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서울시무용단 〈여름 빛, 붉은 단오〉
몇 개의 빼어난 춤, 구성의 과욕
장광열_춤비평가

 신문이나 잡지의 기사는 편집이 중요하다. 어떻게 편집을 하느냐에 따라 기사의 가독율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목이나 사진의 내용과 위치는 독자들로 하여금 그 기사를 읽을지 말지를 결정하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이 같은 편집의 묘미는 공연예술작품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작품의 내용들을 어떤 형태로, 어떤 양식으로 조합해 낼 것인지를 정하는 것은 신문이나 잡지에서의 편집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시무용단이 2016년 정기공연 무대에 올린 〈여름 빛, 붉은 단오〉(6월 2-5일 세종M씨어터, 평자 5일 관람)는 프롤로그를 비롯해 모두 3개 장으로 나누어져 있고 약간의 스토리텔링이 가미되어 있지만, 공연의 대부분은 우리나라 민속무용 계열의 창작 소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단오날을 배경으로 남녀 주인공과 무녀가 등장하고 이들의 춤도 있지만, 이는 준비한 소품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에 불과해 보였다.




 단오날 화동마을을 배경으로 선보인 10개가 넘는 춤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씨름춤〉과 배정혜의 〈장고춤〉, 그리고 마지막 순서로 선보인 〈강강술래〉였다.
 씨름과 창포물에 머리감기는 그네타기나 탈춤 등과 함께 예로부터 단오날 서민들이 즐겨 하던 세시풍속이다.
 씨름경기에서 선보이는 기술적인 동작들을 접목한 〈씨름춤〉은 경기에 임하는 두 남성들이 상대방의 몸을 들고 엎어치고 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움직임의 고저와 완급을 적절히 조율시킨 안무, 승부의 긴박감, 두 편으로 나누어 응원하는 마을사람들의 몹(Mob)씬까지 어우러지면서 춤과 놀이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소품으로 손색이 없었다.
 배정혜의 〈장구춤〉은 솔로와 군무의 배합, 장구를 두드리는 소리의 고저, 타건의 완급, 장구를 맨 상태에서 무용수들이 만들어내는 장구체의 사용에 따른 춤의 형태가 변화무쌍하게 맞물려 있다. 타악음이 만들어내는 음향의 고저, 장구를 다루는 기술적인 역량, 정지와 이동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에너지의 변화는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날 서울시립무용단 단원들이 보여준 앙상블과 기량 역시 명작무의 반열에 올려도 좋을 정도로 이 작품은 안무와 춤 모두에서 빼어났다.
 〈강강술래〉 역시 정갈했다. 강강술래가 갖는 원무의 구도와 지와밟기, 남생이놀이 등에서 보이는 놀이적인 요소들이 잘 버무려져 있으면서 여성군무가 만들어낼 수 있는 한국의 토속적인 미감이 잘 살아난 순서였다.




 이밖에 서울시립무용단 단원들이 춤춘 배정혜의 〈부채춤〉과 백홍천의 〈장검무〉, 하용부의 〈밀양북춤〉, 백현순의 〈덧배기춤〉은 그 춤이 가진 고유의 색채들이 무대 위에서 제대로 표출되지 못했다. 〈부채춤〉은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음미하기에는 무대가 너무 작았고 객석과 무대 사이의 거리도 너무 짧았다. 백홍천이 지도한 최승희 류의 〈장검무〉와 〈밀양북춤〉, 〈덧배기춤〉은 춤추는 댄서들이 이들 춤이 갖는 맛깔을 제대로 알고 추었을 때 더욱 빛이 날 것이다. 일부 춤에서는 연습 부족도 드러나 보였다. 특별출연한 정인삼의 〈소고춤〉은 여타 공연장에서 보던 때보다 춤추는 이의 집중력에서나 객석과의 소통 면에서 그 열기가 덜해 아쉬움을 남겼다.
 전체적으로 이번 공연은 적어도 두 가지 면에서 향후 전체적인 틀에서의 편집이 필요해 보였다. 하나는 남녀 주인공과 무녀가 등장하는 스토리 설정이 무용 소품을 보여주기 위해 억지로 조합되었다는 인상을 떨칠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어느 마을에 당산나무가 있었고 그 나무를 몹시 사랑하는 천지와 신명이 있었다'는 설정 자체가 설득력이 없는 데다 주인공 천지역과 신명 역의 다소 밋밋한 2인무나 무녀 역을 맡은 장미희의 카리스마의 부재 역시 그나마의 스토리텔링을 약화시켜버렸다. 당산나무나 무녀의 방 등을 나타내기 위해 설치된 무대미술은 너무 조악해 오히려 전체적인 작품의 예술적인 완성도를 저해하는 요인이 되었다. 국립무용단의 <코리아 판타지> 처럼 소품 그 자체만으로 편성을 다시 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무대의 여건에 따라 춤의 구조가 다르게 편성되도록 하는 편집의 기술이 필요해 보였다. 이미 연습된 춤이라도 무대의 크기나 공연의 성격에 따라 인원을 줄이거나 구성에서 아예 빼도록 하는 편집의 기술은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시도가 될 수 있다. 관객들에게도 너무 많은 것이 넘쳐나 소화불량에 걸리는 것 보다는 다소 부족한 듯 하지만 전체적으로 맛깔스러운 음식으로 배를 채우는 것이 더욱 포만감을 줄 수 있다.
 관객들이 예술공연 무대에서 기대하는 것은 한편의 이야기가 있는 어정쩡한 작품보다는 비록 그것이 소품이라 하더라도 완성도 높은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것이다. 여러 개의 소품이 나열되는 춤 공연일 경우 특히 댄서들은 출연하는 하나하나의 작품에 집중해야 하고, 안무자는 그 무용수들과 함께 자신의 이름을 내건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정성을 다해야 한다. 제대로 된 준비 없이 무대에 오른 작품은 금방 들통이 난다. 

2016. 07.
사진제공_서울시무용단 *춤웹진