫 출발은 즉흥이라는 사실을 당시의 연구를 통해 깨달았으며 우연하게도 당시 금란여자고등학교에서 7년간 학생들을 지도하며 그 방법론들을 적용해 볼 수 있었다.
 몇 년의 시도 후, 당시 졸업을 한 학생들이 즉흥수업이 실제로 무용을 할 때 매우 유용하다며 그 실용성을 증명했고, 본인도 그 후 일본, 유럽, 미국 등에서 연수를 받으며 내가 실행하고 있는 방법론이 옳은 것을 확신했다. 그렇게 지금까지 45년간 즉흥을 가르쳐왔다. 그런데 2005년 예술강사지원제가 시행되면서 즉흥이 더욱 체계화되었고, 지도자들에게 즉흥무용 교육을 확산할 수 있는 기회의 문이 열리게 되었다. 그러나 즉흥을 통해 다양한 표현을 이끌어낼 수는 있었지만, 무용창작 능력 향상을 위해 보다 체계적인 방법론이 필요함을 절감하게 되었다. 이에 1989년 “무용창작 능력 향상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 빛 적용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 논문을 쓰며 B.M.I.I. 프로그램(신체디자인:Body Design, 움직임 자각:Movement Awaerness, 즉흥표현법:Improvisation, 상상표현법:Imagination)을 개발하였다. 이후 교육 현장에서 다양한 대상들에게 지속적으로 적용하면서 즉흥무용 프로그램을 보다 체계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지금은 커뮤니티댄스 지도자 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무용지도자들에게 확산시키는 중이다.

최상철: 언급하신 예술강사 지원사업을 주관하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예술강사들을 교육할 때 즉흥의 중요성은 이미 증명된 바 있다. 사업이 시작된 후, 저 역시 교육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교재를 만드는 경험을 가진 적이 있는데,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만족도 조사를 했을 때 수강생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은 프로그램이 창작과 즉흥이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기존 교육과정에 없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교육현장에서의 중요성과 필요성이 크게 강조되고 있다. 여기에 조금 더 체계적이고 세부적인 프로그램은 B.M.I.I라 생각된다. 김화숙 교수의 연구는 학문적으로 후학들에게 연구의 폭을 넓혀준 계기가 되었다.
나와 즉흥과의 첫 인연은 미국 NYU 학생시절이었다. 당시 처음으로 예술교육에서 즉흥의 역할을 알게 되었다. 90년대 미국에서는 치료, 공연, 워크숍, 교육 등 다양한 부분에서 즉흥교육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고, 무용학과에서 현대무용을 가르칠 때에도 테크닉보다는 즉흥교육에 조금 더 중점을 두고 있었다. 또 포스트모던댄스가 정점을 이루던 시절의 교육자들이 강의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즉흥이 창작의 근본이 되고,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뉴욕이스트 빌리지의 한 공간에서는 전문 무용수가 아니더라도 누구든 와서 즉흥잼을 참가할 수 있는데, 이와 같은 장면들을 목격하며 즉흥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장은정: 두 분의 이야기를 들으니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그 중 특히 서울국제즉흥춤축제 2회(2002년)에 출연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 컨택 즉흥부문에 참가하였다. 사실 교수님보다는 후세대로서 학교에서는 즉흥을 배우지 못했지만 무용계에서 활동을 하다 보면 당연히 즉흥을 해야 하는 것으로만 여겼다. 그러나 학문적인 부분은 생각하지 못했다. 20년 전, 서울국제즉흥춤축제가 시작되며 즉흥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즉흥을 배운 적도 없었고 잘 몰랐기 때문에 무섭기도 했고, 다치는 경우도 많았다. 두 분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그렇다면 2020년 지금, 무용계에서 즉흥은 어떻게 활용되고, 공연되고, 교육되는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또 요즘은 안무가들의 해외진출이 잦다 보니 즉흥을 해외에서 쉽게 접하기도 한다. 그런데 작품창작에 있어서 즉흥이 잘 연계되고 있는지는 고민이 된다.

