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리틀엔젤스예술단 창단 60주년 기념 학술심포지엄
청소년 전문 예술단체로서의 방향설정 중요
장광열_춤비평가

“오늘 이 자리에 와 보니 미국의 여러 공연장을 돌며 공연하던 생각이 납니다. 앞으로도 리틀엔젤스예술단은 세계 어디를 가든 단연 홍일점이 될 것입니다. 이건 내가 했다기보다는 박보희 총재님이 이룬 기가막힌 작품입니다. 내가 춤을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그 춤 공연을 가능하게 만든 분은 그분입니다. 일생을 통해 감사드립니다. 창단 60주년을 맞았다니 감개무량합니다. 리틀엔젤스예술단이 더 빛나고 하늘에까지 그 명성이 일려져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단체가 되고, 이로 인해 남북통일이 이루어지길 기대합니다.”
 리틀엔젤스예술단 초대 단장을 지낸 신순심의 인사말이 끝나자 장내는 뜨거운 박수와 함께 여기저기서 환호가 터졌다. 여느 학술 행사장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마치 무대 공연이 끝난 후 퍼포머들의 커튼콜을 보는 듯 했다.




리틀엔젤스예술단 창단 60주년 기념 학술심포지엄




 리틀엔젤스예술단이 올해 5월 5일로 창단 60주년을 맞는다. 1962년 5월 5일 대한어린이무용단으로 출발한 리틀엔젤스예술단은 창단 후 지금까지 7천회 이상 공연했다. 미·소 정상과 영국 여왕 앞에서의 공연을 비롯, 1998년 평양 학생소년궁전 공연 후 북한학생소년예술단과의 합동공연, ‘문화올림픽’을 표방했던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문화행사를 위한 국가문화사절로 선발돼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춤추고 노래하는 작은 천사들’ ‘평화의 천사’로 널리 알려진 어린이 공연단체로, 창단 직후부터 전 세계를 순회했고, 한국의 우수한 민속예술을 소개하며 가난한 나라로 인식되던 대한민국의 국가 이미지를 고양하는데 기여했다. 어린이 청소년들의 예술 활동을 진작시켰고, 대한민국의 민간외교사절단으로 문화예술을 통한 외교에 기여했다.




리틀엔젤스예술단 신순심 초대 단장




 리틀엔젤스예술단(단장 정임순, 예술감독 배정혜)이 창단 60주년을 기념해 개최한 학술 심포지움(1월 19일, 선화아트홀)은 그 의미와 함께 열기도 뜨거웠다. 음악·무용부문 4명 발제자들의 연구 내용은 심도가 깊었다. 토론에 이어진 리틀엔젤스예술단의 단원으로 활동했던 예술가들과 관계자들이 참여한 라운드테이블은 공연예술 단체로서 예술단의 면면을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다. 60여 명의 청중 중에는 리틀엔젤스예술단에서 활동했던 단원들이 적지 않게 참여해 마치 단체의 생일잔치 같은 분위기였다.
 ‘예술로, 세계로, 미래로’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날 심포지엄에서 발제자들은 언론기사, 시각자료, 문헌자료, 구술자료 등 리틀엔젤스예술단이 남긴 자료를 통해 대한민국 공연예술사의 흐름 속에서 예술단을 조망했다.




 




글로벌 공연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귀한 자산

이날 행사는 정임순 리틀엔젤스 예술단장의 개회사로 시작되었다.
 “오늘도 두바이 엑스포에서 리틀엔젤스는 드넓은 행사장을 매일 삼만보씩 걸으며 하루 네 차례 공연을 펼치고 있다. 지난 60년간 숱한 역경과 어려움 있었지만 내면의 아름다움을 펼쳐왔다. 이제 ‘예술로, 세계로. 미래로’라는 구호대로 60주년을 계기로 더 특별한 예술단체로 나아가려 한다”고 말했다.
 이어 문훈숙 효정한국문화재단 이사장은 환영사에서 “민간예술단체가 일관된 이상을 가지고 전 지구를 상대로 60년간 예술활동을 펼친 사례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한류라는 개념이 없을 때 리틀엔젤스는 평화사절로 활약하며 철의 장막, 죽의 장막, 그리고 삼팔선을 넘어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했다”고 말했다.
 조남규 한국무용협회 이사장의 축사가 이어졌고 이후 본격적으로 4명 발제자들의 발표가 시작되었다.




