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2016 모다페(Modafe)
질 높은 해외 신작, 높아진 밀도
방희망_춤비평가

 제35회 국제현대무용제(이하 모다페)가 ‘감각으로 일깨우는 춤의 콜라쥬’라는 테마로 5월 18일부터 29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에서 펼쳐졌다.
 2014년 모다페의 개막작 〈House〉로 국내에 첫 선을 보인 샤론 에얄 & 가이 베하르의 안무작이 이번 개·폐막작에 모두 배치되었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고 그간 국내에서 꾸준한 활동을 보여 온 신예 안무가들의 기존작과 신작이 고루 포함되었다는 점에서 국내현대무용계의 활발한 근황을 확인할 수 있는 축제였다. 평자는 개·폐막작을 포함해 국내외 안무가들의 작품을 두루 보았다.


 




 
스코틀랜드 국립현대무용단이라고 번역 소개된 스코틀랜드 댄스 시어터의 개막작 〈Dreamers〉/〈Process Day〉(5월 18-19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평자 18일 관람)는 특이하게도 자국 안무가의 작품이 아닌 슬로바키아 출신 안톤 라키와 이스라엘의 샤론 에얄 & 가이 베하르의 작품이었다.
 원래 레퍼토리를 보유하는 방법이 세계적인 안무가들에게 의뢰하는 식이라 그런 것인지, 투어를 위해 선택한 것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첫 내한에서 본국의 현대무용 경향을 확인하기에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상반된 색채의 두 작품을 무리없이 소화해낼 정도로 역량을 갖춘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안톤 라키의 〈Dreamers〉는 이번 모다페 포스터의 대표 이미지로 사용된, 2015년에 초연된 작품이다. 흰색의 단순한 무대 위 다양한 체격에 다양한 옷을 입은 무용수들의 활력 넘치는 희극적인 움직임은 생에 대한 안무가의 긍정적인 관점을 보여준다. 제목이 잠들지 않은 채 꿈꾸려 하는 사람을 의미하듯이 내면의 충동은 한껏 활성화된 육체에서 바로바로 표현된다.
 이를테면, 첫 곡 바흐 음악에서 촘촘하고 정교하게 배열된 음표 이상으로 빠르게, 과잉 매치된 동작들은 음악에 앞서는 몸의 충동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길들여지지 않는 본능을 시사했다. 주로 클래식음악을 사용하여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흐름 위에 운동성을 강조한 동작들을 얹은 것이 눈에 띄었다.
 샤론 에얄 & 가이 베하르의 〈Process Day〉 역시 올해 2월에 초연된 최근작이다. 어둠 속에서 느리고 은근하게 도발하는 테크노리듬에 맞추어, 규율에 맞추어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군무의 모습은 흡사 밀교(密敎)의 성적인 의식을 훔쳐보는 기분이 들게 한다. 일괄적으로 착용한 군용 런닝과 포마드를 발라넘긴 머리모양, 강력한 육체적 힘에 대한 숭배를 상징하는 동작들은 다분히 남성성에 집중되어 있다. 다른 측면에서는 마치 전투 전에 승리를 기원하면서 집단적인 도취를 고조시키는 제의처럼 보이기도 한다.
 작품 외적인 이야기일 수 있으나, 2014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폭격을 가할 당시 일반인들까지도 밖에 나와 그 장관(!)을 구경하던 모습을 찍은 동영상을 보며 섬뜩했던 경험이 있어, 이 작품을 보면서 어쩌면 그들의 클럽 문화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호전적인 성향이 스며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관능과 욕망에 대한 숭배를 표방하는 이 작품은 과연 정치적인 문제를 배제하고 순수한 예술 작품으로만 읽힐 수 있을까?