국은미: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89년 육완순 선생님의 무용수로서 American Dance Festival에 가게 되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즉흥에 대해 잘 모르던 때였는데 어느 저녁, 축제 프로그램중 즉흥 워크숍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궁금증에 워크숍을 가게 되었고 어두운 공간에서 타악기 소리에 사람들이 움직이는 장면을 보며 어떠한 경계를 넘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차마 들어가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 기억을 품고만 있었는데 시간이 한참 흐른 뒤 금란여자고등학교에서 역시 수업을 하게 되었고 일반 학생들을 가르치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시 즉흥을 찾아보게 되었다. 다만 학생들을 데리고 수업을 하면 일종의 발표회를 해야 하는 데, 즉흥을 이용한 수업을 하다가 갑자기 모든 것이 미리 안무 되어야만 하는 발표작품을 하게 되면 매우 어렵더라. 보여지는 것과 보여지지 않는 것에 대한 간극이 매우 크다. 서울문화재단 춤바람커뮤니티 사업에도 참여를 하면서도 같은 생각을 했다. 교육적으로 즉흥이나 커뮤니티 댄스의 경우 발표를 하는 게 맞을지, 아닐지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김화숙: 앞서 말한 것과는 달리 무용교육 안에서 즉흥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나의 경우도 1975년부터 고등학교 무용 시간에 즉흥무용을 지도하기 시작했고, 그리고 이화여자대학교 무용 콩쿠르에 즉흥부문이 있기도 했다. 무대 뒤에서 주제를 적은 단어카드를 3분 보여주고 대회 참가자들이 무대에 나가서 표현해야 했다. 이때는 즉흥무용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시기라서 교사들이 불안하여 즉흥무용인데도 불구하고 학생들에게 짜여진 동작을 미리 연습시켜 출전시키기도 했다. 즉흥은 오로지 학생 자신의 생각을 움직임으로 표출하는 것으로 교사가 만들어준 작품을 답습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학생들은 즉흥 부문에서 스스로 뛰어난 표현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이렇게 이화여대 무용콩쿠르의 즉흥 장르 덕분에 무용교육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학생들에게 내면의 창의성을 깨우도록 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볼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장광열: 1984년에 예술잡지 객석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한 이후 10년이 넘도록 무용계 현장에서 ’즉흥‘이라는 단어는 쉽게 접할 수 없었다. 그런데 1999년 뉴욕 St. Mark's Church에서 즉흥댄스페스티벌을 처음 목격하게 되었다. 그 광경에 큰 자극을 받고 당시 정기간행물들을 찾아보며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20년 전, 최상철 안무가에게 자문을 받아 제 1회 서울국제즉흥춤축제를 시작하게 되었다. 20년 전에도 이미 외국에서는 즉흥 커뮤니티가 형성되기 시작하고 있었고, 그것이 공연의 양식으로 무대에 올려졌을 때 기존의 사전 안무와 그를 통한 반복되는 연습에 의한 공연과는 또 다른 차별성을 알 수 있었다. 이후 아바뇬 페스티벌과 몽펠리에 댄스 페스티벌, 독일 탄츠 플랫폼 등에서 샤샤 발츠 등의 안무가가 올리는 60분 길이의 즉흥 공연을 여러 번 보게 되었다.


2. 한국에서의 즉흥

장광열: 2001년 처음 국제즉흥춤축제를 시작했을 때 조사한 바에 따르면 4년제 대학 43곳, 2년제 대학 7곳에서 즉흥이 정규 학과목으로 개설된 대학교는 고작 7곳이었다.