김희선 국민대 교수의 발제 모습




 ‘리틀엔젤스예술단의 공연예술사적 의미’를 주제로 발표한 김희선(국민대 교수)은 한국 공연예술 전환기에 등장한 리틀엔젤스예술단이 한국예술계에 남긴 유산과 의미를 고찰하면서, 문화사절단부터 평화사절단까지 시기별 활동과 특징, 그리고 글로벌 공연예술사적 의미를 조명했다. 홍주희 제주대 교육대학 음악교육과 교수가 토론자로 참여했다.
 김희선 교수는 리틀엔젤스예술단 60년을 ‘창설기(1962∼1964)’, ‘문화사절단 활동기(1965∼1976)’, ‘민간예술단 전환기(1977∼1989)’, ‘평화사절단 활동기(1990∼현재)’로 구분했다.
 중요한 해외공연으로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 사저 공연을 1호로 14차까지 진행된 리틀엔젤스 해외투어를 꼽았다. “지금도 그만한 규모로 해외공연에 나선 국내 단체가 아직 나오지 않은 전설적 규모다. 가장 대표적인 전미 투어의 경우 한번 공연에 나서면 수개월 동안 어린 예술단원과 악사, 그리고 소수의 스태프가 투어버스에 악기와 무대소품, 그리고 살림살이에 가까운 짐을 싣고 미 대륙 70여 도시를 돌며 공연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레너드 번스타인 등을 거느렸던 기획사 컬럼비아아티스츠(CAMI)가 투어 일정을 관리했다. 영국에서 건너온 비틀스가 미국 첫 무대로 택했던 당대 최고 TV 프로그램인 에드 설리번 쇼에도 두어 차례 출연했을 정도이다”라고 말했다.
 리틀엔젤스 투어가 현지에서 얼마나 큰 반향을 일으켰는지는 당시 언론에 실린 리뷰가 잘 보여준다. 미국 뉴욕타임스(1968)에 실린 평론가 안나 키셀로프의 리뷰는 “경이적인 무용단(A Phenomenal Company)”으로 시작한다.
 “눈썹의 움직임으로부터 복잡한 발동작, 그리고 매우 현란한 장구의 장단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세부적인 공연내용은 천재적인 안무가 신순심씨에 의해 완벽하게 연출되었다. 리틀엔젤스의 공연에는 미숙한 순간이 하나도 없었다. 오로지 프로그램에 배어있는 아름다움과 극적인 효과로 꽉 차 있을 뿐이었다.”
 “리틀엔젤스예술단은 그동안 어린이예술단이라는 점과 문화사절단 역할 수행에 가려 예술성의 평가대상으로 인식되지 않았고, 민간단체여서 공적 예술사 서술에 포함되기도 어려웠는데 앞으로 근현대 공연예술사에서 입체적 고찰이 필요합니다.”
 김희선 교수는 그동안 어린이예술단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리틀엔젤스의 공연예술사적 의미에 대해 “여러 차원에서 당대 한국과 글로벌 공연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귀한 자산”이라고 규정했다. ‘어린이예술단’이란 이유로 평가절하할 게 아니라 당대 드물게 전문예술단체로서 운영체제를 갖추고 해외 매니지먼트를 통해 최전성기 때는 무려 1, 2, 3진으로 나눠서 대륙별 투어에 나설 정도로 활약했던 선진 예술 단체였다는 설명이다.