 



김동규 〈MAUM〉/ 김성용 〈Moving Violence-episode 2〉/ 김보람 〈봉숭아〉(5월 21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김동규, 김성용, 김보람 이 세 안무가는 이제 상당한 수상 이력을 갖고 여러 축제에 초청받기도 하면서 더 이상 ‘신예’라고만 부르기가 어려운 위치에 놓여 있다.
 제35회 서울무용제에서 처음 발표하며 안무상을 받은 김동규의 〈MAUM〉은 그때와는 상당히 달라진 버전으로 무대에 올랐다. 초연당시 2층으로 이루어진 세트는 마음의 현상을 시각화하는데 상당한 효과가 있어 인상적이었다. 남남, 여여, 혼성의 다양한 듀엣과 트리오가 그 세트에 초현실적인 그림처럼 늘어뜨려지며 주로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보여주었었다.
 그런데 이번 공연에서는 비용문제 때문인지 초청공연용으로 작품을 수정하면서 그런 것인지 세트가 생략되었다. 그 때문인지 다양한 관계의 갈등 군상을 제시한 초반부 이후 주제를 밀고나가지 못하고 봉합한 채 화려하지만 다소 평범한 LDP 스타일 플로어 댄스로 전개하여 아쉬움을 남겼다.


 



 댄스컴퍼니무이의 김성용 안무 〈Moving Violence-episode 2〉는 두 명의 무용수와 의자 하나로 대극장 무대를 채운 작품이다. 폭력을 주제로 안무한 연작에서 앞의 것을 보지 못해 연결된 내용을 짐작하기는 어렵지만, 폭력 자체보다는 폭력이 가해진 이후 개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고통과 사회적 불통의 상처를 성찰하는 쪽에 가깝다고 봐야할 것이다.
 나무의자라는 소품은 대단히 의미심장한 선택으로 보였다. 식탁이나 회의장에서 눈높이를 마주하며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하는 의자가, 사람을 묶어 고문하는 수단으로 쓰였던 역사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안무가는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그것을 넘어 사람과 사람이 만나 몸으로 부대끼며 대화를 시도할 수 있겠는지를 의자를 중심으로 한 안무를 통해 타진해 본다. 주로 길고 부드러운 선을 구사하다 가끔씩 뒤트는 동작들을 삽입함으로써 오랜 시간 진행되는 폭력의 상흔을 그려냈다. 대극장의 빈 공간은 방관과 침묵으로 압박하는 사회를 의미하기에 충분했고, 때로는 무용수의 그림자를 크게 키워 드리움으로써 한 개인의 존재감이 결코 작지 않다는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주었다.


 



 ‘뽕끼’와 ‘펑키’가 넘치는 안무가 김보람은 여성의 예측불허한 매력을 그리는 〈봉숭아〉를 선보였다.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는 가로 일렬로 세우는 군무를 즐겨 사용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번에는 아마도 깨물어 안 아픈 것 없는 다섯 손가락처럼 각각 다른 매력을 지녔다는 뜻으로 여성무용수 다섯 명을 내세운 그림을 짰다는 생각이 든다. 그야말로 ‘손대면 톡 터질’ 것처럼 사랑스럽게 도발하고 때론 발칙하게 개성을 표현하는 무용수들의 모습은 구김 없이 솔직하면서 그렇다고 특별히 위악적이지도 않다.
 어떤 형식이나 규율에 얽매이지 않고 주변과 일상이 가진 그대로의 모습에 주목하는 애정어린 시선, 자연스러운 흥으로써 작품을 만들어나가는 김보람의 세계는 확실히 그 단체 이름처럼 무어라 규정지을 수 없는 자신만의 정체성을 확실히 갖고 있다.


 



장혜진 〈이주하는 자아 문의 속도〉/ 최진한 〈A! man- 그 방 안에서〉/ 최우석+배민우 〈사람흔적〉(5월 25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주로 미국에서 활동한 경력을 갖고 있고 근 몇 년간 국내에서 활동을 넓혀온 장혜진은 〈이주하는 자아 문의 속도〉라는, 안무가 자신이 ‘진단적 작품(diagnostic piece)’이라 부르는 작품을 선보였다.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의 뒤쪽 문이 반쯤 열려 그 너머 공간이 보이도록 둔 상태에서, 공연이 정식으로 시작되기 전부터 그는 무대에 나와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객관적 시간과 주관적 시간의 불일치, 그 간극을 탐구하는 이 작품에서는 공연 시작 전의 그 행위와 시간들까지도 작품의 일부로 포함시켜야 맞을 것 같다. 한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음에도 객석의 관객과 무대 위 무용수는, 서로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며 감정적 교류를 나누기 이전에는 그저 남남일 뿐이기 때문이다.
 반쯤 열린 문이 갖는 상징성- 들어가거나 혹은 나가거나, 미처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에게 그것은 애매한 선택지에 불과하다-과 함께 즉흥적 요소가 강하면서도 집중력 있는 퍼포먼스는, 변화에 대한 기다림과 안주하고픈 관성 사이 심리적 거리를 보여주었다. 정식 극장보다도, 예를 들어 문화서울역284처럼 많은 사람의 기억이 깃든 역사적 장소에서 공연될 때 공감대가 커질 만한 작품이었다.