김화숙: 대학 무용과에 즉흥무용이라는 교과목이 따로 개설되어 있지는 않지만 무용창작법, 안무법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대학 이전에 예술중‧고등학교에서부터 즉흥수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시기엔가 교육과정에 즉흥무용을 포함시켰으나 문제는 즉흥수업을 담당할 강사가 부족했다. 학생들이 움직임의 즐거움을 느끼기도 전에 테크닉만을 가르치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즉흥무용 교육은 즉흥이 전혀 되지 않는 사람을 되게 하는 방법과 즉흥이 되는 사람을 더욱 잘되게 하는 방법이 있다. 내 경우에는 일반인들보다 무용전공자들에게 즉흥을 교육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따라서 전문적인 무용 테크닉이 굳어지기 전에 춤을 처음 시작하면서부터 즉흥을 접하게 해주는 것이 옳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장광열: 맞다. 중고등학교에 커리큘럼을 넣는 것도 의미가 있다. 매년 서울국제즉흥춤축제를 개최하면 즉흥춤 전문가들이 서울예술고등학교에 방문하여 워크숍을 하고 있다. 그런데 왜 대학과정에서 즉흥춤을 교육하는 경우가 적은지 조사해 보았더니 가르칠 강사가 없거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학과목 개설을 놓고 교수들간의 협의가 이루어지는 것도 걸림돌이라고 들었다.

최상철: 현재 재직 중인 중앙대학교에서는 즉흥수업을 하고 있다. 나 역시 현대무용 전공 안에서 즉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학교 1학년 과정부터 박사과정까지 연계하여 수업이 개설되어 있다. 그러나 위에 언급하신 것처럼 즉흥은 방법론이 정말 중요하다. 어떻게 학생들을 자극시킬 수 있고 내면의 창의성을 잘 끌어낼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김화숙: 예술강사제 덕분에 초-중-고등학교에 즉흥수업이 있게 되었고 이제는 유아를 위한 프로그램도 있다. 그런데 즉흥은 자극을 주는 것이지 내용을 주는 수업이 아니다. 물론 현재까지 교재도 생겼고 커리큘럼의 기본 체계는 잘 잡혀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얼마나 어떻게 가르치는지가 정말 중요하다. 또 지도자의 양성도 큰 문제다.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그 당시(7-80년대)에는 현대무용 자체가 우리니라에 도입하여 발전해나가는 시기였기 때문에 현대무용 테크닉을 익히는데 많은 시간을 투입했던 것 같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현대무용 수업 안에서 즉흥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래도 작품을 만드는 사람 즉 안무자들은 스스로 즉흥능력이 없으면 창작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체계적으로 배우지는 않았어도 스스로 터득되었다고나 할까...
 이제는 즉흥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졌고, 중요성에 대해서도 인식하고 있지만, 아직도 즉흥무용을 체계적으로 지도할 수 있는 지도자는 부족한 것 같다. 지금은 대상별, 교급별 즉흥무용 프로그램도 개발되어 있기 때문에 무용지도자들이 조금만 관심을 갖으면 방법론은 금방 터득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서울국제즉흥춤축제 20주년을 기념 라운드테이블 현장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




장광열: 이 책은 즉흥무용교육법 (조이스 모르겐로스 저 / 김귀자 역 | 현대미학사 | 1995년 03월 01일)이라는 교재인데 90년대 중반에 출판되었다. 국내에서 즉흥이 교육의 수단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은 90년에 들어서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국은미 안무가와 장은정 안무가는 무용 전공자나 비전문인을 대상으로 커뮤니티댄스와 즉흥춤을 교육하며 오랜 시간 동안 공연도 하고 있는데 어떤 활동들을 하고 있는가?

국은미: 현재 대표로서 운영하고 있는 스페이스소마는 움직임에 관심있는 비전문인들이 훈련을 하고 있는 곳이다. 즉, ‘몸’이 이슈인 분들이 그 벽을 넘기 위해 찾아와 주신다. 그런데 오히려 전문무용수보다 더 즉흥을 잘하는 분들도 계시다. 무용수들에게 즉흥이 안무법이라면 비전문인들에게 즉흥은 표현의 수단이고 치유의 목적이다. 그래서 즉흥을 소매틱적으로 접근하면서 좋은 교육의 툴로 적용하고 있다.