윤중강 국악평론가의 발제 모습




 ‘리틀엔젤스예술단의 음악과 음악가: 박성옥에서 이준호까지’를 주제로 발제한 윤중강(국악평론가)은 “예술단의 초기 공연 음악의 특징은 모두 국악기로 구성된 라이브 연주였다. 리틀엔젤스예술단의 초기 공연에서는 여성 단원들 못지않게 김덕수, 최병삼을 비롯한 남성 단원의 활약상이 대단했다”며 예술단의 음악에 대한 이모저모를 풀어냈다. 이진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와 함께 토론자로 참여했다.
 “리틀엔젤스 60년 역사의 초석을 쌓은 건 신순심·박성옥 콤비다. 리틀엔젤스는 창단 때부터 파격적으로 이화여대에서 발레를 전공한 당시 이십대 초반 젊은 무용가 신순심에게 무용지도를 맡겼다. 초대단장이 된 신순심은 여러 인재를 영입하고 레퍼토리를 만들며 엄격한 훈련으로 신생 예술단체 기반을 구축했다.”
 “레퍼토리의 정체성을 만든 건 초창기 선화어린이무용단 단장 겸 연출을 맡았고 60년대 중반까지 작품 음악은 물론 안무까지 도맡았던 박성옥이다. 전설적 무용가 최승희와 함께 무대를 만들었던 박성옥은 ‘20세기 최고 무용음악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근대 전통무악의 거장 한성준을 사사하고, 조택원, 김백봉 등 신무용가들의 작품에 음악을 입힌 전통 예술가다. 명콤비가 만들어낸 부채춤, 장구춤, 농악, 강강수월래, 꼭두각시, 시집가는 날, 무사놀이 등은 시대 변화에도 변치 않는 우리나라 전통예술의 하이라이트가 됐다”라며 두 아티스트의 공헌에 대해 높은 평가를 내렸다.
 윤중강은 리틀엔젤스예술단이 생음악으로 활동하던 시절 이들 악사 비중이 매우 높았다는데 주목했다. “국립국악원 소속 악사들이 초기에는 중심을 이뤘다. 예술단 공연은 당시 젊은 국악연주자라면 누구나 참여하고 싶은 대표적 공연이었다며 1970년대 중반까지 활약한 38명의 악사 활동에 주목했다.
 그는 “리틀엔젤스예술단은 유럽의 비인소년합창단과 파리나무십자가합창단과 비교될 수 있다“며 예술단 60년의 의미를 ‘예술적 접근: 어린이 무용의 가치창조’, ‘무대 메카니즘적 접근: 음악, 무대, 소품, 조명“ 으로 진단, 어린이 무용에 대한 연구와 공연과 관련한 스태프들에 대한 구술채록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리틀엔젤스예술단의 무용레퍼토리 진단’을 주제로 발표한 심정민(무용평론가)은 “꼭두각시, 장고무, 북춤, 시집가는 날, 농악, 강강수월래, 화관무, 탈춤 등 예술단 60년 동안의 주요 작품들 중 가무악을 포괄하는 전통춤에 근간하거나 새로이 창작하여 만든 무용레퍼토리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수정 및 보완해온 경우가 많다“고 진단했다. 무용평론가 김경애가 토론자로 참여했다.
 “전후 우리나라의 이미지가 전쟁, 고아, 국제구호로 점철된 시대에 창설된 리틀엔젤스는 우리나라 고유의 민속과 전통문화예술을 전 세계에 알렸다. 그간 이룬 성과는 어린이 예술단으로서는 전무후무한 기록이고 일반 국공립단체와 비교해도 혁혁한 성과다.”
 그는 “리틀엔젤스예술단의 레퍼토리는 원작의 틀을 유지하면서 유연하게 현대화 과정을 거쳐왔다. 대규모 군무의 화려한 꽃 대열을 처음 시도한 것도 리틀엔젤스라는 증언이 있다”고 밝혔다. 예술단의 교육과정과 관련해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어린이 민속예술단으로서 외교 사절단의 역할도 수행하다 보니 공연의 높은 질을 유지하기 위해 체계적인 교육을 병행할 수밖에 없었고, 자연스럽게 가무악 영재교육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고 소개했다.
 현재 국악계, 음악계, 무용계 현장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리틀엔젤스예술단 출신의 예술가들로 김덕수, 최종실, 지애리, 신영옥, 김운미, 이노연, 전은자, 신명숙, 전유오, 문훈숙, 강수진, 윤푸름, 황미숙 등 40여명을 꼽았다.