 



 댄스프로젝트 딴딴따단의 대표인 최진한의 〈A! man- 그 방 안에서〉는 30분이 채 되지 않는 길이에 강렬한 극성(劇性)을 갖춘 작품이었다. 여인(최정현)이 창세기 구절을 읊으며 최진한의 머리 위에 계란을 여러 개 깨뜨리면서 시작된 퍼포먼스는 다소 파격적이었지만, 생명의 탄생이 쉽지 않다는 역설이면서 작품 전반에 깔린 윤회에 대한 비유가 될 수 있었다.
 임부복 혹은 수도복을 연상시키는 튜닉을 입고 조명이 지정해주는 길을 따라 구부정하게 걸음을 옮기고, 옷무더기 위에서 알을 품었다가 가방(자궁을 의미한다)에 들어가려고 발버둥을 치고(성행위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다시 그 옷가지들을 덮어 스스로의 무덤을 만드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그는 생의 다양한 양상과 역할을 한 몸으로 모두 연기해낸다.
 현재 모습 너머에 있는 과거의 숱한 인연까지 응시하며 모든 존재가 지니고 있는 우주적 의미를 소중히 여길 수 있다면, 때론 비극적인 삶도 견뎌나갈 힘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수행자처럼 진지한 태도로 임하는 최진한의 모습에서 그간 여러 안무가의 작품에서 묵묵히 뒷받침하는 무용수로 출연하면서 얻은 공력이랄까, 작가로서의 미래를 기대하게 되었다.
 음악을 맡은 Eric Linder는 현장에서 호흡하며 최진한의 강렬한 퍼포먼스를 명상적인 분위기로 감싸주면서도 절정까지 착실하게 견인하는 등, 안정된 협업을 보여주었다.


 



 툇마루무용단 소속 최우석과 배민우는 한 편의 버디무비(buddy movie) 같은 작품을 보여주었다. 천장의 조명 라인에 설치한 장치를 통해 물방울을 뚝뚝 떨어지게 하여 비가 내리는 가운데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 2악장이 흐르고 두 친구가 등장한다. 한 명이 물줄기를 일부러 올려다보며 눈에 맞을 때 다른 한 사람은 옆에서 그것을 닦아주거나 머리를 받쳐주는 등 애틋하게 위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엔 순수한 우정이었으나 성장하고 생존하며 탐욕에 오염된 듯, 두 사람은 마치 잡히지 않는 황금의 땅을 찾아 헤매는 것처럼 물이 흥건해진 바닥을 휘저으며 뒹굴며 싸운다(이 장면은 이명세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연상시킨다). 헛된 꿈이 한바탕 둘을 휩쓸고 지나간 후 남은 것은 서로 기댈 수밖에 없는 두 몸뚱어리. 결국 사람에 대한 희망적인 메시지를 남기는 결말과 함께 작품의 앞뒤로 적당한 여운을 둘 줄 아는 깔끔한 연출력이 돋보였다.


폐막작 L­E­V 〈OCD LOVE〉(5월 27~28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평자 28일 관람)