김화숙: 즉흥에서 중요한 것은 움직이고자 하는 계기(자극제)가 있을 때 더욱 효과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번은 특수대학원에서 무용연극치료학과 즉흥 수업을 하는데 젊은 스님이 참석한 적이 있다. 춤을 처음 접하는 분이라서 아주 많이 긴장하셨는데... 어느 순간 스님은 끝없이 움직이고 계셨다. 그날 수업의 주제는 ‘내 몸이 붓이 되어...’ 즉흥무용은 생각 없이 그냥 몸이 움직여지는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생각을 춤출 수 있다면 더 많은 움직임을 표출해낼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즉흥 수업의 주제는 움직임을 이끌어내는 최고의 자극제가 되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하다. 즉흥 움직임은 마음 혹은 생각의 결과이다. 따라서 즉흥무용 지도자 역시 즉흥능력이 뛰어나야 수업을 효과적으로 이끌 수 있게 된다. 서울국제즉흥춤축제를 통해 즉흥춤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다양한 방법론을 지닌 즉흥무용 지도자가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장광열: 장은정안무가 역시 프로젝트그룹 추자(춤추는 여자들)를 이끌고 있는데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장은정: 대학 시절 안무법 수업에서 스스로 즉흥춤을 창작해야 했던 적이 있다. 실제로 본인이 국악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교육하면서 한국무용전공 학생들에게 즉흥춤을 가르친 적이 있는데 지금까지도 그때 즉흥을 잘 적용했던 학생들이 뛰어난 무용수, 안무가로서 활동하고 있다. 2005년 안무가로서 조금 답답한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 움직임에 관심 있는 비전공무용인들과 함께 결성하여 훈련하게 된 단체가 프로젝트그룹 ‘추자‘이다. 당시에는 커뮤니티 댄스라는 게 뭔지도 잘 몰랐는데, 훈련에 참여한 분들이 즉흥을 통해 삶의 많은 부분을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코로나19로 요즘은 온라인으로 즉흥을 가르치고 있기도 하다.

국은미: 요즘은 일반인들의 무용에 대한 관심이 정말 높아졌다. 그 과정에서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는 것이 즉흥이고 앞으로 그런 흐름은 가속될 것이다.

장광열: 앞서 지적하신 것처럼 그들을 위한 즉흥 지도자가 많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본다. 대학원 무용과 운영과 관련해 특수대학원 등에서 즉흥을 적극 수용해 즉흥 교육자를 배출하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것이다.

최상철: 무용 실기대학원에는 다양한 커리큘럼이 있다. 그런데 즉흥춤에 있어서는 지도자라기보다 리더라고 해야 더 맞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그 리더의 자질을 길러주는 것이 정말 어렵다. 즉흥춤에 있어서는 리더가 어떻게 그 시간을 운영하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오는데 대부분은 결과에 너무 매달리게 된다. 즉흥춤은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김화숙: 동의한다. 개인이 즉흥을 통해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흥에는 맞고 틀린 것이 없다. 여기에 있어서 리더는 이끌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을 주는 역할도 하는데, 리더가 어느 순간에 있어서 가만히 기다려 줄 것인지, 또는 어떤 자극을 줄 것인지를 잘 판단하며 감각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장광열: 서울국제즉흥춤축제는 공모를 통해 축제 기간 중 즉흥춤을 공연하는 팀을 선정하는 〈즉흥난장〉 프로그램이 있다. 매해 전문 무용수들로 이룽진 단체 뿐만 아니라 비전문가들로 이루어진 커뮤니티 즉흥 그룹들의 공모율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번에 참가하는 소마 휴 댄서스는 50-70대로 이루어진 즉흥춤 비전문무용인들이고 이들은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즉흥춤 워크숍에 참석했던 분들로 이제는 즉흥 마니아로 활발한 즉흥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성남 신흥동에 있는 골목에서는 다문화가정과 지역주민의 가족들이 토요일 오후마다 모여 즉흥춤을 춘다. 무력발전소라는 그룹은 안무가 밝넝쿨과 인정주가 이끄는 오!마이무브먼트씨어터의 전문무용인들이 리더로서 팀을 이끌고 있다. 또 서울국제즉흥춤축제가 매년 연계하여 활동하고 있는 제주즉흥춤축제의 경우 제주도 애월읍 상가리에서 즉흥수업을 하고 있는 ’문화곳간‘의 비전문무용인들이 참여를 한다. 서귀포에도 무용가 기은주 전지예 아지석 바리나모가 리드하는 커뮤니티 즉흥 그룹이 있다. 즉흥은 또 치유쪽으로도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다.