최해리 무용역사기록학회 회장의 발제 모습




 ‘리틀엔젤스예술단의 춤과 교육 분석’을 주제로 발표한 최해리(무용역사기록학회 회장)는 리틀엔젤스가 60년을 이어올 수 있었던 자산으로 문선명·한학자 창시자의 강력한 후원과 리틀엔젤스의 전통, 박보희 총재가 구축한 예술경영시스템, 박성옥과 신순심 콤비가 개발한 고전무용 레퍼토리, 공동체적인 훈련시스템을 강조했다. 박재홍 한성대 무용과 교수가 토론자로 참여했다.
 리틀엔젤스 예술단의 창단과정과 예술단의 대표 작품인 〈부채춤〉과 〈꼭두각시〉를 라반움직임표기법(Labanotation)으로 분석한 그는 리틀엔젤스예술단 향방으로 뉴노멀 시대의 세계와 소통하는 공연과 미래를 향한 교육에 대한 투자를 주장했다.
 이어진 라운드테이블에는 곽은아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이노연 국립남도국악원 초대안무자, 김덕수 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박노희 효정한국문화재단 이사, 홍경희 한국춤문화포럼 대표, 정보경 한국예술종합학교 객원교수가 패널로 참여했다.
 리틀엔젤스예술단은 이번 심포지엄을 통해 발표된 연구자료와 관련자들의 진술, 대중들의 기억과 사물을 수집해 예술단 역사 기록을 위한 자료로 활용할 예정이다.










 




 이번 심포지엄은 리틀엔젤스예술단의 문화예술사적 가치를 진단하고 예술단의 교육, 창작, 행정활동을 공연예술의 관점에서 연구, 60년의 역사를 가진 주니어 예술단의 위상과 독창성을 제고하고 아동 예술교육의 중요성을 부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리틀엔젤스예술단의 미국 투어 등 실무총책임자로 활약했던 박노희 효정한국문화재단 이사는 “청춘을 리틀엔젤스에 바치며 가졌던 고민과 어려움이 오늘 확 풀렸다. 저 스스로가 자랑스럽다. 리틀엔젤스가 그간 광야에 있다가 비로소 오늘 주류 무대에 동참하게 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 지난 60년에 대한 평가를 직접 들으니 그간 걸어온 길이 정말 옳은 방향이었구나. 큰일을 했구나 하고 느꼈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장에는 3년 전부터 리틀엔젤스예술단의 예술감독 역할을 맡고 있는 배정혜의 모습도 보였다. 그는 지난해 리틀엔젤스예술단 신작인 〈설날아침〉을 비롯해 〈궁〉 〈바라다〉 〈미얄〉 〈진쇠놀이〉 〈화검〉을 한꺼번에 선보이기도 했다.
 “리틀엔젤스가 쌓은 역사가 오랜 만큼 변해야 한다는 건 기정사실이다. 현존 레퍼토리가 오랜 세월을 이겨낸, 잘된 작품만이 남은 것처럼 앞으로도 새로운 좋은 작품이 리틀엔젤스예술단의 경쟁력을 높여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리틀엔젤스예술단은 이번 심포지엄을 시작으로 창단 60주년 기념공연을 5월에 유니버설아트센터와 12월에 세종문화회관에서 선보일 예정이며, 이밖에도 다양한 국내외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리틀엔젤스예술단은 우리나라 공연예술사적으로 무엇보다 어린이 청소년들로 이루어진 전문 예술단체란 점에 주목해야 한다. 외국의 경우 ‘국립’으로 운영되고 있는 청소년예술단도 적지 않다. 향후 리틀엔젤스예술단을 바라보는 시선은 공연과 훈련, 작품 개발 등을 포함한 단체운영 시스템과 축적된 레퍼토리 유통 등 전문 예술단체의 관점에서 행해져야 한다.
 이번 심포지엄은 특히 어린이들로 구성된 예술단체란 이름으로 문화예술사적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했던 리틀엔젤스예술단을 새롭게 조명하고 지난 60년뿐만 아니라 다소 미진하긴 했지만, 앞으로의 향방에 대해서도 모색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었다.

장광열

1984년부터 공연예술전문지 〈객석〉 기자, 편집장으로 20여 년 활동했다. 춤비평집  『변동과 전환』 , 『당신의 발에 입맞추고 싶습니다』 등의  저서가 있으며, 서울국제즉흥춤축제 예술감독 등을 맡아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숙명여대 겸임교수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 ​ ​ ​ ​​​ ​ ​​​

2022. 2.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