 앞서 개막작 스코틀랜드 국립현대무용단 〈Process Day〉에서 만났던 샤론 에얄과 가이 베하르의 작품 〈OCD LOVE〉(2015)를 그들의 본진 L­E­V의 공연으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샤론 에얄은 작품의 영감을 닐 힐본(Neil Hilborn)의 텍스트 〈OCD〉(Obsessive-Compulsive Disorder 강박장애)에서 얻었다고 밝혔는데, 이 시는 2013년 미국의 Poetry Slam이라는, 창작자가 시를 직접 낭송하면서 어떤 열정적인 표현까지 겸해 발표하는 경연에서 나온 것이다(유튜브에 동영상이 있다. https://youtu.be/vnKZ4pdSU-s).
 강박증을 가진 이가 자신을 이해해주는 연인을 어렵게 얻었지만 집착을 견디다 못한 그녀가 떠났고, 이전의 강박증으로부터는 벗어났지만 다시 외로움과 새로운 종류의 슬픈 강박이 남겨졌다는 내용의 이 시는 상당한 호소력을 갖고 있다. 현대인에 있어 불안, ‘다름’으로 인한 ‘불일치’, 그로 인한 상실감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나 경험하는 보편적인 감정이기 때문이다.
 규칙적으로 또각거리는 시계 소리와 함께 막이 열리고 등장한 여성무용수 Rebecca Hytting은 그런 강박장애를 가진 자아를 대표한다(이후 등장한 다른 무용수들은 이 ‘증상’을 조금씩 나누어 표현한다). 아주 긴 호흡 속에 한껏 긴장시킨 근육을 통제하면서 열정이 분출되기 직전 억눌린 상태를 표현하는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뒤돌아 허리를 굽힌 채 견갑골부터 두 팔을 한껏 들어 올려 날아가고픈 욕망을 드러내지만 무거운 추를 단 것처럼 뜻대로 되지 않는 솔로의 마지막 동작이었다.
 혼자서 벗어날 수 없는 그 굴레는 다른 사람의 신체가 마치 타종하는 모양으로 다가와서 강하게 부딪힘으로써 깨진다. 남성무용수 두 명의 동성애를 연상시키는 듀엣, 훈도시를 착용한 것 마냥 엉덩이를 드러내고도 한껏 나르시시즘에 도취된 모습은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허문다.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존재하고, 우리가 꼭 결핍을 채우려고 사랑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를 만남으로써 내가 통제시키던 나만의 세계와 질서가 어긋나는 것조차 희열로 받아들일 수 있는 완전한 몰입의 상태- 그들의 춤을 통해 그런 엑스터시를 느낄 수 있었다.
 2014년의 〈House〉보다 감정의 서사라는 강점을 갖추고, 그것을 완벽하게 뒷받침하며 발산시키는 테크니컬한 움직임, 오리 리치틱의 본능에 호소하는 음악을 장착한 이번 〈OCD LOVE〉는 샤론 에얄과 가이 베하르가 공연의 제반 요소를 융합시키는 능력이 정점에 이르렀음을 확인할 수 있는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이번 모다페의 개·폐막작 해외 초청 공연은 따끈따끈한 신작으로 구성되어 동시대의 흐름을 쉽게 접할 수 있어 관객 만족도가 높았다. 이외에도 해외 초청작은 예년보다 편성 숫자를 줄이고 질적인 측면에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올해가 한불 수교 130주년이라 프랑스 쪽을 접촉하는 것이 보다 쉬웠을 수도 있는데, 그것을 피한 것이 모다페 나름의 색깔을 유지하게 한 현명한 선택이 된 듯 하다.
 그리고 국내 안무가들의 경우 특히 소극장 공연에서 내실 있게 성장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던 점은 올해 모다페의 성과다. 앞으로도 신진 안무가들의 다양성을 수용하고 보호하는 무대를 꾸준히 마련해줄 것을 기대한다.
 한편 개막작 〈Process Day〉의 경우 노출은 거의 없었지만 여성 무용수의 다리 사이로 남성 무용수의 팔뚝이 들어와 움직이는 등 성행위를 충분히 연상시키는 장면이 있었고, 폐막작도 동성애 코드, 엉덩이 노출 등으로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이 공연들의 관람등급은 한국공연예술센터 홈페이지에 8세 이상 관람가능이라 안내되어 있는데 어떤 기준으로 정해진 것인지 궁금하다. 비록 공중파에서 아이돌들이 낯 뜨거운 퍼포먼스도 대놓고 하는 현실이지만, 모다페 같은 큰 축제에 초청된 해외단체의 내한 공연에는 예술을 전공하는 중고생(폐막공연에는 적지 않은 수의 중고등학생들과 초등학생을 동반한 관객도 눈에 띄었다)도 상당수 온다는 점을 고려하면 관람등급에 대해 주최 측이 세심한 눈으로 관찰하고 운용하는 배려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6. 06.
사진제공_국제현대무용제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