김화숙: 즉흥무용은 또한 무용치료에서도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내용이다. 그 이유는 몸과 마음을 치료하는데 즉흥무용이 가장 적합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왜곡되면 몸이 왜곡되고, 몸이 왜곡되면 마음도 왜곡된다고 한다. 따라서 무용치료에서는 바른 몸을 갖게 해주는 것(신체정렬 Body Alignment)과 즉흥무용이 기본 툴로 작용한다.

최상철: 그런 의미에서 노인무용(Dance for Older Adult)에 대한 관심과 개발도 시급하다.

김화숙: 유아에서부터 노인까지 즉흥무용은 적용이 가능하다. 이미 무용인구의 확산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확실하고, 현재 이미 많이 알려 지고 있지만, 조금 더 발전되기를 바란다.




 

서울국제즉흥춤축제 라운드테이블. 왼쪽부터 (위) 최상철, 예술감독 장광열 (아래) 국은미, 김화숙, 장은정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




3. 외국에서의 즉흥

장광열: 이번에는 외국에서의 즉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프랑스 몽펠리에 댄스 페스티벌에 참가하던 중 그곳 지역의 자연과학을 가르치는 교사를 대상으로 한 즉흥 워크숍 프로그램을 참관한 적이 있다. 페스티벌과는 별갸의 프로그램이었다.
 프랑스에너는 변호사나 판사, 외과의사 등 반복되는 업무적 성향으로 신체와 생각의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는 전문직종 집단에게 즉흥춤을 가르치는 워크숍을 열고 있었다. 뉴욕시의 경우 성 수자와 노숙자 등 사회 소수집단에게 치유의 목적으로 오랜 기간 즉흥춤을 전파해왔고 마크모리스무용단의 경우도 파킨슨병 환자와 치매 환자들을 위한 무용치유 프로그램을 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즉흥춤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대만에서도 최근 즉흥에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고 포르투갈에서는 컨택 즉흥만을 하는 페스티벌이 생겨났다. 유럽의 경우 국립댄스하우스를 중심으로 커뮤니티 즉흥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국에 산재한 260개가 넘는 공공 문예회관 같은 곳에서 지역주민들을 위한 커뮤니티 즉흥 프로그램을 운용할 필요가 있다.
 수년 전부터는 유럽을 중심으로 ‘즉흥아티스트’라는 용어가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 즉반드시 무용을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예술에 대한 인문학적 사고를 갖추고 충분한 신체 훈련이 된 아티스트들이 즉흥을 중심으로 공연과 교육, 치유 등을 지속적으로 시행하고 예술적 성과를 얻고 있다.

김화숙: 해외의 경우 이미 진행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언젠가 미국무용협회(National Dance Association(NDA) 워크숍에 참여했는데 3일 동안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많은 무용교육자들이 다양한 방법론을 제시하며 수업을 열고, 전문가들이 참석하여 관찰하고 연구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브르셀에서 Dance Education이라는 주제로 워크숍이 진행 될 때도 많은 교육자들이 저마다의 방법으로 즉흥수업의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었다. 굳이 공식 교육과정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현장이 펼쳐지면 지도자들은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즉흥무용 전문가들이 합류하여 더 강도 높은 연구와 시도가 이루어진다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장광열: 서울국제즉흥춤축제는 매년 부산에서도 축제를 연계하고 있는데,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무용가 중 한분은 성매매 여성들을 대상으로 즉흥을 통한 워크숍을 지속적으로 시행했었고, 이후에는 그들이 실제 무대에서 즉흥춤 공연을 하기도 했다. 이 워크숍 프로그램은 여성부의 지원을 받아 시행되었다.

김화숙: 그것이 즉흥이 가진 힘이다.

장은정: 이전에 가정폭력피해자들을 대상으로 교육한 적이 있었는데, 그들의 트라우마는 또 다른 영역의 치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경우에는 그에 따른 맞춤교육이 필요하다.


4. 문제점 및 해결방안

장광열: 지금까지 언급된 내용 중에는 즉흥춤의 지도자 부족과 예술중고등학교에 즉흥춤 프로그램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 있었다. 국내 즉흥춤분야에 있어서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조금 더 짚어보고자 한다.

장은정: 이제는 즉흥춤의 과도기라고 생각한다. 즉흥춤은 절대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이끌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경제적 수단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즉흥춤 및 커뮤니티댄스가 사업이 되었을 경우 결과를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에 결과가 중심이 되는 경우가 있었고 경제적 이유로 즉흥에 전문성이 없는 무용인들이 참여 하게되는 경우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김화숙: 동의한다. 결과를 보여주는 것보다는 즉흥춤은 그 과정의 마지막 수업을 보여주는 것이 옳다. 관객을 앞에 두고 즉흥춤을 보여준다면 그에 맞는 목적을 설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전문가라면 일반인들에게 이런 과정을 잘 설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최상철: 같은 의미에서 즉흥춤을 보여줄 때 관객과 공연자의 존재가 무의미해지는 데, 앞으로 서울국제즉흥춤축제의 방향도 일정한 금액을 지불하고 공연을 보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데 더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20년동안 즉흥춤의 역할과 확장을 위해 공연의 형태로서 잘 발전시켜야 했고 필요성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 벽을 허물고 새로운 방향을 연구하는 지점도 중요하다.

김화숙: 콜럼비아 몸의 학교에서 첫 번째로 가르치는 것은 ‘몸에 대한 존중’이다. 춤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참으로 좋은 수단이다. 또 4차 산업혁명시대가 다가오며 인문학과 예술에 대한 중요성은 더욱 높아졌다. 대학이 이런 점들을 잘 반영하는 것이 옳지만 대학이 미처 하지 못한 것들을 외부에서 시도하는 것도 중요하다.

국은미: 동의한다. 처음 즉흥의 시간이 주어졌을 때 무용수로서 막막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본인보다는 외부적인 환경이 너무나 많이 변했고 그에 따라 역량을 발전시키고 공부해야만 했다. 서울국제즉흥춤축제의 20년은 이런 점을 잘 반영했고 발전을 이끌었다. 물론 ‘보여지는 것‘에 있어서 단점도 있지만 장점도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목표와 경쟁이 주어져야 실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런 장단점을 잘 적용하여 패러다임의 전환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이전에 아르코에서 주최하고 전인정 안무가가 이끈 프로젝트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기 위한 두 달간의 워크숍’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당시 철학아카데미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비전문 무용인들이 참여했고, 그분들의 생각과 움직임은 큰 도움이 되었다. 만일 예산이 넉넉하게 주어진다면 춤과 함께 인문학수업을 곁들여보는 방법도 재미있을 것 같다.

장광열: 서울국제즉흥춤축제의 예술감독으로서 지난 20년 동안 1)질 높은 다양한 유형의 즉흥 공연 기획 2)전문가 마니아, 일반인들을 위한 즉흥 워크숍 프로그램 제공 3)즉흥을 통한 지역 무용계 활성화 4)즉흥 아티스트들을 통한 춤 국제교류와 네트워킹 강화 5)즉흥 축제를 통한 해외 춤 시장에서의 한국의 이미지 고양을 일관되게 추구해 왔다. 서울국제즉흥춤축제에서는 매년 ‘관객과 함께 하는 즉흥축제’와 즉흥 아티스트들의 네크워킹을 겸한 ‘enjoy 즉흥 잼’이 있다. 즉흥을 통한 교육도 중요하지만, 즉흥을 통한 다양한 유형의 공연에 더 많은 비중을 두어온 것이 사실이다. 지적해주신 것을 반영해 앞으로는 양질의 맞춤형 즉흥 워크숍 프로그램과 직접 참여하는 프로그래밍 확장에도 고민하겠다.


5. 플로어 참관자 의견

- 비전문무용인으로서 관심이 있어서 참여했는데 유익한 내용이었다.

- 즉흥지도자를 시도해볼까 생각이 들 정도로 공감이 되는 내용들이었다. 무용전공자로서 즉흥의 기본이 없으면 창작이 불가하다. 무용학과에서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그 당시(90년대)에는 즉흥수업은 없었지만 해외에서 내한한 안무가가 연 수업에 참가한 기억이 있는데, 어떤 단어를 듣고 창문에 올라가고 기본 틀에서 벗어난 행동을 취하면서 자유로움을 느꼈다. 생각해보면 그때 사고가 열리면서 앞으로 무용창작에 있어서 생각의 중요성을 깨닫고 공부해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또 서울국제즉흥춤축제는 즉흥춤의 발전을 위해 좋은 발판이 되었다. 물론 위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보여주는 춤’에 대한 거부감이 없지는 않지만 즉흥에 대해 잘 모르는 대중과의 접근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지점이었다. 앞으로도 즉흥을 통해 사회적 실천과 예술적 창의성을 발전시키는 좋은 작업들이 확산되길 바란다.

- 프랑스에서 무용을 공부했는데 즉흥이라는 단어보다 소매틱이라는 단어 속에 즉흥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 같다. 당시 (90년대) 프랑스에서도 역시 외부안무가가 수업을 들어왔을 때 즉흥이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되었다. 학부에서는 한국무용을 전공했는데 교사들 또한 본인을 보며 에너지를 얻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고안해 내는 경험을 했다. 한국문화에서 사물놀이의 가장 마지막에 즉흥이 있다. 즉, 한국인들에게 즉흥은 이미 가지고 있는 자질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이 자질을 끌어낼 수 있는 교육법이 없었던 것 같다.
 곧 보게 될 서울국제즉흥춤축제 프로그램 중에 〈서울시민과 함께 하는 즉흥춤 공연〉 프로그램에 큰 관심이 있다. 그 이유는 지금의 축제는 예전에 비해 조직이 중심이 되어 여는 축제가 아니라 참여의 의미를 더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언급하신 ‘참여’의 축제에 공감하며 서울국제즉흥춤축제가 시민참여의 축제로서 잘 발전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 현대무용을 전공했다. 그리고 10년 전 쯤 국제즉흥춤축제에 무용수로서 참여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당시 고민했던 지점은 즉흥을 무대에 올리려면 어디에서 어디까지가 즉흥이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더라. 또 어떤 작품은 이미 너무 많이 안무하여 나온 경우도 있었다. 아마도 즉흥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것 같다. 그런데 20년이 지나며 무용수들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서울국제즉흥춤축제를 보면 참가자들의 다양성을 볼 수 있고, 관객 또한 다양해졌다. 축제가 많은 부분에 기여했다.

장광열: 좋은 말씀과 조언 감사하다. 2시간 동안 유익한 시간이었다.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김화숙: 원광대학교 명예교수. 국립현대무용단 초대 이사장 역임, 현 한국무용교육원 이사장

 

국은미: 숨 무브먼트, 스페이스소마 대표.Feldenkrais Practitioner. 〈Off〉, 〈강 The River〉등 안무

 

장은정: 장은정무용단, 프로젝트그룹 ’춤추는 여자들‘ 대표. 현대무용진흥회, 김기인 춤 문화재단 이사

 

최상철: 뉴욕대 NYU무용과 박사. 제1회 서울국제즉흥춤축제예술감독. 중앙대 무용과 교수

 

장광열: 무용평론가. 숙명여대 무용과 겸임교수 ​ 

2020. 5.
사진제공_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